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프라노 박혜상, 노래로 이어진 천년의 인연

기사 업데이트 시간: 2026년 7월 8일 10:16 오전

FOCUS

소프라노 박혜상

노래로 이어진 천년의 인연

신라 향가와 판소리, 슈베르트와 구아스타비노까지.
시대와 국경을 넘어 하나의 정서로 이어진 노래들

 

©Sangwook Lee

“이리 오너라, 업고 놀자. 사랑, 사랑, 내 사랑이야. 네가 무엇을 먹으랴느냐? 둥글둥글 수박 웃봉지 떼뜨리고, 강릉 백청을 따르르 부어, 붉은 점 웁벅 떠 반간진수로 먹으랴느냐? 앵도를 주랴, 포도를 주랴, 귤병, 사탕에 혜화당을 주랴? 아매도 내 사랑아.”
세상의 모든 달콤한 것을 ‘웁벅’ 떠먹여주고 싶은 마음. 어쩌면 사랑이란 그런 것인지도 모른다. 판소리 ‘춘향가’의 ‘사랑가’가 오랫동안 큰 사랑을 받아온 이유 역시 이 절절한 마음을 실감 나게 담아냈기 때문일 것이다.
올여름, 사랑과 그리움이 깃든 아름다운 노래들이 경주와 서울 예술의전당 무대를 채운다. ‘사랑가’부터 ‘연꽃 만나고 가는 바람같이’(김주원 작곡·서정주 시), 조선시대 시조를 바탕으로 한 ‘북천이 맑다커늘’까지 다채로운 레퍼토리가 이어진다. 오는 7월 ‘한국가곡 연대기’로 관객과 만나는 소프라노 박혜상과 이번 공연 프로그램에 담긴 이야기를 나눠보았다.

 

‘한국 가곡 연대기’에 담긴 뜻

‘한국가곡 연대기’라는 공연명이 인상적입니다. 오랫동안 사람들이 이어 불러온 한국 노래를 짚어본다는 의미이겠죠?
‘연대기’라는 단어를 선택한 것은 단순히 시대순으로 곡을 나열하기 위해서가 아닙니다. 한국의 노래가 오랜 세월 어떻게 살아남고 변화해왔는지를 관객과 함께 느껴보고 싶었어요. 1부에서 부를 ‘찬기파랑가’(작곡 이지혜)는 신라 향가로, 화랑 기파랑을 기리는 노래입니다. 우리말을 향찰(한글이 창제되기 전, 말을 기록하기 위해 한자의 음(소리)과 훈(뜻)을 빌려 표기하던 문자 체계)로 기록한 향가라는 점이 제게 큰 매력으로 다가왔어요. 그 시대 사람들이 실제로 사용했던 말을 글로 옮겼다는 사실 자체가 신비롭게 느껴집니다. 박자를 맞추기가 쉽지는 않지만, 한국적인 기교가 곳곳에 숨어 있어 부를수록 재미있는 곡이에요.

‘사랑가’를 성악으로 부르는 시도도 무척 색다르게 다가옵니다.
솔직히 제가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어려웠어요. 늘 익숙하게 들었던 ‘사랑 사랑 내 사랑이야’의 멜로디만 알고 있었는데, 막상 깊이 들어가 보니 판소리라는 장르는 성악으로 구현하기가 거의 불가능에 가깝다는 걸 깨달았습니다. 처음에는 판소리의 맛을 흉내라도 내보려 했지만, 목에 무리가 오더라고요. 그래서 지금은 판소리 고유의 분위기를 살리면서도, 제 목소리로 자연스럽게 표현할 수 있는 최선의 방식을 찾아 준비하고 있습니다.

이 노래들을 부를 때 특별히 떠올리는 장면이 있나요?
‘찬기파랑가’를 부를 때는 이른 새벽, 아무도 없는 사찰 마당에서 혼자 하늘을 올려다보는 장면이 그려집니다. 인간의 영역을 넘어선 어떤 거대한 존재를 향한 마음 같은 것이 느껴져요. 반면 ‘사랑가’를 부를 때는 아주 구체적인 장면을 떠올리곤 해요. 두 사람이 손을 잡고 웃으며 걷는 모습, 그리고 그 발걸음이 한없이 가볍게 느껴지는 달콤한 순간을요.

