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옹 오페라 오펜바흐 ‘호프만의 이야기’

수많은 자아, 그녀는 힘들었네

기사 업데이트 시간: 2014년 2월 1일 12:00 오전

파트리치아 초피는 호프만이 사랑한 네 명의 여인을 모두 맡아 열연했으나
일부 언론은 미레유 들룅슈를 그리워했다


▲ 호프만의 사랑을 방해하는 세 역을 모두 부른 로랑 알바로. 미라클 박사를 노래하고 있다

리옹 오페라는 지난해 12월 14일부터 30일까지 연말 축제 프로그램으로 오펜바흐의 ‘호프만의 이야기’를 공연했다. 2005년 로랑 펠리 연출로 리옹 오페라에서 초연돼 큰 호평을 받았던 작품으로, 이번에 다시 무대에 오른 것이다. 지휘는 오노 가즈시와 필리프 포르제가 반씩 나눠 맡았고, 호프만 역에는 요즘 각광받는 두 젊은 테너 존 오즈번과 레오나르도 카팔보가 더블 캐스팅됐다. 하지만 하이라이트는 올랭피아·안토니아·줄리에타, 그리고 스텔라 역을 동시에 겸한 파트리치아 초피의 출연이었다. 12월 22일 공연을 취재해본다.
‘호프만의 이야기’는 오펜바흐의 마지막 작품이다. 오펜바흐는 1851년 오데옹 극장에서 드라마투르기 쥘 바르비에와 대본가 미셸 카레가 함께 구상한 연극 ‘호프만의 이야기’ 공연을 관람한 것으로 전해진다. 오펜바흐는 1873년 오페라로 만들 것을 공식화하며 각색에 들어간다. 오페라 부파 작곡가로서 신물이 난 오펜바흐는 이른바 심각한 음악, 즉 바그너의 음악극 같은 드라마틱한 작품을 쓰고 싶어 했다. 따라서 부파적인 경쾌함과 산뜻함도 있지만, ‘라인의 황금’이나 ‘탄호이저’의 바그너적인 오케스트레이션을 연상케 하는 압도적인 패시지들도 엿볼 수 있다. 혹자는 그의 딜레마를 몰리에르의 그것에 비유하는데, 몰리에르가 코미디에서만 예술적 정점에 도달했다면, 오펜바흐는 이 작품을 통해 코미디뿐만 아니라 드라마 차원에서 또한 탁월한 재능을 지니고 있음을 증명했다.
흔히들 예술가의 작품에는 그들의 전기적인 요소들이 반영된다고 하지만 전혀 상관없다고 주장하는 이들도 있다. 누가 옳은지는 모른다. 하지만 이 작품에 오펜바흐의 마지막 삶과 예술적 비전이 강하게 녹아있음은 분명한 사실이다. ‘완벽’이란 이상을 사모하던 그는 완벽을 향한 작곡가로서의 이상을 완벽한 사랑을 갈구하는 시인 호프만에 오버랩 시킨다. 즉 이 작품에서 호프만은 오펜바흐고, 오펜바흐는 호프만인 셈이다.


