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영시민문화회관에서 치러진 마지막 콩쿠르였다. 22명의 진출자 중 외국인 참가자는 러시아인 한 명으로, 유례없이 한국인 참가자의 비중이 높은 해였다. 그마저도 1차 본선을 통과하지 못하여 한국인들이 경쟁하는 자리가 되었다. 결선에는 네 명 연주자, 손정범·인소향·김홍기·한지원이 올라 각기 다른 레퍼토리를 연주했다.
콩쿠르는 양면의 얼굴을 갖고 있다. 재능 있는 연주자를 발굴해내는 기능, 그리고 한 순간의 무대만으로 판단해내는 잔혹함. 어쨌거나 콩쿠르의 순기능을 외면할 수 없는 젊은 연주자들에게 콩쿠르 도전기는 젊은 날의 숙제다. 브람스 협주곡 1번을 손정범과 프로코피예프 협주곡 3번을 연주한 인소향에 이어 인터미션 후 김홍기가 라흐마니노프 ‘파가니니 주제에 의한 광시곡’을, 한지원이 베토벤 협주곡 5번을 연주했다. 결과는 김홍기가 우승을 차지하고, 한지원·손정범·인소향 순으로 순위가 결정됐다. 김홍기는 무거운 피아노를 컨트롤하느라 평소보다 더 팔 동작을 크게 하며 분위기를 자신의 것으로 만들었다. 중간에 바이올린 파트 중 몇몇 단원이 완전히 마디를 잘못 나올 정도로 오케스트라는 불안했지만 끝까지 자기만의 흐름을 지켜냈다. 무대를 지켜본 기자들과 지역 주민, 타지에서 관람 온 음악학도들은 유명 연주자가 내한한 듯한 그의 당당한 기세에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2위의 한지원은 1악장의 스케일에서 다소 성급하게 나오며 시작부터 선입견을 안겨줬지만 결국에는 그가 말하는 베토벤이 무엇인지 궁금하도록 마음을 끌게 만드는 뚝심을 가진 연주자였다. ‘한지원이라는 연주자’의 음악에 대해 궁금하게 만들면서도 무리한 자기 목소리를 집어넣지 않는 순수함이 있었다. 3위를 차지한 손정범은 8도 화음 진행들에서 다소 실수가 있긴 했지만, 기본적으로 음악적 완성도가 높은 실력 있는 연주자임을 연주 내내 증명했다. 4위의 인소향은 매끈한 연주가 인상적이었다. 그에 따라 그 복잡한 프로코피예프 협주곡 3번이 평면적으로 들리게 된다는 단점이 있었지만, 배포를 키운다면 자신의 음악성을 펼칠 발판이 마련되어 있는 연주자라 생각된다.
김홍기가 눈에 띄었던 건, 그리고 그가 우승을 할 수 있었던 건 콩쿠르라는 심적 부담에서 잠시라도 벗어날 수 있었던 자유로움이 크게 작용했을지도 모른다. 표정과 자세에서부터 뿜어져나오던 강한 기를 가졌다고 생각했으나 콩쿠르가 끝난 날 밤 만나본 그는 어리고 여린 청년일 뿐이었다. 그의 이야기를 듣고 나서 생각했다. 오늘의 순위 또한 결국 짧은 일주일 동안의 결과일 뿐이라고. 이 젊은 연주자들은 콩쿠르를 그만두는 어느 순간이 오기 전까지 콩쿠르에 의해 힘들어하고, 또 때로는 콩쿠르의 부담을 이겨내곤 하겠지만 그 안에 깔린 가능성을 스스로 믿어도 될 것이다. 그의 이야기를 들어보자.
“
사람들은 제가
피아노를 치는 게
이상하고 특이하대요.
제가 그리 느끼니
그게 곧 제 음악 아니겠어요?
“
김홍기가 말하는 콩쿠르 도전기
어렸을 때부터 지금까지 저는 괴짜였어요. 정신이 어딘가에 미쳐 있는 사람이랄까. 이러한 성향이 깨진 게 고등학교 때였어요. 배우던 선생님과도 좋지 않게 끝나고, 어떤 여자애를 좋아하게 되어 보니 거울에 비친 저 자신을 보게 되더라고요. 그전까지는 피아노와 작곡 공부하는 데 몰두해 있었거든요. 충격을 많이 받았어요. 그전까진 내가 어떻게 옷을 입고 다니는지, 남들에게 뚱뚱해보이는지 전혀 몰랐거든요. 그래서 살도 빼고 자신을 다 고쳤어요. 고등학생 때 황윤하 선생님께 배웠는데 그분의 도움으로 한국예술종합학교에 입학해서 임종필 선생님을 만났어요. 3학년이 끝나는 지난해 임종필 선생님께서 한양대로 가서 오래 배우지는 못했지만요.
