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추와 손잡이로 움직이는 전동 휠체어는 이츠하크 펄먼에게 두 다리로 걷는 것보다 훨씬 편해보였다. 휠체어를 타고 미끄러지듯 무대로 들어선 연주자에게 환호성과 함께 우레와 같은 박수소리가 터져 나왔다. 1991·2010년에 이은 세 번째 내한 공연 무대에 선 펄먼의 최근 모습을 가까이서 지켜볼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충분한 감동이었다. 솔직하게 말하자면 펄먼의 연주를 직접 들어본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펄먼 하면 세계음악계를 주름잡았던 유대계 바이올리니스트 계보 가운데 살아있는 마지막 전설 아닌가. 10월 14일, 예술의전당 콘서트홀.
글 이장직 객원전문기자(lully@) 사진 크레디아
연주 내내 타임머신을 타고 20년 전으로 돌아갈 수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 하는 생각뿐이었다. 군데군데 화려했던 전성기 시절의 뜨거운 연주와 불꽃 튀기는 테크닉이 연상되는 대목도 있었다. 68세의 나이에도 몇 달씩 순회 독주회의 강행군을 하다니 대단한 체력의 소유자라는 감탄도 절로 나왔다. 하지만 펄먼 같은 불세출의 명연주자도 세월 앞에서는 어쩔 수 없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사실 펄먼은 요즘 지휘자로도 활동 중이다. 빠른 패시지에서 보여준 음정 불안은 라이브 연주의 묘미라고 치더라도 결정적인 부분에서의 실수는 음악에 대한 몰입을 방해할 정도였다. 파워 있는 고음도 들을 수 없었다. 역전을 거듭하면서 연장 13회까지 간 프로야구 준플레이오프 두산과 넥센의 5차전을 보기 위해 목동 구장으로 간 야구팬들이 차라리 부러웠다.
베토벤의 바이올린 소나타 1번 D장조를 들으면서 펄먼의 연주는 모차르트에 잘 어울린다는 생각이 들었다. 신동 바이올리니스트로 활약했던 펄먼의 어린 시절의 모습을 연상할 수 있었다. 힘을 하나도 들이지 않고 부드럽게 연주하는 모습에서 바이올린 연주의 모범적인 교과서를 보는 듯했다.
펄먼은 다른 바이올리니스트들보다 훨씬 두터운 비브라토를 구사한다. 낭만주의 레퍼토리에 잘 어울린다. 이날 연주한 그리그의 바이올린 소나타 3번 1악장에서는 그런대로 비브라토의 매력을 보여줬지만, 나머지 부분에서는 음정 불안과 과도한 비브라토가 한데 뒤섞여 매끈한 선율을 빚어내는 데는 실패했다. 가장 기대했던 곡이어서 그랬는지 실망감도 컸다.
전성기 시절 화려했던 테크닉 구사를 엿볼 수 있었던 것은 타르티니-크라이슬러의 소나타 G단조 ‘악마의 트릴’에서였다. 적어도 카덴차 부분에서는 기교파 연주자로서의 명성이 빛을 발했다.
“이후의 곡들은 무대에서 연주 직전에 알려드립니다”라는 안내 문구를 보면서 푸짐한 앙코르를 떠올렸다. 사실 소나타 세 곡이면 독주회 프로그램으로 충분하다. 하지만 언제 다시 올지도 모르는 세계적인 연주자가 아닌가. 피아니스트와 함께 등장한 페이지 터너는 악보를 한 보따리 들고 나왔고 그중에서 즉석에서 골라서 ‘즉흥적인 프로그램’으로 모두 여섯 곡을 연주했다.
글루크-크라이슬러의 ‘오르페오와 에우리디체’ 중 ‘멜로디’, 크라이슬러의 ‘코렐리 주제의 변주곡’, 포레의 ‘꿈 꾸고 난 후’, 가르델의 ‘포르 우나 카베사’, 존 윌리엄스의 ‘쉰들러 리스트 테마’ 등 귀에 익은 앙코르 소품들이었다. 일단 무대 뒤로 퇴장한 다음 커튼콜 후에 연주한 ‘앙코르’는 한 곡이니까 일곱 곡을 연주한 셈이다.
앙코르 곡은 덤으로 들려준 것이니 연주에 대해 왈가왈부하지 않는 게 도리다. 하지만 이날 공연에서는 즉흥적인 선곡이긴 했지만 엄연히 프로그램의 일부로 포함되었고, 전반부의 실망감을 조금이나마 달랠 수 있을 것이라 기대했기에 언급하지 않을 수 없다. 크라이슬러의 소품은 펄먼이 젊은 시절부터 앨범을 낼 정도로 워낙 많이 연주했고 테크닉 위주의 곡들이라 문제될 게 없었다. 하지만 유려한 선율과 애잔한 톤을 기대했던 포레의 ‘꿈 꾸고 난 후’는 오랜만에 악보를 들여다보는 것처럼 낯설게 연주했다. 느린 템포의 곡이기에 음정 불안은 더 두드러졌다. 결정적으로 악보를 잘못 읽어 단조를 장조로 연주하는 실수를 저지르기도 했다. 빈틈없는 리듬과 개성 있는 톤을 선보인 로한 드 실바의 피아노 연주로 아쉬움을 달랠 수밖에 없었다. 힘을 음악으로 증명하고 갔다. 오로지 영국 작곡가의 작품으로만 꾸며진 프로그램은 그 자존심의 정점에 있었다. 그리고 이들은 무엇보다 최선을 다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