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유럽의 광활한 풍경과 시원한 바람이 무대로부터 한껏 실려왔다
대자연이 인간에게 건네는 선물은 참으로 다채롭다. 깊은 산속 어딘가에서 무한히 솟아오르는 샘물의 넉넉함과 여름날의 갈증을 해소시키는 시원함은 분명 그 어디에서도 느낄 수 없는 것들이다. 10주년을 맞이한 대관령에서 불어온 신선한 음악의 바람도 이와 다르지 않았다. 올해 주제인 ‘노던 라이트(Northern Lights) – 오로라의 노래’에 걸맞게 핀란드·스웨덴 노르웨이·덴마크·아이슬란드와 같은 북유럽 작곡가들의 작품은 알펜시아리조트 콘서트홀과 뮤직텐트에서 울창하고도 광활한, 그리고 세밀한 풍경을 만들어냈다.
7월 27일 대관령국제음악제의 첫 주말 저녁, 지난해 처음 문을 연 뮤직텐트에 저명연주가 시리즈 네 번째 공연이 마련됐다. 지난해 대관령국제음악제가 하이든 ‘천지창조’와 함께 뮤직텐트의 탄생을 알렸다면, 올해는 특별하고도 새로운 발걸음을 선보였다.
뮤직텐트 무대에는 사샤 메킬레의 지휘 아래 생 미셸 스트링스를 비롯 음악제 참여 아티스트들과 음악학교 학생들로 구성된 GMMFS 오케스트라, 국립합창단이 올랐다. 생 미셸 스트링스는 헬싱키 북쪽에 위치한 미켈리를 본거지로 삼고 있는 앙상블로 핀란드에서 세 번째로 오래된 역사를 가지고 있다. 사샤 메킬레는 지난 2012년, 15년간 공석이던 생 미셸 스트링스의 음악감독 자리에 오른 인물이다.
이날 공연은 북유럽의 광활한 풍경을 닮은 욘 레이프스의 아이슬란드 민속 춤곡 Op.11 중 3·4번으로 시작됐다. 개선행진곡을 연상시키는 후렴구가 인상적인 3번, 춤곡 느낌에 서사성이 더해진 4번은 민속음악 특유의 변박으로 한시도 긴장을 늦출 수 없었다. 그 사이로 쏟아지는 북유럽의 정취는 앞으로 이어질 연주에 대한 기대감을 높이기에 충분했다.
사샤 메킬레와 생 미셸 스트링스는 오보이스트 알렉세이 오그린추크와 함께 마르첼로의 오보에 협주곡 D단조를 선보였다. 과거 오랫동안 베네데토가 작곡한 것으로 알려진 이 곡은 마르첼로의 작품 중 가장 유명한 것으로, 바흐가 하프시코드 협주곡으로 편곡한 바 있다. 안단테 유니슨으로 진행되는 1악장에서 생 미셸 스트링스와 오그린추크는 긴장감과 긴밀함, 정밀함 사이를 자유로이 오갔다. 절절한 선율의 2악장, 오그린추크는 오보에가 담당하는 오묘한 장식음들을 충분한 호흡으로 편안하게 넘기며 안정적인 연주를 이어갔고, 3악장에서 빠르게 반복 악구를 주고받는 가운데 완벽한 조화를 이뤄냈다.
