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케나지와 라흐마니노프

피아노, 그 담담한 그리움

기사 업데이트 시간: 2014년 4월 1일 12:00 오전

보너스 CD까지 합쳐 열한 장. 아시케나지의 라흐마니노프 피아노 박스 세트를 들고 뿌듯함을 느낀 사람을 ‘아날로그 세대’라 부른다면 지나친 단정일까


▲ ⓒBen Ealovega

예나 지금이나, ‘피아니스트’라는 단어 앞에 ‘멋있는’이라는 형용사를 붙여야 할 때 제일 어울리는 음악은 라흐마니노프의 작품이라는 데 이의를 달 사람은 별로 없을 것이다. 과거 필자를 포함해 피아노를 공부하는 학생들의 ‘로망’도 크게 다르지 않다. 자신의 음악관이나 연주 철학에 대한 구체적인 생각이 확립되지 않은 어린 피아노 전공생들도 유독 라흐마니노프에 대한 이상향만은 뚜렷한 모습을 갖추고 있다는 점이 재미있다.
어떤 이들은 베레좁스키 같이 건반을 ‘지배하듯’ 연주하고 싶다고 하고, 피아노를 장난감처럼 만드는 마추예프의 모습에 압도당한 학생들도 있다. 자로 잰 듯 정확한 루간스키의 피아니즘을 좋아하는 경우도 있고, 랑랑과 유자 왕 등의 ‘중국적 센세이션’을 흉내 내려는 학생들의 의욕도 대단하다. 그렇다면 블라디미르 아시케나지는?
예상대로 내 질문에 큰 관심을 보이는 학생들은 거의 없는 듯하다. 그들의 취향은 자유이지만, 피아노를 다루는 모든 이의 꿈인 라흐마니노프의 피아니즘이 상당 부분 이 작고 재주 많은 피아니스트의 손가락을 통해 세상의 빛을 처음 구경했다는 것은 흔들림 없는 사실이다.
보너스 CD까지 합쳐 열한 장의 라흐마니노프 박스 세트를 들고 뿌듯함을 느낀 사람을 ‘아날로그 세대’라고 부른다면 지나친 단정일까. 음악회장에서 혹은 극장에서 가슴을 통째로 잡아 흔드는 아름다운 선율에 반해 음반 가게를 찾는 팬들이 만났던 아시케나지 협연의 프레빈/런던 심포니의 그 ‘어둑한’ 녹음은 오랫동안 라흐마니노프 연주의 본보기 그 자체로 자리 잡았다. 작곡가의 초기 작품들을 포함해 자잘한 소품들을 꼼꼼히 챙긴 온전한 전집 녹음의 많은 부분이 2000년 이후에 만들어진 사실도 오히려 격세지감을 느끼게 한다. 아울러 세계 최고의 콩쿠르들을 정복해갔던 1960년대 초반부터 현재까지 이어지는 일련의 작업들이, 음질의 차이는 있을지언정 그 집중력과 기교의 완성도가 고르게 다듬어져 있다는 사실이 아시케나지가 얼마나 꾸준한 노력을 건반 위에서 기울이고 있는지 알게 해준다.
