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월 16~19일 국립극장 해오름극장
1962년 창단한 국립무용단이 반세기 만에 처음으로 외국인에게 안무를 의뢰했다. 한국의 무용언어는 크게 한국무용·발레·현대무용의 삼분법으로 나누어져 있고, 국립무용단은 한국무용을 기반으로 하기에 외국인이 안무한 작품을 공연한다는 사실만으로도 제작 초기부터 세간의 관심과 우려가 동시에 쏠렸다.
핀란드 출신 안무가 테로 사리넨이 첫 외국인 안무가의 영광을 누렸고, 한국과 핀란드가 만나 일으킨 ‘회오리’로 화답했다. 이미 안무가로 두 차례, 무용수로 한 차례 내한한 바 있는 사리넨의 자연친화적인 움직임과 섬세한 표현력은 국내에도 익히 잘 알려져 있다. 특히 일본 전통춤과 부토에 관심을 가지고 있고 동양적인 정서와도 친근하기에 여느 국제 협업보다 큰 기대를 모았다.
무엇보다 이번 협업에서 가장 큰 관심을 가졌던 부분은 사리넨이 한국적 정서에 기초해 어떤 움직임을 창안했고, 과연 그 움직임이 한국 무용수의 신체를 거쳐 어떤 결과물로 완성됐는가였다. 사리넨이 대작을 만드는 안무가도 아니고 솔로 작품을 통해 움직임으로 승부하는 무용수로 명성을 얻었기에 더욱이 그랬다.
결과는 기대 이상이었다. 막이 열리고 ‘회오리’ 바람은 조명에서부터 불기 시작했다. 베시 어워드 수상 경력의 조명 디자이너 미키 쿤투는 어둠 속 한 남자를 역광으로 비추어 객석을 향해 실루엣이 춤추는 몽환적 환상을 선사했다. 한국 부채에서 영감을 얻은 넓은 폭의 치마는 물고기 지느러미마냥 늘었다 줄었다를 거듭했고 그 틈으로 빛이 관통했다. 마치 소용돌이가 일기 전 적막을 보여주는 듯했다. 이어 대칭 대열과 큰 원을 이루는 군무에서도 정형적 아름다움을 추구하는 기존의 한국무용 작품에서는 보기 드문 이국적인 이미지를 만들어내는 데 성공했다.
무대 한 편에 자리 잡은 음악그룹 비빙은 불교음악·전통음악에 기초한 음악으로 시종일관 한국의 정서를 잃지 않도록 유도했다. 무용수들은 땅의 기운에 순응하는 한국춤의 핵심을 잃지 않으면서 여러 근육을 사용해 빠른 템포로 화려한 하체 움직임을 전개했고, 손끝까지 전달되는 에너지에는 각자의 개성이 살아있었다. 수석무용수 김미애는 “사리넨은 정중동을 중시하는 한국춤의 원리를 누구보다 잘 이해하고 있다”라고 했다. 비록 사리넨의 사고와 언어에서 출발한 새로운 양식의 표현이었지만, 그것은 분명 우리의 것이고 진화된 아름다움까지 더하고 있었다. 인턴으로서는 예외적으로 주역으로 발탁된 박혜지의 길게 뿜어내는 신선함은 작품의 백미를 장식했다.
혹자는 국립무용단이 기존의 기획과 거리를 두고 새로운 경향을 따라 장르 간의 협업을 시도하거나 외국 안무가를 초청한 것에 대해 우려의 목소리를 내기도 한다. 한국 무용의 세계화를 구실로 우리의 전통을 해치고 잘못된 방향으로 나아갈까 봐 걱정하기도 한다. 그러나 그들에게 전통무용에 대한 개혁을 꿈꾸며 신무용을 추구하던 염원이 모아져 국립무용단이 창단됐음을 상기하라고 말하고 싶다. 당시 전통을 고수했던 선배들이 신무용을 고운 시선으로 바라보지만은 않았지 않는가. 그러나 새로움을 추구한 용기 덕분에 혁신을 이루었고, 새로운 전통이 만들어졌다. 진화는 반드시 혁신과 함께 찾아온다. 더 많은 시도 속에서 혁신은 실현될 것이다.
사진 국립무용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