 

서로 다른 노래를 하나의 정서로 잇다

시대와 국경을 넘나드는 노래들이 한 무대에서 만납니다. 이들을 하나의 흐름으로 엮게 된 계기가 궁금하네요.
이번 프로그램은 시대와 국적보다 곡 안에 담긴 정서에 더 집중해 구성했습니다. 가령 슈베르트의 ‘물레 잣는 그레첸’을 연습하다 보니 자연스럽게 ‘아르헨티나의 슈베르트’라 불리는 카를로스 구아스타비노(1912~2000)의 음악이 떠올랐어요. 슈베르트를 프로그램에 담고 나니, 지구 반대편에서 등장한 또 다른 가곡의 천재는 어떤 음악을 남겼을지 궁금해졌거든요.

구아스타비노의 ‘장미와 버드나무’에서 주목한 지점이 있다면요?
버드나무가 상징하는 상실의 슬픔이 한국 가곡에서 자연을 통해 표현되는 그리움의 정서와 꼭 닮아있다고 느꼈습니다. 서로 다른 언어와 문화 속에서 태어난 음악인데도 결국 같은 감정에 도달하는 순간이 있잖아요. 마치 지구 반대편에서 자란 나무들이 하늘을 향해 같은 방향으로 가지를 뻗는 것처럼요. 이러한 감정의 병치가 관객들에게도 깊은 여운을 남길 수 있기를 기대하고 있습니다.

피아니스트 문재원, 대금 연주자 이아람, 첼리스트 이호찬과 함께하는 앙상블도 눈길을 끕니다.
피아노는 프로그램 전반에서 노래를 받쳐주고, 대금과 첼로는 ‘사랑가’에서 활약할 예정입니다. 리허설 동안 저는 성악가로서의 중심을 유지하면서 판소리의 정취가 흐트러지지 않도록 노력했고, 대금은 한국적인 뉘앙스와 꾸밈음을 거침없이 뿜어냈습니다. 첼로는 그 사이의 공간을 따뜻하게 채워주었고, 피아노는 이 모든 요소를 하나로 엮어주었죠. 다른 언어를 사용하는 악기들이 하나의 이야기를 만들어가는 과정이 인상적이었습니다.

이번 리사이틀은 박혜상에게 어떤 의미를 지니나요?
사실 이 프로젝트는 오래전부터 제 마음속에서 시작되었습니다. 2020년 DG 데뷔 음반인 ‘I Am Hera’를 준비하며 ‘연꽃 만나고 가는 바람같이’와 ‘시편 23편’(작곡 나운영)을 수록했을 때부터, 언젠가는 한국 가곡으로만 채운 리사이틀을 열고 싶다는 바람을 품고 있었거든요. 그때 심은 씨앗이 이제야 비로소 꽃을 피우게 된 것 같아 무척 기쁘고 감사한 마음입니다.

올 하반기에 예정된 공연을 소개해 주세요.
정말 눈코 뜰 새 없이 바쁜 일정이 기다리고 있습니다. 그중에서도 가장 기대되는 무대는 서울시오페라단의 ‘라 보엠’(11.5~8) 입니다. 저에게는 미미 역으로 나서는 첫 롤 데뷔이자 세종문화회관 대극장 데뷔 무대이기도 해요. 오랫동안 마음속에 품어온 역할인 만큼, 그 순간이 무척 기다려집니다.

양경원(음악 칼럼니스트) 사진 ANRC

박혜상(1988~) 서울대 성악과를 졸업하고 줄리아드 음악원 석사과정과 전문연주자과정을 전액 장학금으로 마쳤다. 2014년 퀸 엘리자베스 콩쿠르 5위, 2015년 몬트리올 음악 콩쿠르와 오페랄리아 성악 콩쿠르에서 각각 2위를 차지했다. 2020년 도이치 그라모폰(DG)과 전속 계약 후, 같은 해 데뷔 음반 ‘I Am Hera’를 발매했다.

 

PERFORMANCE INFORMATION
소프라노 박혜상 리사이틀 ‘한국가곡 연대기’
7월 9일 오후 8시 경주예술의전당 화랑홀
7월 14일 오후 7시 30분 예술의전당 콘서트홀
신라 향가 ‘찬기파랑가’, 조선 시조 ‘북천이 맑다커늘’,
슈베르트 ‘물레 잣는 그레첸’, 판소리 ‘춘향가’ 중 ‘사랑가’,
구아스타비노 ‘장미와 버드나무’ 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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