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 생트 페스티벌

실속 있는 축제를 만드는 문화 프로젝트의 힘

기사 업데이트 시간: 2014년 8월 1일 12:00 오전

이번 페스티벌에서 알랙상드르 타로가 선보인 바흐 ‘골드베르크 변주곡’은 거대한 교향곡 같은 웅장함을 선사했고, 헤레베헤가 지휘하는 아바예 청소년 오케스트라는 뛰어난 기량을 선보이며 축제의 활기를 더했다


▲ 필리프 헤레베헤의 지휘에 젊은 음악가들은 한 치의 흐트러짐 없이 그를 받쳐주었다

올해 생트 페스티벌이 지난 7월 11일부터 19일까지 아바예 오 담에서 열렸다. 1981년부터 2006년까지 예술감독 필리프 헤레베헤를 중심으로 하는 고음악 페스티벌로 출발한 이 페스티벌은 현재 아바예 오 담 문화 프로젝트의 하나로 확실한 정체성을 찾았다. 현재 예술감독은 스테판 마치예프스키다. 지난해에는 9일 동안 무려 1만3천 명의 관객을 유치하는 기염을 토했는데, 올해도 그 기록을 능가할지에 대한 기대감을 갖고 이곳을 찾았다.

필리프 헤레베헤가 지휘하는 청소년 오케스트라 또한 이곳 아바예 오 담의 교육 프로그램으로 흡수되었다. 그들은 아바예 청소년 오케스트라라는 명칭으로 트레이닝을 받고 있다. 그래서 1년 내내 음악이 끊이지 않는 이곳은 ‘아베이 오 담, 라 시테 무시칼레’ 즉, ‘아바예 오 담, 음악의 도시’라는 이름으로 불리게 되었다. 그곳 입구를 들어서자 플라타너스 나무 사이로 걸린 거대한 텐트 아래 자리 잡은, 의자와 테이블이 놓인 거대한 테라스가 인상적이었다. 야외 재즈 연주가 열리는 날은 음악당으로도 변신한다. ‘음악의 도시’라는 명칭과 잘 어울리는 곳이다.

‘골드베르크 변주곡’에 환상적인 효과를 부여한 아바예 오 담의 음향

7월 12일 오후 1시에는 알렉상드르 타로의 독주회가 열렸다. 타로는 바흐 ‘골드베르크 변주곡’으로 프로그램을 꾸몄다. 필자는 음향이 뛰어난 아바예 오 담에서 타로의 연주를 꼭 듣고 싶었다. 넥타이 없이 하얀 셔츠에 검은 정장 차림으로 무대에 등장한 타로는 무척 창백해 보였다. 그 창백함만큼 첫 아리아는 투명했다. 글렌 굴드의 획일적인 균질성에 입각한 해석이 돋보였다. 타로는 내성들에 색다른 공간미를 강조했다. 그러나 내성들에 역동적인 움직임을 연출하려는 의도에서는 지나친 장식음의 분절이 있었다. 페달을 풍성하게 사용한 점은 뜻밖이었고 각기 다른 음색으로 연주되는 듯한 음색의 유희를 펼친 타로의 감수성은 감탄할 만했다. 필자의 생각대로 아바예 오 담의 음향은 이 작품에 환상적인 효과를 부여해 마치 오르간 연주를 듣는 듯한 느낌을 주었다. 또 화성적 주음의 강조로 자주 밸런스가 깨어지는 경우도 나타났다. 잠 못 이루는 누군가를 위해 쓰인 하프시코드 작품이라기보다는 거대한 교향곡 같은 웅장함이 있었다. 찬성하든 아니든 이 점에서 타로의 독보적인 해석이 엿보였다.


