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대 디자이너 여신동

결핍의 또다른 이름, 창조

기사 업데이트 시간: 2014년 5월 1일 12:00 오전

사람과 사람 사이에서 탄생하는 공연예술. 그곳에서 여신동은 재미를 좇아 지금의 자리까지 왔다.
여신동이 추구하는 작업의 재미는 ‘결핍’에서 비롯된다. 낮선 형식, 새로운 작품에서 그의 이름을
자주 발견하게 되는 이유도 그래서다

여신동과의 첫 만남을 회상해본다. 때는 2012년 겨울, 고선웅 연출의 ‘리어외전’ 연습실. 연습실 한 귀퉁이에 늘씬할 것 같은 몸매에 긴 생머리를 부스스하게 묶은 언니(?)가 앉아있었다. 대부분의 연극 연습실들은 신발을 벗고 들어가는 구조인지라 취재하러 갈 때면 본의 아니게 배우, 스태프들의 양말을 살펴보는데 이날도 마찬가지였다. 각자의 양말에서 그 사람의 스타일과 정체성을 확인할 수 있다고나 할까. 연습실에서 마주치는 대부분의 양말은 대부분 흰색 아니면 검정색, 간간이 회색이나 맨발인 경우도 있다. 그런데 ‘리어외전’ 연습실에서 본 그 언니(!)의 양말 색은 빛바랜 빨강이었다. 정확히는 푹 익은 딸기 색에 가까웠다. 그 딸기 색을 한참이고 감상하던 중 양말의 주인과 얼떨결에 인사를 나누게 됐다. 그런데 알고 보니 그 언니, 아니 그가 여신동이었다. 새침한 말투에 왠지 낯가림이 심할 것 같은 제스처… 그때는 미를 추구하는 남성에 대한 나름의 환상이 있던 터라, 그 모습 하나하나가 참 신비(?)하게 보였다. 지금 생각해보면 뭐가 씌어도 제대로 씌었던 모양이다.
그로부터 시간이 흐른 2014년 봄, 그의 작업실에서 이뤄진 인터뷰에서… 홀딱 깼다. 그리고 홀딱 반했다. 이렇게 수더분한 남자인 줄 몰라서 깼고 매순간 힘껏, 진심으로 살고 싶어 하는 그의 모습에 반했다.
그와의 만남을 준비하는 동안 들었던 생각이 있다. ‘우리는 한 명의 예술가를 어떤 방식으로 인지하고 있는가? 작품에 대한 평가인가, 아니면 존재 그 자체인가.’ 이런 생각을 안고 만난 자리에서 우연찮게 들은 그의 말은 정곡을 찔렀다.
“우리나라에서 예술가를 바라보는 대다수의 시선은 결과물에만 집중되어 있어요. 그 사람이 어떻게 살아왔으며, 왜 이런 작업을 할 수밖에 없는지에 대해선 별 관심이 없는 것 같아요.”
그의 말이 옳았다. 그래서 듣기로 했다. 그가 어떻게 살고 있으며, 왜 그런 선택을 했는지 말이다.

“모험을 감수해야 할 때 짜릿함을 느낀다”

