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 루체른 페스티벌 상주작곡가로 ‘사이렌의 침묵’을 성공적으로 초연한 진은숙. 20년 전, 유럽 클래식 음악가들의 귀를 사로잡은 그녀의 음표 사이사이에 이제 얼마나 큰 신뢰가 담겨 있는지 생생히 목격한 시간이었다. 파리와 서울, 그리고 루체른에서 진은숙과 나누었던 이야기를 전한다
서울대 작곡과 재학 시절, 음대생들에게 공포로 일컬어지는 시창·청음에서 바흐의 ‘프렐류드’를 딱 한 번 듣고 그대로 적어내 주위를 놀라게 한 것은 그녀의 생래적 예술성을 가늠케 하는 대표적인 일화다.
앙상블 앵테르콩탕포랭의 피아니스트였던 플로랑 보파르는 고백했다. 20여 년 전, 처음 그녀의 친필 악보 ‘기계적 환상곡’과 조우한 순간, 정신과 육체 모두 황홀함을 느꼈다고. 첼리스트 장 기엔 케라스도 지지 않는다. 그는 일찌감치 그녀가 얻을 세계적인 명성을 점쳤다.
“단 한 음도 낭비되지 않고, 모든 것이 정교하게 공들여진 음악이다. 10년 넘게 현대음악을 전문적으로 연주하며 신작들을 수없이 만났지만, 진은숙만큼 독특하고 강렬하게 처음부터 우리를 사로잡는 작곡가는 없었다. 템포를 마음대로 주무르는 마법을 부리는 엄청난 거인을 떠올렸다.”
LA 필하모닉 음악감독 구스타보 두다멜을 비롯해 뉴욕 필하모닉 음악감독 앨런 길버트·바이올리니스트 크리스티안 테츨라프·작곡가 마티아스 핀처·바이올리니스트 르노 카퓌송·첼리스트 알반 게르하르트·중국 출신의 생황 연주자 우웨이 황 등 그녀와 함께한 음악가는 물론 그녀와 작업해보지 않은 여러 장르의 예술가들 역시 그녀의 작품을 고대한다. 2014 루체른 페스티벌의 상주작곡가로 낙점된 것만 봐도 전 세계 클래식 음악계를 쥐락펴락하는 까다로운 음악인들이 얼마나 그녀를 신뢰하는지 알 수 있다.
루체른 페스티벌에서 진은숙의 신작 ‘사이렌의 침묵’이 초연되었다. 연주는 사이먼 래틀이 이끄는 루체른 페스티벌 오케스트라의 몫이었다. 루체른의 KKL홀은 뒤카·드뷔시·베리오·진은숙으로 구성된 프로그램을 만나기 위해 몰려든 청중으로 한 치의 빈자리도 찾아보기 힘들었다.
마치 꿈처럼, 멀리서부터 매혹적인 사이렌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주인공은 소프라노 바버라 해니건. 그녀가 요염한 자태를 뽐내며 객석 뒤에서 등장했고 그렇게 새로운 음악의 탄생을 알렸다.
시대를 놀라게 했던 걸작은 또 다른 걸작의 모태가 되는 것일까. 제임스 조이스의 ‘율리시스’ 중 ‘사이렌’에서 비롯된, 흡사 한 편의 연극을 연상케 하는 이 신작에 우레와 같은 환호와 박수가 쉼 없이 쏟아졌다. 다섯 번의 커튼콜이 이어지자 사이먼 래틀은 무대에 오른 진은숙의 팔을 이끌어 자신의 자리로 올렸다. ‘파이낸셜 타임스’지는 “진은숙이 내놓은 매혹적인 반짝임으로 가득한 보석이 사이렌처럼 모두를 홀렸다. 이것은 위대한 걸작이다”라고 목소리를 높였고, 건강상의 이유로 포디엄에 오르지 못한 불레즈를 대신해 오케스트라를 이끈 사이먼 래틀은 “이 마스터피스를 내년 5월 베를린 필하모닉에서 다시 연주한다고 생각하면 벌써부터 두근거린다”며 아이처럼 기뻐했다.
올해 봄부터 여름까지, 두 번의 계절이 바뀌는 동안 그녀의 작품과 생생하게 마주했던 파리와 서울, 그리고 루체른에서 진은숙과 나누었던 이야기들을 지면에 옮겨본다
.모든 음표는 의미를 지녀야 한다
‘사이렌의 침묵’ 리허설에서 지휘자 사이먼 래틀은 단원들을 향해 “진은숙이 작곡(compose)한 이 걸작을 우리가 해체(decompose)할 차례다!”라고 말하며 무한한 애정을 내보였다. 지난 2004년, 베를린 필하모닉과 함께한 바이올린 협주곡 이후 사이먼 래틀과의 두 번째 작업인데 소감이 어떤가.
