최상의 조합은 객석을 사랑으로 물들였다. 세 명의 젊은이들은 감성과 이성의 조화를 실현하며 낭만주의의 본질을 꿰뚫고 있었다. 금호아트홀 상주음악가로 관객 앞에 선 김다솔은 무대 위에서 가감 없이 자신의 끼를 펼치면서도, 결코 튀는 법 없이 모두를 감싸 안으며 리드하는 모습을 보여줬다. 7월 11일, 금호아트홀.
글 유혁준(음악 칼럼니스트) 사진 금호아시아나문화재단
“물결 위에 무지개가 드리우고, 시냇가에는 나비가 춤추고, 밤꾀꼬리가 반주를 하는….” 브람스를 평생 신봉하며 전기를 집필했던 19세기 독일의 평론가 막스 칼베크의 찬사처럼, 피아노가 슬쩍 무지개를 드리우면 첼로가 가장 사랑스러운 선율로 춤추고 바이올린은 밤꾀꼬리처럼 멋들어지게 반주했다. 세상에서 이처럼 평화로운 음률이 또 있을까! 장대한 1악장의 1주제는 못갖춘마디로 시작되는 피아노의 꿈결과도 같은 네 마디의 서주 뒤에 첼로가 극히 부드러운 음성으로 노래했다. 비브라토의 진폭은 자로 잰 듯 그윽하다. 이어 바이올린이 자극적이지 않은 고음으로 입장하며 세 악기는 서로 얽혔다. 때로는 고조되어 그 정점에서 절규하다가 때로는 착 가라앉은 레가토를 견지하며 연가를 부르기도 한다.
지난 7월 11일, 피아니스트 김다솔과 바이올리니스트 에리크 슈만·첼리스트 다비드 피아가 함께 만들어내는 브람스의 피아노 트리오 1번은 1악장 시작부터 최상의 조합으로 객석을 사랑으로 물들게 했다. 함부르크에서 온 갓 스무 살을 넘긴 브람스가 클라라와 불꽃같은 사랑에 빠진 것을 알기라도 한 것일까? 스승 슈만에 대한 절대적인 존경과 부인 클라라와의 혼란스러운 감정이 전곡을 관통하는, 이루어질 수 없는 플라토닉한 연정이야말로 이 곡을 푸는 열쇠다.
그 열쇠는 김다솔의 손에 쥐어져 있었다. 1989년생 김다솔은 무대 위에서 가감 없이 자신의 끼를 펼쳐보였다. 그는 6년 선배인 나머지 두 연주자를 철저히 배려했다. 결코 튀는 법이 없이 모두를 감싸 안으며 리드하면서도 스스로를 꼭꼭 숨겼다. 이러한 면은 스케르초 악장의 ‘작은 요정의 춤’ 장면에서 도드라졌다. 종횡무진 누비는 상성부의 움직임 속에서도 바이올린과 첼로는 또렷하게 들려왔다. 트리오의 시작을 알리는 기막힌 멜로디를 읊는 김다솔의 음색은 참으로 탁월했다. 이러한 톤 컬러를 다듬기 위해 그가 얼마나 담금질을 해왔는지 알게 했다. 또 하나, 이 세 명의 젊은이들은 지나친 레가토를 삼가며 절제의 미덕마저 보여주었다. 감성과 이성의 조화를 실현하며 낭만주의의 본질을 꿰뚫고 있었다. 3악장, 코랄 풍의 주제를 담담히 그리는 김다솔의 얼굴은 무표정했지만 음악은 강렬했다. 사랑의 아픔이 절절히 전해져왔다. 근본적으로 밤의 음악을 지향하는 브람스의 본모습이다. 4악장 피날레에서 바이올린이 내리치는 꾸밈음의 효과는 대단했다. 놀랍게도 연주자의 이름은 슈만이다.
‘영원한 방랑자’ 슈베르트의 피아노 트리오는 브람스의 그것과는 다르다. 클라라를 염두에 둔 브람스와 달리 평생 연애 한 번 제대로 한 적이 없는 슈베르트는 극심한 육신의 아픔을 견디고 천국을 갈망하며 황혼기에 이 곡을 썼다. 세 명의 연주자들은 더욱 진중했다. 얼핏 보기에 유쾌한 1악장에서조차 이들은 순간순간 창백한 슈베르트의 얼굴을 내비쳤다. 2악장은 백미였다. 김다솔이 전매특허와도 같은 깔끔한 터치로 이끌면 피아의 첼로가 기막힌 메사디보체를 구사하며 뒤를 든든히 받쳐주었다. 슈만의 바이올린은 같은 주제를 높게 또 높게 솟구쳐 올렸다. 4악장의 장대한 피날레에서 이들은 마음껏 피어올랐다. 하지만 이미 설정한 감정의 경계선을 넘어서지 않고 끝까지 음악을 지켰다.
실내악은 고전음악의 하부에 위치한 베이스와도 같다. 이토록 완성도 높은 연주에 비해 객석의 반도 차지 않은 현실을 보면서 안타까움을 금할 수 없었다. 그러나 독주자로서뿐 아니라 실내악에 있어서도 발군의 기량을 보여준 김다솔을 만난 것만으로도 충분히 가치 있는 콘서트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