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마에서 열린 마이어베어 갈라 콘서트

낭만파 음악의 거장, 마이어베어를 재조명하다

기사 업데이트 시간: 2014년 11월 1일 12:00 오전


▲ 마이어베어 갈라 콘서트가 있었던 로마 파르코 델라 무지카 오디토리움

프랑스의 낭만음악 연구기관 ‘팔레토 브루 차네’가 로마 산타체칠리아 아카데미 오케스트라와 함께 개최한 무대를 10월 6일과 7일 양일에 걸쳐 다녀왔다. 환호와 갈채 속에 갈라 콘서트는 깊은 인상을 남겼다

일반 대중에겐 낯설지만 음악 애호가라면 익히 들어봤을 이름, 자코모 마이어베어. 그는 로시니와 동시대를 살았던 인물로 독일 낭만파 음악을 이끈 오페라 최고의 작곡가다. 서거 150주년을 맞은 올해, 그를 기념하기 위한 콘서트가 10월 6일 로마 파르코 델라 무지카 오디토리움에서 열렸다. 안토니오 파파노의 지휘와 소프라노 디아나 담라우의 출연으로 기대를 모은 이번 공연은 이름하여 ‘마이어베어 갈라 콘서트’. 프랑스의 낭만음악 연구기관인 팔레토 브루 차네가 로마 산타체칠리아 아카데미 오케스트라와 함께 개최한 이 공연을 10월 6일과 7일 양일에 걸쳐 다녀왔다.

베니스에 위치한 팔레토 브루 차네는 ‘브루 재단’이 지원하는 프랑스의 낭만음악 연구기관인데, 5년 전 설립된 이곳은 1780~1920년까지의 전쟁으로 사장된 많은 작곡가의 작품을 연구하고 발굴하는 것이 주된 역할이다. 팔레토 브루 차네는 베니스뿐만 아니라 로마·프랑스·독일까지 다양한 파트너십을 구축하고 있는데 로마의 산타체칠리아 아키데미와 빌라 메디치, 프랑스의 루브르박물관 오디토리움과 베르사유궁전 오페라극장도 그중 하나다.

올해 팔레토 브루 차네가 주목한 낭만파 작곡가 자코모 마이어베어는 1791년 독일에서 태어나 1864년 파리에서 서거했다. 살아생전 그 어느 작곡가 부럽지 않은 명성을 누렸던 그는 ‘위그노 교도들’ ‘아프리카의 여인’ ‘악마 로베르’ ‘디노라’ 등 주옥같은 오페라 작품을 남겼다. 그러나 오늘날 ‘위그노 교도들’을 제외한 작품은 거의 대부분 연주하지 않을 뿐만 아니라 심지어 조악한 작곡가로 폄하받기까지 한다. 이에 팔레토 브루 차네는 프랑스 그랜드오페라의 창시자이자 거장인 마이어베어의 진가를 회복한다는 취지 아래 이번 연주를 기획, 프로모션에 나섰고 드디어 오페라 무대에 선보이게 됐다.

10월 6일, 연주 장소인 파르코 델 무지카 오디토리움을 찾았다. 이곳은 파리 퐁피두센터를 설계한 이탈리아 건축가 렌초 피아노가 세운 복합 음악 건축물로 죽기 전에 꼭 봐야 할 장소라 불릴 정도로 뛰어난 건축미를 자랑한다. 우산처럼 가지를 활짝 펼친 소나무 그늘 아래 버섯 모양으로 피어오른 이 공연장은 살라 산타세칠리아·살라 시노폴리·살라 페트라시 세 개의 음악홀로 이뤄졌는데 세 곳 모두 내부 무대 역시 장관이었다.

공연장에 대한 감탄을 뒤로하고 서둘러 팔레토 브루 차네 과학연구부 디렉터인 알렉상드르 드라츠위키를 만나기 위해 산타체칠리아 음악홀의 도서실로 향했다. 아카데미 오케스트라가 정기 연주를 하는 도서실에서 드라츠위키는 이번 프로젝트의 진행 과정과 가치에 대해 차근차근 자세하게 설명해주었다.

“마이어베어의 해인 올해 그의 오페라를 제대로 무대에 올릴까도 생각했지만 문제는 엄청난 비용이었다. 공연 형태에 대해 고심하던 끝에 그의 작품들을 횡단하는 이번 프로그램을 구상하게 됐다. 공연 기획을 위한 첫 단계로 이탈리아에서 마이어베어의 작품 연구 심포지엄을 열었고, 베를린 필하모닉 오케스트라가 도이치오퍼에서 연주한 ‘디노라’의 연주 버전을 후원했다. 이를 발판으로 기획한 것이 이번 갈라 콘서트인데 좀 더 구체화되고 확장된 공연이라 말할 수 있다.”

