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월 26일 예술의전당 콘서트홀
기억에 오래 남는, 성공적인 음악회가 되는 이유에는 여러 가지가 있을 수 있다. 대가의 멋진 품격, 신예의 탄탄한 실력, 혹은 참신하고 파격적인 기획력이 그날의 주인공일 수도 있다. 만약 연주가 시작되기 전까지 연주자들이 어떤 성향의 음악을 들려줄지 알 수 없고, 끝난 후에도 그날의 기억에 대해 재밌었다는 후일담을 함께 나눌 수 있는 것이 성공적인 음악회라고 한다면, ‘서울시향과 임헌정’이라는 제목의 지난 연주는 최근 국내 오케스트라 무대 가운데 가장 흥미로웠다고 해도 좋을 자리였다. 분명한 색깔과 완성도 높은 연주력, 서로 다른 상성의 지휘자와 오케스트라가 만나 이루는 음악적 격돌이 기대됐던 것은 필자뿐만이 아닐 것이다.
공통점보다는 상이점이 많은 오케스트라와 지휘자가 만나는 자리이다 보니 각자의 개성이 맞부딪히는 ‘불꽃 튀는 격투’를 기대한 팬들도 있었겠지만, 필자는 조금 다른 관점으로 보려 애썼다. 지휘자 임헌정은 지금까지 꾸준한 자기 단련과 오랜 팀워크에 의한 작품의 수공예적인 해석을 통해 착실하게 자신의 예술성과 팬들의 신뢰를 쌓아올린 음악가이다. 객원지휘도 별로 하지 않고 사반세기에 가까운 세월을 부천필의 성장을 위해 걸어온 그간의 행보로 보아도 이를 짐작할 수 있다. 한편 개개인의 화려한 기량을 밑받침으로 정명훈의 감각을 통해 세련미를 더해온 서울시향의 스타일은 단원들의 젊은 평균연령으로 대변되는 에너지와 센스가 넘친다.
리허설과 프로그램 구성 등 ‘환경’ 자체부터 다른 음악가들의 만남이라 그 결과물에 대한 예측이 지극히 어려운 무대였다. 결론적으로 오케스트라 단원들의 음악적 유연함과 순발력, 그리고 ‘예측 가능한 돌발 상황’에 현명하게 대처하는 지휘자의 모습이 이전에 볼 수 없었던 흥미로운 음악적 그림을 그려냈다. 복잡한 분석 없이도, 30년 만에 서울시향의 포디엄에 선 임헌정의 존재 자체가 국내 교향악계의 흥미로운 이벤트였다고 하겠다.
음악회의 서막은 슈베르트의 1823년 작 ‘로자문데 서곡’이 장식했다. 원곡이 ‘마법의 하프 서곡’인 이 작품은 동화적인 성격의 희곡 ‘로자문데’와 그 분위기가 흡사한데, 경쾌하고 명랑하면서도 귀족적인 서정성을 지닌 이 작품의 본질은 적당히 물기를 머금은 현악기의 풍성함, 목관의 안정된 리듬감에 의해 명확한 윤곽을 지닌 채 표현됐다. 첫 곡부터 단원들의 사기를 향상시키려는 지휘자의 노력이 분명히 느껴졌다.
미국과 오스트리아의 오케스트라 수석 자리를 점령하는 데 만족하지 않고, 이제는 레퍼토리로 자신의 한계를 시험하고자 하는 야심 많은 플루티스트 최나경이 소개한 곡은 자신이 편곡한 멘델스존의 바이올린 협주곡이었다. 노련한 앙상블리스트의 면모는 관현악의 총주와 앞서거니 뒤서거니 입체적인 사운드를 빚어내면서 발휘됐으며, 특유의 음상은 작품이 지닌 달콤함에 개운한 맛을 더했다. 하이라이트는 원곡의 변형을 최소화한 1악장 카덴차의 비르투오소적 표현. 긴 호흡을 통해 짜릿하게 표현해내는 패시지들의 아고기크 모두가 치밀하게 계산되고 연출된 모습으로 정확히 구현되었다.
메인 프로그램이던 베토벤 교향곡 7번의 명쾌하고 박진감 있는 진행은 분명 서울시향의 색깔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았다. 그럼에도 서울시향이라는 매우 버라이어티한 ‘주방’에 초청된 객원 ‘주방장’ 임헌정의 손맛 역시 청중에게 분명히 전달되었다. 둥근 음상과 원만한 템포 감각이 균형 있게 나타난 1악장, 목관과 현의 음색과 음량 분배가 합리적으로 이루어진 2악장, 지나치게 기능적으로 치닫는 열광을 차분히 다스리며 넉넉한 인간미로 마무리한 3악장과 4악장 모두 예상치 못한 즐거움으로 다가왔다. 베토벤의 텍스트에 생생함을 더하고, 그 생명력을 변화무쌍하게 빚어낸 무대 위의 음악인들 모두에게 특별한 감사를 전한다.
글 김주영(피아니스트) 사진 서울시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