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탈리 드세 미셸 르그랑의 ‘그와 그녀 사이에’

둘 사이에 흐른 어색함

기사 업데이트 시간: 2014년 1월 1일 12:00 오전

천상의 고음으로 유럽 오페라계를 평정했던 벨칸토의 여왕, 콜로라투라의 지존 나탈리 드세. 최근 배우로서의 새로운 활동을 위해 오페라 무대에서 은퇴를 선언했던 그녀의 외출은 뜻밖이다. 아카데미 영화음악상 3회 수상·그래미 5회 수상에 빛나는 프랑스 음악의 자부심이라 불릴 만한 국민 작곡가 미셸 르그랑과의 해후다. 앨범 타이틀도 중량감에 걸맞게 ‘그와 그녀 사이에’로 명명했다.

미셸 르그랑은 ‘셸부르의 우산’ ‘42년의 여름’ ‘토마스 크라운 어페어’ ‘사랑과 슬픔의 볼레로’ 등의 명작을 남겼던 작곡가 겸 피아니스트다. 당대의 재즈 피아니스트이자 샹송 가수로도 명성을 떨친 탤런트였다. 미셸 르그랑이 남긴 주옥같은 명곡을 원작자의 반주 속에 노래하는 나탈리 드세의 목소리는 향기롭고 영롱한 빛, 다채로운 표정을 지니고 있다. 그러나… 기대가 과했던 것일까? 음악을 들을수록 기대보다는 아쉬움이, 충만함보다는 미흡함이 발견된다.

이 불편한 반감에는 몇 가지 이유가 있다. 첫째로는 ‘여성 성악가와 재즈·클래식 음악을 아우르는 피아니스트의 만남’이라는 주제어의 위대한 표본, 비교 대상이 버티고 있기 때문이다. 실비아 맥네어와 앙드레 프레빈의 만남(‘Come Rain or Come Shine’) 그리고 안네 소피 폰 오테르와 브래드 멜다우의 만남(‘Love Songs’)의 선례가 그것이다. 유사한 형식으로 취해진 나탈리 드세와 미셸 르그랑의 해후에는 그만큼의 우아함·자유로움·편안함·절제와 형식미를 찾을 수 없다. 음악을 듣는 내내 불편했던 부분은 미셸 르그랑의 과다한 오블리가토·아르페지오의 사용이었다.

반주에서 사용되는 즉흥적인 기법, 능숙함과 유연함의 효과를 남용해 편안한 감상에 방해가 된다. 충분한 리허설과 교감이 부재했던 탓인지 미셸 르그랑은 이를 너무 흔하게, 관습적으로 사용하여 여운과 호흡을 누릴 틈새를 지워버린다. 베이스·드럼과 함께 재즈의 굳센 기운으로 압박하는 모양새는 이런 크로스오버 작업에 생소할 수 있는 나탈리 드세를 위한 배려가 부족했다는 증거다. 간주에서 벌어지는 갑작스러운 템포, 이미지의 변환 때문에 나탈리 드세가 힘겹게 끌고 가던 호흡과 표정들은 증발되고 만다. 드세이의 남편인 바리톤 로랑 나우리와 듀엣으로 부르는 ‘셸부르의 우산’의 주제곡에서도 미셸 르그랑의 피아노는 이들의 다정한 대화에 간섭하는 꼴로 들리고 만다.

또 다른 아쉬움은 나탈리 드세의 어색한 톤과 창법에 있다. 앨범에서 드세는 진성을 그대로 사용해 읊조리기도 하고, 특유의 고음으로 드라마틱한 비행도 함께 과시한다. 오페라 데뷔 이전에 연극 무대에서 오랫동안 활동했던 이력이 있었기에 다양한 창법과 풍부한 소화력을 보인다. 그러나 자신의 목소리에 다소 낮게 맞춰진 음조에서는 제 색깔을 찾지 못한 채 불안함을 감추지 못한다. 비음 섞인 톤과 진성과 가성의 애매한 혼용으로 노래할 때는 나탈리 드세임을 쉽게 찾아내기 어렵다. 결국 이 모든 어수선함과 불안함은 프로듀싱의 과오에서 비롯되었다. 두 사람의 음악적 본질을 정확하게 찾고 그들의 공간을 섬세하게 구획했더라면, 무게중심을 조절하는 편곡과 균형감이 있었더라면, 나는 다시 한 번 이 위대한 만남에 흥분하고 찬미할 수 있었을 것 같다.

글 하종욱(음악 칼럼니스트)


▲ 미셸 르그랑(피아노·보컬)/
나탈리 드세(소프라노)/
로랑 나우리(바리톤)/
파트리샤 프티봉(소프라노) 외
Erato 9341452 (DDD)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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