많은 이들이 인정하듯이, 피아니스트 아시케나지의 연주 스타일을 한마디로 정의 내리긴 쉽지 않다. 해럴드 숀버그는 저서 ‘위대한 피아니스트’에서 아시케나지의 음악에 대해 “투명하고 지적이며 현대화된 연주”라고 평했다. 뛰어난 기교를 소유했으나 결코 과시적이지 않고, 어떤 작품을 연주하든 과도한 감성이나 민족주의적 성격에 사로잡혀 한쪽으로 치우친 표현을 하지 않는다는 뜻이다. 필자는 여기에 더하여 그의 연주를 ‘담담함’이라는 단어로 대변하고 싶다. 영어로 ‘simple’ ‘plain’ ‘silent’ 등으로 번역되는 이 단어는 음악적 메시지를 수다스럽게 전달하지 않아도 작곡가의 근원적 창작 의도와 영감의 실체에 대해 누구보다도 강하고 솔직한 전달력을 갖고 있는 아시케나지의 스타일과 닮아있다.
동시에 그 어떤 작곡가보다도 많은 음표를 악보에 그려놓았고 때로는 듣는 이들을 과도한 감상에 빠트리곤 하는 라흐마니노프와 아시케나지의 화학작용이 이토록 멋지게 맞아떨어진다는 것도 그야말로 절묘한 아이러니다. 공산정권의 억압으로 힘든 날들을 보냈고, 스스로 러시아인도 유태인도 아니라고 말한 적도 있지만, 우수 어린 감성과 비극적 서정성에 직접적으로 닿아있는 슬라브적 기질은 다른 곳도 아닌 그의 손가락 끝에 온전히 녹아있다. 모차르트·베토벤·쇼팽·슈만·프로코피예프·스크랴빈 등의 모든 피아노 레퍼토리를 일찌감치 정복한 ‘디스코그래피의 헤라클레스’ 아시케나지이지만, 결국 그의 본령이 라흐마니노프일 수밖에 없는 이유는 말이나 글보다는 음악으로 많은 이야기를 건네는 그의 피아니즘 자체의 특성이다.
이번 아시케나지의 라프마니노프 피아노 작품 전곡 세트에 실린 협주곡과 ‘파가니니 랩소디’는 1980년대 중반 녹음된 하이팅크와의 녹음이다. 스테디셀러인 프레빈과의 녹음이 있은 후 15년 정도가 지났지만 여유가 늘어난 음폭과 녹음 기술의 진보로 조금 선명해진 음색을 제외하고는 전작에 비해 큰 차이를 느끼기 힘들다. 의도했다기보다는 자연스레 적당히 빛 바랜 분위기가 만들어졌던 런던 심포니보다 하이팅크가 지휘하는 콘세르트헤바우 오케스트라는 외향적인 기분이 더 잘 드러나고 있다. 호쾌한 카덴차가 인상적으로 연출된 협주곡 1번과 묵직한 터치로 느긋하게 요리한 ‘파가니니 랩소디’ 등이 호연이다. 예전 출시 당시에도 따로 소개됐던 ‘파가니니 랩소디’에서 필하모니아 오케스트라가 협연하고 있다.

