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악의 바다로 향하는 새로운 항해 지도, 조수미

기사 업데이트 시간: 2014년 7월 1일 12:00 오전

음악에 있어서라면 절대적으로 ‘인정(認定)’을 받고 싶어 하던 조수미는
이제 자신의 목소리가 묻은 
‘인정(仁情)’을 곳곳에 베풀며 살아가고 있는 중이다.
그녀의 항해 지도 중 깃발이 꽂혀 있는 곳은 ‘다 함께’ ‘모두의’ ‘여러 사람들과’라는 대륙이다.
그녀에게 묻는다. 지금 어디까지 왔고,어디까지 갈 것인지를

조수미의 삶과 여정. 이제는 너무 알려질 대로 알려져 더 이상 특별한 이야기가 나오지 않을 거라 생각했다. 하지만 긴 시간 동안 진행된 인터뷰는 조수미가 아직도 새로운 항해를 하고 있다는 것을 증명해주었다. 인터뷰 끝에 그 도착지가 궁금해 물었지만 그녀도 모른단다. 말 그대로 새로운 것을 향한 항해 아닌가. 이로써 조수미를 더 알아가야 할 것 같은 생각이 든다.

한국인이라면 누구나 알 것이다. 젊은 시절, 그녀가 절제로 자신을 곧추세웠고 누구나 쉽사리 넘어갈 모든 욕망을 걷어내며 노래해왔다는 것을. 그녀의 트레이드마크가 된 ‘밤의 여왕’은 세상의 유혹과 욕망을 발라낸 철저한 노력의 결과다. 그녀는 그렇게 멀리, 높게 전설적인 소프라노가 되었고, 목소리가 올라가 높이만큼 삶도, 무대도 높이 올라갔다. 세계의 명연주자들에게 아니다 싶으면 “노!”를 외치며 딱 잘라내기도 했다. 무대 위의 그녀는 크리스털처럼 빛났다.

그러던 중 깨달았다. 이제 도전이란 높은 곳만을 향하는 게 아니라는 것을. 낮은 곳을 향해 노래를 부를 때 더 많은 이들이 ‘조수미의 노래’를 기억하고 함께할 수 있을 것이라는 것을. 하늘을 향해 두 손 모으고 밀실에서 기도만 하던 수녀가 깨달음을 얻고 세상 속으로 들어가 신의 말씀대로 행하는 것과 같이 그녀는 더 낮은 곳으로, 더 많은 이들이 몰려 있는 곳으로 나아가 자신의 목소리를 전하고 있다.

한 시절, 세계적인 음악가들과의 스케줄에 따라 맞물려 있던 그녀의 삶은 이제 그녀만의 ‘철학’에 따라 짜이고 돌아가는 중이다. 그것은 ‘조수미답게’라는 철학이다. 조수미는 인터뷰를 하는 동안 자신의 이름을 계속 불렀다. 조수미답게··· 조수미답게··· 그것은 앞으로 그녀가 세상의 더 많은 이들과 노래하기 위한 그녀만의 방법론 같았다. 이제 묻고 듣는다. 그녀가 ‘조수미답게’ 철학을 얻기까지 어떤 길을 걸었고, 그것이 앞으로 어떻게 펼쳐질지에 대하여.

 

완전무결함으로 노래하는 방법

그녀의 이름을 듣는 사람들이 조건 반사적으로 떠올리는 곡 중 하나는 모차르트 오페라 ‘마술피리’ 중 밤의 여왕이 부르는 아리아 ‘지옥의 복수’이다. 아리아의 제목은 몰라도 누구나 한 번쯤 들어봤을 바로 그 곡 말이다.

콜로라투라 소프라노의 대표 아리아를 부르는 조수미의 목소리를 듣고 있으면, 꽤 잔인한(?) 가사와는 역설적으로 머리가 명쾌해지곤 한다. 특히 고음의 초절기교 대목에선 ‘정확함’과 ‘자신감’ 그리고 ‘완전무결’이라는 단어가 떠오른다.

“자신감은 엄청난 준비에서 와요. 그것 말고는 방법이 없죠. 아무도 연습을 대신해줄 수 없잖아요. 자신과의 시간을 어떻게 사용했느냐가 중요해요. 연습이 충분하지 않은 날이면 밤에 자다가도 벌떡 일어나 연습을 하게 돼요. 연습량이 넘칠 때면 빨리 무대에 올라 노래하고 싶다는 마음이 생기죠.”

