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 루체른 페스티벌

살아있는 음악의 영혼, 프시케를 만나다

기사 업데이트 시간: 2014년 10월 1일 12:00 오전

8월 15일부터 9월 14일까지 ‘프시케’를 주제로 루체른 페스티벌이 열렸다. 진은숙을 비롯해 요하네스 마리아 슈타우트·하인츠 홀리거가 신작을 선보였으며 특히 올해는 지난 1월, 세상을 떠난 클라우디오 아바도에게 헌정한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


▲ 루체른 페스티벌이 열린 KKL 콘서트홀

예술에 마법을 부리는 존재, 푸시케

루체른 페스티벌을 5년 만에 다시 찾으니 감회가 새로웠다. 클라우디오 아바도가 살아 있을 때 다시 오고 싶었는데 결국 그가 세상을 떠난 해에 다시 루체른 페스티벌에 오고야 말았다. 아바도가 이렇게 빨리 우리 곁을 떠날 줄 모르고 방심했던 것 같다. 내 인생 최고의 콘서트였던 아바도가 지휘한 2009년 말러 교향곡 1번과 유자 왕이 협연한 프로코피예프 피아노 협주곡 3번의 잔상이 깊이 남아 있는 루체른의 KKL 콘서트홀.

그 KKL 콘서트홀을 9월 7일과 8일에 찾았다. 세계 최고의 오케스트라들이 벌이는 교향악 축제인 루체른 페스티벌에서 7일과 8일에는 라이프치히 게반트하우스가 각각 ‘합창’이 담겨 있는 두 곡을 연주했다. 팔이 부러진 지휘자 리카르도 샤이를 대신해 뉴욕 필의 상임지휘자 앨런 길버트가 첫날 베토벤의 교향곡 9번 ‘합창’을 지휘했는데 게반트하우스 오페라 합창단·게반트하우스 합창단·게반트하우스 어린이 합창단 총 148명에 이르는 합창단이 숙련된 솜씨로 그것도 모두 악보 없이 외워서 합창하는 모습은 충격적이었다. 이날 크리스티나 란트샤머(소프라노)·게르힐트 롬베르거(알토)·스티브 데이비슬림(테너)·드미트리 벨로셀스키(베이스)의 가창은 모두 흠잡을 데 없이 빼어났으며 진군하듯 노래하는 가창들이 매우 흥미진진했다.

특히 테너 데이비슬림은 솔로 부분에서 악보를 보지 않고 오페라 부르듯 연기해 청중을 사로잡았고 다른 솔리스트들도 모두 즐거워하는 모습이었다. 앨런 길버트는 2·4악장과 확연히 비교되는 3악장을 대단히 느린 템포로 잡으면서 아름다운 풍경을 그려내려 했으나 결과적으론 용두사미 악장이 되고 말아 진한 아쉬움을 남겼다. 길버트가 합창단과 성악진에 이날 공연 성공을 감사해야만 할 정도로 솔리스트들과 합창의 수준이 매우 높았다. 연주에 앞서 프리드리히 체하의 2010년 작품인 베토벤 교향곡 9번 ‘합창’의 패러프레이즈가 먼저 울려퍼졌다. 베토벤 교향곡 9번의 다양한 주제가 사용된 곡으로 현대곡 연주를 무척 중요한 사명으로 여기는 루체른 페스티벌의 성격에 매우 잘 어울리는 선곡이었다.


▲ 지난 9월 8일, 라이프치히 게반트하우스 오케스트라는 말러 교향곡 3번을 연주하며 청중에게 감동을 선사했다

8일에는 말러 교향곡 3번이 연주되었는데 이번 페스티벌의 주제인 ‘프시케(영혼)’에 맞춘 곡목 선정이었다. 7일에 이어 암보로 지휘한 앨런 길버트와 암보로 노래한 어린이 합창단, 그리고 전날에 이어 4악장 ‘인간이여’부터를 솔로로 부른 메조소프라노 게르힐트 롬베르거는 품격 높고 융숭 깊은 가창으로 곡을 이끌어나갔다. 연이틀간 트럼펫과 호른의 잦은 실수는 평소의 라이프치히 게반트하우스 오케스트라의 모습 같지 않았다. 하지만 마지막 5악장 ‘평화롭게’에서 들려준 현악기군의 따뜻하고 깊이 있으며 명주실 뽑듯 피아니시모를 만들어내는 연주는 왜 샤이가 이끄는 라이프치히 게반트하우스 오케스트라를 세계 최고의 말러 해석 오케스트라 중 하나로 꼽는지 증명해주었다.

