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르디 ‘레퀴엠’과 바리톤 마티아스 괴르네 리사이틀

라 스칼라 극장의 울림이 깊은 이유

기사 업데이트 시간: 2014년 11월 1일 12:00 오전

수많은 극장이 경제난으로 어려움을 겪고 있는 지금 라 스칼라 극장은 정도(正道)를 가면서도 여전히 승승장구하고 있다. 라 스칼라 극장의 탄탄한 내실은 우리 공연장이 반드시 배워야 할 덕목이다

잘나가던 유럽과 러시아·미국의 오페라하우스들이 몇 년 전부터 휘청거리고 있다. 공연 캘린더를 살펴보면 극소수 극장을 제외하곤 군데군데 비어 있는 공간이 꽤 많이 보인다. 오페라 종주국인 이탈리아도 마찬가지다. 한때 ‘나폴리 아리아’로 최정상의 자리를 고수했던 산 카를로 극장조차 출연 성악가의 개런티를 6개월 후에 지급하는 치욕을 맛보고 있다는 소문이다.

10월 4일, 라 스칼라 극장은 적어도 겉보기에는 아직도 건재했다. 밀라노의 중심 두오모에서 북쪽으로 비토리오 에마누엘레 2세 갤러리아를 직선으로 통과한 뒤 스칼라 광장에 다다르자 라 스칼라 극장은 여전히 도도하게 위용을 드러냈다. 오래된 유럽의 오페라하우스가 좁디좁은 극장 앞 공간 때문에 공연이 임박하면 늘 인산인해를 이루는 것과는 달리 라 스칼라 극장은 스칼라 광장 덕분에 한층 더 여유로워 보였다. 바로 전날 같은 프로그램으로 공연이 있었음에도 2,000석의 붉은 객석은 바닥부터 6층 발코니까지 초만원이었다. 그건 바로 지난 1월 20일 타계한 클라우디오 아바도에게 헌정하는 콘서트였기 때문이었다.

20년간 라 스칼라 극장을 지켜온 故 클라우디오 아바도를 향한 절창

빅토르 데 사바타 다음으로 긴 재임 기간을 기록하며, 1968년부터 무려 20년 동안 라 스칼라 극장의 포디엄을 장악한 클라우디오 아바도는 밀라노의 터줏대감이었다. 그래서였을까. 베르디의 ‘레퀴엠’으로 아바도를 기리는 특별한 연주회는 현 음악감독 다니엘 바렌보임이 아니라 이탈리아인 리카르도 샤이가 지휘봉을 들었다. 샤이는 내년 1월 1일부터 바렌보임의 후임으로 공식적인 임기가 시작된다.

독창자들의 면면도 화려함 그 자체였다. 2012년 8월 27일 소프라노 아냐 하르테로스·메조소프라노 엘리나 가랑차·테너 요나스 카우프만·베이스 르네 파페와 바렌보임이 호흡을 맞춘 ‘레퀴엠’은 최근 출시된 영상물 가운데 최고의 완성도를 자랑한다. 10월 4일 공연은 하르테로스와 가랑차가 2년 만에 다시 출연했다. 현지에서 공연 취소를 잘하기로 악명 높은 카우프만은 이날도 목 상태가 악화돼 급히 미국의 중견 테너 매슈 폴런자니로 교체되었다. 프로그램북 속에는 폴런자니의 프로필을 담은 종이가 엉성하게 끼워 있었다. 베이스 일데브란도 다르칸젤로는 네 명 가운데 가장 불안했다. 2006년 잘츠부르크 페스티벌에서 실연을 처음 접했던 다르칸젤로의 안정적인 저음과 목소리는 실망으로 바뀌었다. 그는 비브라토의 간극이 일정하지 않고 소리가 자주 갈라졌다.

입당송. 약음기 낀 첼로가 극히 작은 소리로 아래로 내려가고 남성 합창이 드디어 심연의 바닥에서부터 피아니시모로 차고 올라왔다. 소름이 돋았다. 역시 라 스칼라 극장 합창단의 기량은 명불허전. 하늘과 땅을 오가며 마지막 곡 ‘나를 구하소서(리베라 메)’에 이르기까지 객석을 쥐락펴락했다. ‘진노의 날’의 총주는 가히 청중에게 지옥을 경험하게 했을 터이다. 드레스덴 슈타츠카펠레·마린스키 오케스트라와 함께 유럽 극장 오케스트라 최정상의 자리를 고수하고 있는 라 스칼라 필하모닉의 저력을 확인하는 순간이기도 했다.

“주여, 찬양과 기도의 제물을 당신께 드리나니, 오늘 우리가 기리는 자들을 위해 받아주소서….”

공연의 백미는 ‘봉헌송’ 가운데 C장조로 바뀌는 중간부였다. 테너의 고백을 나머지 독창자들이 받아 어우러지는 화음은 그대로 천상의 노래로 바뀌었다. 트럼펫의 강타에 이은 합창의 2중 푸가가 돋보인 ‘거룩하시다’에 이어 ‘신의 어린 양’에서 하르테로스와 가랑차의 2중창은 그대로 신앙고백으로 바뀌었다. 특히 이날 가랑차는 도처에서 최고임을 증명해주었는데 ‘영원한 빛’ 도입부의 절창은 눈물이 날 만큼 아름다웠다. 반면 하르테로스는 ‘나를 구하소서(리베라 메)’의 마지막의 독백을 더 간절하게 부르짖었어야 했다. 그러나 샤이가 진두지휘한 명연주는 당연히 10분 이상의 커튼콜로 끝맺음했다.

