니컬라 베네데티 내한 공연
9월 2일 예술의전당 콘서트홀
바이올리니스트 니컬라 베네데티는 어린 나이에 예후디 메뉴인 음악학교에 입학해 영재로 촉망받았으면서도 엄격한 규율이 앞서는 학업을 완료하기보다 10대에 자유로운 활동 공간을 선택할 만큼 당찼다. 스코틀랜드의 분리 독립 문제에서 자유로울 수 없음을 천명하기도 하고, 대중과의 근거리 교감을 중시한다. 최근 발표한 앨범들의 주제나 성격에도 이런 성향은 충분히 드러난다. 그녀가 공식 첫 내한 리사이틀에서 고른 레퍼토리는 모차르트·프로코피예프·엘가의 바이올린 소나타였는데, 추측컨대 지쳐 있는 한국의 청중을 고려한 면도 있지 않았나 싶다.
각각의 바이올린 소나타와 코른골드의 아리아까지, 밝고 낭만적이기보다는 심연의 골목 어딘가로 깊고 느리게 걸어 들어가는 곡들 아닌가. 하지만 이날 연주는 청중과의 완벽한 교감에 도달하지 못했다. 조금은 어수선한 홀의 컨디션 때문인지 시작부터 편해 보이지 않는 모습으로 조심스럽게 모차르트 바이올린 소나타를 무난히 끝냈지만 왠지 객석과의 거리는 좁혀지지 않았고, 프로코피예프 바이올린 소나타 1번은 정교한 연주도 중요하지만 미로의 성으로 인도하는 제사장처럼 절제 속의 카리스마가 무대를 장악해야 하는데 피아니스트와 단둘이 넓은 무대를 지킨 20대의 니컬라 베네데티에게는 조금 더 깊은 해석이 필요해 보였다.
2부에서 들려준(유일하게 암보로 연주한) 코른골드의 오페라 아리아 두 곡은 앨범 ‘실버 바이올린’의 레퍼토리여서인지 적당한 길이와 호흡으로 청중과의 교감을 이끌어내면서 편안해 보였고, 엘가 바이올린 소나타는 1부에서의 서먹함을 적절하게 갈무리하는 에너지를 발했다. 특히 2악장 로망스는 물처럼 흐르는 강약 조절과 피아노의 조화가 돋보여 제1차 세계대전 후 작곡가가 은둔했던 서섹스 주의 황량하고도 신비로운 전원 풍광이 재현되었다. 비취색 드레스와 1717년산 스트라디바리우스 가리엘이 비로소 빛나는 시간이었다.
두 번의 앙코르로 이날의 연주를 마무리한 니컬라 베네데티. 최근 발표한 앨범 수록곡 중 한국 청중의 심금을 울리기에 충분한 ‘쉰들러 리스트’ 메인 테마나 스코틀랜드 민요 ‘나의 사랑은 붉고 붉은 장미’를 연주했다면 좀 더 훈훈한 마무리가 되지 않았을까 싶다.
유럽 옐로 라운지 무대에서 베네데티는 “클래식 음악을 낯설어하는 관객이 공연 내내 뭔가 잘못할까봐 노심초사하길 바라지 않는다. 악장 끝에 실수로 치는 박수 소음이, 이 사람을 향해 조용하라고 요구하는 다수 관객의 타박보다 더 좋게 들린다”고 말했다. 정말 이날따라 유난했던 악장 사이 박수에도 미소를 띠어 보여, 차분한 심성의 음악가임을 증명했다. 반면 파트너로 훌륭한 연주를 들려준, 조금 더 예민한 성격인 듯한 피아니스트 알렉세이 그리뉴크는 표정 관리가 안 되는 모습이었다.
두 사람이 조심스럽고 깊은 호흡으로 그려내는 정물화 같은 공간을 조급한 청중은 마지막 정적까지 기다려주지 못했으며 악장과 악장 사이마다 나온 대량의 박수와 고개를 갸웃하게 하는 “브라보!” “브라비!”까지, 열렬하지만 편치 않는 객석 풍경이었다. 대개 연주자나 레퍼토리가 낯설 때 객석이 산만해지곤 한다. 하지만 니컬라 베네데티는 20대의 나이에도 불구하고 영국에서 가장 촉망받는 바이올리니스트답게 어려운 레퍼토리를 실수 없이 동요하지 않고 피아노 연주자와 호흡을 잘 유지하며 두 번의 앙코르와 여러 번의 커튼콜까지 무난히 끝냈다. 2014년 내한 공연은 그녀에게도 많은 시사점을 주었을 듯싶다.
글 강민석(음악 칼럼니스트) 사진 유니버설뮤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