▲ 독보적인 해석이 엿보인 알렉상드르 타로

오후 7시 30분에는 필리프 헤레베헤의 지휘로 아바예 청소년 오케스트라(JOA) 연주가 있었다. 시대악기를 쓰는 이 오케스트라의 음색은 독특했고 금관 주자들은 틈만 나면 악기를 청소했다. 이들은 1시간 30분이란 긴 연주에도 잡소리 한 번 나지 않는 뛰어난 기량을 선보였다. 베토벤의 교향곡 4번 중 1악장은 현의 저음 멜로디로 시작되는데, 화성적 밀도감과 색감이 장중하게 표출되었다. 발전부가 시작하는 부분에서 같은 동기가 반복되는데 헤레베헤의 지휘는 완전히 가라앉았다. 그러나 한 치의 흐트러짐도 없이 젊은 음악인들은 그를 받쳐주었다. 이는 잘 훈련된 오케스트라만이 연출할 수 있는 특권이다.

오후 10시에는 장 프랑수아 에세르의 독주회가 열렸다. 그중 압권은 프레데리코 몸포의 ‘무지카 칼라다’였다. 일련의 음들로 구성된 주제는 연주 음색과 방향성을 바꾸며 자정까지 20번 넘게 반복되었다. 이런 최면적인 정체성과 변화무쌍한 방향성을 지닌 구조는 바흐와 흡사했다. 음색적으로 드뷔시나 라벨의 환상적이고도 관능적인 미학에 가까웠던 이 작품은 아주 인상적이었다.

생 피에르 성당을 메운 아름다운 메아리

7월 13일의 하이라이트는 생 피에르 성당에 울려 퍼진 힐드가르트 폰 빙겐의 ‘폐쇄된 정원’이었다. 여성 아카펠라 앙상블인 카엘리스 앙상블은 놀라운 다성음악을 들려주었다. G음을 주음으로 거대한 오버톤을 소화하며 유니즌으로 이어졌다. 폰 빙겐이 사모한 하늘과의 만남, 빛과 반짝이는 천상의 이미지는 음악 속에서 거울처럼 반영되고 있었다. 이어서 큰북과 함께 등장한 자드 물타카는 직접 지휘를 하며 자신의 작품을 연주했다. 그 테이프는 전자 음향 상태로 생 피에르 성당 연주 현장에서 마치 메아리처럼 실제 연주와 믹스되었다. 20여 분이 걸리는 작품 끝에는 무엇인가가 와장창 무너지는 소음이 녹음을 통해 들려왔다. 물타카는 이것이 하늘이 무너지는 것을 뜻한다고 답했다.

기대를 모았던 마지막 연주인 에르메스 현악 4중주단은 청중의 큰 갈채에도 불구하고 아쉬움이 남았다. 이날의 무대는 요즘 부쩍 스타덤에 오른 뛰어난 기량의 연주자들로 구성됐는데, 제1바이올린은 오메르 부셰가 리드했다. 안토니 콘도의 첼로는 안타까웠지만 그의 예민하고도 고운 프레이징 감각만은 정말 뛰어났다. 그런데도 제1바이올린에 완전히 압도돼 수줍기만 했다. 반면 그들의 앙상블 감각은 놀라웠다. 단, 제1바이올린의 집요한 리더십은 슈베르트 현악 4중주 15번에서 한계를 드러냈다. 부셰는 진 빠진 성악가처럼 고음에서 음정 불안과 피곤함을 보였다. 연주는 2시간이 흘러 자정을 넘기고 있었다.


▲ 청중의 갈채에도 아쉬움이 남았던 에르메스 현악 4중주단

성공적인 운영 시스템을 자랑하는 아바예 오 담은 기업 메세나와 유럽 공동체의 후원을 확실하게 받고 있다. 그들의 운영 철학은 빚지는 거창한 페스티벌보다 작더라도 실속 있고 모든 이에게 사랑받는 페스티벌이 되는 것이다. 오전 11시부터 자정이 될 때까지 빠지지 않고 참석하는 고정 관객층이 바로 이 페스티벌이 자랑하는 저력이다.

사진 Festival de Saint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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