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객석’이 함께한 대한민국 공연예술사 30년 1989

창작한다, 고로 존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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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 업데이트 시간: 2014년 3월 1일 12:00 오전

1989
창작한다, 고로 존재한다

25년 전이나 지금이나 황병기가 강조하는 것은 ‘창작’이다. 창작하여 고로 존재하고, 창작하여 고로 젊게 사는 황병기. “한창 젊었을 때”인 25년 전, 그의 나이 48세였다

1989년 5월호 커버 스토리에서
황병기는 “작곡이란 예술의 여러 장르 가운데 가장 자연스럽고 추상적인 것”이라 한다. 소설보다도, 시보다도, 훨씬 더 추상적이고 순수한 예술이 바로 음악이라는 것이다.
“오늘의 국악계에서 가장 중요한 현안은 창작품의 생산이라고 봅니다. 국가가 상을 주는 것도 필요 없는 일입니다. 공부하는 사람이나 듣는 창작곡은 아무 소용이 되지 못해요. 국악뿐 아니라 우리나라의 음악을 둘러싸고 일어나는 일들은 황무지나 다름없는 실정이지요. 따라서 오늘의 국악인들은 서양의 전위음악가들보다 더 고독한 존재인지도 몰라요.”
그런 면에서 황병기는 작곡가 김영동의 작업을 아주 소중하게 여긴다고 밝혔다. 김영동이 대중의 사랑을 받는 국악을 만들어낸다는 점에서 그를 무척 아끼는 후배로 꼽고 있다.
“나는 내가 발표한 곡을 모두 사랑합니다. 내 작품을 듣고 즐기기도 해요. 일단 발표한 작품은 자식과 같은데 어떻게 결점을 이야기할 수 있겠어요. 작곡가가 자신의 작품을 부끄럽게 여긴다면 이것이야말로 안일한 태도라 생각합니다. 그러므로 완성품을 발표한다는 것은 중요한 관건이지요.”

지금으로부터 25년 전인 1989년 인터뷰 당시와 마찬가지로 “오늘 국악계의 가장 중요한 현안은 창작품의 생산”입니다.
특별한 얘기라기보다는, 우리 문화예술에서 가장 중요한 게 창작이에요. 국악의 경우는 1990년대 들어와 계량악기를 많이 쓰게 됐고, 곧 크로스오버나 퓨전 붐이 일어났어요. 요즘 국악방송을 들으면 반 이상이 크로스오버인 것 같아요. 그것이 25년 전과 크게 달라진 점이라 볼 수 있죠. 그러나 나 자신은 크로스오버나 퓨전은 안 해요. 음식도 ‘정통’이 좋아요. 프랑스 음식이 좋지, 퓨전 음식은 좋아하지 않아요. 다른 사람들이 퓨전을 하는 거에 대해 잘못됐다는 말은 하지 않겠어요. 그건 더 두고 봐야 할 일이니까. 다만 나 개인은 그런 건 안 한다는 얘기예요. 나는 세계 어디서든 한국에서만 들을 수 있는 소리, 한국에선 황병기에게서만 들을 수 있는 소리를 만들려고 해요.

과거 인터뷰에서 “김영동의 작업을 소중히 여긴다”라 하셨습니다. 최근 눈여겨보는 작곡가는 누구인가요?
국악 대중화, 대중적 국악 가요를 처음 시작한 사람이 김영동이라 할 수 있어요. 당시엔 참 참신했어요. 내 과문의 탓인지 모르나 요즘 김영동은 활동이 별로 없고, 국악가요는 너무 많아져 이젠 낡았지. 최근 몇 년은 독일에 사는 정일련을 그야말로 눈여겨보고 있어요. 내가 국립국악관현악단 예술감독으로 있을 때 그 사람 실내악곡의 실제 연주를 들어보고 큰 거 맡겨야겠다 싶어 70분짜리 국악관현악곡을 청탁했어요. 그게 ‘파트 오브 네이처’예요. 내가 볼 때는 상당한 문제작 같아. 정일련은 굉장히 독창적입니다. 그렇다고 퓨전도 아니지. 국악에 대한 접근법이 독특하고 참신하고, 또 순수합니다.

30년 전 황병기는 어떤 사람이었으며, 무엇을 하고 있었습니까?
그때 내가 48세, 한창 젊었을 때인데. ‘객석’ 창간하자마자 편집위원이 되어 한 달에 한번씩 모여 편집 방향을 논의했던 기억이 있어요.

30년 음악인생에서 가장 기뻤던 순간과 가장 힘들었던 순간은 언제였습니까?
기뻤던 순간은 많지만, 지난해 영국에서 내 작품과 나에 대한 연구를 담은 책이 나왔어요. 책 이름이 ‘황병기, 트래디셔널 뮤직 앤드 더 컨템퍼러리 컴포저 오브 리퍼블릭 오브 코리아’. 쓴 사람은 영국 셰필드대 교수인 앤드루 킬릭. 나에 대해 아주 소상한 설명이 나오고, 책 뒤에는 CD까지 첨부돼 있어요. 본문엔 내 악보가 자주 인용되고. 가장 힘들었던 건 1999년, 대장암 수술 받은 해지. 서울대병원에서 수술을 받고 생사의 기로를 헤맬 때, 병원 시계탑을 보고 입원실에서 ‘시계탑’을 작곡했어요. 익히 알려진 얘기지만, 그때가 가장 힘들었죠.

그해의 화제와 인물

1989년 2월, 예술의전당 음악당이 개관 1주년을 기념해 교향악축제를 개최했다. 한 달간 이어진 축제에는 국내 11개 교향악단이 참여했다. 이 축제는 2014년 현재까지 매년 4월마다 열리고 있다.


▲ 정명훈이 5월 파리 바스티유 오페라의 음악감독 겸 상임지휘자로 취임했다. 창단 첫 공연에서 베를리오즈의 오페라 ‘트로이 사람들’을 지휘해 호평을 받았다.


▲ 30년 넘게 베를린 필하모닉을 이끌었던 헤르베르트 폰 카라얀이 잘츠부르크 저택에서 심장마비로 세상을 떠났다.

배용균 감독의 ‘달마가 동쪽으로 간 까닭은’이 로카르노 영화제에서 대상인 금표범상을 받았다. 이 외에도 국제기자협회상·기독교 평론가상 1위·청년비평가상 등 특별상을 석권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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