‘빨래’ ‘구보 씨의 1일’ ‘인어도시’ ‘잠 못 드는 밤은 없다’ ‘모비딕’ ‘헤다 가블러’ ‘꽃이다’ ‘목란언니’ ‘나는 나의 아내다’ ‘메디아’… 최근 몇 년 사이 공연예술계에서 화제를 모았던 작품의 스태프 명단에서 빈번히 등장하는 이름에는 ‘여신동’이라는 이름 석 자가 꼭 있었다. 언뜻 기억나는 작품들만 나열해봤으나, 그가 지난 몇 년간 작업했던 전체 작업에 비하면 절반도 안 되는 숫자다. 장담하건대 디자이너 자신도 그동안 했던 작품의 제목들을 다 기억하지는 못할 것 같다.
한 해에도 수십 편의 무대를 그려내는 무대 디자이너 여신동. 그와 만나기 전에는 작업을 위해 철저한 계획을 세우고 시간을 엄격하게 지키면서 자신을 꽤나 통제하며 살 것 같다고 막연히 생각했다. 그에게 실제 생활 패턴을 묻자, “글쎄요…”라는 답이 돌아온다. 이야기를 듣고 있으니 그에게 ‘계획’ ‘엄격함’ ‘통제’는 그리 친밀하지 않은 단어들이다.
“저 자신을 늘 풀어주는 편이에요. 스스로 보기에도 좀 무책임할 정도로요(웃음). 내일 당장 해야 할 일이 있는데, 정말 놀고 싶으면… 그냥 놀아요. 그래도 다음 날이 되면 어떤 식으로든 결과물은 나와 있죠. 설령 좋지 않은 평가를 받더라도 크게 개의치 않아요. 그게 지금 제 상태니까요. 이런 성향으로 무대 디자인 작업을 한다는 것이 처음에는 힘들었어요. 다 같이 하는 작업엔 예정된 계획들이 있고 또 거기에 맞춰야 하니까요. 요즘도 바쁜 시기지만 놀 땐 놀면서 작업하고 있어요. 작업의 결과물도 중요하지만 과정 속에서, 또 살면서 느껴야 하는 것들을 누리는 게 더 중요하다고 생각하거든요.”
여신동은 사람이 살아가면서 만나고 부딪히고 발견하고 향유하는 그 사이에서 예술이 발현된다고 믿는다. 인생 그 자체가 곧 예술의 한 형태이기에 얼마를 벌고 어느 위치에 올라와 있느냐보다 현재 자신이 무엇을 하고 있고, 거기에서 무엇을 느끼는지 그 자체에 집중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다소 본능적이고 즉흥적이며, 어쩌면 헐렁(?)해보이는 그이지만, 무대 디자이너로서의 철학은 분명하다. 무대 위에서 작가의 텍스트를 잘 살리면서도 연출가가 연출할 수 있고 배우가 연기할 수 있는 무대를 만드는 것. 무대 미술이 극장의 공기처럼 자연스럽게 존재하도록 이끌어내는 것이 그의 지향점인 동시에 매순간 마주하는 숙제다.
“자신의 ‘색을 갖고 있는 것’과 ‘색을 고집하는 것’은 달라요. 학창 시절엔 무대 디자이너로서 저만의 색을 보여주겠다고 생각했지만, 실제로 현장에 들어오니 그렇지 않더라고요. 디자인이 무대를 누르면 오히려 문제가 생기고, 성숙하지 못한 무대가 만들어지죠. 게다가 ‘스타일’만 내세우면 이 직업이 화려하게만 보이는데, 무대 디자인은 작가·연출가·배우를 돋보이게 만들어주려는 자세가 반드시 필요한 분야예요.”
사람과 사람 사이에서 탄생하는 공연예술. 그곳에서 여신동은 ‘재밌는 작업’을 좇아 지금의 자리까지 왔다. 작품을 택할 때면 작품 자체가 지닌 재미, 독특한 시도를 중요하게 생각하는 편이다.
그가 추구하는 작업의 재미는 ‘결핍’에서 비롯된다. 불안하고 모험을 감수해야 하는 순간엔 짜릿함을 느낄 때가 많다. 유명 연출가와 하는 작업도 좋지만, 낮선 형식, 혹은 새로운 예술가와 함께하는 작업에 더 끌리는 이유도 그래서다. 연극·뮤지컬 외에도 창극이나 버라이어티쇼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장르의 무대 디자인을 하게 된 것도 따지고 보면 자연스러운 흐름이었다.
다른 면에서 ‘결핍’은 여신동을 지금의 자리로 이끈 운명적인 힘이기도 했다. 현 공연예술계가 겪고 있는 젊은 무대 디자이너의 결핍 말이다.
“2010년 ‘구보 씨의 1일’부터 3년간 연달아 상을 받았어요. 감사한 마음도 있었지만, 스스로 ‘과연 상 받을 만한 작업을 했는가’ 하는 의구심도 들었죠. 소소하게 시도한 것들이 그 이상의 평가를 받으면서 제 이름에 필요 이상의 거품이 많이 생겼다고 생각해요.”
세상의 주목을 받고 또 이름이 알려지게 되면서 그에겐 재능 있고 명성 있는 사람들과 작업할 기회도 늘어났다. 연극이든 뮤지컬이든 화제가 된 작품의 스태프를 묻는 질문엔 ‘여신동’이라는 답이 빈번하게 따라왔다. 그의 이름은 안전한, 호평이 보장되는 쪽으로 점점 옮겨졌다. 갈수록 그와 작업하고 싶은, 그에게 일을 맡기고 싶은 사람들이 점점 늘어났다. 개중엔 그의 ‘이름값’만을 보고 찾는 사람들도 있었다. 그리고 이 과정은 지금도 진행 중이다.
이제 일 년에 두세 편 작업하던 그의 일상은 파도에 휩쓸리듯 떠내려가 한 해 약 스무 편의 작품을 맡는 지경(?)에 이르렀다. 그렇게 파도친 자리엔 어느 순간부터 거품이 생기기 시작했다. 그 거품이 늘어나면서 답답함도 커져갔다. 그리고 내면의 ‘또 다른 결핍’이 떠올랐다. 무대 디자이너라는 제한된 영역을 넘어 자신의 색채와 방향성을 좀더 분명하게 드러내고 싶은 열망이었다. 2013년 첫 연출 데뷔작인 ‘사보이 사우나’을 통해 그는 그 갈망을 표출했고 조금이나마 해소했다. ‘사보이 사우나’는 그가 추구하는 예술의 본질을 재발견하고, 삶의 방향성을 재정립하는 시작점이었다.


