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월 28일 예술의전당 콘서트홀
1985년에 창단한 코리안심포니 오케스트라는 우리 민간 교향악단의 역사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전용 공연장 건립은 고사하고 숱한 해체의 어려움을 극복하고 살아남은 것만 해도 기립박수를 보내줘야 한다. 3년 전 박은성의 뒤를 이어 4대 예술감독으로 취임한 최희준은 여전히 나아지지 않는 여건 속에서도 독일에서 배운 지휘법을 최대한 투영해 악단의 실력을 일취월장시켰다. 그러나 그뿐이었다. 코리안심포니에 도대체 무슨 일이 일어난 걸까? 뚜렷한 이유 없이 그는 3년 임기를 정확히 마치고 포디엄을 내려왔다. 사실 절차상으로는 아무런 문제가 없었다. 하지만 오케스트라계에는 관례라는 것이 있다. 해외 일급 악단에서는 상상도 할 수 없는 단명이다. 이제 막 ‘최희준 사운드’가 무르익기 시작한 터라 더욱 서운했다.
1월 28일 예술의전당 콘서트홀에서는 지휘자 최희준의 고별무대가 열렸다. 프로그램은 박종화 협연의 베토벤 피아노 협주곡 1번, 그리고 말러 교향곡 1번 ‘거인’. 말러의 교향곡이 모두 끝나자 객석은 술렁였다. 이내 오래도록 제자리를 지키며 단원을 이끌어온 터줏대감 악장 이정일이 왼손으로 바이올린을 든 채 오른손을 휘휘 젓기 시작했다. 귀에 익은 선율, 스코틀랜드 민요 ‘올드 랭 사인’이 대편성 오케스트라의 확장된 음향으로 흘러나왔다. 이별의 주인공은 무대로 나오지 않고 출입구 쪽에서 묵묵히 듣고만 있었다. 서울시향·KBS교향악단 등 국공립교향악단에 비해 상상할 수 없을 만큼 낮은 처우를 받으며 20여 년을 버텨온 것만 해도 서러운 일인데, 올곧은 지휘자를 눈앞에서 떠나보내는 단원들의 마음은 더욱 아팠을 터. 끝내 그들의 눈시울은 붉어졌다.
피아니스트 박종화가 협연한 베토벤 협주곡 1번은 최희준 음악의 교과서와도 같은 연주였다. 취임 후 베토벤 교향곡 전곡 시리즈를 완성도 높게 이끌던 최희준은 다이내믹의 대비를 깔끔하게 가져가며 자칫 단순할 수도 있는 곡에 생기를 불어넣었다. 박종화의 피아노는 중견 연주자가 지닌 무르익은 시간의 퇴적이 얼마나 소중한 덕목인지를 확인시켜주었다. 박종화의 관록은 최희준의 뒷받침 속에 더욱 빛났다. 한 땀 한 땀 쌓아올린 담금질의 결과로 그의 타건은 때로 영롱하기까지 했다.
말러 교향곡 1번에는 낯익은 코리안심포니의 스타급 수석 단원들이 총출동했다. 1악장, 현이 자연으로부터 비롯된 A음을 하모닉스로 고집스럽게 인도하자 무대 밖에서 트럼펫의 팡파르가 들려왔다. 한국 최고의 트럼펫 연주자 중 한 명인 안희찬을 필두로 하는, 한때 국내 1위를 달렸던 ‘코심 금관’의 재연이었다. 또한 언제나 믿음직스러운 오보에 수석 전미영과 플루트 수석 이미선은 이날도 제 몫을 다했다. 하지만 떠나는 선장에 대한 안타까움 때문일까. 전반부에 비해 앙상블은 응집력을 잃고 흩어지는 경우가 많았다. 2악장의 넘실대는 율동은 경직되고 렌틀러는 춤추지 못했다. 3악장에서 이재준 수석이 들려주는 더블베이스 솔로는 가슴을 울리는 장송곡으로 화했다.
현재 코리안심포니의 후원회원은 고작 17명이다. 살림살이를 책임지는 사무국은 아직도 걸음마 수준이다. 기업 협찬과 기금 마련 등 재정적으로 안정되어야 악단의 미래가 보장된다. 새 예술감독 임헌정은 음악 다듬기 외에도 할 일이 많다. 런던 심포니와 같은 민간 교향악단의 출현은 언제쯤 현실이 될까.
글 유혁준(음악 칼럼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