바이올린 협주곡을 올린 것이 벌써 10년 전이다. 2004년과 지금, 래틀과 베를린 필하모닉 단원들과의 관계를 지켜보면 그 10년이란 시간이 실감 난다. 베를린 필하모닉의 연주력은 세계 최고지만, 콧대 높은 그들은 종종 상임지휘자조차 존중하지 않는다. 래틀은 인간적이고 민주적인 리더십으로 사람들을 이끌며, 작곡가들을 절대적으로 존중한다. 반면 단원들은 좀 다르다. 오히려 작곡가가 단원들의 눈치를 본다. 단원이 지휘자보다 더 기가 세다고 해야 할까(웃음)? 만약 누군가 베를린 필하모닉에 볼품없는 신작을 들고 온다면 단원들의 독설과 경멸 어린 태도를 각오해야 할 것이다. 운 좋게도 나는 그런 적이 없지만, 작곡가들 사이에서 베를린 필하모닉 단원들의 애티튜드가 종종 화제가 된다. 세계 초연의 경우 완성도를 높이는 일등 공신은 연주에 임하는 연주자들의 헌신적인 태도다. 그런 면에서 루체른 페스티벌 오케스트라는 상대적으로 경험은 부족하지만 패기와 열정을 가지고 뭔가를 성취하고야 말겠다는 자세를 갖췄다. 현대음악은 그들에게도 도전일 텐데 래틀의 진심 어린 리더십이 놀라운 결과를 빚어냈다. 지휘자와 단원들의 마음이 하나로 모였고, 그 덕에 기대했던 것보다 훨씬 좋은 연주가 됐다. 소프라노의 목소리가 좀 더 컸으면 하는 아쉬움은 있지만 초연이 어떻게 완벽할 수 있겠나. 충분히 만족스럽다.
루체른 페스티벌의 후원사 로슈재단이 ‘음악과 과학의 접목’이라는 테마로 위촉하고, 제임스 조이스의 문학적 텍스트를 차용한 ‘사이렌의 침묵’은 문학·과학·음악의 컬래버레이션이기에 이채롭다. 이번 신작을 통해 무엇을 전달하고자 했나.
평소 우주·과학·철학·예술 등 다양한 분야의 책을 읽으면서 종종 음악적인 영감을 받는다. 2012년과 2013년 두 번에 걸쳐 로슈재단을 방문했고, 과학과 예술을 접목하는 데 관심이 많은 재단 관계자들과 진지한 대화를 나눴다. 평소 궁금했던 분야라 더 많은 영감을 받을 수 있었다. 하지만 결국 내가 가져온 것, 세상에 내놓는 것은 음악이다. 어쭙잖은 장르의 변용은 경계해야 한다. 작곡가가 스스로의 음악적 빈곤을 위장하기 위해 아무것도 아닌 것을 대단한 것인 양 포장해서 세상에 내놓거나, 음악과 소음을 구별하지 못하고 창작이 아닌 배설을 하는 경우가 있다. 어떻게든 뭐든 갖다 붙여서 시간을 채우는 식으로 말이다. 나에게 가장 필요한 것, 내가 추구하는 것은 음악적 정수(essence)다. 밀도가 떨어지든 말든 어떻게든 곡을 전개시키면서 무의미한 나열을 하는 건 내 스타일이 아니다. 듣고 나면 아무것도 안 남고 뭘 들었는지도 모르겠다면 음악을 왜 듣는가?
당신과 작업한 음악가들은 물론 아직 함께 작업하지 않은 음악가들 사이에서 ‘진은숙의 작품’에 대한 믿음은 상상을 초월할 만큼 견고해 보인다. 이러한 신뢰를 얻을 수 있는 비결은 무엇인가.
