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월 1일까지 예술의전당 자유소극장
예술의전당은 작년부터 강화된 기획력으로 연극 공연의 확실한 변모를 보여주고 있다. 올해는 네 개의 커다란 주제를 중심으로 기획했는데, ‘별무리’는 그중 영국 작품을 대상으로 한 ‘SAC Britain’이란 기획의 첫 번째 작품이다. 영국 작가 닉 페인의 2012년 작품인 ‘별무리’는 작가는 물론 작품 자체가 국내에 처음 소개되는데다 이 작품이 다루고 있는 것이 다중 우주, 혹은 평행 우주라는 점에 화제가 되었다.
배우 두 명이 이끌어가는 작품이 거대 우주에 대한 이야기라니! 뚜껑을 열어본 ‘별무리’는 50개에 달하는 평행 우주의 세계를 흥미롭게 펼쳐내지만, 그것보다 더 강렬한 것은 그 속에 살 부비고 사는 인간이었다.
무대 가운데를 봉긋하게 올려 만든 야트막한 언덕은 별처럼 드문드문 불이 들어온 조명을 받아 생텍쥐페리의 ‘어린 왕자’가 살았던 소행성 B-612를 연상시킨다. 건조하고 아무것도 없는 그저 그런 별 위에 존재하는 것은 남자 롤런드와 여자 메리언 두 사람뿐. 불이 꺼지면 그들은 비슷한 대사와 행동을 반복한다. 이 작품에서 암전은 곧 다른 우주를 의미한다. 대사와 행동이 비슷해도 그들이 살고 있는 공간은 서로 다른 우주인 셈이다. 암전과 암전 사이, 즉 서로 다른 평행 우주 속 메리언과 롤런드는 사랑을 시작하고 이별을 하며 죽음을 대면하고 또 다른 시작을 꿈꾼다.
같은 대사이지만 결이 다른 화술과 표현을 통해 각각의 평행 우주를 표현해내는 것이 연출의 핵심 관건일 터, 그것을 해결해주는 중요한 열쇠는 배우들에게 있었다. 최광일과 주인영은 똑같은 대사를 몇 번이나 반복하지만 뉘앙스와 어투, 말의 장단과 표정의 변화를 통해 그 반복이 단순 반복이 아니라 다른 우주에서 이루어지는 행동임을 효과적으로 보여주었다. 꼼꼼한 디테일에 강한 연출가 류주연과 노련한 배우들의 연기력이 결합하여 얼핏 장면(우주)의 나열로만 그칠 수 있었던 작품의 구성을 인간과 사랑이라는 키워드로 관통시킨 것이다.
헤아릴 수 없는 평행 우주 속에서 두 사람이 연인으로 만날 수 있는 확률이 얼마나 희박한 것이고, 그렇기에 얼마나 소중한 것인지를 보여주는 ‘별무리’는 예기치 못한 참사로 힘든 시간들을 견뎌내고 있는 지금의 우리에게 또 다른 위로를 건넨다.
먼저 떠난 이들로 힘들어하는 많은 사람들이, 늘어나지도 줄어들지도 않는 그들과 함께한 행복하고 소중한 시간을 가슴속에 품었으면 좋겠다. 병든 메리언을 떠나보내야 하는 롤런드에게 “우리가 함께 한 모든 시간들은 늘어나지도 줄어들지도 않을 거야”라는 메리언의 대사처럼 말이다. 또 지금 이 우주 속에서 억울하게 먼저 세상을 떠난 이들이 다른 우주 속에서는 행복한 미소를 짓고 있으면 좋겠다.
별을 이야기하는데, 수많은 평행 우주를 이야기하는데 그것을 본 관객에게 지금의 아픔과 고통에 대해 위로와 위안을 준 ‘별무리’. 별이 지금껏 인간에게 그래왔듯 연극도 인간을 어루만지는 손길이었다는 것을 새삼 발견한 작품이었다.
사진 예술의전당