국립합창단이 소프라노 유현아와 함께 풀랑크의 ‘글로리아’를 선보인 데 이어, 인터미션 이후 대관령국제음악제가 10주년을 기념하여 리처드 대니얼푸어에게 위촉한 ‘방랑하는 다르비슈의 노래’가 세계 초연됐다. 대니얼푸어는 페르시아 민간전승에 내려오는 ‘다르비슈’를 중심으로 한 편의 서사시를 만들어냈다. 잉글리시 호른과 베이스 클라리넷·알토 플루트의 낮은 소리로 시작되는 전통적인 페르시안 느낌의 선율은 초반부터 한없이 이어질 듯 굽이굽이한 길을 웅장하게 펼쳐내며, 계속되는 길의 끝을 곡의 마지막 순간까지 보여주었다. 이날 공연에는 베르디 탄생 100주년을 기념하는 자리도 마련됐다. 1부 공연에 이어 다시 무대에 나선 국립합창단은 베르디 오페라 ‘라트라비아타’ 중 ‘투우사의 합창’, ‘일 트로바토레’ 중 ‘대장간의 합창’, ‘돈 카를로’ 중 ‘기쁨의 날이 밝았네’ 등을 노래했다. 연이은 관객들의 박수 속에서 공연의 마지막을 장식한 곡은 시벨리우스의 핀란디아 Op.26이었다. 이튿날, 아이슬란드 민속 춤곡으로 시작해 핀란드를 향한 찬가로 마무리된 공연의 중심에 서서, 시종일관 에너지 넘치는 모습을 보인 사샤 메킬레를 만났다. 다음은 그와의 일문일답.
7월 27일 저명연주가 시리즈의 첫 곡에 대해 이야기하지 않을 수 없다. 흔히 핀란드의 시벨리우스, 노르웨이의 그리그, 덴마크의 닐센은 자연스럽게 꼽지만 아이슬란드 출신의 작곡가를 떠올리기란 쉽지 않다. 그런 면에서 첫 곡으로 선보인 욘 레이프스의 민속 춤곡 Op.11의 3·4번은 굉장히 인상적이었다.
음악제 측으로부터 이번 공연의 시작과 끝에서 북유럽의 색채를 보여줬으면 좋겠다는 요청을 받았다. 다른 국가들에 비해 아이슬란드나 스웨덴 출신의 작곡가는 선택의 폭이 제한되어 있다. 욘 레이프스의 작품은 아이슬란드의 이색적인 특징을 오케스트라 음악으로 잘 드러내고 있어서 선택하게 됐다.
리허설뿐 아니라 공연에서도 알렉세이 오그린추크와 호흡이 굉장히 잘 맞는 것을 보았다. 이전에도 그와 협연한 적이 있나.
오그린추크와의 협연은 이번이 처음이다. 첫 리허설에서 서로 영어로 대화했는데, 이후 우연찮게 러시아어로 대화를 할 기회가 생기면서 가까워졌다. 그는 러시아 출신의 연주자이고, 나는 러시아에서 지휘를 3년 반 동안 공부했다는 공통분모 외에도 여러 면에서 궁합이 잘 맞았다. 그가 가진 엄청난 재능과 자신의 생각을 잘 전달할 줄 아는 능력이 인상적이었다.
리처드 대니얼푸어의 ‘방랑하는 다르비슈의 노래’를 세계 초연했다. 이 작품을 해석하는 데 있어서 가장 중점을 둔 부분은 무엇인가.
전화와 이메일을 통해 대니얼푸어와 여러 이야기를 주고받았다. 그의 작품은 멜로디의 상당 부분에서 중동의 색채가 강하게 드러나고, 서사시적이다. 작품 제목에 등장하는 다르비슈의 전통은 춤을 출 때 인디언처럼 원을 그리면서 절대로 멈추지 않는다고 한다. 그런 면모들이 곡의 흐름에서 잘 드러나고 있다. 대니얼푸어는 작품을 연주할 때 결코 멈추지 않고 계속 흘러가듯이, 이를테면 말러의 교향곡 같은 느낌을 살려 표현했으면 좋겠다고 말했고, 그의 의견을 적극적으로 반영하기 위해 노력했다.
이번 프로그램에서 베르디의 오페라 음악을 선보였는데, 베르디의 작품을 이전에도 지휘한 경험이 있나.
