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립오페라단 ‘로미오와 줄리엣’

가을밤을 수놓은 비극적 로맨스

기사 업데이트 시간: 2014년 11월 1일 12:00 오전

10월 2~5일 예술의전당 오페라극장

“사랑, 사랑… 태양아 떠올라라!” 로미오가 노래하기 시작하자 청중은 숨죽였다. 프란체스코 데무로의 아름다운 고음이 터져 나오자 객석에서는 뜨거운 환호가 오랫동안 쏟아졌다. 지난 10월 4일 토요일 예술의전당 오페라극장에서 열린 국립오페라단의 ‘로미오와 줄리엣’에서 로미오 역을 부른 이탈리아 테너 프란체스코 데무로는 훌륭한 공명과 달콤한 목소리로 우리가 듣고 싶었던 로미오의 깨끗하고 시적인 목소리를 구현해내 청중을 사로잡았다. DVD로 접할 수 있었던 자신의 베로나와 파리 오페라‘라 트라비아타’에서의 가창을 뛰어넘는 유려한 그의 목소리는 줄리엣과의 이중창 ‘신성한 밤’에서도 빛을 발했으며 이리나 룽구와의 이중창은 이 운명이 엇갈리는 연인의 4막 ‘이별의 이중창’, 5막 ‘죽음의 이중창’에서 불타올랐다.

국제적인 커리어의 러시아 소프라노 이리나 룽구는 그동안 주로 들어왔던, 그리고 기대했던 줄리엣의 목소리보다는 살짝 두터운 편이었는데 1막 초반에는 불러내는 음이 예리하게 엣지를 찔러주지 못했으나 ‘줄리엣의 왈츠’이후 매우 단단하고 건실한 주인공으로서 역할을 다했다. 초반에는 인생의 즐거움으로 가득 찬 발랄하고 앳된 줄리엣을 만나고 싶었으나 룽구의 해석은 달랐다. 그녀는 화려한 줄리엣 대신 탄탄한 가창으로 극을 이끌어가는 안주인 같은 최고의 안정감을 선사했다. 그런데 이 모든 것을 가능하게 만들어주었던 것은 지휘자 율리안 코바체프의 능력 때문이었다. 지난해 데무로가 출연한 베로나 오페라 신작 ‘라 트라비아타’에서 지휘했으며 역시 베로나와 메트에서 인기 높은 룽구를 캐스팅할 수 있었던 것도 코바체프가 있었기 때문이 아닌가 싶다. 구노의 이 아름다운 음악을 코바체프는 달콤쌉싸래하게 지휘해내며 프랑스 음악의 섬세한 디테일과 뉘앙스를 능숙하게 살려내고, 레가토의 아름다움을 마음껏 느끼게 하며 성악가들을 집중시키고 청중을 극으로 잡아당겼다.

엘리저 모신스키의 연출은 무대와 의상을 맡은 리처드 허드슨이 군청색으로 과감하게 채색한 비현실적인 컬러의 캐풀렛가를 배경으로 조명과 커튼의 색을 바꿔가며 단순하고 미니멀하지만 감각적인 분위기를 만들어냈는데, 이 짙은 파란색의 줄리엣 집은 사랑에 빠진 로미오와 줄리엣에게만 보이는 세계였다. 푸른색·흰색·회색 등으로 색깔을 바꿔나간 커튼은 극중극으로 코메디아 델라르테를 보는 듯한 소격 효과를 가져오기도 하면서 줄리엣과 로런스 신부는 흰색으로 순백의 깨끗함을 상징했다. 또 몬태규가의 로미오나 머큐쇼 등은 붉은색으로 정열을 표현했는데 줄리엣도 로미오와 결혼한 후에는 뜨겁게 사랑이 불타올라 두 사람 모두 파란 배경에 빨간 의상을 입고 한 몸과 한마음이 되었다는 것을 극명한 색채 대조로 보여주었다. 이 색채를 빛나게 한 것은 나이절 러빙스의 섬세한 조명의 승리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티볼트 최상배와 머큐쇼 송기창이 펼친 결투 장면은 역대급이라고 할 만큼 호쾌했다. 집중도 높은 연출과 연기, 그리고 음악에 이르기까지 이번 국립오페라단의 로미오와 줄리엣은 완성도 높은 삼박자를 들려주었다.

사진 국립오페라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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