런던 심포니와 내한하는 대니얼 하딩

매력적인 성장

기사 업데이트 시간: 2014년 3월 1일 12:00 오전

3월 10·11일 런던 심포니와 함께 내한하는 지휘자 대니얼 하딩.
정식으로 지휘를 배운 적 없는 청년이 영국을 대표하는 차세대 지휘자로
주목 받기까지, 그 행복하고도 숨가쁜 시절을 되돌아본다

영국은 세계 최대의 음악 소비국이다. 수도 런던에만 런던 심포니·런던 필하모닉·로열 필하모닉·필하모니아·BBC 심포니·계몽시대 오케스트라 등 세계 정상급 교향악단이 여섯 개나 있다. 여기에 아카데미 오브 세인트 마틴 인 더 필즈 등 체임버 오케스트라나 고음악 앙상블까지 보태면 숫자가 훨씬 불어난다.
하지만 작곡은 물론 지휘 분야에서도 거의 불모지에 가까울 정도로 이렇다 할 인물이 없다. 토머스 비첨·맬컴 서전트·콜린 데이비스·존 바비롤리·에이드리언 볼트·네빌 매리너·앤드루 데이비스 등 손가락으로 꼽을 정도다. 영국을 대표하는 오케스트라인 런던 심포니의 110년 역사 가운데 에드워드 엘가·앨버트 코츠·해밀턴 하티·콜린 데이비스 등 영국 출신이 수석지휘자로 재임한 기간은 20년이 채 못 된다. 나머지는 한스 리히터·아르투르 니키시·앙드레 프레빈(독일), 빌렘 멩겔베르크(네덜란드), 요제프 크립스(오스트리아), 피에르 몽퇴(프랑스), 이스트반 케르테스(헝가리), 클라우디오 아바도(이탈리아), 마이클 틸슨 토머스(미국), 발레리 게르기예프(러시아) 등 외국 출신이다. 현재 웨일스 BBC 내셔널 오케스트라의 수석지휘자와 로열 스코티시 내셔널 오케스트라의 수석 객원지휘자를 겸하고 있는 사람은 덴마크 출신이다. 런던 로열 오페라 음악감독은 이탈리아 출신, 런던 심포니와 런던 필하모닉 수석지휘자는 러시아 출신, 로열 필하모닉은 스위스 출신, BBC 심포니와 필하모니아 오케스트라는 핀란드 출신이다.
그렇다면 지방 도시는 어떤가. 얼스터 오케스트라는 미국 출신, 버밍엄 심포니는 라트비아 출신, 로열 스코티시 심포니는 캐나다 출신, 본머스 심포니는 러시아 출신이 사령탑이다. 영국 출신으로는 맨체스터 할레 오케스트라를 이끌고 있는 마크 엘더가 거의 유일하다.
사이먼 래틀이 베를린 필하모닉 오케스트라의 수석지휘자로 부임하면서 세계적인 주목을 받았지만 영국 지휘자의 기근 현상은 여전하다. 사이먼 래틀의 뒤를 이어 영국 악단을 이끌어갈 차세대 지휘자로 떠오른 대니얼 하딩이 주목을 받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여러 ‘최연소 타이틀’을 갈아치운 신예 시절
대니얼 하딩이 2006년부터 수석 객원지휘자로 있는 런던 심포니 오케스트라를 이끌고 서울 예술의전당을 찾는다. 3월 10일 무소륵스키의 ‘민둥산의 하룻밤’, 슈베르트의 교향곡 8번, 스트라빈스키의 ‘페트루슈카’를 연주하고 이튿날에는 말러 교향곡 1번과 프로코피예프의 피아노 협주곡 2번(협연 김선욱)을 들려준다.
하딩이 지휘자로 데뷔한 것은 1994년 4월 버밍엄 심포니 부지휘자로 있을 때다. 버르토크의 ‘중국의 이상한 관리 모음곡’을 지휘했다. 이날 연주는 로열 필하모닉 협회가 시상하는 ‘베스트 데뷔상’에 선정되었다. 지휘 경력이 20년 넘지만 나이는 올해 38세다. 영국 옥스퍼드 태생인 그는 맨체스터 체텀 음악학교에서 트럼펫을 배웠다. 어릴 때부터 지휘자가 되기로 결심했지만 주변에서는 오케스트라 단원으로 20년 넘게 경험을 쌓아야 지휘자가 될 수 있다며 만류했다. 하지만 그는 열여섯 살 때 음악 하는 친구들을 모아 쇤베르크의 ‘달에 홀린 피에로’를 지휘한 테이프를 당시 버밍엄 심포니 음악감독으로 있던 사이먼 래틀에게 보냈다. 래틀은 당시 같은 곡을 연습 중이었다. 아무리 들어봐도 자신의 연주보다 하딩의 연주가 훨씬 깔끔했다. 이에 감명받은 그는 아직 고등학교도 졸업하지 않은 하딩을 자신의 부지휘자로 불렀다. 1995년 12월에는 자신이 지휘할 예정이던 파리 오페라의 ‘돈 조반니’를 하딩에게 맡겼다. 하딩은 이때 만난 연출자 피터 브룩과 엑상프로방스 페스티벌에서 단골로 지휘하고 있다.
하딩은 케임브리지대 1학년 때 베를린 필하모닉의 수석지휘자로 있던 클라우디오 아바도의 초청을 받아 그의 부지휘자가 되었다. 1996년 사상 최연소로 베를린 필을 지휘했다. 같은 해 런던 BBC 프롬스 축제에 최연소 지휘자로 데뷔했다. 스물두 살 되던 이듬해엔 EMI 레이블과 레코딩 계약까지 맺었다. 지휘 공부를 정식으로 하지 않았지만 지휘계 거장들의 지지 덕분에 빠른 속도로 경력을 쌓아갈 수 있었다. 아바도는 1997년에 자신이 창단한 말러 체임버 오케스트라를 하딩에게 물려주었다. 하딩은 1998년 수석 객원지휘자를 거쳐 2003년 음악감독, 2008년 수석지휘자가 되었다. 2011년에는 단원 만장일치로 계관 지휘자로 추대 받았다. 현재는 이혼 상태이지만 말러 체임버 오케스트라 단원 출신인 비올리스트 베아트리스 뮈틀레와 결혼해 두 딸을 낳기도 했다.
하지만 신예 지휘자의 길은 생각처럼 순탄하지만은 않았다. 2005년 10월 파리 오페라에서 ‘코시 판 투테’를 지휘할 때 서른 살도 채 안 된 애송이 지휘자를 길들이려는 단원들의 오만불손한 단체 행동에 질려 첫 연습이 끝난 다음 공연을 아예 포기한 적도 있었다. 2006년 7월 엑상프로방스 페스티벌에서 지휘한 ‘마술 피리’는 혹평을 받았다. 영국 ‘선데이 타임스’ 음악평론가 휴 캐닝은 극단적인 템포 설정에 불만을 표했고, “겉만 번지르르하고 음악성은 없다“라고 꼬집었다. 2013년 1월 바그너 연주에서는 이탈리아의 유력 일간지 ‘코리에레 델라 세라’의 음악평론가 파올로 이소타가 “바그너가 동성애자였다는 주장을 뒷받침할 만큼 너무 부드럽게 연주했다”라고 혹평했다.

