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월 27일 성남아트센터 오페라하우스
몰다우의 기원을 묘사한 두 대의 플루트 연주와 경험 많은 목관군의 흠 잡을 데 없는 솔로와 치밀한 앙상블. 명료한 아티큘레이션으로 시작한 이들 현악군은 지휘자의 손동작에 따라 일사분란하게 움직이며 시종 음악을 든든히 받쳐 나갔다. 최고의 화력을 뽐내는 금관악기도 격정적이고 터질 듯한 음향으로 빠르게 휘몰아치며 황금의 도시 프라하를 흐르는 몰다우의 소리를 들려주었다. 어디에서 이런 원조 체코 사운드를 들을 수 있을까?
체코 필하모닉의 내한 공연에서 보여준 오케스트라 사운드는 세련되고 화려한 맛은 적었지만, 한국인이 아리랑을 부르듯 자연스럽게 몸에서 배어나오는 보헤미안의 짙은 감성이 실린, 한마디로 전통에 대한 자부심이 한껏 묻어나는 무대였다.
탈리흐·쿠벨리크·노이만과 같은 체코의 명지휘자 계보를 이어가는 이르지 벨로흘라베크는 누구보다 체코 필의 전통과 특성들을 잘 파악하는 지휘자로, 그의 ‘명기’인 체코 필로 보헤미안 특유의 낭만과 서정을 관객에게 전달했다. 13년 만에 내한 공연을 가진 체코 필은 드보르자크 교향곡 7·8·9번에 비해 우리나라에서 잘 연주되지 않는 드보르자크 교향곡 6번을 메인 프로그램으로 잡았는데, 새로운 레퍼토리를 접해볼 수 있었던 ‘축복’이었다.
교향곡 6번은 ‘슬라브 춤곡’의 성공으로 인한 저작권료 수입과 딸의 탄생 등 생활 면에서도 비교적 부유한 시기에 작곡된 곡이다. 벨로흘라베크의 지휘는 이러한 풍족함과 행복한 기운이 음악 전반에 물씬 풍겨나게 해주었다. 특히 3악장의 체코 춤곡풍의 경쾌한 민속음악에서는 리듬과 선율을 생생하고 활기차게 살렸고, 주제 면에서 칸타빌레적인 성격을 정확히 표현해냈다.
협연자로 나선 피아니스트 폴 루이스는 브람스 협주곡 1번을 선보였다. 그는 지적이고 섬세한 해석으로 디테일에 대한 세심한 처리와 영롱한 터치로 관객들의 큰 호응을 얻었다. 특히 브람스 협주곡의 묵직한 오케스트레이션과 방대한 사운드로 인한 부담감에도 불구하고 오케스트라와 대치하기보다 이전에 테너 마크 패드모어와 함께 한 슈베르트 녹음(Harmonia Mundi)에서 빛났던 실내악적 감각으로 오케스트라와 조화를 이루었다. 2악장의 섬세한 표현과 잘 다듬어진 따뜻한 음색은 브람스 특유의 서정미와 우수를 잘 드러내 오랫동안 기억에 남았다.
한편 이번 공연을 주최한 성남문화재단은 출범 후 높은 안목과 노력으로 틸레만과 뮌헨 필, 노링턴과 슈투트가르트 방송교향악단, 야니크 네제 세갱과 로테르담 필하모닉에 이르기까지 유럽의 명문 악단들을 지속적으로 초청하며 재단의 전통을 빛내고 있다. 하지만 이번 공연이 열린 오페라하우스의 음향 효과가 체코 필의 음악적 역량을 만끽하기에 충분했을까 하는 데에는 의문이 든다.
이제 오케스트라의 명성 하나만으로 청중이 공연장을 찾고 만족하는 시대는 지났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갈수록 영리해지는 관객은 공연을 통해 얻는 만족감과 함께 보다 수준 높은 환경과 서비스를 제공받고 싶어 한다. 최고의 공연은 공연 자체는 물론 연주장의 적합성, 물리적 여건, 적절한 서비스, 관람 분위기 등이 합해져 만들어지는 것임을 감안할 때, 이번 공연의 장소가 콘서트홀이었다면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사진 성남문화재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