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3회 이티네레르 바로크 페스티벌

쉽게 만날 수 없는 ‘바로크의 보물’

기사 업데이트 시간: 2014년 9월 1일 12:00 오전

톤 코프만이 보여준 바로크는 어디서도 찾을 수 없는 보물 상자와 같다. 이티네레르 바로크 페스티벌은 바로크의 보물을 마음껏 만나볼 수 있는 자리다


▲ ‘바로크 빌리지’로 불리는 세르클 교회는 이티네레르 바로크 페스티벌이 열리는 장소 중 하나다.


▲ 생 아스티에 교회에서 이티네레를 바로크 페스티벌의 마지막 연주를 지휘하는 톤 코프만

시간에 묻힌 바로크음악을 다시 꺼내보는 기쁨

현존하는 고음악의 대가인 톤 코프만은 숨겨진 보석과도 같은 바로크 시대의 음악과 문화를 발굴해 세상에 꺼내놓는 작업에 열정적이다. 바로크에 대한 다양한 노력 중 하나가 바로 올해로 13회를 맞는 이티네레르 바로크 페스티벌이다. 지난 1월 22일을 시작으로 5월 17일, 7월 24일부터 27일까지 페리고르 지방의 아름다운 고성과 교회 등지에서 열렸는데 예술감독 톤 코프만은 잘 알려지지 않아 더욱 귀하게 느껴지는 바로크의 실내음악들로 페스티벌을 꾸며냈다.

7월 25일부터 27일까지 다녀온 이번 페스티벌의 분위기는 온전히 바로크 그 자체였다. 첫날, 앙굴렘에서 1시간가량 차를 타고 페스티벌 장소 중 하나인 세르클 교회로 가던 여정부터 그랬다. 거센 폭풍우가 몰아치고 어두워진 하늘 아래 이리저리 흔들리던 검푸른 나뭇잎들은 17세기 바로크의 화폭을 떠올리게 했고, ‘바로크 빌리지’로 불리는 세르클 교회 주변 분위기는 한층 더 바로크다웠다. 이날 정오에는 라 퐁텐의 ‘우화’가 바로크 시대의 고어로 공연되었는데 이해가 다소 어려웠던 극 형식을 두고 ‘형식이 먼저냐, 내용이 먼저냐’라는 논쟁이 벌어지기도 했다. 이는 고음악의 원전 운동 초기에 일어나던 논쟁과 같은 맥락이기도 하다.

이어서 오후 4시 30분에는 ‘코렐리의 라프테오즈’ 편이 이어졌고 우든 보이스 앙상블은 코렐리가 남긴 여섯 편의 소나타를 연주했다. 코렐리를 사모한 프랑수아 쿠프랭이 지은 ‘코렐리의 예찬’은 바로크 플루트와 바로크 첼로·클라브생이 호흡을 맞췄는데 긴 호흡을 따라 색감을 달리하며 변하는 장식음들은 악기가 지닌 온화한 음색과 상큼한 악센트 효과 등을 뽐냈다. 바로크 플루트가 지닌 연약하고 섬세한 음량과 음색은 세르클 교회처럼 작고도 은밀한 분위기가 아니었다면 헤아리기 어려웠을 듯싶다.

오후 8시 30분에 시작된 ‘동양의 향취’ 편은 17~18세기 서양 예술가들이 동경했던 동양의 이미지를 담은 작품들로 꾸며졌다. 게오르크 필리프 텔레만의 ‘터키인들’, 안드레아스 안톤 슈멜처의 ‘빈에서의 터키 전투’ 등의 기악곡들과 함께 헨델의 오페라 중 ‘시바 여왕의 도착’과 비발디 ‘바자제’의 아리아 ‘나는 멸시받는 아내라오’ 등이 연주되었다. 이 중 슈멜처의 작품은 오스트리아 빈 문턱을 위협하던 터키군과 기독교군의 전투 광경을 담고 있는데 뛰어난 화술과 함께 크레셴도와 거친 보잉으로 빈 시민의 슬픔과 터키군의 위협적 분위기를 표현해낸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튤리파 콘소르트는 클라브생과 테오르보가 합류된 6인의 작은 현악 앙상블임에도 뛰어난 기량과 음악성으로 거대한 앙상블과 같은 효과를 냈다. 네덜란드의 대표적인 소프라노 요하네테 조머는 비발디의 두 아리아 ‘나는 멸시받는 아내라오’ ‘만개하는 장미’에서 감미롭고 디테일한 감성의 고음과 비르투오시티로 거대한 감동을 선사하며 청중의 갈채를 한 몸에 받았다.

