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월 9일 예술의전당 콘서트홀
2013년이 베르디와 바그너의 해였다면, 2014년은 리하르트 슈트라우스의 해다. 슈트라우스 탄생 150주년이 되는 올해, 연초부터 슈트라우스의 교향시 ‘영웅의 생애’를 연주하는 서울시향의 음악회가 음악 애호가들의 관심을 모았다. 유난히 추웠던 지난 1월 9일, 예술의전당 콘서트홀만큼은 서울시향 ‘정명훈의 영웅의 생애’ 연주를 듣기 위해 몰려든 청중의 열기로 뜨거웠다.
음악회의 문을 연 베토벤 ‘레오노레 서곡’ 3번에선 오페라 지휘자로서 정명훈의 탁월함이 드러났다. 세심한 앙상블이 요구되는 느린 서주에서 서울시향의 앙상블은 다소 산만하긴 했으나, 오케스트라의 악기들이 마치 오페라 출연자들처럼 그 성격을 명확히 표현하고 있어 서곡만으로도 오페라 전체 분위기를 느낄 수 있었다. 서곡을 듣는 동안 현악기의 노래하는 서정과 극적인 클라이맥스 구조를 살려낸 정명훈의 지휘로 인해 이 작품이 ‘오페라 서곡’이란 사실을 다시 한 번 생각하게 되었다.
무엇보다 이번 음악회의 백미는 역시 진은숙의 생황 협주곡 ‘슈’였다. 여러 대나무 관들이 붙어 있는 생황은 동양의 악기 가운데서도 다채로운 음색과 기교로 표현력이 뛰어나긴 하지만 진은숙의 작품 덕분에 그 표현력이 극대화된 듯했다. 활로 심벌즈의 측면을 긋거나 종이를 구기며 소리를 내는 등 타악기의 각종 음향 효과가 우웨이의 화려한 생황 연주와 어우러져 환상적인 음향을 만들어냈다. 박자가 계속 변해가는 복잡한 변박자와 연주 기술상의 어려움에도 불구하고 우웨이의 솔로는 무대를 압도하며 관객을 사로잡았고, 서울시향의 빈틈없는 연주 역시 감탄을 자아냈다. 때로는 아코디언처럼, 때로는 오보에처럼 음색을 바꿔가며 환상적인 음의 세계를 선보인 우웨이의 연주는 진은숙의 작품을 매우 친숙한 음악으로 느끼게 했다.
진은숙의 작품이 기대치 이상의 연주로 더욱 빛났다면, 음악회 마지막에 연주된 슈트라우스의 ‘영웅의 생애’ 연주는 상대적으로 아쉬움이 많이 남았다. 슈트라우스의 자전적인 작품으로 알려져 있는 ‘영웅의 생애’는 작곡가 자신을 나타내는 ‘영웅’ 테마로 시작해 ‘영웅의 적들’ ‘영웅의 반려자’ ‘전쟁터의 영웅’ ‘영웅의 업적’으로 이어지다가 마지막에 ‘영웅의 은퇴와 완성’으로 마무리되고 있어, 마치 자서전을 읽듯 각 부분의 성격을 생생하게 느낄 수 있는 곡이다. 그러나 서울시향의 연주로 표현된 도입부의 ‘영웅’ 테마는 그다지 영웅적이지 않았고, ‘영웅의 적들’ 역시 그렇게 위협적이지 않았다. 적들이 공격해오듯 날카롭게 연주해야 할 부분에서도 서울시향 목관 주자들은 다소 소극적인 태도로 연주에 임했다. 물론 악장 스베틀린 루세브의 탁월한 바이올린 솔로 덕분에 ‘영웅의 반려자’는 매우 애교 있고 매력적인 여성으로 다가왔고, 팀파니 수석의 강력한 연주로 영웅의 위대한 업적은 더욱 빛났으나 군데군데 관악 섹션의 음정 불안 등은 실망스러운 점이었다.
그날 공연에 함께 연주된 진은숙의 협주곡이 많은 연습량을 요구하는 난곡이었다는 점을 고려한다면 오케스트라가 슈트라우스의 ‘영웅의 생애’ 연습에 더 많은 시간을 할애하기 어려웠으리라 짐작할 수 있다. 그러나 최근 들어 수준 높은 연주로 음악 애호가들의 기대치를 높인 서울시향이 이제는 어떤 공연에서나 일정 수준 이상의 연주력을 유지할 수 있는 내공을 키워야 할 때가 온 것 같다.
글 최은규(음악 칼럼니스트) 사진 서울시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