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한 앞두고 뉴욕 리허설 현장에서 만난 사라 장 & 크리스티안 예르비

기사 업데이트 시간: 2014년 10월 1일 12:00 오전

바이올리니스트 사라 장이 크리스티안 예르비가 이끄는 앱솔루트 앙상블과 함께 10월 23~24일, 한국 관객들을 만난다. 한국의 음악을 중심으로 크로스오버를 시도한 레퍼토리로 구성된 이번 내한 공연을 위해 뉴욕에서 가진 첫 리허설 현장을 찾았다

바이올리니스트 사라 장과 크리스티안 예르비가 이끄는 앱솔루트 앙상블이 10월 23~24일, 세종문화회관 대극장에서 한국 관객들을 만난다. 한국 음악을 중심으로 한 크로스오버 음악으로 구성된 10월 내한 공연에 앞서 뉴욕의 한 스튜디오에서 리허설이 한창인 연주자들을 만났다. 앱솔루트 앙상블은 이번 내한 공연을 두고 ‘앱솔루트 코리아 프로젝트’라 부르고 있었다. 리허설 현장에서 받아 든 프로그램의 곡목을 살펴보니 지극히 한국적인 단어들이 흘러넘치고 있었다. 게다가 스튜디오 입구에서 발견한 장구는 이들이 어떤 방식으로 한국 관객들의 감성을 매만질지 궁금증을 자아내기에 충분했다. 

리허설 현장에서 가장 인상적이었던 것은 놀라우리만치 자유로운 분위기였다. 마치 오랜 친구들의 떠들썩한 모임과도 같았다. 자유롭게 의견을 제시하고 곡의 어떤 부분에 대해 수정 제안을 하는 등 모든 연주가가 동등한 목소리를 내는 연습 방식이 그러한 분위기에 힘을 실어줬으리라. 그것은 오랜 시간 함께해온 앙상블의 분위기를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동시에 이 앙상블에서 크리스티안 예르비가 지니고 있는 열린 태도를 말해주는 것이었다.
앱솔루트 앙상블을 이끌고 있는 지휘자 크리스티안 예르비는 ‘지휘 명가’라고 불리는 예르비가(家)의 막내다. 아버지 네메 예르비와 형 파보 예르비의 명성과 함께 크리스티안 예르비도 라이프치히 방송교향악단의 음악감독으로 왕성하게 활동하고 있다.
앱솔루트 앙상블과 함께 있을 때 크리스티안 예르비의 모습은 그야말로 오픈마인드 그 자체였다. 작곡가·편곡자가 함께한 자리에서 그들에게 곡에 대한 직설적인 이야기와 함께 수정에 대한 요구가 오고 가는 것은 이들의 신뢰 관계가 얼마나 깊은지를 단적으로 보여줬다.
첫 리허설 시간의 절반가량이 흐르고, 바이올리니스트 사라 장이 합류했을 때 앙상블의 분위기는 사뭇 진지해졌다. 이들의 합주는 세심했고 의논과 협의의 연속이었다. 사라 장과 크리스티안 예르비는 연주를 맞추는 데 있어 의견을 자주 교환했다. 긴장감이 팽팽했던 리허설 현장의 공기는 한마디씩 던지며 분위기를 풀어가는 사라 장과 크리스티안 예르비로 인해 생기를 되찾아가고 있었다.

이날 세 시간에 걸친 리허설 동안 사라 장이나 크리스티안 예르비, 앱솔루트 앙상블 모두 지금까지 선보여온 레퍼토리와는 달리, 한국 음악을 소재로 새롭게 만든 곡들을 한국에서 처음 선보이는 것을 두고 어떤 발상과 고민으로 임하고 있을지 궁금해졌다. 그리고 그에 대한 자세한 이야기는 뉴욕에서 가진 3일간의 리허설이 모두 끝난 후에야 들어볼 수 있었다.

이번 크로스오버 프로젝트는 어떻게 시작하게 된 것인가.

사라 장 지금까지 베토벤이나 브람스와 같은 정통 클래식 음악만을 해왔다. 이번 프로젝트는 지금까지 해왔던 공연과는 굉장히 다르다. 이번 프로젝트를 제안한 크리스티안 예르비는 음악가로서 존경하는 사람이다. 아버지 예르비와는 여러 차례 작업했고, 형 예르비와도 몇 차례 함께 작업을 했기 때문에 그 가족에 대한 존경심이 있다. 쿠르트 마주어의 85세 생일 연주회에서 연주를 했을 때 크리스티안 예르비가 이 프로젝트를 제안했는데, 그 당시에는 거절했다. 사실 그동안 크로스오버 음악에 대한 여러 제안을 받아왔지만 마음에 드는 음악이 없어서 한 번도 한 적이 없었다. 크리스티안은 그 후로도 음악 파일들을 지속적으로 보내며 들어보기를 권했다. 그의 말대로 신기하고, 다른 것들과는 다른 느낌이었다. 무엇보다 편곡자들이 솔로 파트는 온전하게 살려두고 오케스트라 라인에만 록·힙합 등을 가미했는데, 이것이 재밌고 새롭게 다가왔다. 이후로 함께 프로젝트를 하기로 결정했고, 레퍼토리를 함께 의논하기 시작했다.

