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2년 경기도 부천 출생
2002년 버클리 음악대학 입학
2009년 로욜라 음악대학원 입학
델로니어스 몽크 재즈 인스티튜트 입학
허비 핸콕·조 로바노·핼 크룩과 협연
론 카터·매튜 개리슨 사사
콘트라베이스 소리는 마음을 울린다. 높고 화려한 선율을 노래하는 것도, 덩치만큼 큰 음향을 내는 것도 아니지만 음악에 무게감을 실어 풍부한 하모니를 만든다. 재즈에서는 특히 그렇다. 몸 전체를 둥둥 울리는 저음역대의 피치카토는 경쾌하면서도 편안한 느낌을 준다.
베이시스트 황호규는 자신의 연주가 더 많은 사람들의 마음 깊숙한 곳에 닿기를 바란다. 버클리 음대 신입생 시절, 매일 꼬박 10시간씩 홀로 연습에만 몰두해 세계무대에 오를 기회를 잡았지만, 주위를 돌아봤을 땐 아무도 없었다. 손가락에 피가 날 정도로 연습을 하고 자면서도 연주하는 꿈을 꿨지만, 동시에 지독한 외로움과 싸워야 했다. 2년에 한 번, 단 7명씩 선발하는 델로니어스 몽크 재즈 인스티튜트에 선발돼 동료들과 합숙을 하고, 그래미상에 빛나는 드러머 테리 린 캐링턴 밴드 멤버들과 함께 유럽 투어를 다니며 비로소 연주의 기쁨을 깨달았다.
제대한 지 1년 남짓, 황호규는 다시 한 번 좋은 연주자들과 함께 연주하며 관객과 소통하는 즐거움을 맛보기 위해 열정을 불태우고 있다. 신입생 때의 마음가짐으로, 그러나 누구보다 행복하게 도약을 준비하는 그를 만나 음악과 인생 이야기를 들었다.
나, 황호규의 시작
음악은 비교적 늦게 시작한 편이다. 어린 시절 교회 형들의 어깨너머로 전자 기타를 배웠다. 당시 KBS교향악단에 있던 장응규 선생님을 알게 되었고, 선생님이 베이시스트 존 패티투치의 1집 음반을 들어보라고 추천하시며 정식으로 음악을 공부해보면 어떻겠느냐고 하셨다. 그런데 음반을 듣다 보니 기타보다 콘트라베이스 음색이 더 멋있게 느껴졌다. 콘트라베이스를 배워야겠다고 마음먹은 후 재즈아카데미에서 공부를 시작했고, 2년 만에 버클리 음대에 장학생으로 합격했다.
예술가로서 삶을 위해 희생한 것
보스턴에 도착했을 땐 마냥 설레고 즐거웠다. 뭐든지 다 잘될 것만 같았다. 그런데 막상 동기들과 연습을 시작하니 나의 부족함이 너무 많이 드러나더라. ‘이렇게 못하는데 여기 어떻게 온 거냐’는 말을 들었을 때에는 얼마나 충격을 받았는지 모른다. 그때부터 오기가 발동해 2년간 하루도 거르지 않고 10시간씩 연습했다. 자려고 누우면 천장에 악기 줄이 그려질 정도였다. 돌이켜보면 친구도 많이 사귀고 다양한 경험도 할 수 있었을 텐데, 조금 아쉬운 부분도 있지만 최선을 다했던 그 시간이 좋은 기회를 많이 가져다줬다.
몽크 도전기
델로니어스 몽크 재즈 인스티튜트에서 공부할 수 있었던 데에는 재미있는 비하인드 스토리가 있다. 2007년에 버클리 음대를 졸업하며 처음 지원을 했는데 라이브 오디션까지 갔다가 최종 불합격됐다. 하지만 테리 린 캐링턴에게 함께 유럽 투어를 다니지 않겠느냐는 제안을 받아 오히려 잘됐다고 생각했다. 세계적인 아티스트들과 여러 나라를 다니며 많은 것을 배웠다. 행복한 나날을 보내던 어느 날, 꿈에 피아니스트 허비 핸콕이 나왔다. ‘호규야, 내가 합격시켜줄 테니 몽크에 지원해!’라고 하더라. 그날은 2009년 전형 마감 하루 전날이었고, 준비해놓은 것이 없어 2007년에 지원했던 내용을 그대로 서둘러 보냈다. 결국 라이브 오디션에 초대가 되었고 최종 합격했다. 지금 생각해보면 웃음이 나오는 일이다. 운명 같기도 하고.
나와 가장 밀접한 타 예술 장르
최근 1〜2년간 국내에서 다양한 공연을 했다. 피아니스트 조윤성·드러머 이상민과 함께 정통 재즈 공연을 열었고, 루시드폴의 6집 음반 등 대중음악에 참여했다. 국립현대무용단의 ‘11분’ 같은 새로운 시도에 동참하기도 했다. 앞으로도 더 많은 예술가들과 다양한 작업을 하고 싶다. 나는 재즈를 연주하는 사람이지만 클래식·팝·록·힙합·국악 등 모든 장르의 음악에 관심이 있다. 실제로 현재 준비하고 있는 개인 음반에도 흥미로운 것들을 넣으려 고민하고 있다. 열정이 있는 예술가들과의 작업은 언제나 즐겁다.
나에게 영감을 준 음악가
수많은 음악가가 나에게 영감을 줬지만 존 패티투치 덕에 여기까지 온 것이라 생각한다. 처음 음악을 시작하게 된 계기도 그였고, 이후 델로니어스 몽크 재즈 인스티튜트에서 그를 만났을 때에도 정말 많은 것을 배웠다. 신사적이고 가정적인 모습이 존경심을 갖게 하더라. 테리 린 캐링턴과의 투어 공연은 처음으로 내가 프로임을 느끼게 한 경험이다. 앞으로 꼭 함께하고 싶은 예술가는 색소폰 연주자 웨인 쇼터다. 언젠가는 꼭 함께 무대에 서기를 꿈꾼다.
선배로서, 스승으로서 조언
현재 여섯 학교에서 학생들을 만나고 있다. 힘들어하는 학생들에게는 버클리 신입생 시절을 떠올리며 조언 아닌 조언을 한다. 뼈를 깎는 고통을 감수하며 최선을 다하면 꼭 그에 걸맞은 결실을 거둘 수 있을 거라고. 최근 ‘슈퍼스타K’ 등 오디션 프로그램을 보고 음악을 하려는 학생이 많아진 것 같다. 그들의 최종 목표는 연예인 혹은 돈을 많이 버는 것이다. 많은 학생이 더 순수한 마음으로 음악을 사랑할 수 있도록 돕는 역할을 하고 싶다.
앞으로 계획
현재 곡을 열심히 쓰고 있는데 빠르면 오는 12월부터 뉴욕에서 녹음을 진행할 예정이다. 여러 음악가와 함께 작업하겠지만, 호른 음색을 좋아해 호른 연주자가 참여하는 재즈곡이 많을 것 같다. 뉴욕에서 같이 공부했던 친구들과 연락을 주고받다 보면 예전처럼 자유롭게 공연하며 살고 싶은 마음이 강하게 든다. 이참에 사는 곳을 옮길까 생각 중이다. 어디에서든 많은 사람에게 감동을 전하는 음악을 하기 위해 계속 고민할 것이다.
글 김호경 기자(ho@gaeksuk.com) 사진 심규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