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읽는 백건우 지상 레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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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 업데이트 시간: 2013년 9월 1일 12:00 오전


▲ 1985년 사진 염문종

제자를 두지 않기로 유명한 피아니스트 백건우는 꽤 오래전 ‘객석’의 지면을 통해 상당한 분량의 ‘가르침’을 남겼다. 긴 세월이 흐른 후 다시 읽은 그의 지상 레슨에서는 변함없는 진중함과 상냥함이 돋보인다.

어떻게 하면 포르테의 무게 있는 소리를 낼 수 있을까요?
포르테를 ‘친다’는 것은 소리를 크게 낸다는 뜻밖에는 안 됩니다. 그러나 무게 있는 소리, 의미 있는 소리, 뜻을 전달할 수 있는 좋은 포르테를 내려면 자신의 신체 구조를 잘 파악하고 또 곡이 요구하는 소리가 무엇인지를 명확히 한 후 그것을 자기 것으로 만들어야 합니다. 더욱 중요한 것은 그 소리를 영사할 수 있는 자신감을 얻어야 합니다.

낭만주의 연주법은 어떤 경향을 띠었고, 강조되는 것은 무엇이었습니까?
낭만주의 연주법은 1850년대 스타인웨이 피아노의 발명과 많은 연관이 있습니다. 음이 풍부해지다 보니 연주법도 자연히 그에 따라 변화했지요. 낭만주의 정신을 한마디로 표현한다면 ‘개성 존중’입니다. 낭만주의 연주 양식에서는 포괄적인 전체를 중요시하는데, 그 전체라는 것은 연주자의 정신작용까지 포함하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고전주의와는 달리 완성된 악곡의 전체적인 형식을 파악하는 것이 주 목적이 아니라, 악곡을 재창조하는 데 있어서 연주자의 정신적인 힘까지 표현하는 것을 목적으로 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이유에서 청중도 음 하나하나에 주의를 기울이기보다는 연주를 통해서 표현되고 있는 연주자의 정신세계에 몰입되고, 악곡의 표현으로서의 음보다는 연주자의 창조력과 열정에 동화되었기 때문에 음의 미스터치 등은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낭만주의 연주법에서 중요시한 또 다른 것은 음악과 다른 예술 분야인 시와 문학, 회화 등과 결부되는 무한계성의 존중입니다. 낭만주의 연주법을 회화에 비유하자면 ‘색채’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그러다 보니 자연히 고전주의 양식과는 달리 감정과 분위기를 강조했고, 연주에서는 다이내믹을 선호했지요. 포르티시모·피아니시모를 많이 사용해 다소 과장된 표현도 용납되던 시절이었지요. 특히 이 시절에 페달 기술이 발달했다는 것은 주목할 만합니다. 결국 넓은 의미에서 보면 낭만주의 양식에서 연주 기술은 일종의 개성 표현의 수단이었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연주자에 따라서 악보상에 나타나지 않은 스타카토나 싱커페이션, 레가토나 루바토 등을 즐겨 쓰는데요. 악보에 표현된 것이 그렇게 부족한가요?
악보가 모든 것을 표현해줄 수는 없습니다. 중요한 선은 보여줄지 모르겠지만, 그 속에 담긴 섬세한 모든 것은 연주자가 창조해야 하는 것입니다. 사실 악보는 표현의 한 가지 도구밖에는 안 된다고 보면 될 것입니다. 악보를 읽는다는 것은 여러 가지가 있습니다. 물론 배우는 학생들의 입장에서는 정확하게 그것을 읽을 줄 알아야겠지요. 그렇지만 좋은 연주자가 되려면 오선 사이에 보이지 않는 것을 읽어야 하며, 그것을 바탕으로 더욱더 많은 세계를 창조해야 하는 것입니다.
양파의 표면을 보면 빨간색으로 되어 있지요. 그러나 그것을 벗기면 또 다른 모습이 나타나고, 그렇게 계속해서 속까지 벗기면 벗길수록 새로운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악보도 그와 마찬가지라고 할 수 있습니다. 연주자는 양파를 벗기듯 악보에 대한 연구를 많이 해서 다양한 세계를 끄집어내야 합니다. 그 안에 들어 있는 어떤 진실을 말입니다.
피에르 불레즈도 말했지만, 악보는 지도에 비유될 수 있습니다. 지도를 보고 사람들은 다양한 방법으로 길을 찾아가듯, 연주자는 악보를 보고 다양한 음악세계를 창조해내는 겁니다. 작곡가와 연주자가 합작을 하는 셈이지요. 연주자의 책임이 그만큼 크다고 할 수 있겠지요.