그녀는 자신감만큼 자부심 또한 중요하다고 이야기한다. 무대에 오르기 전 자신이 세계 최고라 생각하지 않으면 어느 누가 그를 최고라 인정해줄 수 있겠냐는 것이다. 결국 그 자부심은 자신감에서 온다. 자신이 부르는 곡의 처음과 끝을, 모든 가사와 멜로디를 관객이 다 알고 있다고 여기며 공연을 준비하고 무대에 서는 것, 그것이 조수미의 자신감이자 음악을 종교 삼아 걸어가는 구도자로서의 마음가짐이다.

“제겐 음악이 ‘종교’와도 같은 존재예요. 음악이라는 종교를 위해 일생을 바친 수녀인 셈이죠. 몸이 악기이기 때문에, 한계에 달하는 고음을 정복해야 하기에 모든 걸 절제할 수밖에 없어요. 새소리를 내는 콜로라투라 소프라노라로서 선택의 여지없이 30년 넘게 살았어요. 저는 그 절제로 인해 하이E♭ 같은 소리를 피아니시모로 뽑아낼 수 있는 거죠. 그럴 때면 엄청난 환희와 희열을 느껴요. 그 순간을 위해 절제를 하고 또 절제하기 때문에 그런 소리를 낼 수 있는 거죠.”

정도를 넘지 않도록 알맞게 조절하고 제한한다는 것. 이는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무엇보다 이것은 반복과 훈련에 의해 완성되기에. 그래서 조수미는 자신과 음악 앞에서 약속을 했다. 그 약속은 꼭 30년 전, 한국을 떠나 처음 이탈리아 산타체칠리아 음악원에 도착했던 날로부터 지금까지 변함없다.

“산타체칠리아 음악원 입학시험을 보던 날, 반주자가 아팠는데 피아노를 칠 수 있는 사람이 없었어요. 감독관 선생님이 피아노를 칠 수 있는 사람이 있는지 물어봤는데, 그때 제가 손을 번쩍 들었죠. 그날 시험 본 학생이 50명이 넘었는데 모두 제 피아노 반주에 맞춰서 노래를 했어요. 그러곤 제 순서가 왔을 때 부른 노래가 로시니의 ‘약속’이에요. 이십대 초반이었기에 택할 수 있는 곡이었고, 나 자신을 가장 잘 보여줄 수 있는 곡이었죠. 다른 학생들과 달리 전 이 곡만 부르고 합격점을 받았어요.”

“나는 결코 당신을 사랑하는 것을 멈추지 못합니다”라는 가사로 시작되는 로시니의 ‘약속’. 누군가를 향한 절절한 사랑의 감정을 표현하는 노래는 이십대 초반이던 조수미와 가장 잘 어울렸으리라. 그날 이후로 로시니의 ‘약속’은 음악을 향한 그녀의 고백이자 수줍은 맹세가 되었다.

섬세한 감성과 콜로라투라 기교가 빛내는 순간

“그리운 그 이름 때문에 처음으로 가슴 두근거리고 사랑의 기쁨을 늘 되새기네… 생각할 때마다 내 사무치는 마음은 언제나 그대에게 날아가. 그리운 그 이름 때문에 생명도 그대 것이 되리.”

베르디의 오페라 ‘리골레토’ 중 질다의 아리아 ‘그리운 그 이름’. 질다의 순진무구한 사랑의 감정, 하지만 이뤄질 수 없는 사랑, 여기에 그녀의 목숨마저 흩날리게 될 것을 암시하는 듯한 가사는 듣는 이로 하여금 더욱 애절한 감정을 느끼게 한다.

이 아리아는 조수미가 유럽·미국·아시아 무대 데뷔 때마다 불렀던 곡이다. 세계를 향해 조수미의 이름을 각인시키며 그녀를 빛내준 동시에, 조수미의 기억에도 가장 진하게 남아있는 곡이다.

‘그리운 그 이름’은 기교 면에서 ‘마술피리’ 밤의 여왕의 아리아와 비슷한 느낌이다. 하지만 밤의 여왕의 아리아가 테크닉에 중심을 둔다면, 질다의 아리아는 같은 고음이더라도 섬세함에 충실한 감정 표현까지 요구하기에 더욱더 특별하다. 특히 오케스트라의 연주가 잠잠해지고, 오직 그녀의 목소리만이 공간을 가득 채우게 되는 카덴차에서는 관객의 시선이 모두 그녀에게로 향하게 된다.

