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스 파드칼레 지방의 아르델로 성에서 열린 제5회 미드서머 페스티벌. 라모의 시대로 돌아간 듯
완벽히 재현된 바로크 시대와 영국과 프랑스의 오랜 음악적 교류가 한자리에 피어난 현장
영국과 프랑스 외교 전쟁의 현장, 파드칼레에서 피어난 음악
지난 6월 13일부터 7월 5일까지 영국과 마주 보고 있는 프랑스 파드칼레 지방의 아르델로 성에서 제5회 미드서머 페스티벌이 열렸다. 이 페스티벌의 예술감독 세바스티앵 마이윅은 “미드서머란 타이틀은 셰익스피어의 ‘한여름 밤의 꿈’에서 차용했다. 페스티벌이 여름 동안 열리기 때문에 붙여진 이름이다”라고 말했다.
이번 페스티벌 프로그램 중에선 파비오 비온디와 에우로파 갈란테가 연주한 비발디의 바이올린 협주곡 ‘라 스트라바간차’, 에마뉘엘 아임이 주도한 ‘카르트 블랑슈 라모’가 눈길을 끌었다.
폐막 전날인 7월 4일 아름다운 정원이 개관됐고, 성대한 정원의 불꽃놀이도 극찬을 받았다. 12세기에 세워진 아르델로 성은 영국 헨리 8세와 프랑스의 프랑수아 1세의 외교 전쟁이 있던 곳이다. 이후 다시 개조됐고, 아름다운 경관과 역사적 배경 때문에 찰스 디킨스와 영국 왕실 가족들이 즐겨 찾았던 명소다. 자연스레 이 페스티벌은 영국과 프랑스 간의 유대 관계를 다지는 특성을 강조하는 프로그램으로 발족됐다.
“영국과 프랑스 음악은 많은 연관이 있습니다. 두 나라의 음악가들은 오래전부터 영국과 프랑스를 오가며 작업했으니까요. 우리 페스티벌의 특성은 영국 바로크 레퍼토리에 중점을 두는 것입니다. 헨델과 퍼셀 외에도 앞으로 발굴해야 할 영국 작곡가 레퍼토리가 많습니다. 연주가 뜸한 20세기 작곡가인 제럴드 핀지나 랠프 본 윌리엄스의 연주가 그 예입니다.”
세바스티앵 마이윅의 설명처럼 올해는 6월 13일과 21일 양일에 걸쳐 그 두 작곡가의 작품이 연주됐다.
생동감 있는 인형들의 움직임
필자가 지난 6월 27일에 관람한 인형극 ‘이폴리트와 아리시’는 상상을 초월할 정도였다. 베르사유 바로크 음악 센터(CMBV)가 기획한 ‘라모의 해’ 프로그램으로 바로크 시대의 오페라 패러디를 재현한 수준 높은 작품이었다. 공연 전 이번 제작에 참가한 연극 역사가 프랑수아즈 뤼벨린은 18세기 바로크 당시 팽창했던 오페라 패러디를 ‘음악이 담긴 코믹 연극’이라고 정의했다. 오페라의 대본과 캐릭터를 변형했고 장치에는 희극적인 요소를 넣었지만, 음악만은 우스꽝스럽지 않았다고 설명했다.
‘작은 성’이라는 뜻을 지닌 인형극의 무대는 시각적으로 놀라웠다. 1미터 가까이 되는 거대한 체구의 인형들은 각각의 캐릭터를 생동감 있게 묘사했다. 1막의 원근법이 뛰어난 신전 장치는 바로크적인 화폭에서 따왔다. 거친 파도가 일렁이고 괴물이 나오는 4막에서는 바로크 오페라적인 파도 장면이 연출됐다. 요즘은 인형극 하면 어린이를 위한 대중적인 작품으로 여겨지지만, 바로크 시대의 마리오네트극은 이번 기획처럼 아주 호화스러울 수 있다는 것이 뤼벨린의 말이다.
이번 공연은 18세기 텍스트를 변형하지 않았다. 오페라적인 부분과 대사로 이어지는 연극적인 부분으로 구성됐다. 하지만 캐릭터들은 라모 오페라에 쓰인 것과는 달랐다. 극 중 테세의 여성 편력을 꼬집으며, 이폴리트에 대한 욕정이 가득한 페드라를 언급하는 장면에서는 ‘프레르 자크’(어린이들이 부르는 동요 같지만, 사실은 성적인 내용을 담고 있다) 같은 대중적인 멜로디가 연주됐다. 음악적인 부분은 18세기의 민중음악과 라모의 음악으로 콜라주된 몽타주를 시도했다.
바로크의 매력에 빠져드는 시간
다음 날 에마뉘엘 아임과 콩세르 다스트레 단원들이 펼친 카르트 블랑슈는 오후 3시에 시작해 자정이 넘은 후에야 끝났다. 리허설 후 짧게 인터뷰에 응해준 아임은 “제게 라모의 서거 기념식은 아주 중요한 날입니다. 20년 전에 비해서 라모 연주가 활발해지긴 했지만, 그의 천재성에 걸맞을 만큼 알려져 있진 않습니다. 라모는 프랑스 음악사에서 아주 미래파적인 인물입니다”라고 말을 했다.
이어서 그는 “우리는 바로크 무용수들과 자주 작업합니다. 라모 댄스 클럽에서는 궁정에서 바이올린과 무용수들이 어떻게 춤을 추었는지, 바로크 음악과 춤이 어떻게 접목되는지를 보여주고 싶습니다”라고 말했다. 그 결과 어른 아이 할 것 없이 이날의 청중은 옛날 궁정에서 추던 ‘콩트르댄스’(열을 지어 파트너를 바꾸어가며 춤추는 컨트리댄스의 기원이 된 프랑스 춤)를 배울 수 있었다.
‘라모와의 티타임’은 하프시코드를 신중히 솔로 악기로 승화시킨 라모의 업적을 기리고 있다. 그의 작품은 화성적 차원에서 곡을 써서 무척 어렵다. 애프터 라모에서는 라모가 작곡가 이전에 하프시코드 주자였던 점에 주목을 했다. “하프시코드가 연주하는 아주 편안한 분위기를 창출해보고 싶었다”는 아임의 말처럼 아름다운 하프시코드 걸작들이 연주됐다.
이어진 저녁 연주는 ‘시테라 섬으로의 여행’이라는 회화적인 테마로 구성됐다. 아임은 “아주 여흥적인 유럽 분위기를 명시하기 위한 제목입니다. 라모의 작품은 우리를 모르는 곳으로 여행하게 합니다”라고 말했다.
솔리스트로는 두 영국 성악가인 소프라노 캐서린 왓슨과 오트 콩트르인 에드 라이언이 열연했다. 캐서린 왓슨의 유연한 프레이징과 고음 테크닉, 특히 프랑스어 딕션은 환상적이었다. 기악 파트가 나올 때도 그녀의 감정이입은 풀리지 않았고, 완벽히 캐릭터에 몰입하고 있었다. 에드 라이언은 발성상 피곤한 느낌이 들었다. 이 둘의 듀오는 음색적으로 아주 잘 어울렸고, 콩세르 다스트레 단원들의 기량도 뛰어났다. 여기에 선이 굵고도 섬세한 뉘앙스와 감성적인 디테일을 잡아낸 아임의 예리한 카리스마가 이날 청중을 감동시키는 거대한 증폭제로 작용했다. 앙코르곡으로 헨델의 ‘아시스와 갈라테아’ 중 ‘행복한 우리’를 연주했고 장내는 끊이지 않는 흥분으로 넘쳤다.
사진 Midsummer Festiva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