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 엑상프로방스 페스티벌

눈부신 테크놀로지로 새롭게 탄생한 명작의 향연

기사 업데이트 시간: 2014년 9월 1일 12:00 오전


▲ 모차르트 ‘마술피리’ 음악에 새로운 테크놀로지를 결합해 탄생한 환상적인 무대

고흐가 그토록 사랑했던 남프랑스의 강렬한 태양이 지나간 오후, 35도까지 기온이 치솟으며 7월 들어 가장 더웠던 날씨에도 음악과 시, 연극과 비주얼 아트를 아우르는 엑상프로방스 페스티벌을 찾은 관객들은 더위에 아랑곳하지 않았다

지난 4월 7일, 런던에서 열린 오페라어워즈 페스티벌 부문에서 수상한 엑상프로방스 페스티벌은 올해 역시 화려한 라인업을 자랑하며 음악과 시, 연극과 비주얼 아트를 아우르는 깊이 있고 수준 높은 프로그램으로 청중의 뜨거운 반응과 평단의 찬사를 한 몸에 이끌어냈다.

7월 아르테 TV 생중계로 화제를 모은 모차르트의 ‘마술피리’와 바로크 오페라의 걸작으로 손꼽히는 헨델의 ‘아리오단테’는 단연코 이 페스티벌에서 가장 눈에 띄는 프로덕션이었다.

2007년 루체른 페스티벌 지휘 콩쿠르에서 우승을 차지하며, 피에르 불레즈가 보증하는 지휘자로 데뷔한 이래 차세대 지휘자로 주목받고 있는 파블로 헤라스 카사도가 지휘를 맡아 프라이부르크 바로크 오케스트라를 이끌었다. 감각적이고 신선한 연출로 뉴욕의 메트로폴리탄 오페라를 비롯한 주요 극장의 오페라 연출로 자리매김한 사이먼 맥버니의 연출은 한 천재의 걸작이 수 세기를 지난 이후에도 어떻게 유효한지를 증명해 보였다.

파리 오페라를 비롯해 유럽 전역에서 숱하게 반복되어온 지나친 아방가르드적 미니멀리즘, 비디오아트에 의존해 창의성 부족하고 지루한 연출은 대중으로 하여금 오페라를 외면하게 만들었다. 하지만 이 엑상프로방스 페스티벌에서 선보인 ‘마술피리’는 무엇보다도 극이 지닌 스토리 전달에 충실했고, 비디오와 사운드에 새로운 테크놀로지를 결합하면서도 음악을 최우선에 두었기 때문에 음악을 통해 극적인 감정을 전달하는 데 성공했다.

‘마술피리’는 ‘르 탕’지의 기사처럼 현대의 오페라가 나아가야 할 방향을 제시하는 레퍼런스로서 부족함이 없었다. 무대 위에 설치된 공중에 매달린 나무판을 새로운 공간적 장치로서 영리하게 활용했으며, 적절하게 사용된 영상은 무대미술의 일부로 기능해 젊은 왕자 타미노가 마술피리는 찾아가는 여정을 실감나게 그려냈다. 휠체어를 타고 등장한 밤의 여왕이 노래를 하거나 파파게노와 파파게나를 비롯한 등장인물들이 좁은 무대에 갇혀 있지 않고 오케스트라 파트와 객석을 누비며 무대의 공간적 영역을 확장하는 참신한 연출로 인해 청중은 잠시도 지루할 틈이 없었다.

밤의 여왕 역을 맡은 소프라노 올가 푸도바는 휠체어에 앉은 상태로 난곡을 소화해내며 기량을 뽐냈고, 파파게노를 맡은 토마스 올리에만은 코믹스러운 연기에 능청스러움을 더해 관객들에게 웃음을 선사했다. 일례로 그는 자신의 반쪽을 찾기 위해 오케스트라를 둘러보고는 객석으로 내려와 청중의 얼굴을 하나하나 확인한 후, 카메라를 통해 무대로 전달되는 칠판에 ‘희망 없음’이라고 적어 넣었다. 극 중 엉뚱하고 장난기 많은 성격이 고스란히 묻어나는 표정 연기는 물론, 성량이 풍부한 목소리에 실감나는 연기를 더해 레치타티보를 실감나게 전개하는 그의 모습은 종합예술로서 오페라를 여실히 드러냈다. 파파게나를 만나 그 유명한 이중창을 부르면서 그는 다시 객석으로 내려왔고, 그 덕에 청중은 그들이 속한 세계에 더 가까이 다가설 수 있었다. 그가 무대는 물론 온 극장을 종횡무진하는 동안 지휘자 파블로 헤라스 카사도는 몸을 돌려 그를 바라보며 오케스트라를 이끌었다.

공연 후 짧은 인터뷰에서 만난 토마스는 “칠판에 적은 ‘희망 없음’은 내 아이디어였다. 더블캐스팅된 요제프 바그너는 ‘부족함!’이라고 쓴다. 사이먼 맥버니는 연극적 요소가 음악 안에 녹아 들어갈 수 있도록 성악가들의 아이디어에 귀 기울여 각자의 개성을 살린 파파게노가 탄생할 수 있도록 배려해주었다”고 소감을 밝혔다.

타미노 역을 맡아 맑은 음색과 풍성한 성량을 자랑한 테너 스타니슬라스 드 바르베이라크는 극의 중심을 잡아준 자라스트로 역의 크리스토프 피셔서와 함께 깊은 인상을 남겼고, 파미나 역을 맡아 무대를 장악한 마리 에릭스모엔은 서정성과 파워를 모두 갖춘 목소리에 배우 못지않은 연기를 선보였다.

