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은미의 ‘초생경극 무舞/無·언言’

삶의 낙천성을 불러내는 ‘죽음’으로서의 춤추기

기사 업데이트 시간: 2014년 8월 1일 12:00 오전

안무가 안은미는 광주 시민 100명에게 ‘죽음’에 대해 물었다. 그리고 그 대답이 담긴 소리를 바탕으로 20여 명의 광주 시민을 춤추게 했다. 죽음의 환기에도 불구하고 무대에는 삶의 낙천성과 긍정성이 범람했다

광주에서 ‘죽음’이란 주제는 끄집어내자마자 바로 ‘80년 광주’라는 깔때기로 빨려든다. 순식간이다. ‘죽음=80년 광주’라는 등식은 도시 광주에서뿐만 아니라 20세기 후반 남한 사회의 멘탈리티 역시 강하게 지배하고 있었다. 기억은 오래 지속되는 법이어서 지금의 시점에서도 최소한 광주에서 ‘죽음’이란 주제는 정공법으로 다루기가 곤란하다. 이러한 무의식의 판이 깔려 있음에도 대담 혹은 진실의 태도로 돌파해가는 박력을 보여준 작품이 있었으니, 그것이 바로 ‘초생경극 무舞/無·언言’(6월 27일 광주교대 풍향문화관 하정웅아트홀)이다.

이 작품은 조선의 평론가 신흠의 말을 빌리면, 이렇다. “절품(絶品)이 있고, 묘품(妙品)이 있는가 하면 신품(神品)이 있는데, 신품은 사람의 힘만으로는 안 된다.”

‘초생경극 무舞/無·언言’(이하 ‘무언’)은 사람의 힘만으로 가능한 과정이 아니었고, 사람의 힘만으로 가능한 실제 공연이 아니었다. 이것은 과장이 아닌 것이, 이 작품 자체가 ‘죽음’을 상대해가는 방식이 절묘한 형식을 취하면서도 동시에 완전히 무형식의 형식처럼 개방된 스탠스를 취하고 있기 때문이다. 어떻게 해서 이런 극찬을 일삼지 않으면 안 되는 것인가.

일단 안무가 안은미는 철학자 자크 랑시에르가 주창했던 ‘무지한 스승’에 가까웠다. 그는 춤추고자 하는 욕망을 길어 올려 자발적으로 참여한 광주 시민 20여 명에게 춤을 가르치지 않았다. 좁은 의미의 안무(按舞)는 아마추어이든 프로든 “춤의 악보를 안무가의 의도대로 입히는 것”이지만, 이번에 그의 안무는 넓은 의미의 안무로서 가령 안무(案舞) 즉 ‘춤의 사유’였다고 하겠다. 최근 유행하는 커뮤니티 댄스는 ‘춤을 추면 만사형통’이라는 식의 힐링 프레임이 작용하고 있지만, 그것은 속물적인 데가 있다. 안무가 안은미는 춤꾼이 아닌 문외한들이 주눅 들지 않고 스스로의 몸의 주권을 그대로 재확인하는 몸짓, 스스로 만들어서 그 창작의 환희를 자기 순환시키는 춤을 참여자들에게 촉발했고 실제로 현실화했다. 이것은 솔직히 경이로움이었다. 왜?

무대와 객석 사이를 허물고 관객들에게 난입한 ‘죽음’

100명의 광주 시민에게 ‘죽음’에 관한 세 가지 질문을 던졌다. 하나, 죽음이란 무엇인가. 둘, 당신은 어떻게 죽고 싶은가. 셋, 당신이 죽고 난 다음에 가고 싶은 곳은 어디인가. 이 질문들에 대해 남녀노소가 각양각색의 인터뷰를 했고, 그 녹음된 사운드는 그대로 사운드아트였다. 그 사운드아트가 무대 위에서 구체음악, 즉 서구 현대음악에서 피에르 셰페르가 창안한 협화음 바깥의 음들을 수집한 테이프음악으로서 연주되었는데, 광주인지라 해학과 시김새 있는 내용이 많았다. 가볍지 않은 주제였음에도 ‘죽음’ 자체를 담담하게 마주할 수 있는 것은 아무래도 그 매체가 사운드였기 때문이다. ‘암(闇)’이라는 글자의 갑골문은 “사당의 문(門) 저편에서 신의 음음(音音)한 소리가 들려온다”는 것인데, 바로 이 공연에 사용된 사운드아트가 ‘암암(闇闇)’했다. 그때 앞서 스스로 자아를 위해서 자기 안무를 창작하고 전개하는 이 20여 명의 퍼포머가 그 연주에 맞춰서 립싱크와 춤을 공연하기 시작한 것이다.