언제나 새로운, 유일무이한 작품을 남기는 것이 내 음악의 목표다. 이 때문에 내 작품들은 꿈과 상상 속 색채를 현실로 가져온다. 듣는 행위에는 여러 단계가 있다. 직관적으로 한순간에 매료되어 귀 기울이며 들을 수도 있고, 악보를 들여다보며 음표 하나하나 분석하듯 들을 수도 있다. 나는 내 음악이 극과 극의 ‘듣는 행위’들을 만족시키길 바란다. 그러려면 모든 음표가 의미를 지니고 있어야 한다. 무의미하게 낭비되는 것이 없기를, 듣는 이에게 무언가를 남기고 지나가기를 진심으로 바란다. 곡을 쓸 때면 지옥불에서 온몸이 타들어가는 것 같다. 지금은 그나마 균형을 찾았지만, 한때는 나 자신을 다 소진하듯 끝까지 몰아붙이며 아등바등 써냈다. 연주자들이 내 음악을 새롭고 유일무이하다고 느꼈다면 다행스러운 일이다. 1990년대 후반 파리에서 막 이름을 알리기 시작했을 때, 당시 완전히 기반이 잡힌 앙상블 앵테르콩탕포랭과 음악·음향연구소 이르캄(IRCAM)의 체계적인 시스템이 부러웠다. 유럽 출신이라는 것만으로도 자연스럽게 베토벤과 드뷔시의 후손 대우를 받는 그들이 탄탄한 시스템까지 가졌으니 왜 아니 그렇겠는가! 이에 반해 나는 동양인·여성·한국인이기에 세상이 덧씌우는 선입견과 내 음악에 기대하는 이미지들이 있다. 심지어 지금까지도 말이다. 그에 맞서기 위해 더더욱 음악적인 완성도에 매달렸다. 매력? 그런 건 잘 모르겠고 음악으로는 승부할 자신이 있었다.
10여 년 전부터 음악인이라면 누구나 바라는 꿈의 무대에서, 세계 유수의 오케스트라와 앙상블이 당신의 작품을 연주하고 있다. 오래전 베를린에서 당신이 “그러니까 불가능하지는 않을 것 같아요”라며 조심스레 바랐던 것처럼 말이다. 이제 그 꿈 한 자락이 강철 같은 현실로 굳어진 것을 실감하는가.
1984년, 함부르크에 가기 직전 카라얀이 베를린 필하모닉을 이끌고 첫 내한 공연을 왔을 때였다. 부리나케 리허설부터 들으러 갔다. 이미 독일학술교류처(DAAD) 장학금이 결정된 상태였는데, 독일어를 어느 정도 할 줄 아는 음악 전공자였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지난 5월 공연에서 그때 보았던 단원들이 여전히 연주하는 걸 보니 감회가 남달랐다. 막연하지만 뚜렷한 믿음이 생기는 순간이었다. 언젠가 내 작품을 베를린 필하모닉이 연주할 것이라고, 그만한 가치를 지닌 곡을 써낼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말이다. 내가 받은 상의 이름값에 연연하고, 지금까지 연주한 오케스트라와 지휘자들의 명성에 의존하며 내가 작곡가로서 이룩한 성취를 말하려는 것이 아니다. 초심부터 그랬다. 퀄리티를 갖추지 않은 곡은 세상에 내놓지 않겠다는 치열한 자기 검열이 언제나 있었다. 작품 목록에 올렸다가 개정은 물론이고, 곡을 삭제하면서까지 그 초심을 잃지 않으려고 애썼다. 처절할 정도로 스스로를 극한에 몰아가면서 곡을 쓰다 보니 독일에 첫발을 내디딘 지 20년 만에 베를린 필하모닉이 내 곡을 연주하더라. 당시 처음 들른 페스티벌이 바로 루체른 페스티벌이었다. 30년 만에 상주작곡가로 초청받았고, 위촉받은 작품을 성공적으로 선보였다. ‘더 일찍 이곳에 올 수 있지 않았을까’ 하는 아쉬움은 없다. 다만 옛 기억과 함께 여러 감정이 밀려와 감회가 남달랐다.
결국, 음악을 연주하는 건 인간이다
늘 새로우면서도 독특함을 잃지 않는 것은 중요하다. 하지만 창작에 있어 매너리즘을 피하기란 결코 쉬운 일이 아닐 텐데.
어렵다. 창작하는 사람이라면 다 그렇겠지만 나는 위촉 작품만을 써가며 전업 작곡가로 살고 있으니 더욱 그렇다. 위촉을 받으면 악기 편성·길이·장르 등 이미 어느 정도의 틀이 정해져 있다. ‘자기만족을 위한 곡을 쓴다’는 개념은 없다. 그저 나를 위해 하는 게 있다면 여러 도시를 돌아다니는 숨 가쁜 일정 속에서도 악보를 챙기고, 잠시나마 피아노 앞에서 스크랴빈이나 베토벤을 치는 것 정도다. 그건 온전히 나를 위한 것이다. 하지만 마감은 언제나 촉박하고 곡은 안 풀리는데 출판사·지휘자·연주자 모두가 나만 보며 기다리고 있으면 그마저도 사치다. 특히 올해처럼 신작이 몰린 경우에는 명절이나 생일도 다 반납하고 작업에만 몰두한다. 영감을 찾기 위한 여행? 떠날 시간이 어디 있나. 그런 거 없다. 설거지하고 요리하면서도 영감을 찾는다.
