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은미컴퍼니 ‘스펙타큘러 팔팔땐스’

의미 찾기의 부질없음

기사 업데이트 시간: 2014년 4월 1일 12:00 오전

2월 26일~3월 1일 두산아트센터 연강홀

“이것은 춤이기 이전에 한국의 근현대사를 향한 고고학적 탐사이다.”
3개의 연작 후 마지막 작품으로 내놓은 ‘스펙타큘러 팔팔땐스’에 대한 안은미의 선언이다. 자신의 신체를 억압할 수 없는 근현대를 살아온 현대인에 대한 자화상이라는 주제의식이 어떻게 표현될까 하는 궁금증은 공연이 다가오자 구체적으로 변하기 시작했다.
“당신, 거기 가면 춤춰야 돼. 춤추고 있는 거 이제 영원히 자료로 남는 거지.”
미리 다녀온 평론가의 전화를 받은 후 대체 어떻게 억압된 신체를 끄집어내겠다는 건지 두려워진 것이다. 마음을 단단히 먹고 30분 일찍 공연장에 도착해 프로그램 북을 펼치니 웬 글이 이렇게나 많은지! 하나의 작품을 두고 동아시아 연구·기계평론·근현대 공연예술 등 여러 분야에서 접근한 어려운 말들이 쏟아져 나왔다. 객석으로 들어가니 얼굴이 알려진 예술가와 각종 예술 장르의 평론가들이 곳곳에 자리 잡고 있어 예술계의 뜨거운 관심을 느낄 수 있었다.
얼마나 스펙터클해서 그 기운이 객석에까지 침범하게 되려나 궁금해 하며 자리에 앉으니 아이 한 명은 끝없이 줄넘기를 넘고, 또 한 명은 서울 지하철 노선도를 외워 읊고 있었다. 드디어 공연 시작. 안은미가 훌라후프를 하나 들고 나와 목으로 훌라후프를 돌렸고, 객석에서는 그에 호응하듯 간간이 웃음이 터져 나왔다. 이어 안은미가 홀연히 사라진 자리에 8명의 무용수들이 각자 훌라후프를 들고 나와 춤을 췄다. 때로는 서커스단 같고, 때로는 88올림픽의 굴렁쇠를 연상시켰으나 어떤 특별한 메타포를 담은 것 같지는 않았다. 훌라후프의 원형을 모티브로 한 모델하우스 벽면 같은 배경에 그녀의 오랜 동지 장영규의 일렉트로닉 사운드가 반복됐다.
8명 무용수들의 반복적인 움직임 속에 ‘내가 무대로 불려갈 일은 없겠구나’ 하는 마음이 들며 서서히 긴장이 풀리기 시작했다. 이어 서울의 곳곳을 배경으로 한 명의 인물이 서 있는 영상을 담은 화면이 반복됐다. 360도로 카메라를 돌리는 어지러운 움직임에 눈을 감고 있다 보니 잠이 들고 말았다. 실컷 자고 눈을 떠보니 객석의 절반은 수면 상태. 마지막으로 화면에 등장했던 사람들이 스티로폼이 가득 담긴 비닐봉지를 들고 나타나 흰 옷을 입은 채 막춤을 췄고, 그렇게 공연이 끝났다.
프로그램 북을 가득 채웠던 ‘근현대 움직임’에 대한 의미도 제시되지 않았고, 그렇다고 관객의 움직임을 끌어낸 것도 아니었다. 일반인 무용수들의 집단 댄스는 전작과 다를 것이 없었다. 굳이 훌라후프를 넘나드는 움직임에서, 흰 옷을 입은 집단의 ‘막춤’에서, 또는 서울의 도시 모습을 담은 영상에서 ‘근현대’의 의미를 찾지 않으련다. ‘의미 없음’이 우리 근현대의 단편임을 비꼬듯이 보여주고 있거나, 아니면 그저 쓸데없이 의미를 부여해대는 자들에게 시원한 조소를 날리고 있는 것 같다는 생각을 떨칠 수 없기 때문이다.

김여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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