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진무결한 소리가 공간을 가득 채운다. 600년의 시간이 흘러도 변치 않는 울림은 찬란한 한 줄기 빛이 되어 가슴 깊숙이 파고든다. 스티븐 클리오버리가 이끄는 킹스 칼리지 합창단이 8월 8일, 성남아트센터 무대에 오른다.
영국 교회음악 전통의 계승자들이 선사하는 순수한 울림과 마주할 시간이다. 1441년 헨리 6세에 의해 창단된 킹스 칼리지 합창단이 지난 2006·2011년에 이어 세 번째 내한 공연을 갖는다. 이번에도 지휘자 스티븐 클리오버리와 킹스 칼리지 학교 재학생으로 구성된 소년 성가대원 열여섯 명, 킹스 칼리지 대학교 재학생들로 구성된 열네 명의 일반 성가대원, 두 명의 오르간 단원이 함께 한다.
킹스 칼리지 합창단의 주된 임무는 킹스 칼리지 교회에서의 주 6일 미사와 매년 크리스마스 이브 때면 BBC방송을 통해 중계되는 ‘아홉 일과와 캐럴 축제’ 미사에서 노래하는 것이다. 여기에 여러 도시의 순회 공연과 방대한 레코딩 작업 등을 우직하게 수행해오고 있다.
1982년부터 킹스 칼리지 합창단을 이끌고 있는 스티븐 클리오버리는 합창단의 레퍼토리를 확장하는 것과 동시에 작곡가들에게 새로운 작품을 위촉하는 등 오르가니스트이자 지휘자·음악감독으로서의 역할을 동시에 이어가고 있다. 클리오버리가 음악감독으로 재임하면서 합창단 활동에는 많은 변화가 생겼다. 무엇보다 새롭게 만들어진 시리즈가 눈에 띄는 변화다. 2004년에 시작한 ‘킹스 칼리지에서의 부활절(Easter at King′s)’은 매해 BBC방송이 중계해 왔으며, 한 해 동안 크고 작게 이어지는 ‘킹스 칼리지에서의 콘서트(Concerts at King′s)’ 시리즈 중 헨델 ‘메시아’는 유럽과 북아메리카 내 여러 극장에서 동시 생중계된 바 있다. 킹스 칼리지 합창단의 음악은 오디오 웹 캐스트를 통해서도 들을 수 있다. 빛나는 전통의 울림으로 다양한 시대의 정통 성악곡을 선보이고 있는 킹스 칼리지 합창단의 내한 공연을 앞두고 스티븐 클리오버리를 이메일로 인터뷰했다.
다른 소년 합창단과 달리 킹스 칼리지 합창단은 소수 정예 단원으로 구성되어 있다. 합창단의 오디션은 어떤 방식으로 이뤄지나.
개인적으로 합창단원으로서 가능성을 지니고 있는 아이들과 마주할 때면 항상 행복하다. 굳이 오디션 기간이 아니어도 음악에 재능 있는 소년들을 데리고 합창단을 찾는 부모들이 꽤 있다. 합창단에서도 이러한 방문을 환영한다. 나는 아이들의 노래를 들어보고, 평소 킹스 칼리지 합창단이 소화하는 노래들과 생활 과정 등 부모들이 궁금해 하는 부분에 관해 이야기해준다. 소년 성가대원 오디션은 매해 두 차례 갖는다. 오디션 때는 아이들이 준비해온 간단한 노래를 듣고, 청음 테스트를 하면서 개별적인 음역대를 살핀다. 오디션에서는 이미 상당한 수준에 도달한 능숙함보다 목소리의 가능성을 중점적으로 본다. 변성기 전까지 학생들의 목소리가 어떠할지에 대해서는 보컬 코치의 의견을 신뢰한다. 잠재력 면에선 소년뿐 아니라 청년에 이르기까지, 일반 성가대원을 선발하는 오디션에서도 동일하다. 일반 성가대원 오디션 지원자의 경우, 케임브리지 대학교 학부생인 동시에 우수한 성적을 갖춰야 한다. 성가대와 함께하는 오르가니스트들은 3년에 2회 가량 열리는 오디션을 통해 선발된다. 오르간 연주자들은 오디션에서 청음 테스트 외에도 연주 실력을 평가받는데, 이를테면 조옮김이나 세심한 반주 능력과 같은 부분이다. 여기에 소년 성가대원들을 훈련시키는 음악감독의 업무를 어느 정도 도울 수 있는지도 살펴본다.