지난해 스페인의 마리아 카날스 국제콩쿠르에 나갔을 때만 해도 무대에서 피아노를 치다가 마음에 안 들면 다 내려놓아버렸어요. 완벽주의가 심했어요. 심사위원들도 ‘얜 마음이 이미 떠났다’라는 걸 알고 있었겠죠. 어느 심사위원이 제게 “너의 연주에는 진심이 없고 욕심만 있다”라고 말해줬어요. 너무 충격이었죠. 스스로 한심해서요. 거리에 있는 노숙자가 저보다 훨씬 행복해보이고, ‘나는 왜 이러고 있지’란 생각이 들며 힘들었어요. 피아노가 좋아서 하는 거라 생각했는데 나는 왜 또 욕심을 부리고 있을까. 이미 피아노에서 마음이 멀어져 있을 때 선생님께서 독일에 있는 아카데미 캠프를 추천해줬어요. 무대에서 피아노를 치고 나오는데 ‘이거다, 내가 피아노를 하는 것은 행복하기 때문이야’라는 생각이 들면서 긴장된 마음이 다 사라졌어요. 그런데 한국에 돌아오니 다시 원상복귀 됐어요. 마침 또 임종필 선생님께서 한양대로 옮긴다는 소식을 듣고 더욱 힘들었죠. 선생님은 시간이 지나면 다 해결될 거라고 말씀해주셨어요. 매일같이 고독과 싸우면서 피아노를 사랑하는 마음을 찾으려고 노력했어요.
그러다 올해 4월 연주회를 하면서 무대에서 어떻게 하면 편해지는지를 알게 된 것 같아요. 윤이상국제음악콩쿠르에서 2위 안에 입상하면 군 면제 혜택을 받아요. 하지만 군 면제가 콩쿠르 참가의 원인이 되고 싶진 않았어요. 욕심을 버리려고 얼마나 오랜 기간 힘들게 노력했는데, 또 ‘콩쿠르 스타일’이라는 알 수도 없는 무언가에 나를 끼워 맞춰서 음악을 하고 싶진 않았어요. 사람들은 제가 피아노를 치는 게 굉장히 이상하고 특이하대요. 다들 “네가 치는 게 근본적으로 이상한데 뭐가 이상한지 모르겠다” 하는 식이에요. 콩쿠르가 끝나고 나서 심사위원들이 1차 때 연주했던 쇼팽 론도 E♭장조 Op.16을 듣고 다른 세계에서 온 피아니스트가 친 것 같다며 칭찬을 많이 해주었어요. 그런데 그 곡을 친다고 했을 때도 선생님을 비롯해서 어머니까지 “그런 곡을 왜 쳐?”라고 물었거든요. 2차 통과하고 나서는 심사위원들이 제 음악을 알아주는 것 같다는 확신이 생겨서 저 자신에 대해 의심하지 않고 느끼는 대로 쳤어요.
결선에 오른 네 명의 연주자가 서로 아는 사이다 보니 아무래도 민감한 게 있었어요. 군 면제 문제도 있고요. (손)정범이는 어릴 때부터 좀 잘났고 거의 스타였죠. 피아노 앞에서는 즐겁게 내 음악을 하지만 사실 정범이보다 잘하고 싶다는 옛날 마음이 묻어나기도 했어요. (한)지원 형은 학교에서 진솔한 이야기를 할 수 있는 사람이 저밖에 없다고 생각하고 저도 그렇게 생각해서 친하게 지냈어요. 마지막 날까지 숙소도 같은 방을 썼고요. 지원 형은 심사위원들로부터 “너는 너무 한지원이야. 모든 곡을 너처럼 쳐”라는 말을 많이 들었대요. 그렇지만 자기 목소리대로 간 게 결과가 잘 나온 것 같아요. (인)소향이는 같은 예고를 나왔는데 항상 연습실에 있던 정말 성실한 친구였었어요.
저는 특정한 연주자를 선호하지 않아요. 제 목소리를 찾기 위함이었어요. 남의 연주를 계속 보다 보면 은연중 제가 그 연주를 따라하고 있더라고요. 정말 깊이가 있는 사람은 몇 안 되는 것 같아요. 잘 치는 연주자들이 많지만 자기 목소리라고 생각되지 않는 사람들도 있어요. 고민을 많이 하고 치는 사람들은 ‘이 정도면 되겠지’ 하는 수준에서 자신의 모든 것을 날 것 그대로 꺼내고 싶어 하는 것 같아요. 피아니스트 이진상은 좋아한다고 자신 있게 말할 수 있어요. 그분은 누가 뭐래도 그렇게 자기의 음악을 하실 분 같아요.
‘그놈의 입시’며 돈 벌려는 시스템이며 그런 게 다 버려놨어요. 학생들 인성이고 음악이고 모두 다요. 틀리지 말아야 한다는 강박이 생겨요. 사람들은 음악과 인성이 연결되어 있다는 걸 생각 못하는 것 같아요. 사람이 변해야 음악이 변하는 건데 피아노 앞에서만 해결하려고 하니까 평생 똑같은 소리만 듣는 거죠. 저는 어디 가서 좋은 소리를 못 들어봤어요. “왜 그 곡을 연주하느냐” “왜 그렇게 치느냐” 다들 물어요. 제가 그렇게 느끼는 건데 그것이 곧 제 음악 아니겠어요?
글 김여항 객원기자 사진 통영국제음악제 사무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