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연 노부스 콰르텟은 ‘푸가의 기법’ 속에 구현된 우주적인 진리를 이해하고 있을까. 공연이 끝난 뒤 네 청년은 무대 뒤에서 눈물을 떨구었다는 후문이다. 8월 8일 금호아트홀.
글 유혁준(음악 칼럼니스트) 사진 금호아시아나문화재단
대바흐의 ‘백조의 노래’인 ‘푸가의 기법’은 신이 인류에게 무심코 던져준 선물 같다. 강약은 물론 악기 지정조차 없는 미완성 음악은 그러나 제대로 다듬어진다면 그 어떤 음악보다 완성된 걸작으로 태어난다. 이탈리아 4중주단의 리더였던 파올로 보르차니는 1985년 현악 4중주 버전의 ‘푸가의 기법’ 연주를 마지막으로 고단했던 삶을 마감했다. 8월 8일 저녁 금호아트홀. 과연 노부스 콰르텟은 ‘푸가의 기법’ 속에 구현된 우주적인 진리를 이해하고 있을까. 보르차니와 같은 거장도 인생의 종착역에 다다르고서야 임했던 ‘푸가의 기법’을 23세에서 28세 사이의 청년들로 구성된 노부스 콰르텟이 ‘하룻강아지 범 무서운 줄 모르고’ 전곡 연주의 도전장을 내밀었다. 객석은 만원이었다. 더구나 청중 대부분은 ‘꽃미남 앙상블’의 열성팬인 젊은이들이었다.
4성의 단순푸가 ‘제1콘트라풍크투스’, 김영욱이 제2바이올린으로 오리지널 주제를 극히 조심스럽게 읊기 시작했다. 이어 각자 한 개의 악기로 하나의 성부를 정직하게 맡아, 리더 김재영이 제1바이올린을, 문웅휘가 첼로를, 시간차를 두고 이승원이 비올라로 따로 또 같이 첫 삽을 떴다. 놀랍게도 이 혈기 왕성한 연주자들은 현악기의 멋을 직설적으로 보여주는 비브라토를 극히 억제하고 있었다. 또한 서로를 바라보며 음량을 절제하며 조절하는 모습은 이들이 얼마나 많은 시간을 바흐에 바쳤는지 그대로 알게 했다. 앞부분 네 곡의 단순푸가의 시작은 첼로ㆍ비올라ㆍ제1바이올린으로 교체되며 대위법의 당위이자 바흐가 추구하는 수평적인 평등을 눈으로 보여주었다. 반행푸가로 바뀌는 세 곡에서 다소 불안함이 감지되었으나 이내 안정을 찾았다. 프랑스풍의 ‘제6콘트라풍크투스’는 역시나 활기차고 웅장했다. 끊어 치는 듯한 점음표들의 리듬감은 탁월했다. 제7곡, 매력적인 트릴 종지에 이어 제8곡에서는 기나긴 3중 푸가를 흐트러짐 없이 끈질기게 부여잡았다.
이번 공연을 위해 베렌라이터 에디션을 택한 노부스 콰르텟은 두 부분으로 나뉘는 투영푸가(mirror fugue) 두 곡에 공을 많이 들인 듯했다. 정(正)과 반(反)의 원리를 꿰뚫고 대비시키는 능력은 이들이 뮌헨을 근거지로 삼아 한 가족처럼 지내며 오로지 앙상블 연마에 매진한 결과로 비쳐졌다. 이미 바흐는 후배 베토벤이 자신을 따르리라는 것을 알고 있었던 것일까. ‘제13콘트라풍크투스’는 베토벤의 ‘대푸가’에서 들려지는 음형이 구축되었다. 드디어 카논이 등장했다. 바이올린과 첼로의 2중주인 ‘확대반진행에 의한 카논’은 두 파트로 나뉘어 바흐 이름 그대로 맑은 시냇물 같은 이미지를 풍겼다. 바이올린이 목청 높여 노래하면 첼로가 뒤에서 이에 질 새라 도드라지고 이내 둘은 어깨동무를 하며 서로를 받쳐주었다. 이어지는 ‘옥타브의 카논’은 헨델의 ‘파사칼리아’ 같은 열정마저 느껴졌다.
피날레 ‘3개 주제에 의한 푸가’의 장대한 움직임은 B-A-C-H 주제가 비장하게 등장하고 제3제시부에서 일순간 나락으로 떨어졌다. 노부스 콰르텟은 이 엄청난 공허함을 코랄 ‘주님의 보좌 앞에 나아갑니다’로 다독였다. 거기엔 가장 인간적이고 가장 숭고한 자연스러움이 녹아 있었다. 빈손으로 왔다 빈손으로 가는 무(無)의 세계, 이는 공연이 끝나고 무대 뒤에서 눈물을 떨구었다는 멤버들의 가슴에서부터 전해져왔다. 이제 노부스는 자타공인 한국 대표 현악 4중주단이다. 이들이 장차 불혹, 지천명에 도달해 다시금 연주하는 ‘푸가의 기법’을 볼 수 있도록 오래도록 우리 곁에 남아있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