처음 산타체칠리아 아카데미 회장 브루노 칼리에게 갈라 콘서트 기획에 대한 이야기를 꺼내자 그는 전적으로 찬성했다. 그도 그럴 것이 브루노 회장은 다니엘 오베르와 더불어 마이어베어와 프랑스 시절의 로시니에 심취해 있었기 때문이다. 그는 서둘러 디아나 담라우에게 연주를 부탁했고 결국 2년 만에 공연이 성사됐다. 원래는 마이어베어 곡만으로 공연을 구상했지만 3,000석에 가까운 홀을 채우려면 베를리오즈와 바그너 같은 작곡가의 곡을 함께 연주할 수밖에 없었다.

“우리는 지휘자 안토니오 파파노, 디아나 담라우와 함께 2년 전부터 마이어베어의 새 음반을 워너뮤직에서 낼 구상도 했지만 두 사람의 스케줄이 맞지 않아 아쉽게도 아직 성사되지 못했다. 누구보다 마이어베어를 사랑하는 담라우는 이미 여러 무대에서 마이어베어 오페라를 연주한 경험이 있기에 이번 공연에 딱 맞는 디바다. 특히 파파노와 산타체칠리아 아카데미 오케스트라는 스페셜 프로그램 형태로 이번 갈라 콘서트에 참여하고 있어 더욱 주목된다.”

‘마이어베어와 그의 시대’로 명명된 이번 갈라 콘서트의 레퍼토리는 로시니의 ‘세미라미데’ 서곡과 베를리오즈의 ‘벤베누토 첼리니’, 바그너의 ‘연애 금지’ 서곡과 함께 마이어베어의 ‘악마 로베르’ ‘디노라’ 그리고 ‘아프리카의 여인’ ‘위그노 교도들’의 아리아로 구성되었다.


▲ 화려한 원색 모티프들이 장식된 검은 드레스 차림의 디아나 담라우

재평가받으며 비로소 빛을 보게 된 작품들

오후 8시 30분, 드디어 갈라 콘서트가 시작됐다. 매진은 아니었지만 2,780석의 오디토리움은 청중으로 가득 채워졌다. 에라토 레이블에서 산타체칠리아 오케스트라와 로시니 서곡 음반을 낸 파파노는 빠른 템포와 보기 드문 색감으로 ‘세미라미데’ 서곡을 연주했다. 가벼운 오페라 부파 저편에 자리 잡은 세련된 로시니를 만나는 순간이었다. 두 번째 서곡 ‘벤베누토 첼리니’는 무르익은 낭만 정서가 농후한 베를리오즈의 명작으로, 평생 진보를 염원했던 그의 모더니즘 감각이 돋보였다. 콘서트에서 보기 드문 바순 중심의 연주는 역동적인 멜로디로, 바이올린 파트의 피아니시모는 감칠맛 나는 연주로 스케일의 대조를 이뤄 인상적이었다. 바그너의 ‘연애 금지’에서 파파노와 오케스트라는 캐스터네츠의 리듬 같은 디테일을 충실히 살리면서도 거대한 교향악의 흐름이 뇌살적으로 느껴지는 낭만주의 음악의 심연 가운데로 청중을 인도했다.


▲ 이날 무대의 압권은 ‘위그노 교도들’ 중 ‘투렌의 아름다운 고장’이었다

그사이 감색 모슬린 드레스 차림으로 등장한 디아나 담라우는 마리어베어의 ‘이집트의 십자군’ 중 ‘절망에 빠진 어머니’와 ‘악마 로베르’ 중 ‘로베르, 나는 너를 사랑해’를 불렀다. 첫 곡에서 팔미드로 분한 담라우는 하이C를 성공적으로 불렀으나 굴곡이 많은 마이어베어의 멜로디 라인을 따라가는 것이 쉽지만은 않아 보였다. 그래서 악보를 보고 불렀을까. 하프의 반주에 맞추어 이자벨 역으로 분한 담라우는 ‘로베르, 나는 너를 사랑해’를 마이어베어 특유의 긴 프레이징으로 불렀다. 이 아리아는 파트리치아 치오피의 퍼포먼스로도 잘 알려져 있는데, 어느 기자는 그녀의 목소리가 마이어베어를 하기에는 너무 가냘프다고 비꼬았다. 문제는 그 당시 마이어베어 역을 노래한 성악가들의 퍼포먼스가 어떤 것이었는지 상상하기도 힘들다는 점이다.

연주를 듣기 전 디렉터 알렉상드르 드라츠위키는 “사실 1805년부터 음역대가 높아졌다. 그러므로 마이어베어의 소프라노나 테너의 어떤 역들은 너무 높아 부르기가 불가능하다. ‘악마 로베르’ 중 알리스 같은 역은 아주 부르기가 고약한 역이다. 당시 전설의 소프라노라 불린 제니 린드가 알리스 역을 했는데 그녀는 나탈리 드세이처럼 아주 섬세한 콜로라투라인데도 로시니의 ‘알제리의 이탈리아 여인’을 나중에 초연했을 정도다. 베르디의 ‘돈 카를로’에 나오는 메조소프라노나 소프라노의 음역들은 마이어베어의 작품을 연구한 결과 잉태한 산물이다”라고 말했다. 당시엔 그저 흘려듣고 말았는데 객석에서 비로소 알렉상드르의 그런 설명이 마이어베어가 후세대에 남긴 업적임을 느낄 수 있었다.