▲ “잘 생긴 예수님한테 꽃을 얹었더니 꽃미남이 됐어요. 묘하게 섹시해보이지 않나요?”


▲ 여신동의 모든 무대 디자인 작업은 손 스케치에서 시작한다

“예술가는 벌거벗은 상태에서 사람들과 만나야 한다”

2013년 여신동은 두산아트센터에서 선보인 ‘사보이 사우나’에서 일종의 실험을 감행했다. 무대 디자이너가 아닌 연출가로서 사람들과 소통하고, 마음의 소리를 솔직히 꺼내놓는 실험이었다. 동시에 이것은 스스로의 가능성과 한계치를 발견하기 위한 자리였다.
‘사보이 사우나’는 그가 어린 시절 목욕탕에서 느낀 이미지들의 콜라주 작업을 공연의 형식을 빌려 선보인 작품이었다. 그는 “지극히 개인적인 경험과 아름다움에 관한 이야기이자 스스로와 대면이었고, 스스로 허물을 벗는 작업”이라고 말했다. 그만큼 타인으로선 좀처럼 이해할 수 없는 부분들도 많았다.
“대중적이지도 않고, 내러티브도 없었죠. 제 안에 존재하는 이미지들로 만든 연출작에서 제 색이 분명하지 않으면 그 후론 정체성을 영영 찾지 못할 것 같았어요. 그럼 저에 대한 오해는 점점 커져갈 테고요. 무대 디자이너라는 자리로 임할 땐 많은 것들을 숨겨야 했지만, 이 작품에선 더 이상 그럴 필요가 없었죠. 제 작품의 첫 번째 관객인 저를 만족시킬 수 있어야 다른 사람들에게도 보여줄 수 있겠다고 생각했어요.”
일종의 ‘커밍아웃’이었다. 무대 디자이너로서 겪을 수밖에 없는 한계를, 작가로서 표현하겠다는 선언이나 다름없었다. 동시에 자기 자신을 공개적으로 ‘까발리는’ 절호의 기회였다. 적절하게, 괜찮게 포장된 것을 걷어내고, 있는 그대로를 보여준다는 것이 쉬운 선택은 아니었다. 하지만 20년, 30년 후를 생각하면 지금 꼭 해야 할 일이기도 했다.
“예술가는 벌거벗은 상태에서 사람들과 만나야 한다고 생각해요. 자신을 덧씌우고 연출하는 데에는 한계가 있죠. 용기를 더 내서 계속 허물을 벗고 싶어요. 그래서 시간이 더 흘렀을 때 무대 위에 제 히스토리가 자연스럽게 흘러나왔으면 좋겠어요.”
자신과 타인 앞에서 가장 진솔한 모습으로, 스스로의 현재를 끊임없이 발견하고자 노력하는 그는 요즘 두 번째 연출 무대를 준비하고 있다. 6월 13일부터 21일까지 백성희장민호극장에서 갖는 국립극단 청소년극 ‘비행소년 KW4839’이다. 지난해 스무 명 가량의 청소년들과 함께 했던 워크숍이 올해 본 공연으로 이어지게 됐다.
“제가 관심 있는 건 저 자신이에요. 제가 어떤 사람인지, 어떻게 살지, 무엇으로 표현할지 관심이 많죠. 지난해에 청소년들을 만났을 때 이런 사유의 과정을 공유하는 게 필요하다고 생각했어요. 아이들은 자신을 표현하는 방법조차 제대로 모른 채 무조건 대학이라는 꼭짓점을 향해 가는데, 그 이후의 목표마저 없는 모습이 참 슬펐어요. 현재도 제대로 못 누리고, 그 이후도 마찬가지일 테니까요.”
이번 작품에서 여신동은 ‘현재’ 그리고 ‘진솔함’을 초점에 두고 다양한 이야기들을 청소년들과 공유할 생각이다. 그 과정에서 누군가는 스스로와 대면하는 법을 배우고, 또 자신을 표현하는 방식을 터득하게 될 것이다. 그리고 아이들은 여신동이 그랬던 것처럼, 자신의 가장 솔직한 이야기를 사람들에게 들려줄 수 있는 용기를 얻게 되지 않을까.

