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시향 실내악 시리즈2

노련한 호흡으로 빛난 아름다움

기사 업데이트 시간: 2014년 10월 1일 12:00 오전

서울시향 실내악 시리즈2

9월 12일 세종문화회관 체임버홀

시작에는 다른 무게감이 실린다. 서울시향 실내악 시리즈는 바흐 ‘푸가의 기법’ 1번으로 시작했다. 단 한 곡이었지만 이 작품의 질서 잡힌 정갈한 울림은 연주회장의 분위기를 차분하게 조율했다. ‘베토벤 후기 현악 4중주’를 제목으로 한 이번 연주회는, 베토벤 최초의 현악 4중주 앞에 바흐의 만년 걸작을 배치하여 프로그램을 구성했다. 연주회의 무게중심은 베토벤 현악 4중주 15번에 있었는데, 전체 프로그램의 균형을 고려한 탁월한 선곡이었다.

균형과 조화는 앙상블의 핵심이기도 하다. 서울시향 단원들로 이루어진 앙상블은 이날 제1바이올린인 스베틀린 루세브를 중심으로 다르게 구성된 두 팀이 출연했다. 오케스트라 연주 때와는 다른 개인의 기량과 음악성, 그리고 팀원들 간의 긴밀한 호흡을 살펴보는 것은 이날 연주의 색다른 묘미였다. 현악 4중주 3번은 루세브와 허상미(제2바이올린)·강윤지(비올라)·김소연(첼로)이 함께했다. 작품 번호로는 세 번째이지만 실제로 이 작품은 베토벤의 첫 번째 현악 4중주로, 20대 후반의 청년 베토벤의 열정과 패기가 드러난다.

악장인 루세브의 가볍고 감각적인 음색은 이 작품의 밝고 활기찬 성격과 잘 어울렸다. 여기에 비올리스트 강윤지는 깊은 울림으로 안정감 있는 앙상블을 만들었다. 표정이 풍부한 그녀의 노래는 호소력이 컸다. 루세브는 명쾌하고 추진력 있는 보잉으로 작품을 속도감 있게 이끌었다. 그러면서도 순간순간 바뀌는 악상 변화에 상당히 민감하게 반응하며 극적으로 증폭시켰다. 치밀하고 명확한 루세브의 지휘는 때로 급하고 과하게 느껴질 때가 있었는데, 팀원들은 그를 부지런히 따라가면서도 각자의 자리와 중심을 잡으려 애를 썼다. 이 사이의 팽팽한 긴장감이 젊은 베토벤의 결정이 담긴 작품의 특성과 잘 어우러져 연주가 흥미롭게 전개됐다.

후반부에는 현악 4중주 15번을 루세브와 함께 문주영(제2바이올린)·홍웨이 황(비올라)·주연선(첼로)이 앙상블을 이루었다. 이 작품을 쓸 당시에 베토벤은 병과 더불어 조카 카를과의 관계까지 악화되어 극심한 정신적·육체적 스트레스를 받고 작곡을 중단했다. 한동안 요양을 취한 후에 회복된 베토벤은 3악장 ‘병이 나은 자의 신에 대한 성스러운 감사의 노래’를 포함한 다섯 악장의 구성으로 이 작품을 완성했다. 간절하고 경건한 기도와도 같은 3악장이 작품의 핵을 이룬 이 작품은 연주회의 오프닝인 바흐 ‘푸가의 기법’ 1번과도 호응하며 의미심장한 여운을 남겼다. 루세브의 날렵하고 화려한 활 놀림은 유장하고 관조적인 이 작품에서 다소 두드러질 때가 있었는데, 나머지 세 연주자의 노련하고 차분한 호흡이 계속해서 연주에 여유로운 숨결을 불어넣었다. 밝고 명징한 표면과 짙고 풍성한 이면이 어우러진 뛰어난 연주였다.

좋은 앙상블일수록 서로를 존중하고 배려하는 성숙함이 돋보인다. 고정된 멤버의 실내악 팀은 아니더라도 오케스트라 활동을 함께하며 자연스럽게 서로의 특성을 이해하고 있기 때문에 서울시향의 실내악 시리즈는 완성도 높은 연주가 가능한 것으로 보였다. 내면으로 파고드는 깊이만이 베토벤 후기 현악 4중주의 매력은 아닐 것이다. 각자의 아름다움이 빛을 발하도록 서로 힘을 실어줄 때 찬란한 순간들이 탄생한다. 병마와 고독이라는 압박에서 해방된 날아갈 듯한 환희가 마지막 5악장 연주에 고스란히 실렸다. 앙상블의 역동적인 생명력은 객석의 뜨거운 호응으로 이어졌다.

글 서주원(음악 칼럼니스트) 사진 서울시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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