“카덴차를 성공적으로 하느냐 못하느냐에 따라 질다 역에 대한 전체적인 평가가 달라지죠. 그래서 카덴차 두 마디 전에 다다르면 가슴이 뛰고 온몸이 긴장돼요. 하지만 그 긴장이 카덴차를 넘기는 힘이 되죠. 매번 컨디션도, 서는 무대도 다르지만 모든 관객의 눈과 귀가 한 곳으로 집중되는 그 순간을 성공적으로 해낼 것을 미리 떠올리면, 저 스스로도 날마다 어떤 소리가 날지 자연스럽게 기대하게 돼요.”

조수미에게 ‘그리운 그 이름’은 스스로를 곧추세우고 도전하게 만드는 곡이다.

오페라 무대를 제외하고 조수미가 서왔던 여러 무대들을 들여다보고 있자면, 보석 하나하나를 손으로 일일이 달아 완성한 백색의 드레스가 떠오른다. 마치 한 명의 신부만을 위해 만들어진, 꼭 맞는 드레스 말이다. 오래전 신부가 결혼식을 고대하며 몇달 며칠에 걸려 손수 옷을 지었듯, 그녀도 짧게는 여러 달, 길게는 1년여에 걸쳐 자신의 무대를 스스로 ‘설계’하기에 그러한 인상을 받았으리라.

“혼자 연습하고, 혼자 무대에 올라 그 모든 것을 책임져야 하는 일을 하다 보니 모든 것을 계획하고 스케줄링하고 역할을 나누고 점검하는 것이 지극히 자연스러운 일상이 됐어요. 생각해보면 초등학생 시절부터 늘 그랬죠. 그래서 친구들이 저를 ‘두목’이라 불렀어요(웃음). 보통 하나의 무대를 설계하는 데 짧게는 3개월에서 6개월, 간혹 1년이 걸리는 경우도 있어요. 커다란 백지를 꺼내고 거기에 계획을 하나씩 적어나가면서 시작해요. 악보를 찾고, 곡 순서도 바꿔보고, 그러다 새벽 3시에 일어나 갑자기 혼자 연습도 해보는 거죠. 나탈리 드세는 무대 위에서 자신이 부르고 싶은 곡들로 프로그램을 채운다는데, 저는 그와는 반대예요. 각 도시마다 그곳에 있는 사람들이 무엇을 듣고 싶어 할까, 어떤 곡을 부르면 사람들이 제게 빠져들까를 생각하면서 프로그램을 만들죠. 그 과정이 쉽지는 않지만 그것을 만들어가는 시간이 제게는 큰 기쁨이자 즐거움이에요”

그녀는 자신이 할 수 있는 것과 없는 것을 명확하게 구분하고 인정하며 표현할 줄 안다. 카라얀이 스물여섯 살의 그녀에게 벨리니의 ‘노르마’ 녹음을 제안했을 때 자신의 능력 밖의 일이라며 거절한 일이나, 카를로 베르곤치가 베르디의 ‘루이자 밀러’를 같이 하자고 했을 때 리릭소프라노가 아니기 때문에 “노!”를 외친 일화만 봐도 그러하다.

“재능에 대한 확신은 예나 지금이나 동일해요. 다만 이삼십 대에는 그 확신이 이기심으로 이어졌죠. 가족을 떠나 타지에서 전쟁같이 살아내는 삶에 대한 대답을 찾으려고 부단히 애썼어요. 그러다 보니 자연스레 높은 곳에 올라가게 된 거죠. 세계 메이저 음반사들과 녹음하고 이름난 음악가들과 함께 무대에 오르고… 정말 자만과 자존심이 하늘을 찔렀던 때죠.”

가장 높고 안정된 곳에 있을수록 사람은 덜 움직이고 싶기 마련이다. 하지만 조수미는 마음의 소리를 따라, 가능성이 조금이라도 발견되면 기꺼이 도전하는 쪽을 선택했다. 지금껏 ‘아름다운 도전’을 외쳐온 그녀가 오페라를 넘어 뮤지컬과 영화음악, 팝이며 드라마 주제가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곡들을 ‘조수미답게’ 대중에게 소개해온 것도 그러한 이유에서다.

