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관령국제음악제 속 ‘스페인’을 위해 한국에 도착한 그녀가 한 쌍의 작은 악기를 두 손에 쥐고 알펜시아 콘서트홀 무대에 등장했다. 손끝에서 울려 퍼지는 강렬한 소리에 관객의 시선은 일제히 집중됐고, 손끝을 따라 그녀의 화려한 몸짓에선 스페인의 향취가 퍼졌다. 2004년 스페인의 무용 축제인 헤레스 페스티벌에서 비평가상을 수상, 피아노·첼로·캐스터네츠 연주자들과 결성한 앙상블 아니마 누아와 함께 활발한 협업을 펼치고 있는 벨렌 카바네스. 뜨거웠던 공연의 감흥을 간직한 채 그녀를 만났다.
춤과 캐스터네츠 연주가 어우러진 공연이 인상적이었습니다. 당신을 단지 ‘무용수’라는 이름으로 한정할 수 없을 것 같은데, 스스로 ‘무용수’와 ‘캐스터네츠 연주자’ 중 어느 쪽에 가깝다고 생각하나요.
캐스터네츠는 스페인 춤에 있어서 굉장히 중요한 요소입니다. 춤과 연주는 동시에 이뤄져야 하죠. 저는 춤은 물론 캐스터네츠 역시 전문 연주자에게 배웠습니다. 그리고 두 가지 장르를 혼합해 새로운 예술을 만들어낸 것입니다.
당신의 춤은 현대무용·플라멩코·발레 등 다양한 스타일이 혼합된 것 같습니다. 어떻게 이런 춤 스타일을 만들게 됐는지 궁금합니다.
제 춤은 전통적인 스페인 춤은 아닙니다. 클래식 발레·플라멩코·탄츠테아터 같은 여러 장르가 포함되어 있죠. 여기에 캐스터네츠 연주를 더해 스페인 특유의 전통을 살렸습니다. 이 춤은 만든 사람도, 춤출 수 있는 사람도 오직 저뿐입니다.
일반적으로 무용은 움직임을 중심으로 음악을 더하는 방식으로 진행되는 반면, 당신의 춤은 음악과 춤이 서로를 지배하지 않고 조화롭게 이뤄지더군요. 더 나아가 피아노와 첼로를 지휘하는 듯한 느낌이 들었습니다. 모든 작업은 음악에서부터 시작됩니다. 먼저 곡을 선택하고 연주를 해요. 그 후에 음악에 맞춰 안무를 구상합니다. 연주자들은 동시에 저의 춤을 보며 연주를 위한 새로운 영감을 얻곤 합니다. 중요한 것은 연주자와 무용수 간의 상호작용이 이뤄질 때 비로소 작품이 완성된다는 점이죠.
파야의 스페인 민요 모음곡에서는 곡마다 표현의 변화가 인상적이었습니다. 자신만의 해석과 표현에 있어 어디에 중점을 두나요.
저는 주로 연주가 먼저 시작된 다음 무대에 등장합니다. 그래서 춤을 출 때 음악뿐 아니라 연주자들을 보며 많은 영향을 받습니다. 음악이 주는 감명과 춤을 추는 무대를 바탕으로 저만의 표현이 펼쳐집니다. 그중 가장 중요한 것은 연주자와의 호흡이죠.
모든 손가락을 자유롭게 이용해 캐스터네츠를 연주하는 것이 독특했습니다.
두 개의 돌을 맞부딪혀 소리 내는 데서 시작된 캐스터네츠는 스페인 음악 역사에서 많은 발전을 이뤘고,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습니다. 현대의 캐스터네츠는 탄성이 없는 끈을 활용해 여러 가지 테크닉을 구사할 수 있습니다. 초기에는 ‘야 야띠따/야 야띠따’ 하는 기본적인 박자만 연주가 가능했지만 안토니아 머스가 캐스터네츠를 완전히 고정해 다섯 개의 손가락 모두를 자유롭게 사용하는 테크닉을 개발했죠. 이후 다양한 테크닉과 템포가 등장했고 지금의 화려하고 다채로운 연주가 가능해졌습니다.
캐스터네츠 연주를 위한 악보가 따로 있는지 궁금합니다. 무대 위 즉흥적인 요소가 있나요.
에마 말레라스가 남긴 캐스터네츠 악보를 주로 사용합니다. 캐스터네츠 파트만 있고 악보가 남아 있지 않은 경우에는 직접 악보를 쓰기도 합니다. ‘스페인의 밤’ 공연에서는 제가 작곡한 악보를 사용하기도 했습니다. 연주와 동시에 춤을 추는 것은 상당한 집중력을 요하기 때문에 연주를 위한 모든 것을 기록해두고 외워서 무대에 오릅니다. 때론 관객이 가득한 무대에서 떠오르는 영감을 바탕으로 즉흥적인 춤과 연주를 선보이기도 합니다. 무대라는 공간은 현장성이 있는 곳이기 때문에 즉흥적인 부분에 대해서는 언제나 열려 있습니다.
이번 음악제에서 만난 한국 연주자들과의 호흡은 어땠나요.
처음 만나는 연주자들이지만 커뮤니케이션이 수월했습니다. 어떤 것을 제시했을 때 그것을 이해하고 소화하는 능력이 뛰어나더군요. 피아니스트로 함께 무대에 선 강유미·손열음뿐 아니라 훌륭한 아티스트들과 함께할 수 있어 좋았습니다.
범접할 수 없는 아우라를 풍기던 그녀가 인터뷰를 마치자마자 사진 한 장을 부탁했다. 옆으로 다가서자 그녀가 먼저 자연스레 기자의 허리에 손을 얹고는 환한 미소를 지었다. 공연장을 가득 채운 강렬한 캐스터네츠 연주의 끝에는 그렇게 소탈한 예술가의 면모가 자리하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