어떤 기준으로 페달링을 할 수 있을까요?
페달은 피아노에서 가장 중요한 요소입니다. ‘피아노의 영혼’이라고도 말할 수 있습니다. 많은 연주자들이 손가락 놀림에 더 신경을 쓰고 페달을 게을리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페달에 대한 깊은 연구가 덜 된 연주자들은 단순히 화음에 맞춰 페달링을 하는데, 사실 페달을 잘 쓴다고 하는 것은 어떤 테크닉보다도 심오하고, 또 필요합니다. 아주 복잡하고 중요한 테크닉이지요. 페달 사용법은 일반적으로 알려진 것보다 훨씬 여러 가지 방법이 있습니다. 페달을 누르는 높이에 따라, 각도에 따라 나타나는 뉘앙스는 천차만별입니다. 이 때문에 이것을 작곡가가 써넣을 수 있는 것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그것까지 상세하게 표시할 수 있는 작곡가는 역사적으로 볼 때 그리 많지 않았습니다. 현대곡에 있어서는 특수한 효과를 노리기 위해 작곡가가 직접 악보에 페달을 표시해놓는 경우도 있습니다. 그러나 일반적으로는 연주자가 그것을 찾아서 효과적으로 사용해야 합니다.
현대 피아니스트 중 페달을 가장 잘 쓰는 연주자로는 아슈케나지를 들 수 있습니다. 과거 그는 마담 레빈에게 와서 선을 보일 때 그냥 레슨을 받는 것이 아니라, 항상 소리를 주의 깊게 들었다고 합니다. 그리고 두 발을 항상 페달에 얹어놓고 손과 같이 움직이더라는 겁니다. 그는 그만큼 페달을 애용합니다.
반면 페달을 무시하고 손으로 연주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이들도 있습니다. 페달에 대한 해석은 극과 극입니다. 그러나 내가 볼 때 현대 피아노에서 페달을 뺀다면 피아노는 악기로서 완성된 것이 될 수 없다고 생각합니다. 나 역시 페달을 많이 쓰는 편입니다. 드라이한 곡을 연주할 때는 페달을 가급적 자제해야겠지만, 그렇지 않고 소리가 숨을 쉴 수 있고, 가슴을 울리는 곡, 비브라토를 요구할 때, 소리가 공감을 채우는 경우 등에서 페달은 아주 중요한 것으로 작용하고, 또한 꼭 필요합니다. 소리를 만들어내는 데 있어서 페달 없이 연주했을 때와 페달을 사용할 때의 그 큰 차이를 피아노 음악에 관심이 많은 마니아라면 절감했을 줄 압니다.

기교가 연주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얼마나 됩니까? 아울러 ‘음악적인 테크닉’이란 무엇인지 알려주십시오.
요즘 젊은 연주자들은 10~20년 전보다 테크닉이 매우 발달해 있습니다. 브람스·차이콥스키 협주곡 같은 것은 그 당시만 해도 연주가 불가능하다는 말이 나왔을 정도로 테크닉이 난해한 곡입니다. 그러나 요즘은 피아노를 한다는 사람치고 이 곡을 못 치는 사람은 거의 없습니다. 그런 만큼 이제는 연주자가 좋은 테크닉을 가지고 있다는 것이 특별한 게 못 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테크닉에만 치중하는 연주자들이 많은 것도 현실입니다. 그뿐만 아니라 레코딩을 듣고 흉내 내거나, 영향을 받아 연습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개성이 없어지고, 그래서 듣고 나면 허전한 연주도 많습니다. 테크닉이란 것은 단지 연주를 자유롭게 하기 위해 필요한 하나의 도구라고 생각하면 됩니다. 테크닉도 스케일에서부터 아르페지오 같은 것에 이르기까지 다양하겠지만, 새로운 곡을 연주할 때는 거기에 맞는 새로운 테크닉을 만들어내야 합니다. 그것 역시 굳이 테크닉이라는 말보다는 표현하고 싶은 것을 표현하는 하나의 방법이라고 보는 편이 옳을 겁니다.
따라서 테크닉과 음악적인 것만으로는 좋은 연주자가 되기에는 부족합니다. 테크닉과 음악적 연주에서 한발 더 나아가 그것을 초월한 예술적인 경지까지 가야 완성된 연주자가 되는 것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즉, 음악가는 음악 자체를 초월한 자기만의 독특한 세계를 음악으로 만들어냈을 때 진정한 음악가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테크닉과 음악적인 것마저도 완전히 초월했을 때 연주자는 그 순간부터 새롭고 무한한 세계에서 자유롭게 창조할 수 있다고 봅니다. 그런 음악만이 진정한 감동을 줄 수 있는 것이고요.

연주자들이 악보대로 연주를 하되, 어느 정도 수준에서 자기 개성을 발휘해야 하는지요?
좋은 질문입니다. 연주자로서, 해석 예술가로서 공부하다 보면 이 질문은 반드시 나옵니다. 자신의 창작성을 얼마나 가미시킬 것인가 하는 점인데, 이것은 공부하면 할수록 깊고 넓어지게 됩니다. 또한 음악은 무한한 창작성을 마련해주는 것이므로 자기개성을 발휘할 수 있는 영역도 그만큼 넓다 하겠습니다. 아직은 그 한계를 짐작하기 어렵고 더 공부해야겠지만, 자기개성 즉 창작성 발휘를 벌써 생각한다는 자체가 훌륭합니다.

본지 1985년 9월호, 1996년 2·3월호에서 발췌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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