▲ 기중기 위에 올라탄 올랭피아 인형을 연기하는 파트리치아 초피

버거웠던 일인다역, 미모는 압도적
오펜바흐는 죽음과 경주하듯 혼신의 힘을 다해 ‘호프만의 이야기’에 정진했다. 작품은 1881년 파리 오페라 코미크에서 초연되지만 오펜바흐는 이미 전 해에 세상을 뜬 후였다. 오펜바흐는 독일 낭만주의 작가 E.T.A. 호프만이 쓴 ‘모래 사나이’ ‘크레모나 바이올린’ ‘섣달그믐 밤의 모험’에서 영감을 받은 요소들을 일관성을 지닌 하나의 작품으로 합성했다. 관통하는 주제는 사랑과 여자.
올랭피아는 미모로 보나 지성으로 보나 더없이 완벽한 여자다. 자동인형이라 완벽한 것이 아니라 완벽하기 때문에 자동인형일 수밖에 없음을 이 작품은 말한다. 올랭피아의 운명은 깨지는 것으로, 즉 죽음으로 끝난다. 안토니아는 성악의 화신으로 그녀에 대한 호프만의 사랑은 음악에 대한 오펜바흐의 사랑을 은유한다. 안토니아는 너무나 노래를 부른 나머지 끝내는 죽는다. 고급 창녀 줄리에타는 호프만의 영혼을 악마에게 파는 교활하고 나쁜 여자다. 마지막 인물, 오페라 가수인 스텔라는 호프만을 사랑하지만 다른 남자에게 랑데부하는 이중적인 인물이다.
시인 호프만이 사랑한 올랭피아·안토니아·줄리에타, 그리고 스텔라는 한 여성이 가진 각기 다른 일면들의 분신일 뿐이다. 이런 이유로 오펜바흐는 이 여주인공들을 한 명의 소프라노가 부르기를 원했다. 이 점에서 파트리치아 초피가 네 역을 동시에 분한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문제는 올랭피아를 위한 콜로라투라, 안토니아를 위한 리릭 소프라노, 줄리에타를 위한 리릭 스핀토, 세 목소리를 동시에 구사해야 한다는 것이다. 2005년 초연 시는 미레유 들룅슈가 이 역들을 완주했지만 일반적으로는 여러 소프라노들이 캐스팅되는 것이 관례다. 특히 올랭피아 역으로는 나탈리 드세, 조수미 같은 이름난 콜로라투라들의 퍼포먼스가 이목을 집중하곤 했다. 요즘 최고의 비올레타로 평가받는 파트리치아 초피에게 ‘호프만의 이야기’는 도전해볼 만한 것임에는 분명했다. 그러나 초피의 ‘라 트라비아타’ 같은 강도 높은 퍼포먼스를 이번 공연에서 기대한 이들은 약간 실망스러울 수도 있겠다. 일부 청중과 언론은 드세의 올랭피아와 들룅슈의 2005년 공연을 더 높이 평가했다. 국수적인 편견일까? 초피의 프랑스어 딕션은 레치타티보에서는 약간의 이탈리아 악센트가 있긴 했어도 나름대로 파워풀했지만, 아리아를 부를 땐 거의 식별이 불가능했다. 하지만 완벽한 미모를 지닌 올랭피아, 죽어가는 창백한 안토니아, 화려한 화장과 의상으로 치장한 줄리에타에 이르기까지 너무도 아름다운 실루엣은 무대를 압도하기에 충분했다.

인형이자 악녀이자 요부였던 초피의 점수는?
로랑 펠리의 최고 연출작인 ‘호프만의 이야기’는 9년 전 작품이지만 먼지라곤 전혀 찾아볼 수 없다. 펠리는 코믹한 디테일이 지나칠 정도로 강조된 연출가로 그려지곤 한다. 하지만 이번 연출은 완벽한 사랑에 대한 추구, 그리고 이를 방해하는 악한 존재, 끝내는 죽음으로 귀결되는 철학적 사색을 보편적으로 설득시킬 수 있는 해석으로 승화시켜냈다. 무대 장식가 샹탈 토마는 거대한 회색 벽으로 된 퍼즐처럼 이리저리 움직이며 무대장치가 변화하는 효과적인 장치를 고안했다. 조명 또한 아주 어둡고 칙칙한 톤이다. 의상 또한 전체적으로 회색과 검정색이다.
1막은 모차르트 오페라 ‘돈 조반니’ 중 돈나 안나의 ‘말하지 마세요’ 아리아를 부르는 스텔라의 음성으로 시작한다. 스텔라는 오페라 가수로 호프만이 사랑하는 여주인공 중 한 명이다. 이어 독일의 어느 주막 장면이 나오는데, 코러스들은 나란히 앉아 “굴루, 굴구…” 하며 술 마시는 소리를 흉내 낸 보컬리즈를 연속한다. 아주 부파적이다. 이어서 호프만이 부르는 ‘클라인자흐의 전설’이 아주 인상적이었다. 레오나르도 카팔보는 다리가 깨진 인형처럼 휘정거리는 몸동작으로 을씨년스러운 클라인자흐의 이야기를 수려하게 불렀다.
2막 올랭피아 장면은 회색 벽들이 ‘ㄷ자형’으로 각을 맞춘 코펠리우스의 아틀리에에서 일어난다. 아틀리에 직원들과 방문객들은 하얀 가운에 모자를 쓰고 올랭피아의 작동을 기다린다. 올랭피아는 은색 드레스를 입고 영화 카메라를 장치하는 높은 기중기 위에 앉아있다. 팔과 머리를 인형처럼 움직이며 유명한 아리아 ‘숲 속의 새들’을 부른다. 자동인형이기 때문에 작동되다 중지되는 모습이 자주 등장한다. 연출은 작동이 중지되는 패시지에서는 기중기를 바닥으로 하강하고, 다시 잘 작동하면 공중으로 띄웠다. 그러다 빙빙거리며 돌기도 했다. 초피는 올랭피아 역에서 100퍼센트 잠재력을 발휘하지 못한 부분들도 있었는데, 이것은 연출이 지닌 구조적인 문제에서 기인했을 가능성도 있다. 이리저리 움직이는 기중기 위에서 신체적 밸런스를 유지하며 고음 보컬리즈와 하이C를 다이내믹하게 뻗어 올리는 것은 쉽지 않기 때문이다.
3막 안토니아 역은 초피 특유의 아름다운 프레이징 감각이 아주 잘 드러난 예다. 거대한 회색 벽 사이를 연결하는 계단들은 현기증이 날 정도로 공중까지 연결된다. 그사이 검은 드레스 차림의 안토니아가 하얀 비둘기를 향해 ‘그녀는 도피했다’를 부른다. 소곤거리는 듯한 고운 레가토로 청중의 가슴을 가지고 놀던 초피의 음성은 2천 석에 달하는 대형 극장을 메우기 위해 악쓰는 듯한 발성을 주저치 않는 일부 성악가들의 퍼포먼스와는 전혀 다르게 온기와 관능미로 넘쳤다. 3막 파이널은 하이라이트. 그녀의 죽음을 부추기기 위해 미라클 박사는 그녀에게 마법을 건다. 안토니아는 인형처럼 그가 시키는 대로 팔을 비틀며 노래를 시작한다. 안토니아에게 노래한다는 것은 죽음과 같다. 바그너적인 오케스트레이션을 타고 미라클 박사 역의 바리톤 로랑 알바로와 함께 한 듀오는 음색으로도 연극적으로도 압권이었다. 미라클 박사와 린도르프, 그리고 다페르투토는 호프만의 이상, 즉 완벽한 사랑이 이루어지는 것을 방해하는 부정적인 인물들이다. 이 역들을 모두 부른 로랑 알바로는 시각적으로 카리스마와 명징한 퍼포먼스가 돋보이는 효과를 발휘했다.


