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모메’

1930년, 체호프, 갈매기

기사 업데이트 시간: 2013년 10월 1일 12:00 오전

특별한 연극 한 편이 무대에 올라간다. 두산아트센터가 제작하고 극단 제12언어연극스튜디오의 연출가 성기웅과 일본 극단 도쿄데스록의 연출가 다다 준노스케가 함께 참여하는 ‘가모메’다. 가모메? 제목이 낯설다. 일본어로 ‘갈매기’란 뜻이란다. 체호프의 ‘갈매기’를 한국의 1930년대 버전으로 새롭게 각색한 극이다. 성기웅이 각색을, 다다 준노스케가 연출을 맡았다. 10월 1~26일, 두산아트센터 스페이스111.

 

‘가모메’는 한국 공연 이후 일본 공연으로까지 이어가는 장기적인 계획 아래 진행되고 있다. 한국 공연 제목은 일본어 ‘가모메’로, 일본 공연은 한국어 ‘갈매기’를 일본식으로 발음하는 ‘가루메기’로 표기할 것이라고 한다.
성기웅 연출은 2006년부터 2009년까지 히라타 오리자의 ‘과학하는 마음’ 3부작 시리즈를 연달아 공연하는가 하면, 2011년에도 ‘과학하는 마음’의 새로운 버전인 ‘숲의 심연’을 각색·연출하여 2011 대한민국연극대상 작품상을 수상했다. 다다 준노스케와의 인연도 히라타 오리자를 통해서 이루어졌다. 다다 준노스케는 히라타 오리자의 극단 청년단 연출부 출신이다. 그는 2008년 아시아연출가전에서 ‘로미오와 줄리엣’을 통해 이미 한국 무대에도 소개된 바 있다. 성기웅은 현재 한일 연극 교류의 중심 연결고리 중 하나이고, 현대 일본 연극의 소개뿐만 아니라 이제는 자신의 작품으로 일본 공연까지 추진하고 있다.
한일 연극 교류의 맥락에서 보자면, 2008년 예술의전당과 도쿄 신국립극장의 공동제작 공연 ‘야끼니꾸 드래곤’ 이후 강력한 존재감으로 한국과 일본에서 동시에 활발한 활동을 펼치고 있는 작가 겸 연출가 정의신을 대표주자로 꼽을 수 있다. 이번 공연은 성기웅이 극단 제12언어연극스튜디오와 일본 극단 도쿄데스록, 그리고 두산아트센터가 제작하는 민간 차원에서의 한일 연극 교류라는 점에서 뜻 깊다.