단원을 뽑을 때 가장 중시하는 것 세 가지를 꼽는다면.
목소리에 담긴 가능성·훌륭한 음감·상당한 수준의 시창 능력이다. 소년 성가대원의 경우, 합창단에서 시창을 배워나갈 수 있기 때문에 첫 번째, 두 번째 능력만 갖추어도 괜찮다.
성가대원들의 연령대는 어떠한가.
여덟 살이 되면 소년 성가대원에 합류할 수 있다. 이후 수습 기간을 거쳐 아홉 살에서 열 살 무렵 정식단원이 되는데, 중등학교(secondary school)에 입학하는 열세 살 전까지 계속 활동할 수 있다. 일반 성가대원은 대학교에 입학하는 열여덟 살부터 졸업하는 스물두 세 살 무렵까지 활동한다. 때로는 그보다 나이가 많은 일반 성가대원도 있는데, 1~2년 휴학했거나, 다른 학교에서 학위를 받고 온 사람인 경우다. 대학에서 신학·영문학·역사학·자연과학 등 다양한 학문을 공부하는 학생들로 구성되어 있고, 이들이 음악을 학문적으로 공부하는 범위 또한 방대하다.
킹스 칼리지 합창단원들은 기숙생활을 하는가.
소년 성가대원들은 킹스 칼리지 학교(King′s College School) 내 기숙사에서 생활한다. 기숙사는 케임브리지 강 인근에 있고 교회와 도보로 5분 거리이다. 같은 또래 아이들과 한 방을 같이 쓰는데, 그중에는 합창단원이 아닌 아이들도 섞여 있다.
단원들의 주된 활동 기간은 언제인가.
킹스 칼리지 합창단은 월요일을 제외하고 매일 교회 미사 시에 노래를 한다(일요일에는 두 차례의 미사가 있다). 학교의 하계 방학 중에 노래하는 시간은 열흘 정도다. 순회 공연은 보통 12월 초나 1월, 4월 또는 여름에 이뤄지는 편이다.
순회 공연 기간 중 킹스 칼리지 교회에서 매일 이뤄지는 미사를 담당하는 합창단원은 어떻게 구성되나.
순회 공연 기간 중 킹스 칼리지 교회에서는 합창이 없다. 킹스 칼리지 합창단이 오직 하나의 팀으로 구성되어 있어서다. 이를테면 빈 소년합창단과는 다른 시스템이다. 그래서 순회 공연에서 관객들이 만나는 합창단이 곧 유일한 킹스 칼리지 합창단이다. 순회 공연은 허용된 기간과 횟수 안에서만 이뤄진다.
킹스 칼리지 합창단원이 지녀야 할 중요한 가치관은 무엇인가.
자신이 가진 최상의 능력으로, 매번 주어지는 공연에 힘써 나아가는 것이다.
오랜 역사 속에서 킹스 칼리지 합창단이 고유한 음색을 지킬 수 있었던 비결이 궁금하다.
지속성과 불변성이 지금의 킹스 칼리지 합창단을 만들어주었다고 생각한다. 더불어 개인적으로는 음악적인 방향의 지속성이라고 생각한다. 위대한 네 명의 음악감독인 아서 헨리 맨·보리스 오드·데이비드 윌콕스·필립 레저의 뒤를 이어, 20세기에도 변함없이 킹스 칼리지 합창단만의 소리를 갖추도록 음악감독 자리를 물려받은 것 자체가 나에게는 행운이었다. 나와 합창단은 서른두 해 동안 최상의 소리를 찾기 위해 노력하고, 또 보여주고 있다고 생각한다.
내한 공연에서 모차르트 ‘신자들의 아침기도’ ‘귀하신 몸’, 슈베르트 ‘시편 23편’, 하이든 ‘작은 미사’, 비발디 ‘글로리아’를 선보인다. 어떤 관점으로 레퍼토리를 구성했는가.