성숙을 증명할 8년 만의 내한 공연
앞서 언급한 것처럼 하딩의 가장 큰 약점은 정식으로 지휘를 공부하지 않았다는 점이다. 거장들의 리허설을 참관하면서 몸으로 배운 것이 전부였다. 이를 보완하기 위해 하딩은 지금도 틈날 때마다 빈 국립음대 지휘과 교수 마크 스트링어를 찾는다. 레너드 번스타인의 부지휘자 출신 미국인이다. 마치 야구나 축구 감독이 경기 실황 중계를 녹화해 여러 차례 돌려보면서 단점을 보완하고 작전을 수립하듯 스트링어는 지휘대 위에서 보이는 하딩의 일거수일투족을 꼼꼼히 분석해 고쳐주는 코치인 셈이다.
하딩은 독일뿐만 아니라 북유럽에서도 인기가 높다. 노르웨이 트론하임 심포니(1997~2000), 노르셰핑 심포니(1997~2003), 도이치 카머 필(1997~2003)의 음악감독을 지냈으며, 2007년부터 스웨덴 방송교향악단 음악감독으로 활동 중이다. 2010년에는 ‘뮤직 파트너’라는 타이틀로 뉴 재팬 필하모닉 오케스트라의 지휘자 명단에 올랐다.
오페라 무대에서의 활약상도 눈부시다. 2003년 잘츠부르크 페스티벌에 데뷔했고, 엑상프로방스 페스티벌은 거의 매년 찾는 무대다. 2005년 12월 밀라노 라 스칼라 극장에서 모차르트의 ‘이도메네오’를 지휘했을 때 박수가 15분간 계속되었다. 그는 라 스칼라 극장의 시즌 개막 공연을 지휘한 최초의 영국인 지휘자라는 신기록 보유자가 되었다. 지난해엔 베를린과 빈에서 바그너의 ‘방랑하는 네덜란드인’을 지휘했다.
지금까지 발표한 음반은 빈 필과 녹음한 말러 교향곡 10번(DG), 바이에른 방송교향악단을 지휘한 카를 오르프의 ‘카르미나 부라나’(DG), 말러 체임버 오케스트라와 함께 한 말러 교향곡 4번, 브레멘 도이치 카머 필과 호흡을 맞춘 브람스 교향곡 3·4번과 베토벤 서곡집(EMI) 등이 대표적이다. 하딩은 2006년 말러 체임버 오케스트라를 이끌고 첫 내한 무대에 섰다. 그로부터 8년이 지난 지금 영국을 대표하는 오케스트라와 함께 어떤 해석의 슈베르트·말러·스트라빈스키를 들려줄지 궁금하다.

글 이장직 객원전문기자(lully@gaeksuk.com) 사진 빈체로


▲ 하딩/런던 심포니 오케스트라 내한 공연
3월 10·11일 오후8시 예술의전당 콘서트홀
무소륵스키 ‘민둥산의 하룻밤’, 슈베르트 교향곡 8번, 스트라빈스키 ‘페트루슈카’(10일)
김선욱 협연 프로코피예프 피아노 협주곡 2번, 말러 교향곡 1번(11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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