베르디의 오페라 작품을 지휘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하지만 매우 대중적인 곡들이기 때문에 어려운 점은 없었다. 다만 앞으로 베르디 오페라 전체를 연주할 수 있는 기회가 오기를 바랄 뿐이다. 현재 대다수 젊은 지휘자들은 현대 오페라 작품 작업을 하고, 연세 지긋한 지휘자들에게 ‘라 보엠’ 같은 작품이 돌아간다. 나 역시 푸치니를 연주하고 싶은 마음이 크다.
GMMFS 오케스트라와 짧은 시간 동안 연습하면서 힘든 부분은 없었나.
처음 만나는 오케스트라와 함께 연습하는 최선의 방법은 음악으로 대화하는 것이다. 처음에 만나면 일단 악보를 처음부터 끝까지 연주한다. 그러고는 서로에게 좀더 귀 기울이면서 연주를 맞춰보자고 한다. 각자가 서로의 소리를 듣다 보면 자연스레 더 나아진다. 더불어 서로에 대한 신뢰가 중요하다. 나는 연주자들이 자신의 파트를 최선을 다해 할 것이라는 믿음이 있었고, 연주자들은 내가 올바르게 지시할 것이라고 생각하고 있었기에 특별히 어려운 부분은 없었다.
지휘할 때 동작이 대체로 큰 편인가. 한 관객은 공연 중에 지휘자가 쓰러지지 않을까 걱정했다는 말을 건네더라.
동작이 작지는 않은 편이다. 하지만 객석 쪽으로 떨어질 염려를 할 정도는 아니다(웃음). 평소 안경을 끼는 편인데, 예전에 지휘하다가 안경이 떨어진 적은 있다.
평소 프로그램을 구상할 때, 중시하는 부분은 무엇인가.
프로그램을 짜는 방법은 정말 다양하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모든 작품의 장점들이 잘 드러나 하나의 공연으로 완성되는 것이다. 과거와 현재의 음악을 잘 배치하여 프로그램을 만들려고 노력한다. 스스로는 지휘자로서 현존하는 작곡가들에게 기회를 주는 것에 대해 책임이 있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지금의 작곡가들의 작품을 많이 선보이려고 노력한다.
선호하는 작곡가나 작품 스타일은 어떠한가.
요한 제바스티안 바흐를 정말 좋아한다. 하지만 바로크 음악은 오케스트라로 연주할 수 없어서 아쉬울 따름이다. 바흐부터 현대까지의 모든 음악을 좋아하지만, 교향곡 레퍼토리 중에서 굳이 꼽자면 베토벤의 작품들을 가장 좋아한다. 그의 작품들은 하나하나가 모두 엄청나다!
첼로를 전공한 것으로 알고 있다. 어떤 계기로 지휘자가 되겠다는 생각을 하게 됐나.
어머니는 플루티스트였고, 아버지는 섹소폰 연주자였다. 남동생은 세 살 때 바이올린을 배웠고, 나는 다섯 살 때부터 첼로를 배우기 시작했다. 아버지의 또 다른 꿈은 화가였는데, 그 영향으로 나도 그림 그리는 일을 직업으로 삼을까 고민한 적도 있다. 그래서 고등학교에서도 미술을 배웠다. 열아홉 살 무렵 심각하게 고민한 끝에 시벨리우스 음악원에 들어가 첼로를 전문적으로 공부했다. 그와 동시에 다른 음악학교의 아마추어 오케스트라에서 지휘하는 일도 했다. 그때가 지휘를 시작하게 된 시발점이었다.
지휘를 전문적으로 배운 것은 언제부터였나.
