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악적 아이디어는 많았다. 작품을 보는 시각도 신선했다. 하지만 머릿속에 그려놓은 음악적 유토피아를 양손으로 전달하는 커뮤니케이션 능력은 부족했다. 7월 18일 예술의전당 콘서트홀에서 열린 코리안심포니오케스트라 정기연주회에서 만난 ‘지휘자 알브레히트 마이어’는 같은 연주회의 전반부에 등장한 ‘오보이스트 알브레히트 마이어’보다는 기대에 훨씬 못 미쳤다. 후반부의 지휘 때문에 오히려 전반부의 협연 무대까지 빛이 바랬다.
글 이장직 객원전문기자(lully@) 사진 코리안심포니오케스트라
알브레히트 마이어는 세계 최고의 명문 악단인 베를린 필하모닉 오케스트라의 오보에 수석 주자로서 오랜 연주 경험을 쌓아왔지만, 한편으로는 지휘자의 꿈을 키워왔다. 베를린 필에서 클라우디오 아바도·사이먼 래틀 등 수석지휘자는 물론 이 악단을 객원 지휘한 세계 정상급 지휘자들의 표정과 동작 하나하나를 눈여겨보았을 게 분명하다. 사실 지휘라는 것은 자동차 운전처럼 면허증을 따야 하는 것도 아니다. 어느 날 갑자기 우연한 기회에 지휘봉을 잡으면 그때부터 지휘 경력은 쌓이게 마련이고 지휘 경력이 또 다른 기회를 가져오기도 한다. 훤칠한 키와 긴 팔의 소유자라는 탁월한 외적 조건에 풍부한 실전 경험을 갖추었음에도 불구하고 지휘자 마이어는 여전히 ‘초보’에서 크게 벗어나지 못했고, 단원들이나 청중 할 것 없이 연주 내내 좌불안석의 초조함 때문에 긴장의 고삐를 늦추지 못했다.
지휘자 마이어는 연주 내내 첫 음에 부여한 악센트가 만들어내는 활기찬 느낌을 강조했다. 하지만 악센트가 주는 활력을 최대한 살리려면 새로운 악장을 시작할 때 타이밍을 맞춰야 한다. 초보 운전자에게 가장 힘든 것은 주행도 주행이지만, 시동을 건 다음 출발하는 것과 안전하게 주차를 한 다음 엔진을 끄는 일이다. 음악으로 돌아와 다시 말하자면 첫 음과 마지막 음을 확실하고 일사불란하게 처리하고 매듭지어야 한다. 동시다발적으로 소리를 내면서 출발하면, 화음도 맞지 않을 뿐더러 일제히 연주를 시작해야 하는 부분이 자주 출몰하는 연주 도중에도 더 이상의 앙상블을 기대하기 힘들다.
바흐의 칸타타와 헨델의 오페라 중에 나오는 아리아를 오보에 독주로 편곡한 전반부 프로그램은 지휘자 없이도 충분히 가능했다. 처음부터 음정도 불안했고 코리안심포니 현악 주자들과의 호흡도 맞지 않았다. 그래서 오히려 앙코르 곡으로 들려준 헨델의 ‘울게 하소서’ 등이 훨씬 돋보였다.
문제는 지휘봉만 들고 무대에 나선 후반부였다. 멘델스존의 교향곡 3번 A단조 ‘스코틀랜드’는 관악 파트의 앙상블이 매우 중요한 곡인데, 오보에 수석 주자로서의 풍부한 경험을 바탕으로 매우 밝고 활기 넘치는 연주를 들려주었다. 하지만 호른 앙상블이나 관악 파트 전체의 음정과 화음이 불투명했다. 오케스트라 전체 악기가 연주함으로써 낼 수 있는 시너지 효과도 반감됐다.
무대 위에서 관악기는 그냥 내버려두면 무한정 크게 내고 싶어 하는 야생동물 같은 본성을 드러낸다. 지휘자는 이를 적정 수준에서 다독거리면서 길들여야 한다. 하지만 마이어는 야성 본능을 발휘하도록 방임한 결과 현악 파트와의 밸런스 감각이 무너지고 말았다. 목관악기를 중간에 두고 왼쪽에 호른, 오른쪽에 트럼펫을 배치한 것은 저음과 고음의 균형을 맞추려는 의도로 해석되지만 결과적으로는 음정 불안을 몰고 왔다. 수많은 객원 지휘 경험을 통해 새로운 지휘자와 해석에 대한 적응력에 관해서는 국내에서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코리안심포니였지만 임기응변도 한계가 있는 법이다. 사실 오보이스트 마이어가 이날 연주한 곡은 음반에 수록된 편곡이지 정규 레퍼토리는 아니었다. 그런 의미에서 협연자 마이어의 존재감도 미미했다. 마이어가 세계적인 오보이스트이임에는 분명하지만 정기연주회 프로그램 전체를 맡길 만큼 이날 연주가 장기적으로 코리안심포니오케스트라의 음악적 발전에 크게 기여했다고 보기는 어렵지 않을까. 이날 연주는 코리안심포니의 이번 시즌에서 가장 흥미 있는 프로그램 중 하나임에는 분명하지만 음악적으로 볼 때는 잠시 쉬어가는 페이지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