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은 인터뷰조차 마지못해 응하던 사이먼 래틀. 그가 리허설과 실제 무대에서 보여준 빛나는 앙상블
세계 정상급 오케스트라의 내한 공연이라면 예술의전당 콘서트홀에서 이틀간 연주하는 게 매우 당연한 일처럼 되어버렸다. 몇 년 전까지만 해도 일반 대중에게 낯익은 프로그램은 세종문화회관 대극장에서 연주하고, 클래식 마니아를 위한 레퍼토리는 예술의전당 콘서트홀에서 연주하는 게 보통이었다. 제2롯데월드에 신축 중인 롯데홀이 개관하면 베를린 필이 과연 어디서 연주할지 자못 궁금해진다.
지난 11월 11일 예술의전당 콘서트홀 무대에 베를린 필을 이끌고 선 사이먼 래틀은 첫 곡인 슈만의 교향곡 1번에서는 오케스트라의 자리 배치를 뒤쪽 벽면 가까이로 옮겼다. 그동안 여러 차례 내한 공연으로 예술의전당 콘서트홀의 무대 경험에서 우러나온 결정이라 생각된다. 무대가 마름모꼴로 객석 쪽을 향해 점점 넓어지다 보니 지휘자, 협연자, 악장, 현악 파트의 수석 주자들이 앉아있는 무대 중심이 음향적으로 가장 취약한 지점이기 때문이다. 백스테이지에서 피날레 곡 차례가 오기를 기다리던 나머지 단원들까지 가세해 무대를 가득 메운 스트라빈스키의 ‘봄의 제전’에서는 무대 앞쪽을 비워둘 공간적 여유가 없었으니 지휘대를 앞쪽으로 옮기는 것은 당연했다. 베를린 필 같은 세계 최고 수준 오케스트라의 서울 공연을 지켜볼 때마다 베를린 필하모니 홀에서의 연주와 얼마나 차이가 있을까 상상해본다.
베를린 필은 한마디로 ‘솔리스트 앙상블’ 같다. ‘봄의 제전’에 이렇게 많은 독주 부분이 있었는지 예전에 미처 몰랐다. ‘오케스트라를 위한 협주곡’을 방불케 했다. 곡 중 독주 부분은 말할 것도 없고 함께 박자를 맞춰내야 하는 투티의 포르테 부분에서도 각자의 개성이 실려 있는 듯하다. 앙상블의 영역을 침범하지 않는 아슬아슬한 범위 내에서 기회만 오면 솔리스트 기질을 마음껏 발휘한다. 행진하는 군인들이 보폭과 줄을 맞추듯 지휘자의 영도에 따라 일사불란하게 움직이는 오케스트라와는 거리가 멀다. 악센트의 위치가 시시각각 바뀌는 스트라빈스키의 ‘봄의 제전’은 몰라도 슈만의 교향곡 1번은 베를린 필 정도면 지휘자 없이도 연주할 수 있다. 단원들이 신경 써야 할 대목이 하나 더 늘어나 성가시긴 하겠지만 얼마든지 시도는 가능하다. 악장 다이신 가시모토가 프로코피예프의 바이올린 협주곡 1번에서 협연자로 단원들 앞에서 신고식을 치르면서 긴장과 자신감 섞인 연주를 들려줄 때도 마찬가지였다. 가시모토는 기본기와 음악성, 파워와 섬세함을 고루 갖춘 바이올리니스트였다.
래틀은 공연 전날 기자회견에서 이날 프로그램의 주제를 ‘봄’이라고 했다. 슈만의 교향곡 1번 ‘봄’과 스트라빈스키의 ‘봄의 제전’이다. 음악적으로는 약간 동떨어진 두 곡을 연결해준 것은 협주곡으로 선택한 프로코피예프였다. 프로코피예프와 스트라빈스키는 ‘러시아’라는 주제로 연결된다. 무엇보다도 올해는 ‘봄의 제전’의 초연 100주년 되는 해다. ‘봄의 제전’ 초연을 현대음악의 시작점으로 보는 사람도 있다. 래틀은 베를린 필에 부임해 여러 차례 ‘봄의 제전’을 연주했다. 처음엔 래틀이 ‘봄의 제전’의 불을 지폈다면 이제는 불길이 베를린 필에 옮아가, 분화구에서 뿜어 나오는 용암이 살아 꿈틀대면서 대지를 적시듯 거대한 율동을 만들어냈다. ‘봄의 제전’은 더 이상 래틀의 것이 아니었다. 교통순경의 역할은 신호등 없는 복잡한 네거리에서 끝날 뿐 곡 전체를 이끌고 간 것은 베를린 필의 치밀한 앙상블이었다.
글 이장직 객원전문 기자(lully@) 사진 금호아시아나문화재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