음악원을 졸업할 무렵 프로 오케스트라에 들어가고 싶었지만, 당시 단원을 모집하는 곳이 없었다. 그래서 첼로 레슨을 더 받기 위해 상트페테르부르크 음악원에 갔는데, 거기에서 우연히 지휘자인 레오니드 코르치마르와 대화할 기회가 있었다. 첫 만남에서 우리는 그전에 알고 지낸 사이처럼 정말 잘 통했다. 처음에는 첼리스트로 나를 소개했지만, 지휘도 한다는 말을 덧붙였더니 다음 날 그의 클래스로 초대를 받았다. 그리고 거기에서 모차르트 교향곡 38번 ‘프라하’를 지휘했다. 지휘를 마치고 나서 코르치마르는 나에게 앞으로의 계획을 물었고, 러시아에서 지휘를 배웠으면 좋겠다는 조언을 했다. 당시 스물일곱 살이었는데, 그때부터 본격적으로 지휘를 배우기 시작했다.
최근에는 첼로 연주를 하지 않나.
지휘 공부를 시작하면서, 몇 년간은 첼로에 손도 못 댈 정도로 정신이 없었다. 그러다가 데이비드 진먼의 마스터클래스에 참여했는데, 당시 클래스 규칙이 지휘를 배우는 동시에 오케스트라에서 악기 연주를 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그때 5년 만에 첼로를 잡았는데, 금방 적응해 편하게 연주할 수 있게 됐다. 요즘에는 집에서 일주일에 한두 번 정도씩 첼로를 연주한다.
핀란드와 러시아에서의 공부를 통해 서로 다른 지역의 지식과 배경이 한 사람 안에 잘 어우러져 있다는 평을 받고 있다. 이에 대해 본인은 어떻게 느끼고 있나.
내가 노력하고 있는 부분을 잘 다듬어서 봐준 것 같다. 핀란드와 러시아는 전쟁으로 인해 다른 역사와 배경을 가지고 있다. 시간이 흘러 양국의 좋은 음악원에서 공부하게 된 것은 행운이다. 지금도 나는 여전히 핀란드와 러시아의 음악원에서, 그리고 프랑스에서 쿠르트 마주어의 조수로 있는 동안 배운 것들을 잘 조합해 표현하려는 과정 중에 있다. 무엇보다 내가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은 다음 세대 지휘자들에게 내가 배우고 습득한, 좋은 것들을 숨기는 것이 아닌 공유하려는 부분이다. 더불어 이번에 대관령국제음악제에 참여하면서 한국에서도 마스터클래스를 하고 싶다는 생각을 갖게 됐다.
프랑스 국립관현악단에서 쿠르트 마주어의 조수로 있으면서 가장 많이 배운 것은 무엇인가.
쿠르트 마주어는 생과 사를 오가듯 음악을 대한다. 음악에만 집중해 모든 에너지를 쏟고, 다른 것은 생각조차 하지 않는다. 그는 마스터클래스에서 만나는 학생이나 자기 주변의 조수들에게도 음악을 매우 심각하고 진지하게 대할 것을 요구한다. 그의 곁에서 지휘자로서 가져야 할 책임감과 음악을 대하는 진지한 태도에 대해 가장 크게 배웠다.
2005년 한국에서 열린 수원국제지휘콩쿠르 외에도 다양한 지휘 콩쿠르에 참가했다. 연주자들 사이에서 콩쿠르는 큰 무대에 나서는 기회이지만 불필요한 경쟁전이라는 입장이 분분한데, 지휘 콩쿠르에 대한 당신의 생각은 어떠한가.
지휘 콩쿠르도 다른 콩쿠르와 크게 다르지 않다. 내가 콩쿠르에 참여하는 이유는 새로운 오케스트라를 만나고, 새로운 레퍼토리를 배우고, 순위권에 오른 다른 지휘자들을 보면서 배울 점을 찾기 위해서다. 하지만 처음부터 그랬던 것은 아니다. 첫 번째 콩쿠르는 정말 두려움 그 자체였다. 그때 누군가 나에게 수상하는 데에만 급급하지 말고 사람들이 지휘하고 연주하는 것 자체를 보고 듣고 배우는 기회로 삼으라고 말해줬다. 그 이후로 참가한 다른 콩쿠르들에서 많은 것들을 배우려고 노력했다.
