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 교향악축제

새로운 ‘음악의 봄’을 기다리며

기사 업데이트 시간: 2014년 5월 1일 12:00 오전

4월 1~18일 예술의전당


▲ 임헌정/부천필(협연 백주영)


▲ 요엘 레비/KBS교향악단


▲ 리신차오/부산시향

흑인 영가 ‘어메이징 그레이스’의 선율이 활 끝에서 피어올랐다. 처음에는 단선율로 두 번째는 더블스토핑으로, 바이올린의 애처로운 고음이 노래보다 더 가슴을 파고들었다. 그게 끝이 아니었다. 미동도 없이 곧바로 ‘내 주를 가까이 함은’이 흘러 나왔다. 영화 ‘타이타닉’ 속 가라앉는 배의 갑판 위에서 여덟 명의 악사들이 레퀴엠처럼 마지막으로 연주했던 바로 그 곡이다. 객석은 얼어붙었다. 연주자는 조용히 악장의 손을 잡고 퇴장했다. 공연장은 숨소리조차 들리지 않았다.
4월 18일 2014 교향악축제 폐막공연이 있었던 예술의전당 콘서트홀. 브람스의 기나긴 바이올린 협주곡을 완주한 바이올리니스트 백주영은 에른스트가 편곡한 아일랜드 민요 ‘여름의 마지막 장미에 의한 변주곡’을 서해 진도 앞바다의 차디찬 물속에서 사라져간 어린 영혼들에게 바친다고 말했다. 왼손 피치카토가 동반되는 초절기교의 소품은 눈요기와 귀를 흥겹게 하는 게 아니라 먼저 가슴 저 밑바닥을 쳤다. 백주영은 즉석에서 음악으로 참담한 심정을 노래한 것이다. 음악은 그렇다. 번지르르하게 말을 하지 않아도 듣는 이의 마음으로 가장 정확하고 신속하게 전달한다. 오히려 본 레퍼토리보다 청중은 더한 감동을 받았을 터다.
올해로 26회째를 맞은 교향악축제. 1989년에 닻을 올린 봄의 향연이 이토록 오래도록 이어질지는 아무도 몰랐을 것이다. 축제는 양적인 면뿐만 아니라 질적인 면에서도 괄목할 만한 성장을 했다. 특히 소속 지방 연주가 고작이던 지방 교향악단들의 서울 나들이로 악단 간의 상향평준화가 이뤄진 점은 가장 칭찬할 만한 대목이다. 고전과 낭만을 벗어나지 못하던 국내 악단들이 이제는 말러·브루크너의 교향곡을 아무렇지도 않게 무대에 올리는 것도 교향악축제의 역할이 가장 컸다. 여기에 한 대기업의 대가를 바라지 않는 우직한 후원이 10년 넘게 이어지면서 기획공연의 바람직한 모범 사례 일순위로 이 축제가 꼽히기도 했다.
하지만 기획력은 몇 해 전부터 답보 상태에 머물렀다. 올해는 어쩔 수 없이 갖다 붙이던 부제도 보이지 않았다. 그저 18개 오케스트라가 매일 한 번씩 무대에 오르는 형식에, 협연자도 젊은 신진 그룹과 중견연주자 그룹의 나눠 먹기 식으로 배치되었다. 그나마 퀸 엘리자베스 콩쿠르 우승자인 러시아의 피아니스트 보리스 길트부르크가 협연자로 나선 것은 외국인에게 문호를 개방하지 않았던 전례에 비추어 신선한 선택이었다.
국내외를 막론하고 실력이 검증된 연주자를 과감히 섭외하는 변신을 시도해야 한다. 해외의 음악 페스티벌에서 자국민만으로 축제를 치르는 경우를 단 한 번도 본 적이 없다. 일부 협연자의 연주는 질에 상관없이 제자들과 지인들의 휘파람 소리가 난무했으며, 협주곡이 끝나면 지인들이 썰물처럼 빠져나가 정작 2부의 메인 교향곡 연주 시간에는 자리를 지키지 않는 촌극이 여전히 벌어지기도 했다.
한때 한국 작곡가의 창작곡을 레퍼토리에 되도록 많이 넣겠다던 장담은 공허한 메아리에 불과했다. 수원시향과 부천필만이 각각 이영조의 ‘여명’과 백병동의 소프라노와 관현악을 위한 ‘계절 그리기’를 연주함으로써 간신히 체면을 살렸다. 서곡·협주곡·교향곡으로 이어지는 공연 순서도 여전했다. 때로는 교향곡만으로도 충분히 프로그램을 꾸밀 수도 있으며, 협연자가 출중하다면 오케스트라 연주 시간을 줄이고 협주곡을 두 곡 배치해도 청중은 아무런 불평이 없을 것이다. 오히려 더 열광할 것이다.


