니컬러스 안겔리치/이브 아벨/서울시향의 프렌치 컬렉션

프랑스적 에스프리가 남긴 음악적 향취

기사 업데이트 시간: 2014년 8월 1일 12:00 오전

7월 4일 예술의전당 콘서트홀

프랑스 음악에서 반드시 언급되는 ‘에스프리’의 종류가 ‘템페라멘트’나 ‘끼’에 의해 규정된다고 전제할 때, 이번 서울시향 음악회에서 피아니스트 니컬러스 안겔리치와 지휘자 이브 아벨은 태생적으로 다른 기질의 소유자다. 선천적인 프랑스인으로 여러 오페라 무대에서 경험을 쌓은 지휘자와, 사춘기부터 프랑스에서 생활하며 자신의 음악적 코드를 프랑스적으로 맞춰낸 피아니스트의 만남은 일견 어색한 듯했으나 이내 독특한 향취를 풍기며 절묘한 앙상블을 만들어냈다.

라벨과 비제로 꾸며진 프로그램에 서곡으로 로시니의 ‘윌리엄 텔 서곡’이 생뚱맞다고 느끼는 청중도 있었으리라 생각된다. 필자의 생각도 처음에는 다르지 않았는데, 화사한 톤 컬러와 가벼운 리듬감, 세밀하게 다듬어진 솔로 악기들 간의 앙상블이 축제적인 분위기를 선사하며 멋진 오프닝으로 자리 잡았다.

20세기 초 명피아니스트였던 파울 비트겐슈타인을 위해 만들어진 왼손 협주곡 중 라벨의 작품이 유독 인기인 이유는 피아노에서의 왼손 파트의 기능과 그 특성을 온전히 협주곡 양식에 거부반응 없이 접속시켰기 때문이라 생각된다. 피아니스트의 왼손은 작품 전체의 분위기 조성과 오른손의 적절한 조력을 맡으며, 때로는 보조 멜로디와 보조 주제 등을 맡으면서 멀티플한 능력을 발휘해야 한다.

피아노의 저음이 지닌 묵직하면서도 음산하고 신비스러운 분위기를 적극 차용한 라벨의 오케스트레이션은 한 손의 피아니스트에게 총체적인 관현악 음향의 안팎을 돌아다니라는 임무를 내린다. 초반의 다소 긴장된 분위기를 극복해낸 안겔리치는 가볍게 설정된 템포를 유창한 느낌으로 ‘타고 다니듯’ 난곡을 이끌어갔고, 시종 명랑한 분위기를 잃지 않아 그로테스크함보다는 건강한 정서가 주를 이루었다. 종료 직전 카덴차에서 보여준 현란한 손놀림과 고도로 세분된 다이내믹 설정은 연주자의 프랑스적 에스프리나 템페라멘트의 ‘후천적’ 완성이었다.

안겔리치의 선천적 기질은 오히려 후반부에 연주된 라벨 협주곡 G장조의 2악장에서 엿보였다. 모차르트적인 단아함으로 1악장을 마무리한 후 쇼팽적인 서정성을 담은 2악장의 서두를 연주자는 농염함이나 센티멘털의 요소를 철저히 차단한 채 매우 논리적으로 전개해나갔다.

지나친 감상을 청중에게 강요하려는 노력이 보이지 않음은 물론이요, 각진 모습으로 정교하게 설정된 악상 변화는 단정하고 모범 답안적이었다. 악장 후반부의 반주 패시지들 역시 일방적으로 ‘숨는’ 설정이 아니라 악기들 다자간의 대화를 중재하는 현명한 모습이라 더욱 믿음이 갔다. 숨 쉴 틈 없는 타이트함이 악상의 통일감을 형성했던 3악장보다 작곡가 스스로 가장 정성을 기울인 것이 분명한 2악장의 명료한 서정성이 인상 깊었다.

이어 연주된 비제의 ‘아를의 여인’ 모음곡 1번과 2번(발췌)에서는 역시 선험적 템페라멘트가 프랑스적인 요소에 가까운 지휘자 정명훈의 흔적이 음향을 통해 강하게 풍겨 나왔다. 이브 아벨과의 호흡이 구석구석 들어맞았다고 하기에는 어려우나, 귀족적이며 우아한 작풍에 대한 강한 공감과 노련한 비트를 통해 악단의 개인 기량을 고조시켜 화려한 마무리를 거두었다.

모음곡 1번에서는 희곡 3막 1장에서 연주되는 세 번째 곡 아다지에토가 여유 있는 흐름으로 스케일이 큰 악상을 전개해 호감을 주었고, 두 곡이 빠져 아쉬웠던 2번에서는 ‘목가’의 흥겨움, ‘파랑돌’에서의 낙천적 기분이 콘서트홀의 행복감을 고조시켰다.

사진 서울시립교향악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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