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시향 부지휘자 최수열

우리 시대의 새로운 지휘봉

기사 업데이트 시간: 2014년 8월 1일 12:00 오전

“저는 ‘현대음악’만 하는 지휘자가 절대 아닙니다. 그러나 ‘현대음악도’ 훌륭하게 소화할 수 있는 능력을

갖추기 위해 노력하고 있습니다.” 지난 2012년 ‘객석’이 선정한 ‘차세대를 이끌 젊은 예술가 10인’에

이름을 올렸던 최수열의 말이다. 그가 지난 7월 서울시향 부지휘자로 임명됐다

지휘자가 되기 위해서는 피아노나 바이올린 등 기악이나 작곡을 거쳐 지휘 공부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 하지만 지휘자에게 악기란 오케스트라다. 아무리 음악적 능력이 뛰어나도 지휘대 위에 서지 않으면 지휘자가 아니다. ‘악기’를 만질 수 있는 기회는 쉽게 주어지지 않는다. 오케스트라를 지휘할 수 있는 기회를 얻는다는 것은 지휘자에게 실력 향상의 계기가 됨은 물론 또 다른 연주 기회를 보장해주는 매우 훌륭한 스펙이다. 지휘자가 단원들을 모집해 직접 오케스트라를 만들면 자기 마음대로 하고 싶은 곡을 연주할 수 있겠지만 악보 들여다볼 시간은 거의 없을 것이다. 단원 모집과 기획은 물론 단원들에게 봉급을 주기 위해 협찬사를 구하느라 동분서주해야 하기 때문이다.

역사와 전통이 있는 오케스트라의 음악감독을 맡아 자기 마음대로 연주곡목을 정할 수 있는 경지에 다다르기 전에는 통과해야 할 단계가 있다. 대부분의 지휘자들 경우처럼 부지휘자를 거치는 것이다. 레너드 번스타인이 1943년 뉴욕 필하모닉에서 아르투르 로진스키의 부지휘자로 있다가 객원 지휘를 위해 오기로 했던 부르노 발터가 병석에 드러눕자 공연 하루 전에 통보받고 대타로 지휘봉을 잡아 스타덤에 오른 얘기는 유명하다. 도이치 카머필하모니의 음악감독 대니얼 하딩은 버밍엄 심포니와 베를린 필에서 각각 사이먼 래틀·클라우디오 아바도의 부지휘자를 지냈다. 뉴욕 필 음악감독 앨런 길버트는 1995년부터 2년간 클리블랜드 오케스트라에서 크리스토프 폰 도흐나니의 부지휘자로 있었다. 정명훈은 1979년 LA 필하모닉에서 카를로 마리아 줄리니의 부지휘자로 지휘 인생을 시작했다.

악단에 따라, 계약 조건에 약간 차이가 있긴 하지만 부지휘자(assistant conductor)는 음악감독을 보좌해 청소년 음악회나 찾아가는 음악회 등을 지휘하고 무대 리허설이나 녹음 때는 모니터링 요원으로 활약한다. 거장들의 리허설을 가까이서 지켜보는 것만큼 좋은 공부는 없다. 정기연주회 리허설이나 연주 때는 항상 대기해야 한다. 운 좋으면 번스타인의 경우처럼 음악감독이나 객원 지휘자가 갑작스럽게 무대에 설 수 없을 경우 ‘대타’로 출연할 수도 있다. 유명 교향악단에서 세계적인 지휘자의 부지휘자로 활동했다는 사실은 자신의 지휘 경력에도 나쁠 게 없다.

지난 7월 1일 서울시향(음악감독 정명훈)의 부지휘자로 부임한 최수열은 비교적 수월하게 지휘 경력을 쌓아온 행운아다. 대학생 시절, 그는 한국지휘자협회 주최 지휘 캠프를 통해 수원시향과 센다이 필하모닉을 지휘한 바 있다. 2012년에는 예술의전당 제야음악회를 지휘했다. 2012년 ‘객석’이 선정한 ‘차세대를 이끌 젊은 예술가 10인’에 지휘자로는 유일하게 뽑힌 것은 매우 당연한 일이다.

서울시향은 2009년부터 지난해 말까지 성시연(현 경기필하모닉 상임지휘자)이 부지휘자로 활동했다. 하지만 엄밀히 말해서 두 사람의 직책은 다르다. 우리말 호칭은 ‘부지휘자’로 같지만 성시연은 ‘associate conductor’의 역할을 해왔다. 정기연주회도 매년 서너 차례 지휘하는 ‘수석 객원 지휘자’ 같은 성격이었다.

부지휘자(assistant conductor)를 가리켜 상주 지휘자(conductor in residence)로 부르는 교향악단도 있다. 음악감독은 다른 2~3개 도시에서 음악감독이나 수석 지휘자를 겸하고 있는 경우가 많아 부지휘자가 유일하게 붙박이로 같은 도시에서 생활하기 때문이다.

서울시향 부지휘자 최수열의 임기는 1년. 데뷔 무대는 오는 11월 5일 ‘서울시향 음악 이야기’다. 초등학생들에게 사전 에티켓 교육 책자 배부·악기 체험·예절 교육·공연장 견학·연주회 감상 등의 기회를 제공하는 교육 프로그램이다.