▲ 스콧 유/서울시향(협연 채재일)


▲ 여자경/프라임필

이제는 변해야 한다. 한 작곡가의 작품만을 집중 조명해도 되고, 합당한 주제를 정해 거기에 부합하는 일관성 있는 레퍼토리로 꿸 수 있어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당장 올해 축제가 끝나는 시점부터 내년을 준비하고 나아가 각 교향악단 사무국과 협의해 2년, 3년 뒤의 프로그램도 미리 짜서 세계 클래식 음악계의 흐름과 함께 나아가야 한다. 축제가 올해처럼 계속 이어진다면 교향악축제는 이슈도 되지 못할 뿐더러 더 이상 전진할 수 없을 것이다. 주최 측의 분발을 기대한다.
4월 1일 요엘 레비가 지휘한 KBS교향악단의 개막연주회. 음악감독 정명훈이 지휘를 하지 않는 서울시향과는 달리, 상임지휘자가 직접 지휘봉을 잡고 뭔가를 보여주고자 했지만 결과는 평균 이상을 넘지 못했다. 악단의 기술적인 문제는 별로 드러나지 않았다. 오히려 뛰어났다. 하지만 베토벤 바이올린 협주곡에서 기대한 협연자와의 불꽃 튀는 대결이나 교향곡 ‘영웅’에서의 출렁이는 듯 웅혼한 기상은 다소 부족해 아쉬웠다. 로비에서 만난 애호가들은 한 목소리로 ‘재미없다’는 결론을 내렸다. 오랜 진통을 겪고 새 출발한 KBS교향악단의 진정한 변신은 과거의 명성을 완전히 잊고 뼈를 깎는 노력이 수반되어야 할 듯하다. 아무리 기교가 뛰어나더라도 영혼 없는 음악만큼 무서운 것이 없다.
이에 반해 재계약을 성사시키며 리신차오와 밀월 중인 부산시향은 눈부시게 약진했다. 부산에서 부산시향의 공연이 매진된다는 소문은 사실로 확인되었다. 버르토크의 ‘관현악을 위한 협주곡’에서 리신차오의 확신에 찬 지휘봉과 지휘자를 신뢰하는 단원들의 혼신을 다한 연주는 서울 청중을 매료시켰다. 특히 금관군을 완전히 왼쪽으로 치우치게 하고 호른을 오른쪽으로 배치한 독특한 편성은 매력적이었다. 짜릿한 나팔소리가 드넓은 객석을 휩쓸고 가는가 하면, 호른은 때로 근본인 목관의 음색을 들려주기도 했다. 단원 개개인이 서울시향이나 KBS교향악단처럼 좋을 수는 없다. 하지만 테크닉의 부족을 음악으로 메우는 지휘자의 역량이 탁월했고 단원들은 부단히 노력하고 있었다.
지휘자 발표를 차일피일 미루다 스콧 유를 전면에 내세운 서울시향은 쇼스타코비치의 교향곡 10번을 통해 합격점을 받았다. 객원지휘의 한계로 리허설을 몇 차례 못했을 법한데도 지휘자의 명쾌한 해석은 온전히 음악에 실렸다. 서울시향 수석 출신 클라리네티스트 채재일의 신기에 가까운 연주는 객석을 쥐락펴락했다. 플루티스트 최나경에게서나 볼 수 있는 텅잉 주법을 채재일은 아무렇지도 않게 구사했다. 다만 다른 악단이 최정예 멤버로 교향악축제에 임한 것과는 달리 서울시향은 상임지휘자는 고사하고 악장을 비롯한 각 파트 수석들이 거의 빠진 상태라는 것이 옥에 티였다. 물론 내부 일정과 사정이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국내 최고 수준의 악단답게 축제에 임했어야 한다. 서울시향이 교향악축제를 바라보는 시선이 여지없이 감지되었다.
코리안심포니와 함께 민간 악단으로는 유일하게 참가한 프라임필은 성시연의 경기필과 마찬가지로 여성 지휘자 여자경이 포디엄을 장악했다. 4월 15일, 아카데믹하기로는 국내에서 둘째가라면 서러워 할 여자경은 열정과 로맨티시즘까지 가미해 차이콥스키의 교향곡 4번을 선사했다. 에네스쿠의 ‘루마니아 랩소디’의 현란한 리듬 또한 청중의 마음을 요동치게 하는 매력을 발산했다. 삼중고를 겪고 있는 민간교향악단의 현실 속에서 최선을 다하는 모습만으로도 감동이 전해졌다.
지휘자 임헌정과 무려 26년을 함께 해온 부천필이 서울 무대에서 함께 호흡하는 마지막 순간이 될지도 모르는 폐막연주회는 브람스로 채색되었다. 백병동 ‘계절 그리기’의 마지막에서 소프라노 박문숙이 읊는 대목인 “진혼곡에 잠들게 하라, 잠들게 하라”는 세월호 참사로 인해 온 나라가 슬픔에 잠긴 심정을 그대로 보여주었다. 백주영은 여전히 건재했고 임헌정의 부천필은 브람스 교향곡 3번에서 더욱 가라앉았다. 슈베르트의 ‘음악에’를 오케스트라 편곡 버전으로 들려준 부천필의 앙코르는 여러 생각이 교차하게 만들었다. 가사 그대로 음악에게 감사하다는 가장 평범한 진리가 확인되는 순간이었다.

글 유혁준(음악 칼럼니스트) 사진 예술의전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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