바로크를 이해하기 위한 하루 동안의 ‘여정’

7월 26일, ‘여정’이라는 뜻이 담긴 ‘이티네레르’라는 페스티벌의 이름처럼 여정표를 따라 다섯 장소를 이동하며 하루 종일 음악회를 관람했다. 여정은 다섯 그룹으로 나뉘어 진행됐는데 노란색 여정표의 그룹에 속한 필자는 첫 번째 연주를 듣기 위해 리스몽 성으로 향했다. 그곳 정원에서는 벨기에 바리톤 니컬러스 아흐턴이 프랑스의 16~17세기 궁정의 아리아를 노래했다. 피에르 게드동이 지은 기사 정신에 고취된 로맨틱한 아리아 ‘치명적인 한숨을 거두시오’와 성적인 암시가 노골적으로 드러난 선원들의 노래 ‘바닷가 위에’는 여전히 의미심장했다. 로베르 발라르의 류트 작품은 화성 진행과 프레이즈가 당시 궁중음악의 여흥을 감동적으로 전달했다. 이곳이 아니라면 접하기 힘든 곡들이었기에 어느 때보다 큰 갈채를 보냈다.

두 번째 여정은 블루넥스의 로마네스크 교회 양식을 바탕으로 16~17세기 스타일로 지은 생 콤 교회에서 있었다. 독일인 소프라노 발부르가 이펜베르거가 디터히리 북스테후데의 ‘주님께 새로운 노래를 불러라’를 불렀는데 매우 인상적이었다. 세 번째 여정이었던 부르데유 성에서는 아카데미아 페르 무시카가 쉽게 듣기 힘든 장 마리 르클레르의 ‘음악의 두 번째 재현’을 연주했고, 특히 마지막 악장에서 제1바이올린이 금관 흉내를 내는 것이 흥미로웠다. 그런데 장조제프 드 몽동빌의 바이올린 두 대와 첼로, 하프시코드를 위한 소나타 5번을 연주하던 중 제1바이올린의 현이 갑자기 끊어졌다. 다음 연주로 넘어가는 데 지장이 없도록 허겁지겁 줄을 갈고 다시 튜닝을 했지만 계속되는 음정 불화로 인해 한 청중이 볼멘소리를 하기도 했다. 바로크 바이올린을 제대로 튜닝하는 일이 얼마나 어려운지 제대로 볼 수 있는 기회였다.

브람톰 수도원 기숙사에서 열린 네 번째 여정에서는 라 지오이아 아르모니카가 연주를 선보였는데 바흐의 바이올린과 하프시코드를 위한 소나타 BWV1021 등이 오르간과 덜시머를 위한 버전으로 연주된 점은 독특하게 다가왔다. 덜시머는 구리철사금으로 된 현을 두드리는 중세 악기로, 음량은 작지만 매력적인 음색을 가지고 있다. 이동용 오르간을 연주한 위르겐 반홀처의 연주 역시 놀라웠는데 그의 핑거링은 티 없이 맑고도 유창했고 저음 화성을 이어가는 과정에서는 바흐적 스윙이 뛰어났기 때문에 때로는 재즈처럼 몸을 흔들고 싶기도 했다. 다섯 번째 여정은 주변의 경치가 한눈에 시원하게 들어오는 생 에티엔 교회에서 독일 음악의 두 거장인 텔레만과 바흐에게 헌정된 연주회였다. 콜레히움 뮈시큄 덴하흐 앙상블은 이 두 거장의 소나타들에서 역동적이고 기교 넘치는 연주로 흥분을 자아냈다. 이날의 여정은 오후 6시가 넘어서야 마무리되었다.

27일의 마지막 연주는 생 아스티에 교회에서 열렸다. 따가운 햇살이 무척 더운 날씨였지만, 거대한 교회를 가득 메울 정도로 많은 청중이 연주회를 찾았다. “이 연주를 마치면 휴가입니다”라며 환하게 웃는 톤 코프만은 암스테르담 바로크 오케스트라·합창단과 함께 몬테베르디의 ‘성모 마리아의 저녁기도’를 연주했고 이들의 연주 덕분에 교회는 아름다운 온기와 색채로 가득 찼다.

다양하고도 바로크의 새로운 심오함이 피부로 다가온 3일간의 바로크 음악 여행은 많은 것을 느끼게 했다. 이티테네르 바로크 페스티벌은 ‘들쑥날쑥한 면을 지녔다’는 바로크의 정의를 깊이 이해하기 위한 여정이기에 꼭 한 번 가봐야 할 페스티벌이라고 말하고 싶다.

사진 Itinéraire Baroqu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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