스트라빈스키는 다행스럽게도 예술가로서 매너리즘에 빠지지 않았다. 그는 늘 새로운 시도를 했다. 초기 발레음악 ‘페트루슈카’, 시대의 걸작 ‘봄의 제전’과 바이올린 협주곡을 지나 후기작 ‘아곤’까지 스타일이 모두 다르고 독립적이다. 내가 한때 그의 악보를 옮겨 적으며 작곡가의 꿈을 꾸었는데 그때의 시간을 돌이켜보면, 독창성을 갖추는 데 도움이 된 것 같다. 물론 현대에 들어 악기와 테크놀로지의 발전으로 음악 언어가 매우 다양해진 것은 사실이다. 까마득한 과거의 작곡가보다 재료가 훨씬 더 많아진 셈이다. 나도 한때는 새로운 것을 찾기 위해 전자음악에 진지하게 접근했다. 물론 전자음을 진짜 소리와 접목하면서 음악 세계의 폭은 넓어졌지만 도구를 사용한다는 건 결국 오롯이 내가 아로새긴 인장을 지닌 작품으로 승화하는 것과는 확연한 차이가 있다. 오히려 숙제가 더 많아졌다고 할까. 그 많은 재료를 완벽하게 음악으로 녹여내 곡을 쓴다는 건 또 다른 문제니까 말이다.
머릿속에 떠오르는 음악을 악보에 적고, 그것이 연주되기까지의 과정 또한 작곡가에게 편하지만은 않을 것 같다.
곡을 쓰는 과정은 불가해한 추상 그 자체다. 하나의 씨앗에서 출발한다고 하자. 그 씨앗이 발아해 무엇이 될지, 얼마쯤 비켜나 있을지, 또 어떤 악상들이 비집고 들어올지 곡을 시작하기 전에는 알 수 없다. 연주가 되기 전까지 내 곡이 어떻게 들릴지 알 수 없는 것처럼 말이다. 세상에서 가장 두렵고 끔찍한 게 첫 리허설이다. 머릿속에 있던 음악이 현실에서 들려오니 설레고 황홀할 것 같지만 전혀 그렇지 않다. 이상 속에만 존재하던 음악과 현실에서 귀로 들려오는 음악 사이의 차이가 때로는 하늘과 땅만큼 인데, 이게 얼마나 괴로운 일인지 작곡가가 아닌 사람은 모를 것이다. 그저 경험이 쌓여 충격을 짐짓 아무렇지 않은 척 위장할 수 있을 뿐이다. 멋모르던 시절에는 연주자들에게 고압적인 자세로 악보를 가져다주면서 “내가 작곡가다. 자, 이제 연주해보라”고 말했다. 하지만 그런 자세로는 당연히 원하는 결과물이 나오지 않는다는 걸 경험을 통해 깨달았다. 음악을 연주하는 건 인간이다. 연주자와의 소통과 신뢰 관계를 중요하게 생각하고, 한 연주자와 긴밀하고 지속적인 협업을 하면서 음악적 완성도를 더해가는 것이 이상적이라고 본다.
서울시향의 현대음악 시리즈 ‘진은숙의 아르스 노바’가 벌써 9주년을 맞았다. 그동안 불레즈·리게티·메시앙·뮈라이·외트뵈시 등 다양한 작곡가의 작품이 ‘아르스 노바’에서 아시아 초연 또는 한국 초연으로 올려졌다. 피아니스트 피에르 로랑 에마르는 파리를 새로운 현대음악의 메카로 자리 잡게 한 작곡가 피에르 불레즈를 당신에 비유하더라.