소규모 오케스트라 앙상블과 함께 할 수 있는 프로그램이다. 우리는 음악적인 균형이 확실히 담보되어야 다른 오케스트라 앙상블과 함께 공연한다. 이번 레퍼토리를 통해 즐거움이 넘치는 시간을 관객들이 경험하길 바란다.
킹스 칼리지 교회가 아닌 다른 곳에서 갖는 연주회의 경우, 리허설에서 단원들에게 특별히 강조하는 부분이 있다면.
모든 음악적인 부분은 케임브리지를 떠나기 전에 철두철미하게 준비된다. 모두가 알다시피 공연장의 어쿠스틱은 곳곳마다 다르므로 이것을 통제하고 조절하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 순회 공연에서는 음악적인 균형에 중점을 두고, 리허설 과정을 통해 공연장에 최상으로 부합하는 소리를 찾아낸다.
그레고리아 성가부터 현대음악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레퍼토리를 소화하고 있다. 그 가운데 가장 좋아하는 작곡가와 작품을 알려달라.
런던 웨스트민스터 대성당 전직 오르가니스트이자 음악감독으로서 그레고리아 성가에 대한 애정이 각별하다. 더불어 현대음악뿐 아니라 지금의 새로운 음악을 초연하기 위해서도 많은 시간을 기울이고 있다. 각기 다른 시대의 다양한 작곡가들의 작품을 모두 좋아하지만, 그 가운데 굳이 꼽자면 바흐를 최고의 작곡가라고 말하겠다. 바흐의 ‘마태 수난곡’만큼 위대한 작품은 아마 없을 것이다. 물론 ‘요한 수난곡’도 강력한 경쟁자임에 틀림없다!
평소 레퍼토리를 정할 때 중요하게 생각하는 부분은 무엇인가.
휴식 시간이 있는 공연의 경우, 동일성 혹은 대칭적인 요소들을 가지고 앞뒤 프로그램의 균형을 맞추는 데에 신경 쓴다. 특히 프로그램을 구성하는 작품마다 작곡가의 특징적인 조건을 반영하는 것이 중요하다. 이를테면 시대·국적·친분뿐 아니라 다른 작곡가에게 영감을 주었거나 동시대 안에서 서로 영향을 주고받은 것처럼 말이다. 연주를 위해 요구되는 자원과 작품의 길이 역시 레퍼토리를 정할 때 고려하는 중요한 점이다.
새로운 곡을 위촉할 때 곡의 방향과 작곡가 선정은 어떻게 이뤄지나.
광활한 음악 세계를 존중할 뿐 아니라 전적으로 교회를 위한 작곡을 기반으로 하는 작곡가에게 다가가는 것이 개인적인 원칙이다. 그래서 해리슨 버트위슬·리처드 로드니 베닛·아르보 패르트·존 태브너 같이 전 세계적으로 존경받는 현대음악 작곡가들 몇 명에게 작품을 위촉해왔다. 토머스 아데스·주디스 위어에게 위촉한 것은 ‘킹스 커넥션’에 의한 것이기도 했다. 크리스마스 이브 미사를 위한 작품 위촉은 다양한 음악 활동을 하면서 맺게 된 우연한 만남에서 비롯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합창단원들과 최소 마흔 살 이상 나이 차이가 난다. 이들과 소통의 어려움을 느낄 때는 없나.
소년 성가대원들의 나이까지 고려한다면 그 차이는 40년을 훌쩍 뛰어넘는다! 올해로 킹스 칼리지 합창단과 함께 지낸 지 서른두 해가 되었지만, 그 사이에 내가 성가대원들을 이해하고 공감하는 방법이 달라졌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성가대원들과는 언제나 상호 존중을 기반으로 관계를 맺어왔고, 앞으로도 그러기를 바란다. 나에겐 이번 투어에 참여하는 소년 성가대원들 중 최연소 단원과 동갑인 딸이 있다. 그 아이가 언제까지 그럴 것이라 장담할 수는 없지만, 아직 우리는 서로 대화가 잘 통한다.