협주곡에서 편곡까지, 라흐마니노프 피아니즘의 모든 것
1976년 발표된 프렐류드 24곡은 같은 곡의 수많은 녹음 가운데 아직도 그 모범답안의 자리를 양보하지 않고 있다. 대곡과 소품을 가리지 않고 긴 호흡과 농염한 표정을 나타내는 해석이 믿음직스러우며, 작곡가가 발표 당시 느꼈던 러시아 주변 환경에 대한 불안과 고민, 울분과 환희 등을 과장 없이 그려내고 있다. 상대적으로 유명한 Op.23보다 Op.32의 내성적인 작품들이 더 훌륭하다.
음악적인 경험과 다망한 활동으로 보아 그 정점에 올랐다고 여겨지는 1980년대 중반에 녹음된 에튀드 ‘소리의 그림’ Op.33과 Op.39는 완성도로 보아 전집 가운데 하이라이트이다. 시종 여유 있는 흐름 가운데 운지법의 교묘한 활용으로 신체적 조건의 불리함을 전혀 느끼지 못하게 하는 아시케나지의 피아니즘은 정제된 소리와 피아니스틱한 화려함이 공존한다. Op.33의 우울한 정서는 2번 C장조와 7번 G단조 등에서 잘 나타나며, 각각 바다의 움직임과 장송 행렬, 떠들썩한 축제 행렬을 묘사했다고 알려진 Op.39의 2번·7번·9번 등이 호연이다.
피아노 소나타 두 곡은 프렐류드나 에튀드에 비해 인기가 많지 않은 편이나, 일명 ‘파우스트 소나타’라 불리는 장대한 1번과 세 번의 개작 끝에 현재는 많은 피아니스트들의 필수 레퍼토리로 자리 잡은 소나타 2번도 아시케나지의 균형 잡힌 연주로 그 ‘원형’을 살펴볼 기회를 가질 수 있다. 간결한 페달링과 은유적인 표현이 지배적인 소나타 1번 D단조는 비교적 최근인 2011년 녹음인데, 담백한 선율선의 묘사와 절제된 피아니즘이 노년의 정갈함을 엿보게 한다. 전성기인 1982년 녹음인 소나타 2번은 첫 번째 버전을 활용하고 있는데, 근육질적인 표현과 섬세한 에스프레시보가 함께하는 인상 깊은 연주다.
역시 피아니스트들이 즐겨 무대에 올리는 변주곡 두 곡은 각기 다른 시대적 배경을 지니고 있으며, 그 분위기도 상이해 흥미롭다. 흔히 ‘코렐리 변주곡’이라 불리는 ‘라 폴리아를 주제로 한 변주곡’ Op.42는 변화무쌍한 악상과 다이내믹, 비슷한 시기에 만들어진 ‘파가니니 랩소디’를 연상시키는 거대한 스케일이 잘 버무려진 걸작이다. 이 작품에 특별한 애정을 갖고 있다고 알려진 아시케나지는 두 번에 걸쳐(1973·1985) 녹음을 남겼는데, 이번 전집에 모두 들어있다. 어느 쪽이나 풍성한 양감과 탐미적인 접근 방법이 변주곡 고유의 매력을 더해주는 이상적인 해석이다. 이에 비해 지명도가 조금 약한 Op.22의 ‘쇼팽 변주곡’은 지나치게 큰 규모와 변화가 부족한 변주들의 진행으로 인해 무대에 그다지 많이 오르지는 않지만, 지극히 러시아적인 악상 전개와 유장한 흐름 등이 인상적이다. 2010년 녹음인 아시케나지의 해석은 남성적인 박력과 절제된 루바토가 두드러진다. 프레스토 등 빠른 패시지에서 조금 머뭇거리는 모습을 보이기는 하나 녹슬지 않은 비르투오시티가 명불허전이다.
리스트의 영향을 강하게 받은 다양한 피아노 편곡들도 라흐마니노프의 레퍼토리 가운데 핵심을 차지한다. 아시케나지의 연주는 2000년 녹음으로, 상당한 기교적 난제에도 불구하고 60대의 능숙한 손놀림이 놀라움을 자아낸다. 고르게 다듬어진 음상은 음표들이 거칠게 돌아다니는 모습을 허용하지 않으며, 깔끔한 뒷마무리 역시 노련미를 느끼게 한다. 복잡한 텍스트의 밸런스도 흠잡을 데 없지만, 무엇보다 듣는 이들로 하여금 행간에 묻어있는 서정미를 발견하게 하는 솜씨가 뛰어나다.
바흐의 바이올린을 위한 파르티타 3번의 세 악장을 편곡한 작품, 차이콥스키의 가곡 ‘자장가’, 자작의 가곡을 피아노용으로 만든 ‘라일락’ 과 ‘데이지’ 등도 아름답다. 평소 조명되지 않는 희귀 레퍼토리들을 빠짐없이 챙긴 것도 이번 전집의 특징인데, 그중 Op.10의 일곱 개의 소품집은 주목할 만하다. 가장 최근인 2012년 녹음으로, 밝고 가벼운 표현과 작곡가 초기작들에서 드러나는 차이콥스키적 우수와 감상미도 훌륭히 나타낸다.
마지막으로 언급할 녹음은 앙드레 프레빈과 함께 한두 대의 피아노를 위한 작품들이다. 각각 네 개의 악장들로 된 두 곡의 모음곡(Op.5와 Op.17)과 작곡가 자신이 편곡한 Op.45의 ‘교향적 춤곡’이 실려 있다. 두 피아니스트의 개성이 전면에 드러나 앙상블의 완성도로 보자면 그다지 높은 점수를 주기는 힘들지만, 작곡가에 대한 서로 다른 관점이나 이해도가 부딪히는 모습 자체가 흥미로운 것도 사실이다. 라흐마니노프의 음울한 서정성이 예술적 영감이라는 자극제를 촉매로 하여 열정으로 폭발하는 짜릿함이 연주의 클라이맥스를 적절히 장식하고 있다.

글 김주영(피아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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