인터뷰 말미, 여신동과 시대 불변의 가치 몇 가지를 두고 추상적인 이야기를 나눴다. 예술가를 작품으로, 결과물로 판단하기에 앞서 그가 어떻게 살아왔는지, 왜 그런 표현과 작업을 할 수밖에 없는지 이해하기 위해 필요한 과정이라 생각해 준비했다. 각 단어를 두고 자유롭게 떠오르는 이미지와 생각에 관해 듣는 동안, 지금까지 그가 걸어온 시간과 앞으로 걸어갈 방향을 조금이나마 가늠해볼 수 있었다.

사랑 늘 열망하는 것. 늘 열망하지만 가질 수 없는 것. 사랑하고 있는 그 상태는 짧고, 식어버리면 이내 끝나더라고요. 그리고 또 다른 사랑을 원하게 돼요. 그래서 사람들이 결혼하는 걸까요? 하지만 결혼하는 순간 사랑의 방향성이 바뀌는 것 같아요. 전 사랑은 열망으로 가는 거라고 생각하거든요.
사람 정말 좋아하는, 하지만 늘 그리운 대상. 주변에 사람들이 있어도 스스로를 너무 사랑하기 때문에 타인을 가질 수 없다고 생각할 때가 많아요. 그래서 다른 사람들을 더 관찰하고 더 그리워하게 돼요.
아름다움 추함으로부터 시작되는 것. 추한 것을 볼 줄 알고, 볼 수 있어야 아름다움을 볼 수 있어요. 절대적이면서 상대적이죠. 절대적인 아름다움은 시각적인 것보단 누군가를 만지고 누군가가 나를 쓰다듬어줬던 기억, 체온과 체온이 직접 맞닿았던 경험에서 느꼈을 때가 많아요.
자유 자연스러움과 연결되어 있다고 생각해요. 자연스러워야 자유롭게 돼요. 자유는 의식할 수 없는 것이기에 어느 순간 의식하면 가짜가 되죠. 자신의 삶에서 스스로를 제대로 알고, 그 흐름을 잘 따라갈 때 자유가 생긴다고 생각해요.

글 김선영 기자(sykim@gaeksuk.com) 사진 이규열(라이트하우스 픽처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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