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월 12일 성남아트센터 콘서트홀
일 자르디노 아르모니코의 창단 멤버이자 음악감독인 조반니 안토니니는 “바로크 음악의 악보는 연주에 필요한 60퍼센트의 정보만을 전달한다”라고 말했다. 나머지 40퍼센트는 연주자의 상상력으로 채워진다는 의미다. 아르모니코가 처음으로 국내 무대에 선 날, 우리는 그들이 훌륭하게 완성해낸 ‘40퍼센트’의 소리를 직접 눈으로 확인할 수 있었다.
첫 곡인 헨델의 합주 협주곡 B♭장조 Op.6-7은 여타 당대 연주 단체와 다를 바 없는 차분한 소리로 시작되었다. 마지막 혼파이프 악장에 이르자 일 자르디노 아르모니코의 이탈리아풍 열정이 덧입혀지기 시작하며 역동성을 뿜어내기 시작했다. 뒤이어 환호 속에서 조반니 안토니니가 리코더를 들고 등장했다. 텔레만의 리코더 협주곡에서 그는 극적으로 몸을 움직이며 풍성한 소리를 전달했다. 생기발랄한 속도감으로 리코더 명인의 면모를 뽐냈지만 4악장의 긴 프레이즈에서는 다소 가쁜 호흡이 느껴져 아쉬웠다.
1부 끝 곡인 비발디 ‘라 폴리아’에 이르자 류트와 비올라, 하프시코드가 적극적으로 주제 선율을 연주하며 존재감을 드러냈다. 격정적인 부분에서는 활과 현이 부딪치는 날것 그대로의 거친 소리가 짜릿함을 선사했다. 서로 앞서거니 뒤서거니 하는 각 악기의 타이밍도 어긋남 없었다. 예기치 않게 튀어나오는 템포와 다이내믹 변화를 훌륭히 소화하며 그들은 최고의 호흡과 몰입도를 자랑했다.
2부가 시작되자 창단 멤버인 안토니니와 함께 비교적 최근에 영입된 틴다로 카푸아노가 샬뤼모를 들고 걸어 나왔다. 텔레만의 두 대의 샬뤼모를 위한 협주곡에서 안토니니는 위 파트를 연주하는 카푸아노를 충실히 보조해냈다. 3악장 코다 직전에 두 샬뤼모가 ‘아리랑’을 연주하기 시작하자 약간 느슨해진 듯했던 공연장 여기저기서 기분 좋은 웃음소리가 들렸다. 객석에서는 4악장 시작을 기다리지 못한 채 박수가 터져 나왔다. 마지막 곡인 비발디 플라우티노 협주곡에서 안토니니가 선보인 자유로운 꾸밈음은 결코 과함이 없었다. 그는 유려한 옥타브 도약과 함께 템포를 자유자재로 늘어뜨리거나 몰아붙이며 진면목을 드러냈다.
바소 콘티누오에 류트 하나를 더한 소규모 편성임에도 무대를 가득 채우는 확신에 찬 소리는 과연 일 자르디노 아르모니코의 명성에 걸맞았다. 이번 공연에서 그들은 30여 년의 역사로 일군 노련함과 함께 세대 교체를 거치며 성장 중인 현재의 모습까지 모두 보여주었다. 다른 팀으로 떠난 창단 멤버 엔리코 오노프리와 루카 피앙카의 빈자리에 대한 아쉬움도 있었지만, 여전히 열정이 가득한 소리에서 단체의 건재함과 앞으로의 잠재력 또한 확인할 수 있었다. 아르모니코의 현재 있는 그대로의 모습을 투명하게 볼 수 있었던 공연이었다.
이채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