금년 페스티벌의 주제는 ‘프시케’인데 “음악에 있어서 가장 중심 되는 역할을 하는 테마이자 모든 예술에 마법을 부리는 존재”라고 루체른 페스티벌의 예술총감독 미하헬 헤플리거는 말했다. 그래서 이번 페스티벌 기간 동안 콘서트홀 로비에서는 다양한 회화 작품과 설치물을 통해 프시케를 만날 수 있었다. 특별한 영감에 휩싸여 작곡한 바그너의 ‘트리스탄과 이졸데’, 라벨의 ‘볼레로’, 베토벤의 7번 교향곡, 쇼팽과 슈만의 영혼 가득한 음악들, 그리고 상주작곡가 진은숙과 요하네스 마리아 슈타우트·하인츠 홀리거의 신작 초연을 통해 루체른 페스티벌은 ‘프시케’라는 주제를 선보였다. 특히 사이먼 래틀과 베를린 필이 자신들의 시즌 프로그램에서 연주했던 피터 셀래스의 제의적 연출이 돋보인 바흐의 ‘마태수난곡’이 대표적 프시케적인 작품으로 선택되었다.


▲ 예술총감독 미하엘 헤플리거

포스트 아바도는 누구인가

매년 아바도가 지휘했던 루체른 페스티벌 오케스트라는 오프닝 공연을 포함하여 4개의 공연을 보여주었다. 올해는 36세의 젊은 지휘자로 보스톤 심포니 오케스트라를 2014/2015시즌부터 정식으로 맡게 된 안드리스 넬손스가 루체른 페스티벌 오케스트라를 지휘했지만 앞으로는 과연 누가 맡게 될지, 포스트 아바도는 누구일지 궁금하지 않을 수 없었다. 아바도가 작년에 미리 짜놓은 올해 브람스 레퍼토리를 지휘한 넬손스가 내년에도 계속 루체른 페스티벌 오케스트라를 맡게 될까? 1999년부터 15년간 루체른 페스티벌을 이끌어왔으며 올여름 페스티벌 직전에 2020년까지 예술총감독직이 연장된, 에른스트 헤플리거의 아들 미하엘 헤플리거는 “앞으로 누가 루체른 페스티벌 오케스트라를 지휘하게 될지 6개월은 더 걸려야 방향을 결정할 수 있다”며 신중한 모습을 보였다. 그는 “진은숙의 신작이 무척 반응이 좋았다. 루체른 페스티벌 오케스트라가 한국에서 연주하는 것에 관심이 있다”고 덧붙였다.

헤플리거가 루체른 페스티벌에서 매우 소중하게 생각하는 것은 피에르 불레즈가 예술감독을 맡고 있는 루체른 페스티벌 아카데미다. 젊은 학생들에게 오케스트라 실기, 특히 동시대 현대음악의 소중함을 전파하는 이 아카데미는 사이먼 래틀과 현대음악 앙상블 앵테르콩탕포랭의 마티아스 핀처, 그리고 하인츠 홀리거가 직접 가르치고 공연에서 지휘했다. 또 헤플리거는 ‘40분 콘서트’를 만들어내기도 했는데 누구나 루체른홀에서 무료로 감상할 수 있는 콘서트로 공연 프로그램을 40분짜리로 편성했다. 긴 프로그램에 적응하지 못하는 청중을 위한 일종의 클래식 교육 프로그램에 가까웠다. 하지만 무료 프로그램이라고 해서 결코 아무나 출연하는 것은 아니다.

사이먼 래틀이 지휘한 루체른 페스티벌 오케스트라나 유명 소프라노 바버라 해니건 등도 출연해 본공연이 열리기 전 초저녁 시간에 무료 청중에게 수준 높은 음악 세계를 짧은 시간 동안만이나마 감상하게 만들어주었다. 이 프로그램은 앞으로 다양한 페스티벌이나 세계의 공연장으로 확산될 수 있는 좋은 프로그램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뿐만이 아니다. 헤플리거는 페스티벌 라운지 프로그램을 만들어 소위 ‘공간 파괴 공연’을 루체른 페스티벌에 적극 도입했는데 금년 페스티벌의 아티스트 에투알(스타 아티스트)로 선정된 바이올리니스트 고토 미도리·소프라노 바버라 해니건 등이 출연해 클래식 공연장 장소 파괴에 따른 새로운 청중 만나기를 시도한 것이 재미있다.

오스트리아의 요하네스 마리아 슈타우트와 함께 금년 루체른의 상주작곡가인 진은숙은 사이먼 래틀이 지휘한 루체른 페스티벌 아카데미의 연주로 신작 ‘사이렌의 침묵’을 발표했는데 큰 호평을 받았다. 페스티벌 전반에 걸쳐 사이먼 래틀이 매우 중요한 역할을 맡고 있음을 알 수 있다.

