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애 첫 피아노 독주회 여는 정명훈

나에겐 피아노가 진짜 음악이다

기사 업데이트 시간: 2014년 10월 1일 12:00 오전

지휘자 정명훈이 40년 음악인생 최초로 생애 첫 피아노 독주회를 갖는다. 정명훈의 피아노 리사이틀은 전국 투어형식으로 진행될 계획이다

정명훈의 피아노를 실내악이 아닌 독주로, 그것도 음반이 아닌 실연으로 들었던 흔치 않은 행운을 누렸던 것은 그도, 객석에 앉아 있던 청중도 전혀 예상치 못한 우발적 사건 덕분이었다. 1995년 9월, 필하모니아 오케스트라를 이끌고 그가 서울에 찾아왔다. 공연 시간이 훌쩍 지났는데도 시작될 기미가 보이지 않자, 청중은 손목시계를 연신 들여다보며 웅성거렸다. 드디어 무대 위 조명이 들어오며 출입문이 열리는가 했더니 웬걸, 단원들이 입장하는 것이 아니라 지휘자만 멋쩍게 홀로 등장하는 것이었다. 고개를 갸우뚱하는 청중에게 그가 무척 미안한 표정을 지으며 비보를 전해왔다. 시청 근처의 호텔에서 출발한 오케스트라 단원들이 교통 체증에 묶여 아직 한강을 건너지 못했다는 것. 그러곤 “피아노를 연주한 지 오래되었지만…”이라고 말꼬리를 흐리며 스스로 피아노 앞에 앉았다.

그의 손끝에서 따뜻하고 매혹적인 드뷔시가 울려 퍼졌다. 객석에 앉은 거의 모든 청중이 난생처음 그의 피아노 독주를 접했을 것이었다. 뜻밖의 행운에 모두가 환호했다. 그러고도 몇 분이 지나 이번엔 정명훈의 손에 이끌려 협연자 페테르 야블론스키가 등장했다. 청년의 표정은 흡사 주사를 맞으러 억지로 끌려온 어린아이와도 같았다. 야블론스키는 라흐마니노프의 전주곡을 당차게 연주했지만, 의연했던 정명훈의 연주에 비하면 난처하고 불안한 심리를 완전히 감추지 못한 인상이었다. 강남에 단원들이 입성했다는 소식을 들고 지휘자가 다시 무대 위에 올랐다. 협연자를 내세울 법한데도 또 한 번 그가 직접 피아노 앞에 앉았다. 명징하고도 그윽한 음색이 그의 건반으로부터 울려 퍼졌다. 이날 오케스트라 단원들은 1시간이나 늦게 도착했다. 정명훈에겐 고육지책이었겠지만 청중은 뜻밖의 행운을 누렸던 셈이다. 벌써 20년 전의 빛바랜 기억이더라도 나에게 이날의 연주를 떠올리는 실마리는 ‘정명훈 지휘의 필하모니아’나 ‘야블론스키의 라흐마니노프 협연’이 아니다. 그보단 ‘정명훈의 피아노’와 ‘교통 체증’으로만 뚜렷하게 기억하고 있다.

초콜릿만큼이나 피아노를 사랑했던 지휘자

2001년, 파리의 샹젤리제 극장에서 정명훈의 피아노를 다시 만났다. 메시앙의 ‘세상의 종말을 위한 4중주’를 고티에 카퓌송·지앤 왕·자비에 마이어 등과 함께 연주한 실내악 무대였다. 신기한 것은 비록 바이올린과 클라리넷·첼로가 무대 전면에 자리 잡고 있었지만, 음악의 고삐를 줄곧 움켜쥐고 이끌었던 것은 그들보다 두 발짝 뒤에 앉은 후면의 피아노였다. 다른 악기를 압도했다는 의미가 아니다. 오히려 앞서 앉은 젊은 주자들이 자신의 존재 증명을 위해 애와 용을 쓸 때, 피아노는 그들을 너른 품으로 아우르거나, 든든히 지지해주거나, 의연히 이끌거나, 배경으로 소멸하면서 음악의 큰 걸개를 만들어갔다. 이렇듯 이른바 ‘하늘에서 내려다본 새의 시점’은 지휘자 특유의 장점이라 할 수 있다. 정명훈도 이와 관련해 흥미로운 이야기를 들려준 적이 있다. 그에 따르면 독주자와 지휘자는 음악에 접근하는 프로세스가 전혀 다르다는 것이다. 독주자는 개개의 음표를 익히고 난 후에야 전체 그림을 생각하지만, 지휘자는 우선 전체의 걸개를 파악한 다음, 부분을 섬세히 다듬는다. 부분에 매몰되어 전체를 조망하지 못하는 ‘독주자적’ 지휘자 결핍에 허덕이는 우리 입장에선 바렌보임이나 아시케나지·에셴바흐와 같이 지휘를 병행하는 피아니스트의 연주에서 느끼게 되는 호방한 새의 시선이 부럽기만 하다.