 

‘조수미답게’, 눈을 맞추고 부르는 노래

변화는 2000년 즈음부터 시작됐다. 어디에서든 최고라 불리던 그 시절, 자신이 소수의 클래식 마니아들만 알고 듣는 노래를 하고 있다는 생각을 하면서부터다. 그때 학창 시절 같은 반 친구들 앞에서 피아노를 치고 팝송을 노래하던, 끼 넘치던 모습이 떠올랐다. ‘많은 사람들이 노래를 좋아할 수 있도록, 내가 그 통로가 될 수 있다면…’ 하는 생각이 ‘조수경’을 일깨웠고 ‘조수미’를 사로잡았다.

“이를테면 ‘낙소스 섬의 아리아드네’ 같은 작품만으로는 애호가를 제외한 대중과 소통하기 어려워요. 더 많은 사람들과 나누기 위해서는 그들이 관심을 가질 법한 매력적인 프로젝트가 필요하죠. 제가 뮤지컬 마니아이기도 하거니와 사실 오페라보다 뮤지컬을 더 많이 보거든요. 그래서 뮤지컬 넘버들을 묶어 ‘온리 러브’ 음반을 냈고, 소위 사람들이 말하는 ‘대박’을 쳤죠. 당시 사람들의 시선이나 반응을 걱정하지 않았다면 그건 거짓말일 거예요. 하지만 예나 지금이나 그 도전은 정말 잘했다고 생각해요.”

더 많은 사람들이 이해하며 듣고 다 함께 부를 수 있는 노래. 모두의 가슴속에 숨겨져 있던 흥과 즐거움을 불러일으키기 위한 노래를 어떻게 들려줄 수 있을지 고민하던 그녀가 결국 내린 결론은 ‘조수미답게’ 그리고 ‘눈높이에 맞춰’ 노래하는 것이었다.

“클래식 음악을 어렵다고 느끼는 사람들이 좀더 쉽게 흥미를 가질 만한 과정이 필요하다고 생각해요. 대표적인 예가 파크콘서트죠. 지난해에는 사람들에게 친숙한 대중음악 레퍼토리와 함께 앙상블 로티니가 오페라 아리아를 들려줬어요. 앙코르까지 포함해 레퍼토리를 짜는 데만 5개월이 걸렸죠. 직업에 대한 책임감과 우리나라에 대한 애정이 없다면 감히 할 수 없는 일이에요.”

한참을 오가는 대화 속에서 그녀의 목소리는 점점 ‘우리나라’와 ‘사람들’에 힘이 실리고 있었다. 연이어 대중과 ‘통’했던 노래 가운데 가장 기억에 남는 곡을 물으니 그녀가 2002년 월드컵 시즌에 불렀던 ‘챔피언’을 꼽는다. 곧이어 그녀는 ‘조수미답게’ 노래를 한다는 것에 관한 이야기를 이어갔다.

“기존의 곡에 편곡으로 새로운 옷을 입히고, 동시에 우리나라 사람들이 이해할 수 있는 언어와 코드에 맞추는 것이 가장 ‘조수미답게’ 노래하는 것이라 생각해요. 그래서 ‘달의 아이’를 우리 정서에 맞는 내용과 언어로 바꿔 국내에 소개했고, 애국가와 ‘우리의 소원은 통일’ ‘아리랑’을 하나로 묶어 부르는 시도도 했죠. 또 무대를 보러 오는 사람들의 취향을 알고 때와 장소에 걸맞는 레퍼토리를 선보이는 것 역시 ‘조수미답게’ 노래하는 일이겠죠.”

 

감성적인 조수미가 논리적인 바흐를 만났을 때

지난해 그녀는 ‘조수미답게’ 새로운 용기를 냈다. 감성적인 조수미가 논리적인 바흐를 만나 그의 칸타타와 아리아에 도전한 것. 그녀 스스로 “알레르기가 가장 심한 작곡가”로 손꼽는 바흐의 작품들을 선별하여 ‘온리 바흐’ 음반으로 내놓았다. 지금까지 그녀가 내놓은 50종 이상의 음반 중에서도 바로크, 더군다나 바흐의 작품은 2006년 출시됐던 음반 ‘바로크로의 여행’에 몇 곡만 수록되어 있을 뿐이다.