▲ 미라클 박사의 꾐에 넘어가는 안토니아는 죽을 때까지 노래를 부른다

예술가의 유일한 연인은 뮤즈일 뿐!
4막은 파스텔 풍 베일들이 이리저리 쳐져 있는 방 안에 줄리에타가 소파에 앉아있는 모습으로 시작한다. 이어서 뇌쇄적인 호프만의 이야기에 맞추어 소파는 이리저리 좌우로 움직인다. 리옹 오페라 코러스의 감상적인 퍼포먼스는 갈채감이었다. 4막 2장은 줄리에타의 살롱으로, 살롱 벽 중앙에는 거울이 걸려 있다. 줄리에타는 호프만을 유혹한 후 그에게 거울을 보게 한다. 호프만은 다페르투토에게 자신의 그림자를 빼앗긴다. 그리고 의식을 잃은 채 기절한다. 여기서 그림자는 영혼을 뜻한다. 줄리에타는 다페르투토로부터 다이아몬드 반지를 보상으로 받는다. 초피는 이런 요부의 캐릭터를 연극적으로는 잘 소화해냈다. 반면 성악적으로는 다소 거친 음질이 거슬릴 만큼 피곤함이 역력했다.
이제 이야기는 다시 1막 주막으로 돌아온다. 스텔라의 퍼포먼스가 진행 중인 오페라극장이다. 검은 드레스 차림의 스텔라는 팬들에게 둘러싸인 채 완전히 술에 취한 호프만을 혼자 무대에 남겨두고 떠난다. 그에게 남은 것은 “사랑해!”라고 말하는 뮤즈뿐이다. 예술가들의 유일한 연인은 뮤즈일 뿐이라는 교훈과 함께 막이 내린다. 호프만 역의 레오나르도 카팔보는 현실과 이상 사이에서 번뇌하는 시인 호프만의 내면을 아주 잘 연기해냈다. 뮤즈와 친구 니클라우스 역을 겸한 메조소프라노 안젤리크 놀뒤스 역시 빠지지 않는 호연을 보였다. 특히 필리프 포르제의 지휘는 이처럼 감동적인 오펜바흐의 사색을 생생히 전달하는 데 성공했다. 리옹의 청중은 뇌쇄적인 호프만의 이야기를 읊조리며 극장을 떠났다.

글 배윤미(파리 통신원) 사진 Opera de Ly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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