지난해 음반보다 몸집과 무게를 키운 연주곡들

정명훈은 지난해 ECM레이블에서 첫 피아노 독주 음반을 출반하면서 여러 인터뷰를 통해 몇몇 흥미로운 이야기를 털어놓았다. 앙코르곡을 모아놓은 듯한 말랑말랑한 선곡에 대해서는 “손주에게 들려주고픈 음악, 아이의 마음으로 돌아가고 싶었다”고 대답했다. 왜 이제야 피아노 음반을 내게 되었느냐는 질문에는 “60세가 되면 직업적인 음악을 그만두고 진정으로 사랑하는 음악을 하고 싶었다. 나에겐 피아노가 진짜 음악이다”라고 응수해 혹시 지휘를 억지로 해온 것은 아닌가란 반문을 자극했다. 그러자 “말러나 브루크너의 교향곡을 피아노로 연주할 수 없어 지휘를 선택했다”고 회상하면서 “지휘자는 소리를 스스로 생산하지 않는 유일한 연주자”라 한탄하기도 했다. 개인적으로는 지휘에 대한 양가적 감정, 혹은 피아노에 대한 무조건적인 애착이 다음의 문장으로 단박에 이해되었다. “어린 시절 초콜릿만큼이나 피아노를 사랑했다.”

프랑스의 유력 일간지 ‘르 피가로’지는 그의 이 음반을 두고 솔직한 진정성이 묻어나는 해석이라 평했다. 그런가 하면 독일의 음악 잡지 ‘포노 포름’은 폭넓은 다이내믹과 섬세한 음영을 언급하며 가식적이지 않은 자유로운 해석이라 호평했다. 영국의 BBC 뮤직 매거진 역시 인습에 얽매이지 않는 신선한 접근을 각별히 다뤘는데 풍성한 굴절을 담은 유연한 음색을 그의 장점으로 꼽았다. ‘쿠브즈 프랑스’지의 인터뷰어 마르크 지만은 다음과 같은 짓궂은 질문을 던지기도 했다. “이번 앨범이 유년 일색의 구성이었으니 다음 앨범은 사춘기를 위한 곡들을 기대해도 될까요?”

곧 다가올 그의 순회 연주는 지난해 음반보다는 몸집과 무게를 확연히 키운 사춘기적(!) 프로그램이다. 브람스 4개의 피아노 소품 Op.119나 쇼팽 발라드 전곡은 피아노에 대한 순수한 애착만으로는 극복되기 힘든 드높은 준령일 것이기 때문이다. 아닌 게 아니라 지난해 겨울 열렸던 기자 간담회에서 정명훈은 쇼팽 발라드 1번을 연주하다 중간에 멈추었다. 연주 도중 삐끗한 부분이 영 맘에 걸렸던 모양이었다. 대가에게 느꼈던 의외의 소시민적 면모랄까, 연주를 중단하며 멋쩍게 손목을 터는 모습이 오히려 인간적으로 다가왔다. 그는 언젠가 실연으로 듣는 음악의 즐거움을 이렇게도 비유했었다. “음반 감상이 식당에서 메뉴판의 사진으로만 음식 맛을 상상하는 것이라면, 연주장에서 듣는 음악은 음식을 직접 맛보는 것이다.” 20년 전 교통 체증으로 누렸던 황홀한 행복을 다시 한 번 설레는 마음으로 기다리는 중이다.

글 조은아(피아니스트·음악 칼럼니스트) 사진 이나영

 

정명훈 피아노 리사이틀

10월 5일 오후 5시 창원 성산아트홀, 10월 12일 오후 5시 대구 시민회관,

12월 16일 오후 8시 서울 예술의전당, 12월 18일 오후 8시 대전예술의전당,

12월 20일 오후 7시 고양아람누리 아람음악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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