“그동안 뜨겁고 정열적인 소리를 낼 수 있는 레퍼토리들에 집중했었죠. 동시에 바흐라는 보석을 서랍 한 구석에 넣어두고 언제쯤 꺼내볼 수 있을까 생각해왔어요. 음악을 하는 사람이라면 피해갈 수 없는 존재가 바흐잖아요.”

오랫동안 바흐와 쉽사리 대면하지 못한 이유는 한마디로 ‘메뉴얼을 잘 몰라서’였다. 스스로 바로크에 대한 공부가 부족하기도 했거니와 자신감도 많지 않았다. 이런 그녀에게 먼저 손을 내민 것은 바흐의 ‘커피 칸타 타’였다. 그녀가 좋아하는 ‘커피’와 바흐가 즐긴 커피의 공통분모는 오랜 시간 멀리 ‘모셔뒀던’ 바흐와의 거리를 급속도로 좁혀줬고, 그녀는 이번에도 ‘조수미답게’ 바흐의 곁으로 다가갔다.

이번 음반에는 칸타타 BWV147 ‘마음과 행동과 생명으로’ 중 ‘예수 인간 소망의 기쁨’, 칸타타 BWV208 ‘사냥은 나의 즐거움’ 중 ‘양들은 평화롭게 풀을 뜯고’, 바흐-구노의 ‘아베 마리아’ 등이 눈에 띈다. 녹음을 위한 편곡은 작곡가 김택수, 연주는 바이올리니스트 김수연과 스페인 출신의 기타리스트 마르코 소시아스가 나섰다.

“250년 전에 살았던 바흐와 현재를 살아가는 우리와의 연결 고리를 나름대로 만들고 싶다는 생각에 바이올린과 기타를 중심으로 편곡하는 방법을 택했어요. 제게는 도전인 동시에 개인적인 욕심이 많이 들어간 음반이기도 해요. 기도하는 마음으로, 바흐에게 이해를 구하는 음반이기도 하고요. 만약 바흐를 만나게 된다면 저의 의도와 색채가 잘 전해졌다는 평을 들을 수 있을지 많이 고민돼요.”

덕분에 조수미의 바흐는 편안하다. 기타와 바이올린을 중심으로 한 편성은 마치 하늘에서 인간 세상으로 몸소 내려온 절대자의 모습을 연상케 한다. 원작에 비하면 심오함은 다소 줄어들었지만, 그만큼 절대자와 인간의 거리는 더 가까워진 느낌이다. 조수미는 이번 음반에 실린 총 열다섯 곡 가운데 마지막 트랙인 ‘당신이 제 곁에 계시다면’을 가장 많은 애정을 쏟은 곡으로 꼽았다.

“아리아를 부르는 동안 제 자신이 참 작게 느껴졌어요. 지나간 일들, 살아갈 날들, 삶과 죽음에 대한 생각들도 했고요. 아무리 아름다운 목소리를 가졌어도 바흐의 작품에 담긴 심오함과 숭고미를 제대로 표현하지 못하면 안 된다는 생각이 들었죠. 그래서 녹음할 때 더 잘하려고 노력했는데, 나중에 음반을 들어보니 미숙한 부분이 많이 느껴지더라고요.”

멋쩍은 웃음을 지어보이던 조수미의 눈빛이 다시 바뀐다. 굳이 말을 더 하지 않아도 그녀가 또 다른 항해를 준비하고 도전하리라는 것을 직감할 수 있었다.

인터뷰 기사를 정리하고 그녀와의 만남을 떠올려보고 있던 중 그녀로부터 반가운 소식이 들려왔다. 해외의 어느 유명 감독의 영화 속에서 ‘배우 조수미’가 아닌 ‘소프라노 조수미’로 무대에 서서 노래를 할 예정이라는 것. 그녀의 노래를 스치듯 한 번이라도 들었던 이들이 앞으로 이어질 그녀의 항해를 더욱더 궁금해 할 것 같다.


▲ 조수미가 소중히 여기는 것들
가톨릭 신자인 그녀의 묵주,
이름이 새겨진 대한민국
국가대표 축구선수 유니폼.
그리고 또 다른 가족인 신디는
이탈리아 집에서 조수미를
기다리고 있다고 한다

사진 김영호(도프스튜디오)

Back to site top
Translate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