많은 사람의 인터뷰가 대동소이하면서도 또한 예리하게 차이가 있었는데, 그 차이와 반복이 낳은 리토르넬로, 즉 반복구때문에 립싱크와 춤은 리드미컬하면서도 형상을 그리는 식이었다. 사실 이러한 식으로 사운드 트랙(소리 영역)과 무브먼트 트랙(동작 영역)을 분리하고, 그 분리된 ‘간극’을 음미하면서 새롭게 재접합시키는 공연은 세계적인 컨템퍼러리 공연 문법으로서, 가령 일본의 오카다 토시키 같은 연극연출가의 작업으로서 널리 알려져 있다. 안무가 안은미는 이 공연 문법을 공공의 것으로 가져와서 죽음의 무서움(“죽는 과정이 무섭다”)과 두려움(“죽기에는 아직 할 일이 많다”)을 말하는 증언들과 무대 위에서의 실제 공연을 신화적이면서 샤머니즘적인 숭고함이 감돌도록 연결했다. 그는 코디네이터로서의 안무가로서도 뛰어났지만, 무대 위에서 새로운 관계망을 맺도록 한 네트워커로서 더욱 탁월했다.

가령, 한 할머니가 죽음 이후 자신의 새로운 삶을 설계할 때, 무대에는 중년 남자가 서서 그 대사를 고스란히 자신의 몸으로 받아들여 체득된 춤을 아낌없이 춘다. 또는 어린 소녀의 경우에도 그 이른 죽음에 대해 나이 들어가는 여인이 립싱크를 하면서 자신의 몸 안에 그 소녀의 지나온 시간이 축적되어 있음을 증언하는 춤으로 재현해낸다. 이러한 상황들의 전개는 이 ‘무언’의 정신이 어디로 가 닿는지를 다시 생각하게 했다. 메타적인 방식도, 비평적인 방식도 아닌 입장에서 “죽음이란 무엇인가”란 질문을 던지는 것이다. 전혀 다른 입장의 사람들을 관련지어주는 ‘윤회’의 실행이자 그 ‘윤회’의 전생과 현생과 내생 사이의 벽을 허물고 무대 위에 그대로 새로운 관계망의 현실로 나타날 수 있도록 한 것이 바로 ‘죽음’이었다.

그리고 이 방법으로서의 ‘죽음’은 점차 무대와 객석 사이 소위 ‘제4의 벽’마저 허물고 관객들 속으로 난입하기 시작했다. 무대 위의 감흥(感興)-이것은 “술을 뿌려서 깨어난 그 토지신이 소원을 들어준다”(백천 정)에서 유래하는-상태가 자발적 참여로서 자신의 춤을 추는 광주 시민-퍼포머들이 일종의 코뮤니타스가 되었을 때 객석 역시 그 연루된 관객들로 공명하고 감염되기 시작했다(코뮤니타스란 숭고한 감흥이 감돌아서 의기투합된 특정한 커뮤니티를 말한다).

이제 이 ‘죽음’은 뭐라고 할까. 죽음 이후에도 지속되는 충동의 에너지, 가령 프로이트 식으로 말하면 ‘죽음 충동’에 가까운 것이었다. 죽음의 환기에도 불구하고 지속되는 삶의 낙천성, 긍정성의 흐름이 타고난 마음씨처럼 범람하기 시작하는 것이다. 이것은 어느 시인이 읊었던 마음의 정경과 세상의 풍경이 하나 되는 타입이라고 할까. 죽음도 어쩌지 못해서 죽음 너머에서 다시 삶이 오래 지속되듯이. 이렇게, 놀랍게.

꽃귀신이 생겨나서 살다 간 자린/꽃귀신의 귀신들이 또 나와 살고

사슴의 귀신들이 살다 간 자린/그 귀신들의 귀신들이 또 나와 살고

– 서정주의 ‘고조(古調)’ 중에서

사진 옥상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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