무한대에 가까운 예산과 전적인 자율권이 있었던 불레즈와 나와의 비교가 어찌 가능하겠나. 2006년 정명훈 예술감독의 제안을 받고 ‘아르스 노바’를 수락했던 이유는 그동안 부러워만 했던 유럽의 문화적 토양을 서울에서도 자라나게 하겠다는 생각 때문이었다. 맨땅에 용감하게 헤딩을 한 셈인데, 아무것도 몰랐으니 냉큼 하겠다고 한 것도 같다(웃음). 어떻게 시간이 지났는지 모르겠다. 작곡과를 졸업하고 오랜 시간 동안 해외 유학을 하고, 어쩌다 콩쿠르 입상을 하면 운 좋게 현대음악 전문 연주단체에 초청될 수 있겠지만, 곡이 연주되어도 오롯이 현대음악 작곡가로 살 수 있을까? 현실적으로 쉽지 않은 일이다. 없는 길을 만들면서 가는 어려운 과정이기에 ‘후배들에게 이 길을 먼저 간 사람으로서 길을 개척해주는 것이 어떨까’라고 생각했다. 작곡가들이 작곡가로서 살기 위해서는 현대음악이 향유될 수 있는 생태계 조성이 급선무였다. 누구도 위촉을 하지 않았는데 혼자 곡을 쓰고, 자기 돈을 내고 콘서트홀을 빌려 작곡가와 연주자, 그 가족·친척·지인들만 결혼식에 참석하듯 얼굴을 비치러 오는 음악회는 독하게 말하면 창작이 아니라 배설이며, 작품을 세상에 내놓는다는 자아도취에 빠진 예술가의 나르시시즘적 자기 위안에 불과하다. 진짜로 대중이 새로운 음악을 듣고자 하는 지적 호기심과 음악적 욕구를 충족하기 위해 올 수 있는 공연을 선보이고 싶었다. 엄선된 프로그램, 실력 있는 연주자들의 연주, 음향 좋은 홀, 청중의 열린 마음, 주야장천 반복적으로 들어온 고전과 낭만 레퍼토리 말고도 오늘의 음악에 관심을 보이는 언론과 평론가들까지 모든 게 다 필요하다는 걸 알기에 용기와 믿음을 갖고 시작했다. 그렇게 처음 ‘아르스 노바’를 시작하던 그때에는, 사실 아무것도 없었다.
‘아르스 노바’에서 함께 운영되고 있는 마스터클래스도 눈에 띈다. 이를 통해 김택수·신동훈·조현화 등 젊은 작곡가들에게 서울은 물론 유럽 곳곳에서 작품을 발표할 수 있는 기회가 주어졌다. 사비를 털어서라도 젊은 작곡가들에게 위촉료를 챙겨주고 정식으로 곡을 쓸 수 있는 시간들을 어떻게 마련해왔는지 궁금하다.
한국에서는 작곡가들에게 ‘예산이 없어서 돈은 못 줘도 곡을 발표할 수 있게 해줄 테니 무조건 써달라’는 식의 논리가 지금도 여전히 통한다. 슬픈 일이다. 아무도 빵집에 가서 공짜로 빵을 달라거나 옷 가게에서 돈을 내지 않고 옷을 집어 오지 않으면서 창작하는 사람들에게는 아무렇지 않게 착취를 일삼는다. 부당하지만 곡을 발표할 기회가 흔치 않으니까 위촉료를 못 받아도 곡을 쓴다. 얼마 안 되는 예산이라도 작곡가에게 돌아갈 몫을 정확하게 챙겨야 한다. 창작자가 정식으로 위촉을 받고 좀 더 완성도 높은 곡을 쓰도록 돕고… 상식적으로 당연한 것을 했을 뿐이다. 당장은 아닐지라도 언젠가는 상식이 통하는 예술적 생태계가 갖춰지기를 바란다. 사비로 위촉료를 챙겨주는 것은, 서울시향의 예산이 세금으로 운영되는 만큼 내 임의대로 할 수 없기 때문에 우선 내가 나서서 시험 삼아 기회를 주는 것이다. 개인적으로 엄청난 성공과 부를 거둔 것은 아니지만 이만큼 이뤘으면 다음 세대를 위해 당연히 해야 할 일이라고 생각한다. 악보 리허설을 통해 세계적인 거장들을 만나 의견을 나누고, 서울시향처럼 실력 있는 단원들이 성심성의껏 연주해주는 것만으로도 젊은 작곡가들에게는 큰 기회의 장이 생긴 셈이다. 나도 신작을 완성하면 그렇게 인연이 닿은 작곡가에게 악보를 보여주면서 자유롭게 코멘트를 나눈다.
차기 오페라인 ‘거울 뒤의 엘리스’는 어떻게 준비하고 있나.
다행히 작품을 선보일 2019년까지 시간이 남아 있는 상태다. 오케스트라와 인성(人聲)을 어떻게 사용해야 할지 이번 작품을 통해 감을 잡을 수 있었다. 사람들이 몰려와 샴페인을 권하며 아무리 찬사를 쏟아내도 거기에 미혹돼서는 안 된다. 작곡가는 오로지 음악으로만 남고, 음악으로만 기억되는 존재들이니까. 이제 다시 일상으로 돌아가 곡에 매진할 것이다. 내가 바라는 건 그저 좀 더 좋은 음악이 세상에 많이 나오는 것, 그거 하나다.
글 김나희(파리 통신원) 사진 박진호(studio BOB)