바리톤 마티아스 괴르네, 슬픔이 만개하는 찬란함으로

지난해 라 스칼라 극장에서 슈베르트의 ‘겨울 나그네’ 전곡 연주로 평단과 청중의 찬사를 받았던 바리톤 마티아스 괴르네는 10월 5일 ‘백조의 노래’로 무대에 섰다. 이탈리아의 동갑내기 피아니스트 엔리코 파체가 지난해에 이어 반주를 맡았음은 물론이다. 2001년 위그모어홀 실황 음반(Decca)과, 2009년 내한해 국내 팬들과 만났던 같은 프로그램이었다. 베토벤의 ‘멀리 있는 연인에게’와 슈베르트의 ‘백조의 노래’. 이탈리아 청중이 우리보다 한발 늦게 듣는 셈이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이미 독일 예술가곡의 명장 반열에 선 괴르네가 들려주는 음성은 가장 인간적이고 세련된 것이었다. 이는 ‘멀리 있는 연인에게’의 첫 곡 ‘언덕 위에 앉아서’부터 감지되었다. 베토벤은 전주곡이었다. 쉼 없이 이어진 ‘백조의 노래’는 슈베르트 가곡의 알파와 오메가를 온전히 들려주었다. 거칠게 올라가는 감정의 고조와 끝없이 추락하는 절망, 체념으로 돌아가는 낮은 읊조림과 삶의 마지막 단말마를 내뱉는 탄식! 슈베르트의 카멜레온처럼 변화하는 가슴의 높낮이를 괴르네는 그대로 꿰뚫고 있었다.

오페라를 잘하는 가수는 많아도 리트를 잘 부르는 가수는 드물다. 그건 소리 경연장이 아니라 삶을 노래할 줄 아는 진득함이 오래도록 배어 있어야 가능한 일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제 지천명을 향해가고 있는 괴르네는 1996년에 발매한 데뷔 음반(Hyperion)보다, 아니 직전인 2012년 크리스토프 에셴바흐와 발매했던 음반(Harmonia Mundi)을 비교해보더라도 같은 레퍼토리였지만 더욱 깊어진 음악 세계에 진입해 있었다. 여기에 극장의 뛰어난 음향이 가세해 청중을 황홀경으로 몰고 가기에 충분했다. 연주하는 환경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절절히 느끼게 해주었다.

1곡 ‘사랑의 소식’은 역시 사랑스러웠다. 물론 그건 교과서적인 그의 스승 피셔 디스카우의 학구적인 메마름과는 차별화되었다. 유명한 ‘세레나데’는 슈베르트의 노래하는 심성이 다분히 녹아들었다. 괴르네는 감정의 흐름에 따라 온몸으로 연기했다. 때로는 피아노를 짚고 파체를 바라보는가 하면 때로는 먼 곳을 응시하며 잦아들었다. 7곡 ‘이별’에서의 즐거운 재출발은 ‘아틀라스’를 거쳐 9곡 ‘그녀의 초상화’에 이르러 다시 가라앉았다. 그야말로 목소리를 극히 낮추고 극한의 메사디보체를 실현해야 제맛이 나는 난곡 중의 난곡이다. 괴르네는 한 폭의 그림을 안개처럼 피어나는 무채색으로 칠했다. 그리고 “내 눈물도 볼을 타고 흐른다” 부분에서 캔버스에 드디어 참고 참았던 눈물을 떨구었다. 초상화의 끝은 괴르네의 강렬히 고조되는 목소리에 파체의 피아노 연타가 단말마로 합쳐졌다.

6곡 ‘먼 나라에서’의 슬픔은 12곡 ‘해변에서’로 마침내 만개했다. 슬픔이 만개하다니! 괴르네는 그랬다. 프리츠 분더리히가 불렀다면 비슷했을까. 필자는 이 곡을 이토록 담담하게 부르면서 듣는 이를 비통함의 끝으로 몰아붙이는 가수를 본 적이 없다. 우선 파체의 피아노가 비극을 기막힌 화음 연타로 표출했다. 또다시 메사디보체. 괴르네는 꿈결처럼 아름다운 선율을 낮게 또 낮게 움켜쥐었다. 슈베르트의 ‘전매특허’인 불길한 트레몰로를 타고 살짝 고조되는 듯하더니 다시 나락으로 떨어져갔다. 가사 그대로 불행한 여인이 눈물로 독을 준 것처럼…. 그리고 괴르네는 끝 곡 ‘비둘기 우편’을 생략하고 ‘그림자’로 갈무리했다. 아, 그게 더 나았다. 그래야 무서운 슬픔의 끝을 볼 것이었기 때문이다. 결국 이탈리아 청중은 ‘그림자’의 마지막 음의 여운이 사라지고 30초 이상이 흘러도 도무지 박수를 칠 수 없었다. 하지만 한번 터진 환호는 오래도록 이어졌다.

라 스칼라 극장에서 오페라를 보지 않고 레퀴엠과 예술가곡을 경험한 것은 오히려 잘한 일이었다. 오페라는 겉이요, 리트는 속이다. 괴르네를 보기 위해 객석을 채운 청중을 보면서 라 스칼라 극장은 겉뿐만 아니라 속도 꽉 차 있음을 절감했다. 수많은 극장이 경제난으로 어려움을 겪고 있는 지금 라 스칼라 극장은 정도를 가면서도 여전히 승승장구하고 있다. 우리 공연장이 반드시 배워야 할 덕목이다.

사진 Teatro alla Scal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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