그는 한국예술종합학교에서 정치용 교수를 사사한 뒤 드레스덴 국립음대 최고연주자 과정을 거쳤다. 2007년 브장송 지휘콩쿠르 결선에 진출했으며 2010년 세계적인 현대음악 연주단체 앙상블 모데른이 주관하는 국제 앙상블 모데른 아카데미 지휘자 부문에 아시아 출신으로는 처음으로 선발되어 1년간 부지휘자로 활동했다. 서울시향 연습실에서 최수열을 만나 이번 임용과 추후 활동에 대한 이야기들을 들어보았다.

 

서른다섯 살 나이에 부지휘자가 됐다.

첫 ‘직장’이다. 아직 젊은 나이라고 생각한다. 세계적인 지휘자가 이끄는 국내 정상의 교향악단인 만큼 배울 게 많다. 이 시기를 새로운 도약의 발판으로 삼고 싶다. 그래서 기간도 1년으로 정했다. 물론 재계약도 가능하다.

서울시향과의 첫 인연은 어떻게 맺게 됐나.

2009년 초등학교 방문 프로그램 ‘오케스트라와 놀자’를 지휘했다. 2011년부터 2013년까지 현대음악 시리즈 ‘아르스 노바’에서 부지휘를 맡았고, 2012년 어린이대공원에서 열린 어린이날 음악회, 마티네 콘서트 형식의 아침 음악회를 지휘했다. 지난해 가을에는 정명훈의 마스터클래스에서 1위로 뽑혔다. 어찌 보면 부지휘자 오디션이었던 셈이다.

언제부터 지휘자를 꿈꿨나.

작곡가(최동선)의 아들로 태어나 어릴 때 현대음악만 듣고 자란 것 같다. 클래식은 모두 현대음악인 줄 알았다. 고1 때 우연히 음악 잡지 부록 CD에 실린 모차르트의 호른 협주곡 1번을 듣고 흠뻑 빠졌다. 다양한 악기 소리의 배합이 듣기 좋았고 음악을 제대로 배우고 싶어졌다. 어릴 때 피아노를 치긴 했지만 그 전까지는 팝이나 가요를 즐겨 들었다.

청소년 음악회에선 정기연주회와는 달리 레퍼토리 선정에 고민이 많겠다.

연주 시간이 짧고 특히 방문 음악회는 무대도 좁아서 단출한 편성의 짧은 곡 위주로 들려줘야 한다. 그렇다고 해서 악장을 발췌해서 연주하진 않는다. 교향악단 사무국에서도 대중 취향을 강요하지 않는다. 사실 전 악장을 연주해도 프로코피예프 교향곡 1번 ‘고전’은 15분, 비제 교향곡 C장조와 베토벤 교향곡 1번은 각각 30분밖에 걸리지 않는다.

아무래도 당분간 외부 연주가 더 많겠다.

올해까지는 이미 계약된 연주 일정을 소화해야 한다. 3월부터 올해 말까지 매달 셋째 주 목요일 오전 11시, 성남아트센터 마티네 콘서트를 지휘한다. 수도권 교향악단이 번갈아가면서 출연하는데 중간 휴식 없는 1시간짜리 프로그램이다. 협주곡 전 악장에 서곡까지 연주하고 나면 25분 정도 남는데 긴 서곡을 연주하든지 아니면 짧은 교향곡이나 교향시를 연주한다. 가급적 발췌 악장은 연주하지 않으려고 한다. 그러다 보니 정기연주회 때 듣기 힘든 곡을 고를 수 있다. R. 슈트라우스의 교향시 ‘죽음과 변용’ 같은 애매한 길이의 곡이 잘 어울린다.

프로그램을 구성할 때 신경 쓰는 부분은.

마티네 콘서트의 경우 매달 주제를 정해서 고르다 보니 각 작품 사이의 음악적 흐름이 가장 중요하다. 8월에는 ‘자화상’이라는 주제로 모차르트의 ‘디베르티멘토’, 엘가의 첼로 협주곡, 슈베르트의 교향곡 8번 ‘미완성’을 연주한다. 개인적으로는 모차르트보다 하이든, 베토벤보다 슈베르트, 브람스보다 슈만, 말러보다 R. 슈트라우스에 더 애정이 간다. 하이든은 변변한 에디션 악보도 없어 새로 작업하다시피 해야 하지만 그에 비해 연주 효과는 돋보이지 않는다. 그래도 지휘자의 개성을 발휘할 수 있어서 좋다. 최근 관객 설문조사에서 서울시향이 말러나 브루크너 등 후기 낭만주의 음악만 자주 연주한다는 의견이 있는 걸 봤다. 찾아가는 음악회에서 하이든·모차르트·슈베르트 등 고전주의 레퍼토리를 자주 연주하려고 한다.

서울시향 부지휘자와 지방 교향악단 상임 지휘자 중 하나를 고른다면.

상임 지휘자다. 서울시향은 국내에서 가장 시스템이 잘 갖춰진 오케스트라여서 음악 외적인 면에서도 배울 점이 무척 많지만, 지방의 낙오된 오케스트라의 수준을 올리고 싶다. 악단도 지휘자도 모두 발전할 수 있으면 좋겠다.

서울시향의 장점을 꼽아달라.

단원들의 독주 기량이 매우 탁월하다. 서로의 소리를 잘 들으며 연주에 능동적으로 임하는 자세를 높이 사고 싶다.

사진 심규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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