콩쿠르의 목표는 분명하고, 또 하나로 귀결된다. 우승이 아닌 배움을 위해 콩쿠르에 나간다는 것이 이해가 되지 않는데.
물론이다. 누구나 우승하기 위해 콩쿠르에 나간다. 내가 말하고 싶은 것은 태도에 관한 부분이다. 무엇이든 배우려는 자세 말이다. 함께 콩쿠르에 참여했던 사람 중에 실력은 좋지만 정말 운이 안 좋은 친구가 있었다. 그가 말하길 콩쿠르에서 만나는, 많은 경우는 아니지만 실력 없는 지휘자를 보면서 그 정도로 할 수밖에 없는 이유를 연구하다 보면 역으로 배우게 되는 것이 많아진다고 하더라. 반대로 뛰어난 실력을 갖춰 우승하는 사람을 분석하면서 배우는 점 역시 상당하다. 그럼에도 콩쿠르에 자주 나가지 않으려 했던 이유 중 하나는 경연이 음악만 놓고 경쟁하는 것이 아니라, 여러 이해관계들이 너무 많이 얽혀 있어서다.
당신이 생각하는 지휘자의 역할은 무엇인가.
작품에 대한 작곡가의 의도를 무대 위에서 잘 표현하고, 관객에게 잘 전달될 수 있도록 돕는 사람이 지휘자라고 생각한다. 더불어 적게는 열두 명, 많게는 백여 명의 연주자들과 함께 하면서 그들 한 명 한 명에게 동기부여를 하고, 최선을 다해 연주할 수 있도록 재능을 발현시키는 역할이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용기를 북돋워주고, 서로 합을 맞춰가려고 노력하는 편이다.
2012년부터 생 미셸 스트링스를 이끌고 있다. 15년간 공석이었던 음악감독직을 맡은 소감이 어떠한가.
그전에 생 미셸 스트링스의 객원 지휘자로 다섯 번 정도 참여했다. 함께 하면서 좋은 연주자들, 잠재력이 넘치고 발전적인 앙상블이라는 것을 이미 알고 있었기 때문에 제안을 받고 매우 기뻤다. 게다가 클리블랜드 오케스트라 부지휘자 계약이 2012년 만료였기 때문에 나에겐 완벽한 타이밍이었다.
음악감독으로서 앙상블의 어떤 면모를 살리려고 노력하나.
핀란드인들은 굉장히 절제하고 철학적이다. 반면 러시아인들은 굉장히 감성적이다. 나는 생 미셸 스트링스가 좀더 열정적이면서 굉장히 감성적이고 로맨틱한 표현력을 보여줬으면 하는 바람을 갖고 있다. 이미 핀란드에서 가진 여러 연주회에서 그런 부분을 보여주기 위해 다양한 노력을 시도했는데, 단원들도 이러한 변화를 환영했고, 관객들의 호응도 좋았다.
생 미셸 스트링스만의 음악적 특징을 꼽는다면.
모든 연주자들이 음악감독 수준의 아이디어를 갖고 있다. 또 매번 안정적이면서도 음정 하나하나마다 살아있는 느낌을 살려 연주를 하는 것이 매우 특별하다. 그래서 생 미셸 스트링스의 음악은 항상 신선하다. 이것이 다른 앙상블과 차별되는 지점이다.
한두 해 안에 새롭게 도전하고 싶은 레퍼토리는 무엇인가.
내년에는 생 미셸 스트링스와 바흐 ‘브란덴부르크 협주곡’ 전곡에 도전하는 프로젝트를 진행할 예정이다. 그 다음에는 멘델스존의 교향곡 프로젝트를 생각하고 있다. 개인적으로는 오페라 음악 부분에서 다양한 작품을 접하고 성장하는 것을 목표로 삼고 있다.
글 김선영 기자(sykim@) 사진 대관령국제음악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