성기웅, 체호프의 ‘갈매기’를 1930년대로 보내다

‘가모메’의 극중 배경은 1936년과 1938년이다. ‘갈매기’ 원작 자체에 1·2·3막과 4막 사이에 2년간의 시간 차이가 있다. 3막 이후에 2년의 시간이 흘러 그때 그 사람들이 처음 그 장소에 다시 모이게 된 것이다. 2년의 시간은 자연스럽게 흘렀을 뿐이고 다만 사람들만 변하거나 변하지 않고 남겨진 상태이다. 그런데 ‘가모메’의 1936년과 1938년 사이 시간의 흐름은 그런 자연스러운 것이 아니다. 1936년과 1938년 사이에는 1937년, 곧 중일전쟁이 자리 잡고 있다. 실제로 3막과 4막 사이에는 당시 유행했던 서양영화를 밀어내며 중일전쟁의 영상이 흘러나오고 누군가는 조선인 지원병으로 떠나간다. 성기웅은 체호프의 ‘갈매기’를 1930년대 조선으로 가져오면서 의도적으로 1937년 중일전쟁 전후의 상황을 앞뒤로 배치했다.
성기웅에게는 ‘1930년대를 사랑하는 연출가’라는 별명이 붙어 있다. 전작 ‘소설가 구보씨와 경성 사람들(2007)’ ‘깃븐우리절믄날(2008)’ ‘소설가 구보씨의 1일(2010·2012)’ 모두 1930년대를 배경으로 하고 있다. 특히 1930년대 모던보이 소설가 구보 박태원에 대한 성기웅의 사랑은 각별하다. 최근작 ‘다정도 병인양 하여(2012)’에서는 아예 1930년대 모던보이·예술가들의 새로운 사랑의 방식이었던 ‘자유연애’ 개념을 현대로 가져와 마찬가지로 새로운 사랑의 방식인 ‘다중연애’ 이야기를 성기웅 본인의 캐릭터인 ‘기웅’을 직접 무대 위에 세워 다큐멘터리 방식으로 풀어냈다. 흡사 소설가 박태원이 자신의 호를 딴 구보라는 캐릭터를 소설 속에 직접 등장시켜 1930년대 경성의 풍경을 스케치하고 있는 것과 마찬가지의 방식이다.
그동안 일련의 구보씨 시리즈가 1933년부터 1935년까지, 주로 1930년대 전반을 배경으로 자유연애와 예술가의 초상, 명랑과 우울의 정서, 근대의 감각적 새로움에 집중했던 반면 이번 작품은 전 세계가 제2차 세계대전으로 치닫는 1930년대 말을 다루고 있다는 점이 이채롭다. 게다가 일상의 연극을 담담하게 그려내는 체호프를 1930년대 말, 1940년대 초의 일제 말기로 옮겨올 수 있었다니! 그러고 보니 젊은 연극인에 의해 한국적 버전으로 각색된 또 다른 ‘갈매기’가 생각난다. 지난해 공연된 김은성의 ‘뻘’이 그것이다. ‘뻘’은 1980년 5.18 광주민주화운동이 벌어진 인근의 벌교 이야기를 그리고 있다. ‘뻘’에서 신구 세대 예술가들의 대립을 보여주는 어머니와 아들은 각각 소위 ‘뽕짝 가수’와 사회 비판 성격이 강한 록음악 가수로 나온다. 성기웅의 ‘가모메’에서 어머니와 아들은 신파 여배우와 신극 운동가로 사사건건 대립하고 있다.
문득 이런 생각이 든다. 이전 세대에게 ‘영원한 청년’의 아이콘이 햄릿이었다면, 지금 젊은 세대가 동일시하는 ‘젊은 예술가’의 초상은 트레플레프인 것일까? 적어도 이것 한 가지만은 확실한 것 같다. 지금 젊은 세대에게는 셰익스피어보다는 체호프가 훨씬 가깝게 느껴지고 있다는 사실이 그것이다. 실제로 올 한 해는 크고 작은 체호프 공연이 연달아 올라가는 특별한 한 해다. 이중에서 유난히 눈에 띄는 것은 젊은 연극인들의 각별한 체호프 사랑이다. 성기웅의 ‘가모메’ 외에도 신인 작가 윤성호가 ‘바냐 아저씨’를 현대 버전으로 재창작한 ‘외로운 사람, 힘든 사람, 슬픈 사람’이 얼마 전 혜화동1번지 소극장 무대에 올랐다. 김은성의 ‘뻘’이나 성기웅의 ‘가모메’를 살펴보면 유독 ‘갈매기’만이 시대상과 밀접한 관련을 맺으면서 지금 현재 우리의 젊은 연극인들과 만나고 있는 지점은 확실히 흥미로울 수밖에 없다.
셰익스피어로부터 체호프에게로! 정치적 주제가 강했던 셰익스피어로부터 일상적 차원에서 시대의 변화에 맞서 살아가는 혹은 도태되어가는 인물들을 복잡한 인간관계를 통해 세밀하게 복원해내는 체호프 감성이 젊은 세대에게 동일한 진동음으로 강하게 울려 나오고 있음이 느껴진다. 사실 체호프 또한 러시아 혁명이라는 거대한 역사적 흐름을 이전의 톨스토이와는 다른 방식으로 그려낸 작가가 아니었던가. 체호프에게서 일상 연극의 디테일이나 시적 정서뿐만 아니라 역사 변혁의 진동음을 함께 감지해내고 있는 젊은 연극인들의 감각적인 본능의 촉수가 놀랍다.

