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1회 대관령국제음악제 저명연주가 시리즈

넉넉함과 단단함으로 빛난 ‘오 솔레 미오’

기사 업데이트 시간: 2014년 9월 1일 12:00 오전

지난해 북유럽의 음악들을 선보였던 음악제는 올해 그 방향을 남쪽으로 틀어 이탈리아와 스페인의 레퍼토리를 뜨겁게 선사했다


▲ 구천/국립합창단

뭐니 뭐니 해도 여름은 화려함의 계절이다. 따지고 보면 여름에 떠나는 휴가도 더위를 피하기보다 즐기는 게 더 큰 목적이 돼야 할 듯하다. 휴양지에서, 혹은 휴가 기간에 즐기고 느껴야 할 음악회나 각종 행사가 그 화려함과 즐거움을 뽐내야 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올해로 열한 살을 맞은 대관령국제음악제는 이제 여름 음악 축제의 모든 요소를 완비한 모습이었다. 필자가 ‘이제’란 표현을 쓴 것은 그동안 대관령국제음악제가 세계의 페스티벌 무대가 겪어야 할 시행착오를 10년이란 시간 동안 모두 겪은 후 멋진 성장세와 이에 따른 대중적 인기의 확대를 보이고 있기 때문이다.

이런 희망적인 신호가 계속해 나타나며 대관령국제음악제가 자리 잡을 수 있게 된 것은 두 가지 요소, 즉 시공간에 적절한 주제 선택과 실력 있는 연주자들의 활발한 만남 등이 성공적으로 이루어졌기 때문이라고 본다. 지난해 북유럽의 음악들을 선보이며 평창에 서늘한 바람을 돌게 했던 축제는 올해 그 방향을 남쪽으로 바꾸었다. 타이틀은 ‘오 솔레 미오(O Sole Mio)’. 누구나 친숙한 남유럽의 대표적 노래를 힌트로 해 중세 시대부터 서양음악의 원류인 이탈리아와 스페인의 음악들을 중심으로 한 레퍼토리를 선보이는 큰 주제를 잡았다. 작곡가의 국적이나 악곡의 양식, 사용된 언어나 창작 동기 등 여러 가지 인연으로 남유럽의 분위기가 흠씬 풍기는 작품들이 무대에 올랐다. 지난봄 세월호 사고를 포함한 여러 가지 우울한 사회 분위기에 맞춰 지나치게 들뜨거나 흥겨운 음악들이 조심스레 배제된 점도 칭찬할 만하다. 갖가지 훌륭한 개성의 연주자들이 강원도를 찾았지만, 넉넉함과 단단함을 겸비한 구심점이 있다면 이들의 음악성이 더욱 가공할 시너지 효과를 일으킬 수 있음이 분명한 터. 음악감독 정명화·정경화 자매가 ‘아름다운 구슬들을 한데 꿰는’ 결정적 역할을 담당했다. 신구의 조화가 이루어진 해외 음악인들은 이미 친숙해진 축제 무대에서 편안하게 기량을 발휘했고, 하루가 다르게 나타나는 대한민국의 신진들도 생기 넘치는 모습을 보여주었다.

7월 26일 저명연주가 시리즈Ⅲ

바로크부터 낭만에 이르는 레퍼토리

지난 7월 26일 오후 2시에 열린 저명연주가 시리즈 세 번째 순서는 베토벤과 슈베르트의 실내악곡과 합창이 어우러진 무대였다. 베토벤의 유희 음악은 흔히 접하기 어려운데, Op.25의 플루트·바이올린·비올라를 위한 세레나데 역시 완성도에 비해 뜸하게 연주되는 곡이다.

이어지는 짧은 악장들의 율동감과 중량감은 샤론 베잘리의 플루트가 이끌었으며, 보리스 브롭친의 바이올린이 묵직한 중량감을 내보이는 가운데 폴 실버손의 비올라는 한정된 음역에도 불구하고 작품 전체의 기둥 역할을 훌륭히 해냈다.

쇼팽 콩쿠르의 우승자이나 화려한 솔리스트의 이미지보다 차분한 앙상블리스트의 면모를 보이는 미국의 피아니스트 케빈 케너의 피아노 솔로가 뒤를 이었다. 쇼팽의 초기 걸작인 안단테 스피아나토와 화려한 대 폴로네즈 Op.22를, 케너는 감칠맛 나는 피아니시모와 건강미 넘치는 기교로 요리했다. 연주자의 주관과 이에 따른 과욕의 부분이 없었고, 음상도 시종 여백이 느껴지게 조절하여 명불허전의 공인된 쇼팽 스페셜리스트서 단면을 보는 듯했다. 활발한 솔로 무대가 더욱 요구되는 대목이다.

후반부의 시작은 정경화와 케빈 케너가 함께하는 슈베르트의 ‘그랑 듀오’였다. 연주 이틀 전 세상을 떠난 바이올리니스트 배익환을 추모하는 짧은 멘트와 함께 시작한 두 사람의 해석은 은근한 대화와 표정이 풍부한 서정성을 지루하지 않게 배열한 재치가 돋보였다. 작곡가의 기질을 대변하는 감정인 수줍음은 새초롬한 바이올린의 매력적 음색으로 대변되었으며, 피아노는 지근거리에서 이를 현명하게 지켜보는 모습이었다.

