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월 24일의 제주항. 엄마와 함께 부산에서 온 그 어린 소녀도 세월호의 죽음이 어떤 건지 확연히 알고 있는 듯했다.
4월 16일의 봄 바다. 그곳은 혼란스러웠다. 시간이 갈수록 죽음의 무늬는 점점 선명해져갔다. 사람들은 그들을 위해 노란 리본을 달았고, 노란 풍선이 가라앉은 배 끝을 잡고 하늘로 들어 올리는 기적을 바랐다. 하지만 기적은 일어나지 않았다.
며칠 전에 만난 백건우는 말했다. 세월호 참사가 일어난 100일 뒤, 제주항에서 자신만의 방법으로 추모할 예정이라고, ‘내가 피아노를 치는 곳은 원래대로라면 단원고 학생들이 발을 디뎠어야 하는 곳’이라고 말이다. 이야기를 건네면서도 그는 아이들이 도착하지 못한 곳에 산 자로서 발을 내딛고, 어떤 마음으로 그 피아노 앞에 앉아야 할지 고민하고 있는 듯했다.
세월호 참사 100일째 되던 제주항. 백건우가 나선 추모의 장은 조용했다. 영화배우, 정치 관계자들이 보였다. 그들의 자리는 객석 맨 앞에 마련됐다. 시작 전, 죽은 자들을 기리기 위해 모인 산 자들이 제 권력에 맞는 자리를 찾아 헤매는 모습에 이유 모를 씁쓸함이 묻어났다.
오후 7시 30분이 되자 백건우가 객석 뒤편에서 조용히 등장했다. 그는 피아니스트가 아니었다. 남들이 두 손 모아 기도할 때, 그는 두 손으로 건반을 눌러 애도를 표하는 사람에 불과했다. 이날, 공연장에서 흔하게 들리는 박수갈채는 없었다. 여름 바람이 물결에 닿는 소리와 불규칙하게 오고 가는 배 소리만 들렸다.
백건우가 베토벤의 ‘비창’을 연주하기 시작했다. 그의 모습 속에서 베토벤의 모습이 떠올랐다. 어느 날 산책길을 나선 베토벤. 어디선가 너무나 가슴 아픈 울음소리가 났다. 베토벤은 그 집을 찾아 들어갔다. 병으로 죽은 자식 앞에서 슬픔에 빠져 있는 어머니의 모습이 보였다. 뭔지 모를 무력함을 느낀 베토벤은 그 방에 있던 피아노 앞에 앉아 즉흥적으로 치기 시작했다. 한 곡이 끝난 후 조금이라도 위로가 되기를 바란다고 말하곤 그곳을 떠났다. 추모객이 앉은 객석 가장 뒤편에 배우 윤정희가 보였다. 그녀는 조용히 손을 모으고 있었다. 기도하는 모습이었다.
이어 리스트의 ‘잠 못 이루는 밤, 질문과 답’이 울려 퍼졌다. 곡의 도입부에 가설무대 옆을 지나던 어선의 엔진 소리가 맞물렸다. 엔진 소리는 매우 심하게 컸다. 백건우의 피아노는 그 소리를 향해 거세게 질문을 던지는 듯했다. ‘이 땅의 아이들, 여기에 도착했어야 할 아이들은 도대체 지금 어디에 있느냐’고 말이다.
배 소리, 그 엔진 소리는 어떤 답처럼 들려왔다. 중언부언하는 답이었다. 분노에 답답함에 다그친 백건우는 힘이 빠진 듯했다. 리스트의 ‘슬픔의 곤돌라’를 치는 그는 건반에 고개를 파묻고 있었지만 텅 빈 가슴은 먹먹한 허공을 향해 있는 듯했다. 조용한 하늘 위로 비행기가 날아갔다.
라벨의 ‘죽은 왕녀를 위한 파반’과 함께 노을이 지고 있었다. 리스트의 ‘순례의 해’ 중 ‘힘을 내라’에 다다르자 연주는 산 자들을 향한 것이 되었다. “우리는 죽음의 기억을 안고 있다. 하지만 다시는 이런 죽음이 되풀이되지 않도록 힘을 내자”라고 말하고 있었다.
바그너의 ‘트리스탄과 이졸데’ 중 ‘사랑의 죽음’이 흐르는 동안 오후 7시의 끝과 8시의 첫머리가 만나고 있었다. 7시와 8시의 사이처럼 세상의 모든 것이 경계를 넘고 있었다. 희미하던 빛은 어두운 밤으로, 바다의 파란 물결은 밤의 허공 속으로. 하지만 죽음의 경계를 넘어 삶으로 건너오지 못하는 이들을 위해 백건우는 메인 선율을 슬프게 부여잡고 있었다.
추모의 연주는 모두 끝났다. 그의 얼굴은 땀과 눈물로 뒤범벅되어 있었다. 백건우는 조용히 무대에서 내려와 추모회장 밖으로 걸어 나갔다. 박수 소리는 없었다. 침묵뿐이었다. 그리고 그는 차에 올라 조용히 그곳을 떠났다.
그가 건반에서 손을 뗀 채 의자에 머문 3분 동안, 짙은 여운이 제주항을 맴돌았다. 잔잔했던 물결이 방조제로 몰려와 제 몸을 비비는 소리가 들렸다. 서글프게 들렸다. 자신들을 위로하는 소리인 줄 알고 영혼들이 물결을 타고 와 제 몸을 쓰리게 비비는 것 같았다. 추모객들은 추모 의식이 끝난 줄도 모르는 듯했다. 시간이 지나자 그들은 짙게 남은 여운 사이로 침묵과 함께 하나둘 빠져나갔다.
그 아이··· 공연 전에 만난 아이가 보였다. 국화를 바다 물결에 던지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