더욱 정교해진 성기웅 표 이중 언어 연극

공연 22일 전, ‘가모메’의 연습이 진행되고 있는 두산아트센터의 지하 연습실을 찾았다. 연습실 문을 열고 들어서자 각색자인 성기웅과 연출가인 다다 준노스케가 나란히 앉아있는 모습이 먼저 눈에 들어온다. 그리고 동시에 한국어와 일본어를 섞어서 대화하는 배우들의 목소리가 들려온다. 이른바 조선어와 내지어, 곧 한국어와 일본어가 함께 쓰였던 식민지 시기의 이중 언어 상황의 활용은 성기웅의 공연을 보아온 관객이라면 이미 익숙할 것이다.
그런데 이번 공연에서는 기존에 한국 배우들이 일본어를 사용하는 데에서 한발 더 나아가 일본 배우들이 직접 참여하고 있다. 한국어만을 이해하는 인물과 한국어와 일본어를 동시에 구사하는 젊은 인물들, 실제 일본 배우들이 구사하는 한국어, 한국어를 이해하지 못하고 일본어만을 구사하는 일본 인물 등 이중 언어의 상황이 훨씬 더 복잡해졌다. 게다가 한국어 대사는 황해도 사투리를 쓰는 인물들과 경성 말을 쓰는 인물들까지 같은 한국어라도 대사마다의 질감을 달리하고 있다. 언어감각에 민감한 성기웅답다. 대사마다 일련번호를 붙이고 엑셀 파일로 정리한 듯 꼼꼼한 성기웅 표 대본은 한술 더 떠 한쪽 면은 일본어 대사로, 다른 쪽 면은 한국어 대사로 적혀 한국 배우와 일본 배우 모두가 볼 수 있는, 더더욱 복잡하면서도 친절한 모습이었다.
이번 공연에는 한국 배우 여덟 명과 일본 배우 네 명이 참여하고 있다. 한국 배우로 원작의 아르카디나에 해당하는 차능희 역에는 성여진, 트레플레프에 해당하는 류기혁 역에는 허지원, 영지 관리인 샤므라예프에 해당하는 이준구 역에는 이윤재가, 마샤에 해당하는 이애자 역에는 전수지가 참여하고 있다. 일본 배우로는 원작의 트리고린에 해당하는 쓰카구치 지로 역에 사토 마코토, 교사 메드베덴코에 해당하는 미타라이 고스케 역에 나쓰메 신야, 새롭게 추가된 역할인 간호사 이사코 역에 사야마 이즈미 등이 출연하고 있다. 사야마 이즈미는 지난해 히라타 오리자의 극단 청년단 내한 공연 ‘혁명일기’ 당시 출연했던 배우로 이미 낯익다.
원작과 다른 각색의 내용에서 먼저 눈에 띄는 것은 어머니 차능희를 1930년대 당시 고등 신파의 여배우로, 아들 류기혁을 새로운 연극을 꿈꾸는 신극 운동의 연극인으로 설정한 것이다. 어머니 차능희는 어느 정도 성공한 여배우로 일본 도쿄를 오가며 생활하고 있고, 그곳에서 ‘내지의 소설가’ 쓰카구치 지로를 만난 것으로 설정하고 있다. 아들 류기혁의 연극에 출연하기도 했던 젊은 연인인 손순임이 쓰카구치 지로 소설의 팬이며 그를 따라 고향을 떠나 도쿄로 가 연극배우가 되는 등 커다란 흐름의 원작 내용을 그대로 따르고 있다.
그러나 1930년대 문학과 연극의 문화사적 사실들에 관심을 가져온 성기웅이 중심인물들에게 부여한 구체적인 디테일에서 관극의 흥미는 배가된다. 새로운 연극을 꿈꾸는 류기혁이 폐병을 앓는데다가 계급주의 문학의 성향을 가지고 있고, 악령과의 싸움에서 좌절하는 초현실주의 혹은 염세주의적 희곡을 쓰고 있으며, 연인의 문제로 자살하는 결말은 1926년 이른 나이에 자살한 신극운동가이자 극작가인 김우진을 떠올리게 한다. 그리고 소설가가 된 류기혁이 조선어로만 작품을 쓰면서 일본어로는 번역이 어려운 조선의 식물과 동물 이름을 나열한 글들을 쓰고 있는 상황은 일제 말기까지 조선어 글쓰기를 고집했던 소설가 박태원의 상황을 떠올리게 한다.