국립합창단의 연주는 바로크와 낭만을 아우르는 프로그램이었으며, 편성을 증가시키며 변화를 꾀했다. 적은 인원으로 연주한 몬테베르디의 마드리갈 6집 가운데 네 곡은 단아함과 엄숙함이 적절히 배합된 분위기가 뛰어났으며, 로시니의 두 곡의 노래 ‘곤돌라 사공’과 ‘산책’은 작곡가가 긴 생애 중 최만년에 만든 ‘만년의 죄악’이라는 곡집에 수록돼 있다. 흥겨운 선율과 풍자로 이루어져 있는 두 곡을 지휘자 구천과 단원들은 오페라의 한 장면을 연출하듯 스케일을 확대시켰다. 상대적으로 대미를 장식한 베르디의 ‘아베마리아’는 지나치게 차분한 듯하여 순서를 바꿔 연주했으면 어땠을까 하는 생각도 들었다.

 


▲ 케빈 케너

7월 27일 저명연주가 시리즈Ⅴ

각기 다른 매력의 20세기 실내악을 만나다

저명연주가 시리즈 다섯 번째 공연은 7월 27일 오후 5시 알펜시아리조트 콘서트홀에서 열렸다. 20세기 초·중반에 쓰인 각기 다른 개성의 실내악들과 차이콥스키의 작품이 만났다. 잔 카를로 메노티의 두 대의 첼로와 피아노가 힘을 합친 특이한 구성의 3중주곡은 1973년 초연된 비교적 최근작임에도 바로크적 요소와 오페라 작곡가다운 극적인 반전, 엄격한 대위법이 등장하는 흥미로운 곡이었다.

루이스 클라레트과 홍은선, 두 사람의 첼로는 긴밀한 호흡과 강한 긴장감으로 작품을 이끌어갔으며, 피아노의 김태형은 까다로운 리듬감이 요구되는 난곡 속에서 평정을 잃지 않고 특유의 원만한 음색으로 작품의 날카로운 외형에 부드러움을 더했다. 클라리넷과 피아노 양쪽에 거의 대등한 음악적 비중과 상징성을 부과한 난곡인 드뷔시의 랩소디 1번 연주는 클라리네티스트 리처드 스톨츠먼과 피아니스트 손열음이 맡았다. 은유적인 상상력이 흘러넘치는 작풍 속에서 손열음은 순음악적인 아름다움과 피아니스틱한 효과를 최대한 살리려는 노력을 기울였고, 이에 센스와 감각으로 답하는 스톨츠만의 음색도 절묘했다.

카를로 메노티처럼 우리에게 주로 오페라 작곡가로 알려져 있는 일데브란도 피체티의 ‘이탈리아 통속시에 의한 세 개의 칸초네’는 작곡가 만년의 유산으로, 통속적이고 평이한 내용에 비해 가사 속에 나타나는 화자를 여러 명 등장시키고 각자의 개성에 따라 성악가의 높은 기교가 요구되기도 하는 난곡이다. ‘롬바르디 부인’ ‘죄수’ ‘반지의 어부’ 세 곡을 부른 메조소프라노 엘리자베스 디숑은 가히 이번 축제 전체의 놀라운 발견이라 할 만하다. 윤기 있는 음색과 정확한 딕션, 연주회장을 넉넉히 울려내는 폭발적인 성량으로 듣는 이들에게 강한 인상을 남겼다. 피체티의 연주 역시 오페라적인 연출은 보이지 않았으나 기승전결을 분명히 끊어 표현하는 능력과 중음에서의 표현력은 설득력 있게 다가왔다.

차이콥스키의 현악 6중주곡 ‘플로렌스의 추억’은 작곡가의 만년에 피렌체에서 작곡되었지만, 이탈리아적 정서를 많이 품고 있다기보다 러시아적 서정성을 더욱 강하게 풍기는 곡이다. 여섯 명의 현악 주자(스베틀린 루세브·클라라 주미 강·막심 리자노프·최은식·정명화·리 웨이 친)들도 이를 의식했는지, 남국의 밝음보다는 깊이 있는 뉘앙스 전달에 주력하는 모습이었다. 알레그로 콘 스피리토의 1악장에서 가벼운 리듬을 강조하며 이탈리아적인 운을 띄운 연주자들은 다분히 러시아적인 선율이 제시되는 3악장의 스케르초를 거쳐 차이콥스키 특유의 화려하고 기교적인 대위법이 흥분을 더하는 4악장에서 에너지를 합해 열광적인 피날레를 꾸몄다.

연주자들의 고른 프로그램 안배는 음악 축제의 가장 큰 난점이자 숙제다. 단편적으로 7월 26일 오후 대관령국제음악제 오케스트라 공연은 남녀 성악가들과 클라리넷 연주자·합창단 등이 출연한 대형 무대였는데, 전반부에서는 솔리스트들 간의 연주 시간이 고르지 않아 다소 의아했다. 또한 후반부에 연주된 모차르트의 ‘대관식 미사’는 합창의 비중이 많은 관계로 성악가들의 솔로가 부각되지 않아 한 번의 공연만을 감상한 청중에게는 아쉬웠을 수도 있었을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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