솔로 작품 ‘데쉬’로 내한하는 아크람 칸

80분간의 강렬한 몸짓

기사 업데이트 시간: 2014년 6월 1일 12:00 오전

2012년 런던올림픽 개막식을 기억하는가. 자신의 무용단과 함께평화를 전했던 아크람 칸이 이번에는 내밀한 자신의 이야기를 들고 온다

2012년 런던올림픽 개막식을 기억하는가. 자신의 무용단과 함께평화를 전했던 아크람 칸이 이번에는 내밀한 자신의 이야기를 들고 온다

아크람 칸은 국내에도 잘 알려진 현대무용가다. 2000년대 들어 벌써 네 번째 내한 공연이니 그동안 국내 반응이 얼마나 괜찮았는지 짐작할 수 있다. 2007년 ‘신성한 괴물들(Sacred Monsters)’, 2009년 ‘인아이(In-I)’, 2011년 ‘버티컬 로드(Vertical Road)’ 그리고 올해 ‘데쉬(Desh)’로 이어지는 아크람 칸의 내한 행렬에서 이번 공연에 많은 기대를 갖는 이유가 있다. 그의 진면목을 고스란히 맛볼 수 있는 기회이기 때문이다.

그동안 우리 무대에서 아크람 칸이 대중적인 성과를 거두었다고는 하나 예술적인 면에서 그다지 만족스럽지는 않았다. ‘신성한 괴물들’에서는 발레리나 실비 기옘의 춤에 더 매혹된 감이 없지 않았고, ‘인아이’에서는 여배우 쥘리에트 비노슈가 춤을 춘다고 해서 화제를 불러일으켰다. 두 작품은 사실상 출연자의 역량과 스타성에 상당 부분 영향을 받았다. 한편 ‘버티컬 로드’에서는 아크람 칸이 자신의 무용단을 이끌고 내한해 그의 예술성을 가감 없이 드러냈다. 그는 현대무용에 인도의 전통춤 카탁을 접목시킴으로써 동양과 서양, 과거와 현재를 직조하는 춤을 실현했다. 하지만 이 작품 역시 신선하게 다가오거나, 심미적으로 느껴지거나, 뚜렷한 감흥을 주지는 못했다.

이전의 내한 공연을 보고 아크람 칸의 안무가로서의 역량에 의구심을 품은 관객이라면 번 작품을 통해 생각이 바뀔 것이다. 아크람 칸의 진면목을 보여주는 80분짜리 솔로 작품은 예술적으로 강렬하기 그지없다. ‘데쉬’는 2011년 초연 당시 평론가들과 관객들 사이에서 아크람 칸의 걸작으로 일컬어지면서 영국 올리비에 어워즈의 최우수 신작상, 무용평론가상의 최우수 남자무용수상을 휩쓸었다.

다양한 춤을 융합한 그의 예술세계

‘데쉬’에는 아크람 칸의 안무와 연출적 장점이 유기적으로 망라되어 있다. 특히 그의 움직임은 어떤 안무가와도 차별화된 스타일을 실현했다. 현대무용에 카탁을 융해한데다가 발레·릴리스 테크닉·접촉즉흥·신체극까지 폭넓게 흡수해 자신만의 춤 스타일을 완성했다.

인도의 전통춤인 카탁은 신과 소통하면서 영적으로 찬양하는 춤으로, 발목에 수백 개의 방울을 차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춤과 노래와 마임을 한데 섞은 카탁은 한 사람이 여러 역할을 하면서 모습을 바꾸는 특징을 가지고 있다. 아크람 칸은 카탁의 전수자가 될 만큼 전문적으로 배웠음에도 불구하고 자신의 작품에 이를 그대로 실행하지는 않는다. 앞에서 말했듯 자신의 현대무용에 독창성을 부여할 수 있도록 융해시켜놓았기 때문이다.