‘내지의 소설가’로 설정된 쓰카구치의 전력을 계급주의 문학에서 전향해서 심경소설을 쓰다가 현재는 삼류 연애 연재소설이나 쓰는 작가로, 시가 나오야의 소설보다 못하고 재미로는 기쿠치 간보다 못한 어정쩡한 작가로 소개하는 부분은 실제로 1930년대 말 일본 문단의 흐름을 배경으로 하는 것이다. 여기에 군국주의가 맹위를 떨쳤던 1930년대 말, 조선의 작가든 일본의 작가든 사상적 자유를 탄압당했던 역사적 사실을 환기시킨다. 4막에서 다시 조선에 들어온 쓰카구치가 조선과 만주의 작가방문단 취재차 방문한 설정이나 일본의 내선일체와 대동아의 논리를 수긍하는 모습은 전시 총동원 체제에 동원된 작가들의 존재를 리얼하게 드러내고 있다. 결말에서 농약을 먹으며 자살하는 기혁이 “이 대단한 조선 신파적 리얼리티”를 읊조리는 것이나, 유명 소설가 쓰카구치가 대동아의 일본 군국주의 논리에 순응해가는 모습이나 모두 씁쓸한 풍경들이다.
그런가 하면 무정부주의자 의사인 닥터 강이 조용히 상해로 갈 계획을 세우는 것이나 그 뒤를 조선에서 태어난 일본인 간호사 이사코가 동행하는 것, 일본으로 건너가 배우가 된 손순임이 발음 문제로 정식 배우가 되지 못하고 도쿄 신주쿠 물랭루주의 막간 무희 신세로 전락한 것 등 실제로 한국과 일본에 흩어져 살았던 다양한 인물 군상들에 대한 조감은 기존의 친일과 반일의 경계를 뛰어넘어 다른 관점에서 이 시기를 바라볼 필요를 느끼게 한다.
실제로 얼마 전 공연된 김재엽의 신작 ‘알리바이 연대기’는 오사카 출생의 아버지 이야기를 다큐멘터리적 기법으로 복원했다. 이런 맥락에서 3.1 운동 당시 경성의 재조선 일본인 가족의 풍경을 다룬 히라타 오리자의 ‘서울시민 1919’라는 작품도 다시 뒤돌아보게 된다. 그리고 간사이 지방의 재일 한국인 정착촌의 이야기를 다룬 정의신의 ‘야끼니꾸 드래곤’도 동일선상에 있는 작품이다. 성기웅의 ‘가모메’는 1930년대 말, 식민 말기라는 민감하고 문제적 상황에 체호프의 ‘갈매기’를 겹쳐놓음으로써 지금 현재의 관객이 좀더 객관적인 거리감을 유지한 채 그 시대를 다시 바라보게 한다.
1930년대 언어와 예술, 역사에 대한 고증과 복원, 새로운 재구성까지 대단히 복잡한 공정을 빡빡하게 채워넣고 있는 작품의 두께가 조금 부담스럽긴 하지만 강력하고 단순한 연극성을 지향하는 다다 준노스케의 연출력에 따라 작품은 또 다른 방향타를 얻을 것처럼 보인다. 다다 준노스케의 한국 공연이었던 ‘로미오와 줄리엣’은 빈 무대 위에 배우들만의 에너지와 음악만으로 채워진 공연으로 인상 깊게 기억에 남아있다. 다다 준노스케는 실제로 밴드 음악을 한 경험이 있으며, 이 작품에도 직접 음악과 음향을 담당하고 있다. 체호프 스타일의 성기웅과 셰익스피어 스타일의 다다 준노스케가 만드는 낯설면서도 흥미로운 공연 한 편이 기대된다.

글 김옥란(연극평론가) 사진 두산아트센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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