이번 프로젝트에 함께하는 앱솔루트 앙상블은 한국 관객에게는 조금 생소한 단체다. 간단히 소개해 준다면.

크리스티안 예르비 ‘음악을 위한 음악이 아니라 르네상스 음악부터 록 음악까지, 우리만의 세계를 만들어가는 앙상블을 하면 어떨까?’ 하는 질문에서 시작된 앙상블이다. 처음엔 하나의 아이디어일 뿐이었다. 가능할지 아닐지는 미지수였다. 마치 학생들이 꿈꾼 유토피아 같은 것이었다. 처음엔 재정도 어떤 후원도 없이 그냥 아이디어만 있었다. 악기를 연주할 수 없는 사람도 이 아이디어를 좋아한다면 참여할 수 있었다. 작곡가들은 팝과 힙합을 포함한 모든 음악을 다루되 이것이 받아들여질지 아닐지 걱정하지는 않았다. 우리는 이것을 ‘앱솔루트’라 부르기로 했다. 왜냐하면 완전히(absolutely) 모든 것을 담고 있기 때문이다. 클래식 음악부터 팝, 심지어 가스펠까지 우리 안에 있다. 올인원이다. 돌이켜보면 20년 전 나와 함께 학교 다니던 음악가들이 여전히 앱솔루트 앙상블에 속해 있다.

두 사람이 함께 작업하는 것은 이번이 처음인가.

사라 장 서로 오랫동안 알면서 관계를 맺어왔던 사이는 아니다. 때문에 처음 이 프로젝트를 요청받았을 때, 솔직히 고민 없이 거절할 수 있었다. 그런데 그가 에이전트를 통해서, 심지어 자신의 아버지와 형을 통해 계속 이야기를 전해왔다. 결정적으로는 크리스티안이 보낸 음악을 들으면서 이 프로젝트의 가치를 느꼈다. 일반적으로 리허설 현장은 굉장히 공적이다. 반면 우리의 리허설을 직접 보면서 느꼈지만 모두가 동등한 목소리로 서로의 의견을 낸다. 예르비가 잠시 조용히 해달라고 제지할 정도다. 대개 연주자들은 매니저나 에이전시를 통해 서로 소통하기도 하는데, 예르비는 그 과정을 생략하고 직접 전화해서 곡은 어떨지, 이걸 고치면 어떨지 등을 묻는 편이다.

리허설 현장을 지켜보면서 한국을 소재로 한 작품들이 눈에 띄었다.

사라 장 처음 레퍼토리를 선택할 때 이 새로운 프로젝트에는 한국의 향기가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바흐나 베토벤같이 몇 백 년 전 작곡가의 작품이 아닌, 지금 창조되는 곡이라면 더욱 한국적인 것들이 있어야 한다는 생각이었다. 그래서 ‘아리랑’과 같이 전통적인 민요도 들어갔다. 나는 필라델피아에서 태어났기 때문에 한국의 전통적인 곡을 잘 모르는 편이다. 그래서 어머니와 한국 친구들에게 음악을 일일이 들려주고 어떤 곡인지 물어보면서 한국적인 사운드를 다양하게 추가했다. 크리스티안 예르비와 레퍼토리를 정해나가는 것은 생각보다 굉장히 오랜 시간이 걸렸다. 퓨전은 잘하면 굉장히 좋지만, 위험 요소가 많다. 처음엔 열 곡 이상을 골랐지만 마음에 들지 않거나 한국인의 정서를 감안했을 때 충분하지 않다고 생각되는 곡은 제외하다 보니 이번 리허설까지 남은 작품들은 정말 신나면서 아름다운 곡들이다. 곡마다 그에 꼭 맞도록 편곡되는 과정 역시 재밌고 지금은 굉장히 아름다운 레퍼토리가 완성되었다고 생각한다. 크리스티안 예르비 이번 프로젝트의 곡들은 한국뿐 아니라 세계 어느 곳에서나 연주될 수 있다. 다만 음악의 상당 부분이 한국에 기초해 만들어졌다. 한국은 방대하고 깊이 있는 문화 덕에 엄청난 수의 프로그램 기획이 가능하다. 긴 역사 또한 상당한 가치가 있어 평생을 탐구해도 좋을 정도다. 마치 고고학처럼 말이다!

이번 프로젝트를 진행하면서 어려운 점은 없었나.

