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대 위 발레리나들은 차라리 ‘완전체’에 가깝다. 걸음걸이부터 남다른 그들의 뒤를 쫓았다
유니버설발레단이 올해 첫 공연으로 지난 2월 21일부터 23일까지 예술의전당 오페라극장에서 ‘스페셜 갈라’를 올렸다. 창단 30주년을 기념하는 이번 공연은 클래식 발레부터 창작발레·현대무용을 망라하는 다양한 작품으로 구성됐다. 유니버설발레단의 전 단원은 물론 아메리칸 발레 시어터 수석무용수 서희, 슈투트가르트 발레 수석무용수 강효정·알렉산더 존스, 마린스키 발레 수석무용수 이고리 콜브와 같은 해외 무용스타들이 무대에 함께 해 그야말로 잔치가 벌어졌다.
이번 공연의 첫 무대는 발레 블랑이 돋보이는 ‘라 바야데르’ 3막이었다. 특히 32명의 무용수들이 새하얀 튀튀를 입고 천의무봉한 군무를 보여주는 장면은 발레단의 실력을 숨김없이 보여주는 순간이었다. 이어 ‘잠자는 숲 속의 미녀’ 중 로즈 아다지오, ‘돈키호테’의 결혼식 파드되, ‘오네긴’의 3막에 등장하는 회한의 파드되, ‘해적’ 중 3인무와 같은 핵심적인 작품들로 1부가 채워졌다.
‘춘향’으로 시작한 2부는 유니버설발레단이 그동안 ‘디스 이즈 모던’이라는 이름으로 선보였던 ‘인 더 미들’ ‘블랙 케이크’ ‘마이너스 7’과 같은 컨템퍼러리 작품들과 창작발레를 엮어 구성했다. 여기에 초청 무용수 서희가 선보인 ‘녹턴’, 이고리 콜브의 ‘솔로’, 강효정·알렉산더 존스의 ‘팡파르 LX’까지 다양한 작품을 올린 덕택에 무대 위는 더욱 분주하게 돌아갔다. 어느 공연보다도 쉴 새 없이 진행됐던 이번 무대의 백스테이지는 어떤 모습이었을까.
그 어느 곳보다도 천장이 높은 예술의전당 오페라극장이지만 시선은 자연스레 무용수들의 발끝으로 향했다. 그들의 발은 부단하게 무대 바닥을 쓸고, 팔은 계속해서 같은 동작을 반복·유지하고 있었으며 몸의 중심점을 찾기 위해 구슬땀을 흘리고 있었다. 마냥 아름다울 것만 같았던 무용수들의 모습은 오히려 치열하게 자신과의 싸움을 벌이는 운동선수 쪽에 가까웠다.
리허설 첫 일정은 전 단원이 함께하는 무대 클래스로 시작됐다. 양쪽의 막까지 모두 올린 무대는 굉장히 넓었지만, 워낙 무용수들이 많아서인지 무대에서 밀려나 아슬아슬하게나마 자리 잡은 이들도 보였다. 조명 기둥이든 벽이든 무엇이든 잡을 수 있는 것들은 그들의 바가 됐다. 어느 정도 자리가 정돈되자, 단원들에게 자리를 내주고 무대 세트 위로 올라간 지도위원이 클래스를 시작했다. 그가 순서를 내주면 무대 한 편에 자리한 피아니스트는 아다지오부터 알레그로, 2박과 3박까지 어떤 음악이든 단숨에 연주해냈다. 그리고 음악이 흘러나오면 모든 무용수들이 약속이라도 한 듯 동시에 움직였고, 한 세트가 끝날 때마다 지도위원은 무용수들에게 감사를 표했다. 손끝 하나 발끝 하나에도 정성을 쏟는 무용수들의 진지한 모습에 무대가 금세 후끈해졌다.
바 워크가 끝나자 무용수들이 넓은 무대로 나와 점프·턴과 같은 큰 동작을 연습했다. 앞선 연습과 달리 굉장히 자유로운 분위기 속에 몇몇 무용수들은 자신의 컨디션에 따라 휴식을 취하기도 하고, 몸이 풀린 남자들은 힘 있게 점프를 뛰며 기량을 점검했다. 쉬지 않고 뛰고 도는 무용수들을 보고 있자니 절로 현기증이 났다. 장난기 많은 남자 무용수들은 무대 뒤쪽에서 여자들의 동작을 따라하다 이내 힘든지, 허리를 쥐어 잡고 “대단하다”라며 엄지를 치켜들었다. 화기애애한 분위기의 클래스는 1시간이 조금 넘어서 마무리됐다.
“코르드 모이세요!” 몸 풀기를 마친 무용수들이 모여 어제의 공연에 대한 문훈숙 단장의 평을 듣고 각 작품별로 연습 시간을 가진다.
“음악에 귀를 열고 집중해야 돼. 멜로디가 들리기 시작하면 동시에 움직이는 거야.”
무용수들을 지시하는 문훈숙 단장의 눈길은 날카로웠고, 군무진들은 그녀의 말에 따라 동작마다 팔과 다리의 각도를 한 사람처럼 맞추기 위해 부단히 애썼다.
무대 위에서의 연습을 마친 무용수들이 각자의 분장실로 뿔뿔이 흩어졌다. 그런데 특이하게도 처음 만난 공간은 평범한 분장실의 모습이 아니었다. 입구에는 시간대별로 이름을 빼곡히 적어둔 종이가 놓여 있었다. 침대가 마련된 마사지 룸에는 리허설과 공연 내내 물리치료사들이 대기하고 있어 무용수들이 언제든지 적절한 치료와 마사지를 받을 수 있다. 발레단에 상주하고 있는 건강관리사 김태원 씨는 “무대 위에서 안전장치 하나 없이 몸을 쓰는 무용수들은 스포츠 선수들만큼 부상률이 높아 마사지 룸을 자주 찾는다”라고 했다.
줄줄이 이어지는 스무 개 가량의 분장실에선 모두들 공연에 앞서 메이크업과 헤어를 만지느라 바빴다. “잠깐, 그거 내 것 아니야?” 의상이 공간의 반을 차지하고 있는 군무진의 분장실에서는 모두가 백색의 똑같은 튀튀를 입는 ‘라 바야데르’의 의상을 서로 바꿔 들고 가는 해프닝이 종종 생기기도 한다.
같은 시각, 무대에서는 거대한 ‘라 바야데르’의 세트 뒤로 각종 막이 오르락내리락하며 무대 세팅이 한창이다. 댄스플로어의 마킹 테이프를 새로 붙이고, 무용수들이 남긴 바닥의 자국을 닦아내는 한편, 공연에 사용되는 소품들이 각자의 자리에서 무대에 나갈 때를 기다리고 있었다.
“공연 15분 전!”
스탠바이를 알리는 소리가 들렸다. 첫 무대를 장식할 무용수들이 의상까지 완벽하게 갖추고 거울 속 비친 자신의 모습을 쓱 한번 살펴보더니 바쁘게 포인트 슈즈를 들고 계단을 뛰어 내려갔다. 클래스부터 뜨거운 땀방울을 흘린 무용수들이 이제 관객들에게 그 치열한 아름다움을 보여주기 위해 무대로 향하고 있었다.
글 김태희 인턴 기자(thkim0623@gaeksuk.com) 사진 이규열(라이트하우스 픽처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