프라이부르크 바로크 오케스트라는 극의 진행에 맞춰 무대 위에 올라가 악기를 연주하거나, 파트별로 일어서서 연주하는 등 무대를 확장시키는 데 주저함이 없었다. 오케스트라 전체가 모두 자리에서 일어난 상태로 곡이 끝나는 마지막 순간, 절정으로 치달으며 고조된 분위기가 고스란히 전달되었고 객석은 뜨겁게 환호하며 기립 박수를 보냈다. 지휘봉 없이 맨손으로 마치 끓는점에 도달하듯 뜨겁게 온몸으로 지휘를 마친 파블로 헤라스 카사도는 만족스러움을 표시했다.

“오프닝을 한 달 앞둔 6월 초부터 최선을 다해 리허설을 준비해왔다. 성공적인 오페라 프로덕션은 모두의 노력이 더해질 때에만 가능하다. 매번 전석 기립 박수를 보내는 청중의 열광적인 반응이 마치 꿈만 같다. 연극을 전공한 사이먼이야말로 진짜 천재다. 그는 음악과 연기가 상호 보완적으로 작용하며 상생해야 한다는 걸 알고 있었다. 우리 모두가 함께 마음을 모아 ‘마술피리’가 가지고 있는 유머와 감동과 휴머니즘까지 숨겨진 매력을 모두 꺼내 보일 수 있어 뿌듯하다.”

강렬한 드라마 사이로 흐른 바로크음악 특유의 여백

헨델의 ‘아리오단테’는 1735년 런던 코번트 가든에서의 성공적 초연 이후, 후대에 잊혔다가 1970년대에 고음악 붐을 타고 재평가받으며 현재는 헨델의 대표적 오페라세리아로 인정받고 있다. 제한적인 무대장치에도 불구하고, 현대적 감수성을 더한 마리오네트를 활용한 연출이 눈에 띄었다. 마리오네트 연출팀은 직접 손으로 인형을 움직였는데 반복되는 선율에 다소 지루해질 수 있는 작품에 인형극을 통해 신선함을 불어넣었다. 여성 성악가들이 남장을 하고 등장하는 탓에 어쩔 수 없는 제약이 따르는 각종 애정 신 역시 유머러스하게 전개되었다.

젊고 매력적인 기사 아리오단테, 그를 사랑하는 지네르바 공주, 왕국을 차지하고자 하는 야망에 사로잡힌 폴리네소 공작의 공주를 향한 열망, 그를 사모하는 공주의 시녀 달린다까지, 네 등장인물의 엇갈린 마음과 욕망, 사랑을 쟁취하기 위한 음모와 계략이 전개되는 1막과 2막, 강렬한 드라마와 대조적인 헨델 특유의 경쾌한 선율 사이에 바로크음악 특유의 여백을 느낄수 있었다.

그 여백을 카리스마로 채워 넣은 지네르바 역할의 파트리샤 프티봉은 두드러지는 쳄발로 소리만큼 매력적이었다. 그녀는 그동안 프랑스의 대표 콜로라투라 소프라노로 라모와 륄리부터 모차르트와 글루크는 물론 알반 베르크의 오페라 ‘룰루’까지 한계를 모르는 역할에 도전해왔다. 프티봉은 한층 성숙한 연기를 선보이며 무대를 장악했다. 한창 갈등으로 치닫다가 갑작스럽게 모든 것이 해피엔딩으로 끝나는 듯한 3막은 다소 작위적인 진행이 거슬렸지만, 지네르바가 결국 여행 가방을 들고 자신만의 길을 떠나는 장면은 현대적 여성상에 걸맞은 신선한 연출이었다.

폴리네소 공작의 음험한 계략에 속아 자살을 시도한 아리오단테의 수동적인 대응과 달리, 부정을 저질렀다는 모함을 뒤집어쓰고 쏟아지는 비난과 악몽 같은 시간을 견디며 스스로의 존엄을 지켜내고자 했던 지네르바의 강인함은 프티봉의 탁월한 연기력으로 한껏 빛을 발했다.

자살 시도에 실패하고 뒤늦게 오해에 대한 용서를 구하며 돌아온 아리오단테를 받아들이지만, 한번 신의를 잃은 사랑은 지속될 수 없는 법이다. 굴곡진 사랑의 고통을 겪고, 좀 더 깊어진 눈매를 하고 자신의 상처를 끌어안은 채 혼자 담담히 문을 열고 어딘가로 떠나가며 오페라가 끝날 때, 객석 전체가 숨을 죽일 만큼 프티봉의 뒷모습은 압도적이었다. 전날의 ‘마술피리’에 이어 연주를 맡은 프라이부르크 바로크 오케스트라는 야외 공연이라는 불리한 음향 조건을 놀라운 집중력으로 극복해냈다. 그동안 바로크음악계의 거장 지휘자 르네 야콥스와 함께 아르모니아 문디에서 발매한 레코딩 레퍼토리를 통해 쌓아 올린 명성이 헛되지 않았다. 올해 상주 오케스트라로서 그들이 선보인 연주력은 발군 그 이상이었다.

엑상프로방스 페스티벌은 이 외에도 로시니의 ‘이탈리아의 터키인’, 슈베르트 가곡에 비디오아트를 더해 바리톤 마티아스 괴르네의 목소리로 선사하는 ‘겨울 나그네’, 피아니스트 알렉상드르 타로의 ‘골드베르크 변주곡’, 타로와 오랜 파트너인 장기엔 케라스의 브람스 첼로 소나타, 파보 예르비가 이끄는 파리 오케스트라의 바그너·차이콥스키 관현악곡, 앙상블 모데른이 들려주는 바흐와 리게티의 작품들, 마스터클래스와 아카데미까지 최고의 페스티벌이라는 명성에 걸맞은 다양한 프로그램을 선보였다. 사진 Pascal Victor/ArtcomAr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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