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재 가장 활발히 활동 중인 최장수 현악 4중주단으로 손꼽히는 하겐 현악 4중주단이
국내 관객과 만난다. 올해 창단 32주년을 맞이한 이들은 이번 무대에서도 넘치는 생명력과
풍부한 음색을 선사할 예정이다. 9월 26일 대전문화예술의전당, 27일 LG아트센터.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현악 4중주단은 지난해 창단 100주년을 맞은 프로아르테 현악 4중주단이다. 그동안 수없이 멤버가 교체된 것은 물론이다. 보로딘 현악 4중주단은 1945년 모스크바 차이콥스키 음악원 동창생들로 출범했다. 2007년까지 첼리스트 발렌틴 베린스키만이 창단 멤버의 명맥을 유지해왔다. 멤버를 교체할 때마다 지킨 철칙은 2년간의 연습 기간을 거친 다음 무대에 나선다는 것이다.
하지만 둘 다 정말 예외적인 경우다. 현악 4중주단은 보통 20대 중반에 시작해 60대가 되어 창단 40주년을 넘기면 활동을 접는다. 과르네리 현악 4중주단은 45년, 라살 현악 4중주단은 41년, 아마데우스·린지·멜로즈 현악 4중주단은 40년, 알반 베르크 현악 4중주단은 37년 만에 활동을 접었다. 도쿄 현악 4중주단(1969~2003)은 44년의 역사를 자랑했지만 그 사이 멤버가 여섯 명이나 교체됐다. 타카치 현악 4중주단은 2015년에 40주년을 맞이하는데, 제1바이올린·제2바이올린·비올라에서 한 차례씩 멤버 교체가 있었다.
올해 창단 32주년을 맞은 하겐 현악 4중주단은 올해로 37주년을 맞은 에머슨 현악 4중주단과 더불어 현재 가장 활발하게 활동 중인 최장수 현악 4중주단 가운데 하나다. 더불어 둘 다 멤버 교체가 거의 없었던 게 특징이다.
1981년 하겐 가문의 남매 네 명 루카스·앙겔리카·베로니카·클레멘스로 출발한 하겐 현악 4중주단에 변화가 온 것은 창단 후 1년도 못 되어서다. 제2바이올린을 맡았던 앙겔리카는 인류학과 철학을 공부해 노동재판 관련 컨설턴트로 활동하고 있다. 이 자리를 1981년부터 1987년까지 잘츠부르크 모차르테움 동창생인 바이올리니스트 아네트 비크가 맡았다. 비크는 1989년부터 현대음악 앙상블인 클랑포룸 빈의 창설 단원으로 활동 중이다. 현재 이 자리는 라이너 슈미트가 이어가고 있다. 1997·2006년에 이어 올해 세 번째 내한 무대를 갖는 하겐 현악 4중주단에게 성공적인 현악 4중주단이 되는 비결을 이메일로 물어보았다.
창단 30주년을 맞은 2011년부터 베토벤 현악 4중주 전곡 연주회 시리즈를 시작했다. 현악 4중주단에게 베토벤은 어떤 존재인가.
간단하게 설명할 수 없을 만큼 복잡한 질문이다. 베토벤의 현악 4중주에 관해서는 여러 권의 책이 나와 있을 정도다. 베토벤 4중주는 언제나 흥미진진하고 아무리 연주해도 질리지 않는다.
서울 공연 레퍼토리는 베토벤 현악 4중주 Op.59-3 ‘라주몹스키’와 Op.130/133 ‘대푸가’이다. 서로 어떤 연관성이 있는가.
푸가라는 공통점이 있다. 푸가는 베토벤 당시에는 다소 시대에 뒤떨어진 형식, 다시 말해서 ‘옛날 스타일’이었다. 하지만 베토벤은 푸가에 새로운 생명력을 불어넣어 멋진 작품으로 승화했다.
*베토벤은 말년에 푸가 형식을 즐겨 작곡했다. 피아노 소나타 ‘하머클라비어’·피아노 소나타 31번·교향곡 9번에 푸가 악장이 등장한다. 현악 4중주 Op.59-3 ‘라주몹스키’의 피날레 악장은 엄격한 푸가 형식은 아니지만 푸가토, 즉 푸가 풍의 악상이 지배하고 있고, ‘대푸가(Grosse Fuge)’라는 별명으로 유명한 Op.133은 Op.130의 피날레(6악장)로 사용하기 위해 작곡해 초연까지 했으나 나중에 6악장을 다른 것으로 바꿨다.
베토벤이 ‘대푸가’를 새로운 악장으로 바꾼 이유는 무엇이라 생각하나.
확실한 이유는 알 수 없다. 하지만 초연 당시 ‘대푸가’에 대한 반응이 매우 나빴다. 사람들은 이 음악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몰랐던 것이다. 이 때문에 불가피하게 청중에게 더 어필할 수 있는 다른 피날레 악장으로 바꾼 것 같다.