크리스티안 예르비 ‘앱솔루트 코리아 프로젝트’라는 이름 아래, 전통 민요부터 케이팝까지 다양한 음악들을 포함시켰다. 음악적으로 완전히 새로운 재료이기 때문에 전체 콘셉트를 이해하는 것이 중요했다. 뉴욕을 기반으로 하는 외국인 앙상블이 연주하는 것이기 때문에 한국의 민요나 대중가요에 문화적으로 ‘뉴욕’이라는 후추를 뿌리는 것과 같다고 생각하면 이해하기 쉬울 것 같다. 우리는 모두 클래식 음악을 기반으로 공부를 시작했지만 지금은 음악이 확실히 발달했고, 다양한 문화가 융합되는 시대다. 사라 장도 그 시대의 반영이라 할 수 있는데, 우리 앙상블은 15개의 다른 민족성을 가지고 있고 사라 장 역시 한국인이면서 미국인이다. 내가 에스토니아인이면서 미국인인 것처럼 말이다. 우리는 미국이라는 멜팅 포트(melting pot)에서 공부한 사람들이고, 그러한 특징을 음악적으로 반영해 무엇인가를 창조하고 있다. 나와 앱솔루트 앙상블은 작년에는 바흐의 음악을 기초로 음악을 만들었고, 올해는 한국을 기반으로 새로운 음악을 창조했다.

반면 사라 장은 크로스오버 음악을 처음 시도하지 않나.

사라 장 내가 처음 브람스 협주곡을 제안했을 때, 예르비는 그건 매일 하는 것이니 다른 것을 해보자고 말했다. 실제로 그는 내가 이 프로젝트를 편안한 마음으로 대하고, 제대로 이해할 수 있도록 많은 도움을 줬다. 한편으로 생각해보면 가끔씩 변화는 필요하다. 검정 옷을 입는 것을 좋아하더라도 가끔 컬러풀한 옷을 입듯이 말이다. 제일 좋아하는 것은 브람스·멘델스존과 같은 음악들이지만 현대곡들도 앞으로 연주하려고 동시대 작곡가들과도 함께 교류하고 있다. 이번 연주도 나에겐 새로운 프로젝트 중 하나다. 지금까지 정통 클래식 음악만을 했고 음반도 모두 진지한 음악이었지만, 색다른 음악이어도 수준이 높다면 하고 싶다. 물론 나에겐 오케스트라와 협연이 가장 편하다. 그러나 그것만으로는 성장할 수 없다고 생각한다. 실내악 연주나 새로운 프로젝트를 앞으로 1년에 한 번씩은 할 생각이다.

새로운 레퍼토리에 놀라는 한국 관객들이 많을 것 같다.

사라 장 이번 공연은 음악적인 면에서 리스크를 감수해야 할지도 모르겠다. 지금까지 내가 쌓은 커리어가 정통 클래식 음악인 데다 한국은 클래식 음악을 좋아하고 음악에 대한 감상이 굉장히 높은 나라여서 음악이 조금이라도 이상하면 공연을 할 수 없다. 게다가 나는 어린 시절부터 한 매니지먼트와 일할 정도로 변화를 싫어하는 사람이다. 처음 프로젝트를 시작할 당시, 예르비에게도 마지막 리허설까지 레퍼토리가 완성되지 않으면 연주하지 않겠다고 말했다. 하지만 지금까지 마주한 모든 음악 자체가 좋고, 흥미로울 뿐만 아니라 많은 이들의 노력이 들어갔다. 친척들이 살고 있는 한국은 다른 곳보다 나에게 정서적으로 가까운 나라다. 할아버지부터 어린 사촌까지 좋아할 레퍼토리를 골랐다. 지금까지 나를 응원해준 한국 관객들이 나를 믿고 이번 공연을 기대해주길 바란다. 크리스티안 예르비 이번 내한 공연은 뉴욕과 한국이라는 두 세계가 만나는 것이다. 우리가 무대에서 선보일 모든 것을 많은 관객이 경험하길 바란다. 무엇보다 우리는 이 프로젝트로 함께 한국에 가는 것이 정말 기쁘고 영광스럽다.

 

뉴욕에서 사흘간 이뤄진 리허설 현장에는 여러 이야기가 솟아올랐고, 그에 대한 새로운 시도들도 부풀어 올랐다. 그래서 마지막 리허설까지 긴장을 늦출 수 없었고, 한국에서 처음으로 선보일 이들의 연주가 어떤 느낌일지 한마디로 정의하기도 쉽지 않았다. 다만 “30년간 함께 걸어왔던 팬들과 이번 공연을 즐기고 싶다”는 사라 장의 목소리에 귀 기울이는 사람이라면 그녀의 새로운 도전과 모험을 기대해도 좋을 듯싶다.

글 김슬아(뉴욕 통신원) 사진 Menelik Puryear

 

크리스티안 예르비의 앱솔루트 앙상블과 사라 장 내한 공연

10월 23~24일 오후 7시 30분 세종문화회관 대극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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