특별히 금년은 클라우디오 아바도에게 헌정된 페스티벌로 8월 15일부터 9월 14일까지 열렸는데 티켓 판매에 있어 더욱 성공적이었다. 올해 루체른 페스티벌은 구스타보 두다멜이 지휘하는 빈 필하모닉의 공연으로 대단원의 막을 내렸다. 미하엘 헤플리거 감독은 “내년의 주제는 유머”라고 밝혔다. 1년 전에 미리 페스티벌의 얼개를 짜놓는 것이 역시 이들의 성공 비결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루체른 페스티벌은 아바도가 세상을 떠났음에도 불구하고 8만 명에 이르는 후원자와 95퍼센트에 이르는 티켓 판매율을 기록했고 약 6만 6,500명의 콘서트 고어를 기록해 작년보다 티켓 판매율이 1.8퍼센트 더 늘어났다. 27개의 무료 이벤트 공연을 약 1만 3,500명이 감상했고 그중 루체른홀에서 열린 40분 콘서트에 약 5,000명이 몰렸다. 작년에 비하면 무려 12퍼센트가 증가한 숫자다. 56개 콘서트 중 20개의 콘서트가 매진되었고 18개의 콘서트는 90퍼센트 이상의 점유율을 보였다. 단, 올해 여름 기후 때문에 인젤리 공원에서의 오프닝 공연을 비롯한 야외 공연들은 부분적으로 2013년보다 청중이 적었다.


▲ 루체른 페스티벌 아카데미에 참여한 학생들

변함없이 이어지는 페스티벌의 전통

루체른 페스티벌은 1년 내내 돌아간다. 앞으로 이들은 두 가지 일로 바쁘다. 작년 마쓰시마에 이어 2011년 3월 11일 대지진이 났던 동일본에 아크 노바 즉, 이동식 콘서트홀을 세워 올해는 센다이에서 페스티벌을 연다. 이 아크 노바는 아니시 카푸르가 디자인했고 이소자키 아라타가 건축에 참여하고 있다. 최대 500석의 객석을 갖춘 아크 노바의 센다이 공연에서는 11월 2일 루체른 페스티벌 오케스트라의 솔로이스츠들과 겐이치 쓰노다 빅밴드가 함께하는 갈라 콘서트가 펼쳐지며 일주일간 페스티벌이 열릴 예정이다. 지진 피해자들을 돕는 이 갈라 콘서트의 티켓은 10만 엔을 호가한다. 앞으로 루체른 페스티벌 오케스트라는 내년에 미국과 스위스에서도 이동식 콘서트홀 아크 노바 공연을 할 예정이다.

또 하나 남은 과제는 11월에 변함없이 KKL 콘서트홀에서 열리는 루체른 페스티벌의 피아노 공연들이다. 11월이라는 사색적인 시간과 잘 어우러지는 가운데 22일 클라우디오 아바도의 둘도 없는 친구인 마우리치오 폴리니의 리사이틀이 오프닝으로 펼쳐진다. 30일까지 피에르 로랑 에마르·레이프 오베 안스네스가 지휘하고 협연하는 말러 체임버 오케스트라의 베토벤 피아노 협주곡 시리즈와 베스타르드 쉼쿠스·조피 파치·예브게니 키신·벤저민 그로스버너·폴 루이스·마르틴 마이어·마르틴 헬름헨·마르크 앙드레 아믈렝, 그리고 음악학자이자 피아니스트인 로버트 레빈의 마스터클래스까지 열린다.

2015년의 루체른 페스티벌 프로그램도 변함없이 쟁쟁하다. 상주오케스트라인 루체른 페스티벌 오케스트라와 말러 체임버 오케스트라는 물론이고 서동시집 오케스트라·유럽 체임버 오케스트라·로열 콘세르트헤바우 오케스트라·이스라엘 필·보스턴 심포니·베를린 필·상트페테르부르크 필·샌프란시스코 심포니와 빈 필의 공연이 이미 예약되어 있다. 천혜의 아름다운 자연환경을 두루 갖춘 루체른에 있어 음악은 필연적인 것이었다. 베토벤 피아노 소나타 ‘월광’의 이름은 바로 이곳 호수의 밤 풍경에서 비롯되었다. 멘델스존·바그너·라흐마니노프 등 역대 명작곡가들은 루체른의 아름다움을 칭송하고 명작품들을 쏟아냈다. 루체른 페스티벌의 상징이었던 클라우디오 아바도가 세상을 떠나자 많은 클래식 팬들은 루체른 페스티벌과 루체른 페스티벌 오케스트라의 미래에 대해 우려를 표했었다. 하지만 이제 그런 걱정을 하지 않아도 될 것 같다. 그들은 매우 훌륭하게 페스티벌을 만들고 있으며 가장 적합한 아바도의 후임을 선택하게 될 것이고, 희망차게 새로운 루체른 페스티벌의 전통을 계속 써 내려갈 테니 말이다.

글 장일범(음악평론가) 사진 Lucerne Festiva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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