*Op.130의 피날레 악장으로 ‘대푸가’를 연주하면 소요 시간이 50분 정도 걸린다. 반면 새로 바꾼 피날레 악장으로 연주하면 연주 시간이 5분 단축된다. 하지만 베토벤의 원래 의도를 존중해 Op.130을 연주할 때 마지막 악장 대신 ‘대푸가’를 연주하는 현악 4중주단도 많고 음반을 낼 때도 ‘대푸가’를 함께 수록하는 게 보통이다.
첼리스트에게 바흐의 무반주 첼로 모음곡은 성서 같은 존재이자, 아침 체조와 같이 워밍업을 위한 작품이라고 생각한다. 현악 4중주에도 그런 작품이 존재하는가.
나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확실한 것은 현악 4중주단에게 워밍업 작품 같은 것은 존재하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각자 악기는 어떻게 선택했나. 집에서 4중주를 연주하기 시작한 것은 언제부터인가. 많은 실내악 장르 중에서도 4중주를 택한 이유는 무엇인가.
모든 게 자연스럽게 이뤄졌다. 각자가 좋아하는 악기를 선택해 배우기 시작했고, 결국 앙상블이 가능하게 되었다. 함께 연주하다 보니 처음부터 다른 사람과 함께 음악을 익힌다는 것이 매우 중요했다. 그러다 보니 현악 4중주가 매우 당연한 결론이었다.
현악 4중주단을 만들기로 결심한 것은 언제부터인가.
네 명의 남매가 (독주 활동 대신에) 현악 4중주 활동을 하기로 의견을 모은 것이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가장 잘한 결정이라고 생각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현악 4중주 멤버 모두에게 많은 노력과 헌신이 필요하다. 하지만 열심히 노력하고 연습한다고 성공을 거둔다는 보장은 없다. 4중주 활동을 할 운명이라는 것을 느끼는 것도 중요하지만, 어려움을 극복하고 실제로 성공하는 것은 별개의 문제다.
제2바이올린 주자 라이너 슈미트는 언제 처음 만났나.
우리는 모두 하토 바이에를레 선생님의 집에서 처음 만났다. 바이에를레 선생님은 하겐 현악 4중주단뿐만 아니라 라이너의 스승이기도 했다. 우리가 제2바이올린 주자를 찾고 있을 때 라이너도 후보 중 한 명이었다. 나흘간 함께 연주하고 연습하는 오디션 과정을 거쳤는데 서로 잘 맞았다.
*하토 바이에를레는 바이올리니스트 겸 비올리스트, 작곡가 겸 지휘자다. 1970년 귄터 피힐러와 함께 알반 베르크 현악 4중주단을 결성했고, 빈 시립음대와 하노버 국립음대를 거쳐 바젤 음악원에서 비올라와 실내악을 가르치고 있다. 베로니카 하겐은 그에게 비올라를, 하겐 4중주는 실내악을 배웠다. 시마노프스키 현악 4중주단·아르티스 현악 4중주단·갈라테아 현악 4중주단 등도 그의 제자들이다.
‘현악 4중주단에서 사표를 내고 떠날 가능성이 높은 연주자는 제2바이올리니스트’라는 ‘세컨드 피들의 패러독스’에 대해 들어본 적 있는가. 이에 관해 어떤 전략이나 계획을 갖고 있나.
솔직히 말해서 들어본 적 없다. 이에 대해 어떤 계획이나 전략을 짜지 않아도 되기를 희망한다.
현악 4중주를 한 마디로 정의한다면.
과거에도 현재도 미래에도 현악 4중주란 언제나 매우 어려운 작업이다. 무엇보다 나는 심리적 측면, 즉 음악적 성장을 위해 어떠한 비판과 충고도 터놓고 할 수 있을 만큼 스스럼없는 분위기를 만들어가기, 오랜 시간을 함께 버티고 나가기, 멤버들끼리 서로를 존경하기 등이 앙상블의 성공 요인이라고 생각한다. 문제는 이러한 측면이 종종 무시된다는 점이다.
한국에는 뛰어난 현악기 연주자들이 많지만, 현악 4중주단은 별로 없다. 모든 멤버가 잘츠부르크 모차르테움 교수로 활동하며 한국 출신의 학생들을 꽤 지켜봤을 텐데, 무엇이 문제라고 생각하나. 앙상블을 위한 기초 훈련이 부족한 것인가, 아니면 독주자만 선호하는 국민성 때문인가.
어려운 질문이다. 나는 개인적으로 국민성을 논하는 것 자체를 싫어한다. 훌륭한 실내악 연주가가 되려면 국적을 불문하고 기꺼이 자존심을 일부 포기하고 다른 사람을 위해 자신의 파트를 연주할 수 있어야 한다. 물론 이러한 음악교육이 전 세계 국가에서 언제나 골고루 이뤄지고 있다고 보지는 않는다.
글 이장직 객원전문기자(lully@) 사진 LG아트센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