킹스 칼리지 합창단뿐 아니라 BBC 싱어스의 지휘자로도 활동해왔다. 각 합창단에 지휘자로서 신경 쓰는 부분이 다를 듯하다.
두 합창단은 서로 매우 다르다. BBC 싱어스는 각자 솔리스트로 활동할 수 있을 정도의 실력을 지닌 스물네 명의 전문적인 단원들로 구성되어 있다. 이곳에서는 하나의 공통된 소리를 새롭게 만들어내는 과정이 나에게 늘 도전이 된다. 반면 킹스 칼리지 합창단에서는 소년 성가대원들의 음색을 잘 다듬어내는 데에 신경을 쓴다. 일반 성가대원들에겐 킹스 칼리지 합창단에서 보내는 시간이 전문적인 세계를 향한 준비 과정이기 때문에, 그들이 미래의 무대를 위해 리허설을 한다는 심정으로 음악을 준비한다.
킹스 칼리지 합창단 음악감독으로 활동하는 것과 오르가니스트로 활동하는 것의 비중을 어떻게 조율하고 있나.
현재 나의 직책은 ‘킹스 칼리지 합창단 음악감독 겸 오르가니스트’이다. 전임자인 데이비드 윌콕스는 오르간석에서 합창단을 이끌었다. 이러한 관행은 내가 합창단에 합류한 시점을 기준으로 과거가 되었고, 지금 나는 항상 성가대석 앞에 서서 지휘를 하고 있다. “오늘날 오르간 연주자로서뿐 아니라 지휘자로서의 경력을 계속 유지하고 있는 유일한 사람”이라는 사람들의 이야기처럼 말이다.
그동안 데카·EMI 클래식스에서 방대한 음반을 내놓다가, 지난 2012년 자체 레이블을 통해 ‘아홉 일과와 캐럴 축제’를, 올해는 모차르트 ‘레퀴엠’을 선보였다.
하나하나 말로 다 할 수 없는 새로운 무언가를 느끼지 않는 한, 모차르트 ‘레퀴엠’을 레코딩하는 명분은 부족할 것이다. 우리가 내놓은 음반은 모차르트 ‘레퀴엠’의 역사와 그 영향에 대한 탐구이다. 수록된 두 개의 CD 가운데 첫 번째는 우리에게 친숙한 쥐스마이어판과 다른 작곡가들이 완성한 여러 버전이 포함되어 있다. 연주의 질과는 별개로 음악학·역사학적인 관점에서 매우 흥미롭게 다가올 것이기에 개인적으로는 훌륭한 음반이 되었으면 한다. 두 번째 CD에는 유명한 모차르트 학자인 클리프 아이젠에 의한 레퀴엠의 음악적 근간에 관한 68분간의 오디오 다큐멘터리가 들어있다.
자체 레이블을 갖게 되면서 달라진 점은 무엇인가. 추후 음반 계획은 어떻게 되는가.
우리가 원하는 대로, 원하는 시기에 녹음할 수 있는 예술적 자유를 얻었다는 점이 새로운 모험이 주는 황홀함이다. 예를 들어, 매우 뛰어난 소년들이 합창단에 있다면, 이들의 목소리에 변성기가 오거나 다른 학교로 떠나기 전, 즉 그들이 최상의 컨디션일 때에 맞춰 레코딩을 할 수 있다. 탁월한 카운터테너나 테너·베이스가 있는 경우에도 마찬가지다. 다른 면에서는, 거의 모든 부분에서 ‘인 하우스’로 작업하게 됐다. 솔리스트부터 부클릿 노트에 쓴 글을 번역하는 사람에 이르기까지 킹스 칼리지 합창단 출신이거나 우리와 끈끈하게 연결된 사람들이다. 음악적인 면에서나 학문적인 면에서 모두 믿고 맡길 수 있는 재능을 가진 사람들이 곁에 있다는 것이 참 행운이다. 올해 하반기에는 브리튼 탄생 100주년을 기념하는 앨범을 선보일 예정이다.
글 김선영 기자(sykim@) 사진 성남아트센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