여러 춤을 뒤섞어놓은 그의 독무는 강렬하고 자유롭고 아름답게 느껴진다. 이렇게 한 장르만을 고집하지 않고 다양한 춤들을 섞어 자신만의 스타일을 완성하는 것이 바로 ‘컨템퍼러리 댄스’다. 하지만 그 원리적 결합 관계를 모른다 하더라도 상관은 없다. 그저 아크람 칸의 춤의 매력에 빠져들면 되는 것이다.

아크람 칸이 서양의 무용가들과는 차별화된 예술세계를 구축할 수 있었던 것은 흔치 않은 성장 배경에서 기인한다. 이름을 듣고 눈치 챘을지도 모르겠다. 영국 출신의 현대무용가라고는 하나 방글라데시계 부모를 둔 이민 2세대라는 긴 수식어가 달려 있다. 그에겐 이러한 특수성을 무기로 만든 이는 바로 그 자신이다. 그것이 민족이든, 언어든, 문화든지 간에 소속된 나라와는 다른 이질적인 모습을 보이는 이민 2세대가 겪는 혼란과 갈등을 고스란히 예술로 승화시킴으로써 말이다.

방글라데시어로 ‘고국’이라는 뜻을 지닌 ‘데쉬’에는 방글라데시의 역사, 아크람 칸의 가족사, 이민 2세대의 자아 찾기와 같은 동기가 깔려 있다. 아크람 칸은 이러한 동기를 구체적으로 서술하거나 설명하려 들진 않는다. 관객들이 전체적인 이미지와 분위기에 젖어들 수 있도록 상징적이고 은유적으로 펼쳐놓는다. 이를테면 방글라데시의 격변하는 역사를 심미적인 절정의 아름다운 영상으로 표현하듯이 말이다.

애니메이션·음악·조명과 함께 완성된 ‘데쉬’

무용과 타 분야 간 교류는 아크람 칸의 작품세계를 결정짓는 요소 중 하나다. ‘데쉬’에서도 무용과 함께 영상·음악·조명 등이 서로 창조적으로 교류하면서 더할 나위 없는 장면을 만들어낸다. 무대 디자인은 영화 ‘와호장룡’으로 아카데미상을 받은 팀 입이, 음악은 영화 ‘아이즈 와이드 셧’의 작곡가 조셀린 푹이 맡았다. 조명은 오랫동안 호흡을 맞춰온 마이클 헐이 책임지고 있다.

분야 간 교류가 가장 잘 드러나는 장면은 아크람 칸이 무대에 비친 영상과 교감하는 부분이다. 마치 동화 속 환상의 세계를 여행하는 듯 그는 배와 나무, 폭우를 거치면서 나비·코끼리·뱀과 조우한다. 끝자락에 등장한 전차는 그가 지나온 모든 여정을 한순간에 정서적으로 무너뜨린다. 아크람 칸이 영상 속에 합성된 유일한 실체처럼 보일 정도로 거의 완전한 상호작용을 이뤄내고 있다.

마지막 장면은 수많은 갈래로 찢어진 실크 막이 겹겹이 두텁게 내려오면서 시작된다. 실크 막은 몬순기후의 장대비를 연상시키는데, 그 사이를 헤집고 다니는 아크람 칸의 모습에 가슴을 움켜잡는 듯한 음악과 조명이 어우러져 미적인 쾌락을 최대치로 끌어올린다. 거꾸로 매달려 유영하는 장면에서는 감탄사가 절로 나온다.

80분짜리 대작을 혼자 끌어가는 것은 무용가로서 자신감과 확신이 없다면 실현하기 힘들다. 아크람 칸의 자신감은 일관되게 추구해온 예술성이 가파른 상승기류를 탔기에 더욱 가치 있게 느껴진다. 그동안 발표해왔던 작품들이 모두 ‘데쉬’를 완성하기 위한 준비 과정처럼 느껴질 정도로 놀라운 성과를 낸 것이다. 아크람 칸의 진면목을 맛볼 수 있는 ‘데쉬’는 6월 14·15일 LG아트센터에서 펼쳐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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