화려한 원색 모티프들이 장식된 검은 드레스 차림의 담라우는 2부에서 훨씬 더 자연스러웠다. ‘디노라’ 중 ‘가벼운 그늘’에서 자신을 따라다니는 그림자를 향해 독백처럼 노래하는 사랑에 빠진 처녀의 심정을 환상적으로 그려냈다. 나틸리 드세이·조수미 등도 연주했던 이 아리아는 마지막 프레이즈에 나오는 하이C는 물론이고, 전형적인 콜로라투라 보칼리즈가 필요하다. 사실 프랑스 그랜드오페라를 들을 때는 텍스트가 어렵기 때문에 텍스트의 혼란한 상황을 이해해야 한다. 고음에서 u 발음이나 자음은 찌그러져서 잘 들리지 않는다. 이 점을 잘 고치지 않으면 베르디식의 벨칸토 발성은 어렵다. 그러나 아주 높은 고음의 연속에도 불구하고 담라우의 프랑스어 딕션은 이해가 됐으며 마치 오페라 무대처럼 살아 있는 캐릭터를 창조하고자 많은 에너지를 쏟았다. 담라우만의 노하우란 이런 것이었다.

연주의 압권은 ‘위그노 교도들’ 중 마거릿 공주와 그녀의 시종들이 부르는 ‘투렌의 아름다운 고장’이었다. “당시 투렌의 프랑스 궁정을 다스렸던 마거릿 공주가 어떻게 그리 자유분방한 소녀처럼 변신할 수 있을까”라고 일부 관객은 반문했을 것이다. 이 아리아는 발성적으로나 감정이입 면에서 드라마틱했다. 그날 콘서트에서 이색적이었던 곡은 금관 파트가 오케스트라 합창석에서 연주했던 ‘아프리카의 여인’ 중 ‘인디언의 행진’. 거리가 약간 안 맞기는 했지만 오페라적 스케일이 무엇인지를 짐작케 했다.

그러나 ‘디노라’의 서곡을 들으며 왜 마이어베어는 어떻게 연주해도 조악하다는 평을 듣는지 이해됐다. 이 작품은 바그너적인 심도 깊은 어법과 아주 가볍고 피상적인 파트로 짜깁기됐는데 아무리 이 작품이 코미디라고 하더라도 한 작곡가가 같은 완성도로 썼다고는 보기 힘들었다. 드라츠위키는 마이어베어 특유의 다양한 스타일 성향을 이렇게 설명했다.

“1830~1850년에 작곡한 마이어베어의 작품들은 이탈리아와 프랑스 보컬 스타일을 섞었고 어떤 캐릭터는 독일적 화성 아래 작곡하기도 했다. 고로 매끈한 완성품을 선사하기보다는 다양하다고 보는 게 맞다. 이를테면 ‘위그노 교도들’에서 여왕의 보칼리즈 후에 4막에서는 프랑스 스타일 아리아가 연주될 거라는 스타일적인 유희를 예고하는 식이다. A·B·A 형식으로 된 발렌틴의 아리아가 프랑스식 예인 반면 여왕의 아리아는 이탈리아 스타일이다. 바그너나 베르디는 이런 마이어베어의 다양한 스타일을 합성해 그들만의 것으로 만들었다. 이것은 마이어베어의 또 다른 업적이 아닌가 싶다.”

다음 날 아침 바티칸과 로마 시내가 보이는 빌라 메디치에서 이곳 디렉터인 에리크 드 샤세가 합석한 가운데 팔레토 브루 차네 측은 기자회견을 열고 다음과 같은 발표를 했다.

“구노 하면 ‘로미오와 줄리엣’, 비제 하면 ‘카르멘’을 연주하지만 생상스의 경우는 10여 개의 작품을 한 번도 연주한 적이 없다. 구노의 오페라 중에서도 ‘자모라 부족’ 같은 작품을 아는 이들은 적다. 마리아 칼라스가 이탈리아 작곡가 케루비니를 노래하지 않았다면 오늘날 우리가 ‘메데’ 같은 작품을 기억할 수 있었을까? 팔레토 브루 차네는 오늘날 제대로 평가받지 못하는 작곡가와 명곡을 재조명하기 위해 샤를 시몽의 ‘레 바야데르’(1810), 카미유 생상스의 ‘야만인들’(1901)을 출반했다. 또한 이름도 생소한 프랑스의 두 작곡가 뱅자맹 고다르와 알베릭 마냐르의 실내음악을 발굴했다. 앞으로 드뷔시의 잊혀진 작품 ‘돌아온 탕자’도 소개할 예정이다.”

음악의 저변을 넓히기 위한 팔레토 브루 차네의 지치지 않는 열정에 박수를 보낸다. 비로소 빛을 보게 된 작곡가와 그 곡들에게도 환호를.

사진 Musacchio&Ianniell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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